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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2일 월요일

[영화 리뷰] 좀비가 되고 싶어? 그럼 자지마! ~ 불면의 저주(失眠,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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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가 되고 싶어? 그럼 자지마!

그녀의 심장 박동수와 혈압은 다 정상이다

역시 정신력이 넘치는 것 같다

그녀는 일주일 내내 한숨도 자지 못했다

역시 온몸 구석구석 찐득찐득하는 한여름에는 공포 영화가 최고다 해서 한 편 골라봤는데,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불면증으로 어떻게 공포 영화를 만든다는 거지?’ 하는 의구심 반 기대 반으로 재생을 시작하는 분이 많겠지만, 후반부로 가니 보통 수준 이상의 강렬한 비주얼이 전반부의 조금은 지루했던 시간을 보상해주고도 남는다. 특히 일본 장교의 성기를 통째로 도려내 일본 녀석들 엿 먹어라 하듯 장교 입안으로 그대로 쑤셔 넣는 장면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영화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통쾌함을 관객의 오감 속으로 욱여넣어 준다. 하지만, 「불면의 저주(失眠, 2017)」가 단지 공포 영화라고 해서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내가 지금까지 본 중국/홍콩 영화에서는 별로 이슈화되지 못했던 ‘위안부’ 문제를 꽤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위안부’ 문제만큼은 한국과 중국이 힘을 합쳐 일본을 압박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리뷰가 쓰고 싶어졌다.

The_Sleep_Curse movie secene

초반만 놓고 보면 ‘불면증’을 의학적으로만 다루는 듯한 오해의 소지는 충분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면 두 가족사에 대대로 유전됐음에도, 현대 의학으로는 해결하지 못한 ‘불면증’을 ‘저주’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비극적인 내력이 이야기보따리의 터진 옆구리에서 새어 나오듯 서서히 드러난다. 때는 일본이 중국을 한창 점령하던 시기로서 친일파가 기세등등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눈에 보이는 어린 여자는 죄다 잡아들여 위안부를 조직하던 시기다. 이때 부모로부터 흑마술을 전수 받은 자매와 얼떨결에 매국노가 된 람싱과 한국의 이완용처럼 적극적으로 친일파가 된 차우복의 운명이 엇갈리면서 ‘불면의 저주’를 시작된다.

그런데 친일파를 '착한 친일파'와 '나쁜 친일파'로 구분할 수 있을까? 내가 볼 땐 람싱처럼 소극적인 친일파와 차우복처럼 적극적인 친일파로 구분하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 한마디 더 덧붙이면 람심 같은 소극적 친일파는 그럭저럭 봐줄 수 있지만, 차우복 같은 적극 분자는 얼마가 지났든 반드시 숙청해야 하며 후손들만 남아있다면 친일 행위로 얻은 모든 이익과 그 이익이 낳은 이익까지 모두 몰수(이것은 소극적인 친일파도 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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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이 이다지도 큰 병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영화 속에서 오랫동안 잠을 못 잔 사람들은 주체할 수 없는 광기를 휘두르다 끝내 자멸한다. 잠을 못 자면 뇌세포가 손상된다고 하는데, 오랫동안 잠을 못 잔 사람이 좀비처럼 난폭하게 돌변하는 것은 파괴된 뇌세포를 회복하기 위한 단백질을 보충하고픈 강렬한 욕구의 발산일지도 모르겠다. 생살을 뜯어 먹는 좀비가 되고 싶다면, 잠을 안 자면 된다! 그런데 하루라도 버틸 수 있으려나. 아니면 잠을 안 재워 좀비로 만드는 건가?

The_Sleep_Curse movie secene

잠은 하루 동안 온갖 정보를 처리하고자 혹사당한 뇌에 주어지는 유일한 휴식이다. 우리는 보통 하루에 습득한 정보 대부분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하지만, 꿈에서 막 깨어났을 때 방금 꿈에서 본 것들을 힘겹게 떠올려보면 별의별 정보가 다 있다. 심지어 책에서 본 (당연히 의식적으로는 절대 기억할 수 없는) 글자 하나하나까지 선명하게 떠올라 스스로 놀랄 때도 있다. 물론 놀람과 동시에 곧바로 잊어먹지만, 이런 점만 봐도 뇌는 엄청난 과부하를 견뎌내고자 선택적 기억을 고안해낸 것이리라. 만약 우리가 하루에 접하는 모든 정보를 다 기억한다면, 하루하루 쌓이는 그 엄청난 정보량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끝끝내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고로 뇌 활동이 왕성하거나, 뇌세포가 많이 남아있는 사람은 잠이 많을 것이다(참고로 난 아직 잠이 많다). 반면에 뇌세포가 이미 많이 손상된 사람은 잠도 적을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잠도 없어지나 보다. 이것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깨어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려는 것이 아니라 휴식을 취할 뇌세포가 젊었을 때보다 현격히 줄어들었을 테니 그만큼 필요한 잠도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아무튼, 한창 성장하는 시기에 충분한 수면이 뇌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불면의 저주(失眠, 2017)」는 참으로 통탄할 만한 이야기로 섬뜩하게 깨우쳐주고 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불면의 저주(失眠,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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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6일 화요일

[영화 리뷰] 누군가에겐 시간 낭비, 누군가에겐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

Haruchika-2017-movie-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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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시간 낭비, 누군가에겐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Solo는 혼자라는 의미가 아냐.

제대로 전해지고 있으니까.

좀 더 자신과 맞서.

주변의 연주가 있으니까 solo,

그러니 혼자가 아니라는 것.

영화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는 미스터리 장르는 아니다. 아마도 이러한 오해는 영화는 보지 않고 영화 제목만 보고 대충 추측해서 붙인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영화 제목 ‘하루치카’는 하츠노 세이가 집필한 일본의 추리소설 시리즈 제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지 못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보기엔 폐부의 위기에 처해 있는 취주악부에 소속된 치카라는 설정만 원작에서 따온 것 같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누군가에 추천할만한 대단한 영화는 아니라는 것. 그런데도 내가 이 영화를 봐야 했던 이유는 전적으로 하시모토 칸나(橋本環奈)라는, 요즘 잘 나가는 아이돌의 고만고만한 섹시함과 전혀 다른 느낌의 호림을 발산하는 여배우 때문이다(그녀는 정말 교복이 잘 어울린다).

그녀를 알게 된 발단은 「사이키 쿠스오의 재난(斉木楠雄のΨ難, 2017)」. 이 영화에서 엄청난 발연기로 병맛 영화에 나름의 양념을 치고자 열심히 망가지려 애쓰는 그녀의 심상치 않은 노고도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그런 노력이 앙증맞고 귀여운 그녀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기는커녕 이렇게 그녀가 주연한 다른 영화를 찾게 하는 요상한 계기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하시모토 칸나는 마멀레이드 키친의 노래 「기대도 될까」 첫 소절에 나오는 가사대로 정말로 ‘작고 귀여운 소녀’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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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영화를 찾아 감상하다 보면 단순하게 여배우의 미모에 홀려 시간 낭비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보게 되는 영화가 종종 있고,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도 그런 영화 중의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감상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옛 추억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바로 영화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소재이자 무대로 등장하는 ‘취주악부’ 활동이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취주악부 활동을 했었고, 당당히 ‘부장’을 맡았다. 파트는 처음에는 플루트였지만,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서 트롬본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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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주악부 활동이 뿌듯했던 점은 수업을 정식으로 땡땡이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물론 매일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 무슨 행사가 (예를 들면 국군의 날 종로 길거리 연주) 있어서 그에 대비한 연습 때문에 종종 수업을 빼먹을 수밖에 없었다. 취주악부에는 자랑거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선배 중에 한참 위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영화배우 최XX 씨가 있었다는 것과 취주악부를 담당하는 음악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취주악부 학생은 실기 시험에서 (실력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고득점을 받을 수 있었다. 아직도 음악 선생님 앞에서 실기 시험을 치던 그때 모습이 선한데 가곡 '보리수'의 '성문 앞 ~' 달랑 이 한 소절만 부르고 바로 통과! 난 부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최고 점수! 이러한 것이 90년대니까 통했지, 만약 지금 같았으면 학부모들의 반발을 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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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으니, 영화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에서 아마추어급 이상의 연주실력을 뽐내는 조연배우들의 연주가 당연히 가슴에 와닿을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다 찌그러진 악기, 쥐들이 바글거려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음악실 환경과 그런 환경에 걸맞게 연주실력 역시 형편없었다. 그리고 플루트는 직접 불어봐서 아는데, 금관이나 목관 악기와 비교하면 배우기 매우 어려운 악기다. 하시모토 칸나가 이전부터 취미생활로 플루트를 연주해 온 것이 아니라면, 땀 좀 뺐을 것이다. 아니지, 플루트의 경우에는 땀보다는 폐활량 때문에 (초보자는 취관에 정확하게 숨을 불어넣기가 매우 어려워 낭비되는 숨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플루트'하니까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내가 1학년 때 3학년 선배 중 플루트를 기가 막히게 잘 부는 선배가 한 명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가을 축제 때는 플루트가 아닌 알토 색소폰으로 독주를 했다. 곡명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김종서의 ’겨울비‘. 왜 평소에 잘 부는 플루트가 아닌 색소폰을 선택했는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플루트보다 색소폰이 더 멋(?)있어 보일 것이라는 황당한 오해다. 아무튼, 그 선택은 최악이었다. 불상사도 그런 불상사가 없다. 연주라기보다는 '삑사리' 메들리였다. 엄청난 동정심과 해방의 기쁨이 담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무대 뒤에 잠시 쉬고 있던 우리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아주 곤란한 상황이었다. 참고로 우리 취주악부의 18번은 ’시바의 여왕(La Reine De Saba)‘이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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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7일 일요일

[영화 리뷰] 품평하는 재미가 쏠쏠한 무협 드라마 ~ 신소오강호(新笑傲江湖,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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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평하는 재미가 쏠쏠한 무협 드라마

"왜 평화롭게 살지 못하고 서로 다투는 걸까?"

올드팬이라면 고전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에서 배우 강수연의 삭발이 항간의 화제가 되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 삭발이 간간이 뉴스거리가 되곤 하는데, 최근 감상한 중국 무협 드라마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에서는 주인공 한두 명이 아니라 떼거리로 삭발을 감행했다. 영호충을 애틋하게 사모하는 의림을 비롯한 항산파 비구니 모두, 그리고 비록 마교에 속한 몸이지만 의리 하나만은 죽여주는 전백광이 영호충과의 내기에서 져 의림의 제자가 되고 나서 역시 삭발한다. 의림이나 전백광은 비중이 높은 배역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항산파의 나머지 제자들도 무슨 투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모두 삭발했다. 혹은 진짜 비구니들을 캐스팅한 것일까? 아무튼, 스님이나 비구니처럼 삭발이 필요한 배역을 맡은 배우들 모두 진짜로 삭발을 해버렸다. 당연히 인자함의 끝판을 보이는 방증대사도 가발이 아닌 진짜 삭발이다. 열연을 향한 배우들의 놀라운 의지와 열정에 반해 감히 몇 자 적어보고자 키보드를 두드리게 된 것이다.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
<그냥 저 주먹에 맞아 죽고 싶어라>

무협 소설의 대가 김용의 작품은 시도 때도 없이, 그리고 똑같은 작품들이 반복적으로 드라마화될 정도로 아시아권에서는 확실한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선에서는) 흥행 보증수표이다. 나처럼 원작을 이미 몇 번이나 읽은 사람도 이번에는 영호충 같은 영웅이나 황용 같은 미녀 역할을 어떤 배우들이 어떤 연기력으로 맡았을까 하는 궁금증에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된다. 사실 김용 소설이나 그것을 드라마한 영상이나 몇 번을 읽고 감상해도 질리지 않는 내용도 일품이지만, 드라마 같은 경우 원작의 등장인물과 그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잘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혹은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인물과 잘 어울리는지 품평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
<연인이라기보다는 사이 좋은 남매>

그런 면에서 「사조영웅전(射雕英雄传)」 2017년 작품에서 황용 역할을 맡은 이일동(李一桐)은 정말 최고 중의 최고 배역이다. 예쁜 외모뿐만 아니라 톡톡 튀고 재기 넘치는 황용의 이미지와도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한편 어수룩한 곽정 역할을 맡은 양욱문(杨旭文) 같은 경우 처음에는 좀 이질감이 있었지만, 보면서 익숙해질 정도는 되었다.

한편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에서 영호충 역을 맡은 정관삼(丁冠森)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적응이 안 되는 최악의 배역이었다. 왠지 류덕환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앳되고 어딘지 덜 여문 달걀처럼 깨지기 쉬운 외모는 걸걸하고 호탕한 영호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임영영 역할을 맡은 고현정을 연상케 하는 설호정(薛昊婧)의 성숙한 외모도 마찬가지다. 화사한 미모 속에 영악함을 숨기기는커녕 그녀의 너무 진지한 미모는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마치 영호충이 남동생처럼 보인다.

차라리 남봉황 역할을 맡은 유가동(刘珈彤)이 더 돋보인다. 원작에서는 그렇게 큰 비중이 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신소오강호’에서는 동방불패의 짝으로 등장하는데, 남봉황은 임아행 앞에서 유일하게 할 소리 다 하는 여장부다운 시원시원한 기개를 선보인다. 또한, 의림 역할을 맡은 강탁군(姜卓君)의 바람에 홀려 흐늘거리는 버들가지 같은 가녀린 외모와 귀여운 연기가 일품이다. 특히 삭발해도 이렇게 매력적인 여자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늙은 내 심장이 허덕일 정도로 놀라운 일이다.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
<밀어야 할 사람은 다 밀었다>

‘신소오강호’는 기존처럼 원작을 그대로 외운 듯한 똑같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원작의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인연이나 기연을 조금 더 앞부분으로 끌어당김으로써 시작부터 주요 인물이 모두 열거된다. 일례로 영호충과 임영영의 만남, 영호충의 임아행 구출, 동방불패의 등장 등이 그러하다. 그럼으로써 시청자는 지루함을 덜을 수 있으며, 드라마는 원작의 그늘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소오강호’가 ‘사조영웅전(2017)’보다 확실하게 나은 점이 있다면 액션 장면이다. ‘사조영웅전(2017)’ 같은 경우는 대결이 시작되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 대역들이 등장하지만, ‘신소오강호’는 최대한 배우들이 액션을 소화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당연히 대역보다는 검을 다루는 모습이 어설프고 부자연스럽지만, 그 어설픔 속에 뭔가를 보여주려는 열정이 깃든 것 같아 보기 좋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드라마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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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6일 토요일

[영화 리뷰] 무슨 짓을 하든 안 걸리면 장땡이야 ~ 차가운 열대어(Cold Fish,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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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짓을 하든 안 걸리면 장땡이야

“너같이 선한 인간인 척하는 거 밥맛이야.”

이제 기력이 달리는지 (비록 형편없는 문장과 유치한 내용으로 뒤범벅된 최악일지라도) ‘책 리뷰’ 한 편 쓰고 나면 뭔가 대단한 임무라도 완수한 것처럼 맥이 탁 풀린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지만, 사정이 그러한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래서 불러주는 대로 매일 무대에 섰던 밤무대 가수가 피로를 못 이겨 제풀에 몇 개의 공연을 끊듯 나 역시 ‘영화 리뷰’를 끊었다. 밤무대 가수처럼 무대에 선만큼 돈이라도 더 벌 수 있는 거였다면, 이까지 쫌이야 별것 아니지만, 적막한 곳에서 쓸쓸하게 놀려니 아무래도 힘에 겹다.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나마 간당간당하게 유지되었던 보잘것없는 필력마저 분산되다 보니 ‘책 리뷰’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그동안 해왔던 것이 있었기에 약간의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곧 시원섭섭함과 해방감이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이후로는 정말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영화만 리뷰를 쓰기로 했다. 「차가운 열대어」는 그런 영화 중 세 번째 영화다. 참고로 이번 리뷰는 다른 리뷰들과는 달리 원칙을 깨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의 무엇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차가운 열대어」가 ‘살인’이라는 원초적이면서도 문명에 의해 억제된 욕구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무라타처럼 법망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살인은 견실한 이익을 남겨주는 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안 걸리면 장땡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때론 살인은 억제된 욕망을 분출할 수 있는 취미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을 마치 타인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거나 심판하는 신처럼 착각하게 하는 살인은 그 어떤 신약도 성공하지 못한 불굴의 자신감마저 불어넣어 준다.

그래서 영화는 매사에 지나칠 정도로 자신만만하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는 무라타와 그의 대조적인 짝으로 딸과 아내 눈치 보기에 바쁜 샤모토를 등장시킨다. 샤모토는 매력적인 아내에게 빈번히 잠자리를 거절당하지만 이에 대해 한마디 대꾸도 못 할 뿐만 아니라 탈선하는 딸조차 나무라지 못할 정도로 매사에 주눅이 들어있고 소심한 가장이자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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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처럼 살아가던 샤모토는 우연히 만난 무라타의 파렴치한 사기 행각에 본의 아니게 꼽사리로 끼게 되고, 역시나 그가 파는 물고기처럼 한마디 벙긋 못하고 무라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된다. 태연스럽게 사람을 죽이고, 태연스럽게 시체를 처리하는 와중에도 철두철미하게 증거를 인멸하는 무라타 앞에서 샤모토는 꿀 먹은 벙어리다. 그렇게 샤모토는 무라타의 살인 놀이에 반강제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가르침 아닌 가르침을 받게 되고, 겨우 며칠 만에 무라타는 매우 좋은 실력을 갖춘 스승임이 밝혀진다.

나라를 통째로 잃은 것처럼 매사에 의기소침하고 소심하던 샤모토가 무라타의 피를 보고 나서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포악한 늑대로 돌변한 것이다. 복받쳐 오르는 기운을 어찌할 수 없던 샤모토는 그 즉시 집으로 달려가 남편 앞에서만 옷을 벗지 않았던 아내를 강간하려 들고, 아빠의 말을 개똥만큼도 여기지 않던 시원치 않은 딸을 시원하게 짓밟아버린다.

재밌는 것은 샤모토의 분노 어린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에 그의 얼굴에서 그동안 그의 소심함과 무력함의 상징처럼 보였던 안경이 벗겨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클라크 켄트가 슈퍼맨으로 변신하게 전에 안경을 벗는 것과 같은 맥락일까? 안경이 그동안 샤모토의 잠겨진 분노를 잠근 자물쇠라도 되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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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살인에서만큼은 아마추어 중의 아마추어라 할 수 있는 샤모토는 무라타 같은 무한한 뻔뻔스러움과 ‘살인 철학’이라는 무시무시한 자기 합리화라는 무기까진 갖추지를 못했다. 샤모토는 보통 사람들처럼 소박하고 약간은 정직하고 약간은 양심적인 사람이었기에 비록 일시적으로나마 환경에 지배되어 일탈했을망정 자신의 광기를 더는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는 무라타의 뒤를 잇는 훌륭한 제자가 되기보다는 무라타의 지배를 끝장내는 배은망덕한 제자가 된다.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의 유명한 사회심리학 실험인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SPE: Stanford Prison Experiment)이 교묘하게 조정된 권위와 상황의 힘으로 평범한 사람을 너무나도 쉽게 악행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음을 증명했던 것처럼 샤모토의 일탈은 ‘일탈’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보편타당성을 내포하고 있다. 나나 당신이 샤모토와 같은 상황에 부닥친다 해도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악의 길로 빠지지 않을 자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우리를 범죄자로 밀어붙이는 상황의 강력한 힘을 지나치게 얕보고 있다는 점에서 가까이해서는 아니 될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빠르게 상황의 힘에 굴복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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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아무리 진보해도 무라타처럼 누군가에게 살인은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것도 그냥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순간의 실수로 저지르는 그런 살인이 아니라, 돈에 눈이 멀어 저지르는 계산적 살인을 한 차원 뛰어넘어 삶에 활력을 더해주는 강장제로서의 살인도 성립된다는 것이다. 무라타 부부의 살인 행각이 「사이타마 애견가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실화를 근간으로 했다는 점에서 아무리 흉악한 짓이라도 역시 안 걸리면 장땡이다. 살인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거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다. 인류의 보편성에서 멀찍이 떨어진 나름의 도덕 철학으로 무장한 무라타 같은 사람에게 살인은 일과 중 하나이자 즐거운 취미 생활의 한 방편일 뿐이다.

샤모토 같은 사람에게 살인은 무시무시한 것이지만, 무라타 같은 사람에게 살인은 재밌고 짜릿한 일이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이것이 불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샤모토처럼?) 살인을 무시무시한 그 어떤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이 (무라타와 엮이게 된 것 같은?) 어떤 상황을 겪게 되면 어느새 살인자가 되어 있다. 인정하지만, 나도 사람을 죽이고 싶을 때가 많다. 하나 아직 그러하질 못했다. 단지 그런 막다른 상황까지 내몰리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의지와 용기와 실천의 문제일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게 하는 상황의 힘은 운명의 얄궂은 장난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를 덮쳐오지만 두 손에 피를 묻히기 전에는 그것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다는 것이 함정이다.

한편으론 샤모토는 가족들에게 이유 없이 무시당하고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일본 아버지들의 씁쓸한 자화상이면서도, 파렴치한 문명과 되먹지도 않은 교육으로 자꾸 무언가를 억누르며 살아왔던 우리의 축 처진 뒷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는 내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안타까움과 그것을 안다 해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서글픔이 소리소문없이 가슴을 저미어온다.

끝으로 무라타 부부가 사람의 몸통을 토막 내고, 뼈에서 살을 발라내고, 물고기들이 먹기 편하게 살코기를 잘게 써는 작업 모습은 돼지를 잡고 부위별로 썰어내어 진열대에 올려놓으면서 손님들이 그 고기를 맛있게 구워 먹을 상상해 절로 흥분에 겨워하는, 그렇게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는 성실한 푸줏간 부부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되고 보니 무라타 부부가 시체를 해체하는 모습은 소름 끼칠만한 장면임에도 웬일인지 거부감은 없다. 마치 ‘극한 직업’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존경스럽고 신성하게 느껴진다. 사람도 죽으면 결국 한낱 고깃덩이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고깃덩이를 오랫동안 유지하고자 얼마나 많은 탐욕을 부리는지 알 수가 없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차가운 열대어(冷たい熱帯魚, 2010)」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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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7일 일요일

[영화 리뷰] 이보게, 좀비 한 명 키워보게나 ~ 기묘한 가족(THE ODD FAMILY, 2018)

THE-ODD-FAMILY-2018-movie-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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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좀비 한 명 키워보게나

준걸: 아 뭐 하는 거여 시방!

남주: 아 갑자기 달려오니께

준걸: 아니 갑, 뭐 맛 들였어?

남주: 아 놀래서~

준걸: 아니 괜찮아유?

「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 2004)」 같은 병맛과 「웜 바디스(Warm Bodies, 2013)」의 좀비 로맨스가 짬뽕되어 그 무엇이 될 듯도 했을 법한, 그리고 불순물을 거르지 않은 거친 상상력이 뻗어나는 것을 기꺼이 즐겁게 영광스럽게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지혜와 불굴의 용기를 가진 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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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짜장면을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좀비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잃어버린 강아지를 다시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운 영화다.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들은 파괴적이고 잔인하고 되돌릴 수도 없는 무시무시한 존재로서 좀비 바이러스를 묘사했는데, 「기묘한 가족」의 좀비 바이러스는 반짝이긴 하지만, 사람에게 젊음을 되찾아주는 묘약이다. 그 무엇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좀비의 왕성한 활동성을 회춘의 묘약으로 진화시켰으니 기가 막힌 반전이다. 비록 일시적이긴 하지만, 역대 좀비 바이러스 중에서 가장 ‘행복한 잠복기’와 가장 '유쾌한 부작용'을 가진 녀석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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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A. 로메로 감독이 일찍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2 - 시체들의 새벽(George A. Romero's Dawn Of The Dead, 1978)」에서 무의식, 무뇌충 상태에서도 쇼핑몰로 몰려드는 좀비를 통해 소비지상주의에 빠져 허덕이는 현대인을 날카롭게 풍자했다면, 「기묘한 가족」의 ‘기묘한 가족’들은 돈만 벌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대인의 돈에 대한 무서운 집념을 보여준다. 돈에 환장한 ‘기묘한 가족’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반쯤음 살아 있다고 봐도 무방한 '쫑비'를 회춘 기계로 혹사시키며 일확천금을 꿈꿀 때, 그것은 곧 벌어지게 될 파국을 숨기려는 달콤한 악마의 유혹이자 최후의 만찬이나 다름없다. 결국, 예정된 파멸은 미련 없이 세상을 덮쳐오고 마는데, 이런 아수라장이야말로 좀비 영화에서만 마음 놓고 흐뭇하게 감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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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맛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기가 막힌 반전은 채식주의자 좀비의 등장이다. 먹성 빼면 진짜 시체(?)나 다름없는 좀비가 가장 좋아하는 대표적인 먹거리는 살아 있는, 그래서 따끈따끈한 피를 질퍽하게 머금은 싱싱한 고기다. 그중에서도 좀비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그 엄청난 사람의 식성으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의 쭈글쭈글한 뇌다. 남자가 미녀의 호리호리한 몸매에 넋을 잃듯, 좀비는 사람 뇌의 뇌쇄적인 주름에 넋을 잃는다. 그럼에도 어딘지 어설픈 좀비 ‘쫑비’는 오로지 양배추다. 여기에 마요네즈도 아닌 케첩을 끼얹으면 금상첨화다. ‘쫑비’에게 이보다 더한 진수성찬은 없다. ‘쫑비’가 토끼가 당근을 먹듯 양손에 잡힌 양배추를 정신없이 갉아 먹는 모습은 영락없이 사랑스러운 애완동물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디 한번 좀비 한 마리, 하니 좀비 한 명 키워볼 텐가?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기묘한 가족(2018)」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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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5일 화요일

[영화 리뷰] 듣지도 보지도 못한 1인 7역의 맹활약 ~ 월요일이 사라졌다(What Happened to Monday?, 2017)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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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지도 보지도 못한 1인 7역의 맹활약

"너희들이 지금껏 다른 애들한테서 얼마나 많은 식량을 빼앗았는지 알아? 모두가 테렌스 셋맨처럼 이 세상은 곧 멸망하고 말 거야."

가까운 미래, 인류와 문명의 번영이 폭발적인 인구 과잉으로 심각한 위험에 처하자 인류는 ‘1가구 1자녀’라는 ‘아동제한법’을 통과시켜 무지막지한 인구 증가에 무지막지한 제동을 건다. 법을 위반하여 초과 생산된 아이는 먼 훗날, 지금보다 덜 붐비는 시기까지 냉동 창고에 보관된 생선처럼 강제로 냉동수면 처리된다.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screen shot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구를 먹여 살리고자 어쩔 수 없이 유전자 조작 식량을 남발한 인류는 그 대가로 급격한 기형아 출산 시대로 접어든다. 사랑도 매우 조심스럽게 나누어야 하고 먹거리조차 안전하지 못한 불운의 시대에 최고의 불행은 따로 있으니 바로 재앙과도 같은 쌍둥이 출산이다.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screen shot

그러던 어느 날 테렌스 셋맨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 들어왔으니, 그것은 사랑하는 딸이 출산 도중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 바로 서슬 퍼런 ‘아동제한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다산을 딸이 어기고 만 것인데, 그것도 두세 명이 아니라 무려 일곱 명의 쌍둥이를 낳은 것!

하루아침에 6명의 불법 자녀를 둔 범법자가 된 테렌스 셋맨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딸이 낳은 7명의 쌍둥이를 모두 감당하기로 하는 독한 마음을 먹는다. 그는 아이들에게 ‘먼데이, 튜즈데이, 웬즈데이, 써스데이, 프라이데이, 새터데이, 선데이’라는 가족 내에서만 사용하는 이름을 정하면서, 한편으로는 외부에서는 ‘카렌 셋맨’이라는 단 한 명의 인물로만 살아갈 것을 명한다. ‘먼데이’가 ‘월요일’날 외출해 보고 들은 모든 정보를 다른 자매들과 공유해야 하고, 만약 한 명이 다쳐 손가락을 잃는다면 나머지 6명 모두 똑같이 손가락을 잃어야 했다. 그렇게 엄격한 할아버지의 훈육 덕분에 무사히 30년이 지난 어느 날, ‘먼데이’가 아무런 소식도 없이 사라진다.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screen shot

인구 과잉으로 인한 식량 문제는 기후변화, 에너지 고갈, 생태계 파괴 등의 부정적인 시너지 효과가 더해지면서 정말 심각한 문제다. 영화도 그런 점을 반영해서 그런지 화면에 시종일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대홍수가 난 것처럼 철철 흘러넘치는 인구를 생각하면 어쩔 땐 사람이 개, 돼지만도 못한 것처럼 보일 정도지만, 그렇다고 영화처럼 중국조차 성공하지 못한 ‘산아제한’으로 인구 문제를 다스리기에는 사람의 번식 본능이 미련스럽게도 강렬하다. 내 생각엔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면 참혹하고 잔인하고 슬픈 시련의 시기가 되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전쟁과 기아가 결국 인구 증가에 제동을 걸 걸면서 인류는 급브레이크를 밟는 자동자처럼 비명을 아주 긴 시간 내지를 것이다.

사실 영화처럼 끔찍한 사기 행각이 아니라면, 냉동인간이 되어 몇백 년, 아니 몇천 년 후로 현재의 삶을 연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때는 병들고 늙는 것을 극복하고 젊음을 유지하는 새로운 기술들이 넘쳐날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내가 오랜만에 영화 리뷰를 쓴 이유는 인구 과잉이라는 지긋지긋한 문제 때문이 아니라 영화 오스틴 파워(Austin Powers)에서 1인 4역이라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었던 마이크 마이어스(Michael John Myers)를 뛰어넘는 누미 라파스(Noomi Rapace)의 1인 7역을 한 번쯤은 언급하고 싶어서다. 처음에는 보면서 설마 했는데, 영화 정보를 보니 1인 7역이 맞았다. 출연료도 7인분으로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누미 라파스의 아름답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뇌리에 각인시키는 조각상 같은 인상적인 얼굴이 내뿜는 이상야릇한 매력은 확실히 평범한 사람들의 7배는 넘어선다.

마지막으로 인류의 운이 다한다면 영화처럼 인류의 존속을 위해 수억, 혹은 그 이상의 목숨을 희생해야 할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면 우리는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만약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택한다면, 우리의 선택이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다른 것은 무엇일까? 아주 먼 훗날, 살아남은 인류는 이 두 선택을 두고 어떤 평가를 할까?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What Happened to Monday?,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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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일 일요일

[영화 리뷰] 기억이 낳은 또 다른 고름, 악몽 ~ 썸니아(Before I Wake, 2016)

Before I Wake 2016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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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낳은 또 다른 고름, 악몽

"그때 내가 (방아쇠를) 당겼다면 당신의 남편도 다른 사람들도 살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당신이…. 내가 못한 걸 할 수 있을지 몰라요" - 웰란

아이가 꾸는 꿈이 그대로 현실로 재현된다는, 그리 기발하지는 않은 소재를 다뤘음에도 공포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인과 관계를 마치 추리소설처럼 비교적 명확하게 풀어냄으로써 나름 독창적인 감흥을 자아내고 있는 영화 「썸니아(Before I Wake, 2016)」. 새로 입양한 아이 코디의 새엄마 제시는 코디의 악몽 속에 갇혀 있는 트라우마를 쫓는 탐정이 되는데, 그럼으로써 그녀는 코디 친모의 죽음이 아이에게 남긴 씻어낼 수 없는 기억이 단편화와 인상화라는 망각적 변용을 거쳐 끝내 악몽으로 이어졌음을 밝혀낸다. 그렇게 아이의 악몽은 끝난 것처럼 보이고, 두 사람의 운명은 화창한 봄날을 맞이한다.

약간은 무서우면서도, 그것보다 조금 더 약간은 슬프면서도 결말은 해피한 공포영화다. 다르게 말하면, 확실히 무섭지도 않고, 확실히 감동적이지도 않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도 코디의 악몽을 두루뭉술하게 에두른 것이 아니라 명징하게 추적한 것이 인상적이다. 그렇다. ‘악몽은 다름 아닌 우리 현실에서, 그것도 나의 삶, 나의 고통, 나의 슬픔, 나의 상처, 나의 기억에서 오는 것이다!’라고 영화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마치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보는 듯하지 않은가? 우리는 꿈속에 등장하는 뜻밖의 물건, 상황, 인물과 맞닥트리면서 괜히 놀라곤 하는데, 사실 이들을 역추적해보면 대부분이 (영화 속 코디처럼) 삶에서 받은 여러 인상의 과도한 변용과 예측할 수 없는 단편화가 가져온 결과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변용이 심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단순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결국 꿈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꿈을 꾸는 자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상할 수 있는 한계점 내로 한정되어 진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사람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컴퓨터’와 연계된 꿈은 꿀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뭐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영화 「썸니아」 는 아버지로 보이는 듯한 남자가 잠자는 코디를 권총으로 죽이려는 아찔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Before I Wake 2016 scene

하지만, 뭔 바람이 불었는지 닫혀 있던 문이 갑자기 ‘꽝’ 열리면서 남자가 놀라는 바람에 코디는 무사히 그날 밤을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법적으로나 도리상으로나 아이를 총으로 쏴죽이려 했던 남자에게 코디를 계속 맡길 수는 없는 법. 코디는 입양을 희망하는 젊은 홉슨 부부의 집으로 보금자리를 옮기고, 홉슨 부부는 불행한 사고로 아들 션을 잃어버린 가슴 아픈 기억을 여전히 간직한 채 코디를 새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세 살에 엄마를 여의고 어떤 연유로 여러 가정을 전전한 코디는 아이답지 않게 홉슨 부부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한다.

Before I Wake 2016 scene

코디가 가져온 짐이라곤 달랑 네모난 상자 하나. 코디가 방에 없을 때 침대 밑에 숨겨놓은 상자를 우연히 발견한 제시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나 뚜껑을 열어본다. 아이가 좋아하는 나비에 대한 책과 함께 발견한 것은 놀랍게도 (아직 고삼도 아닌데!) 각성제. 그날 코디에게 약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던 제시는 뜻밖의 대답을 듣는다. 잠을 자는 게 싫어서 각성제를 먹는다는 코디는 자신이 잠들면 ‘캔커맨’이 나타나 사람들을 잡아먹는다고 고백한다. 코디는 사뭇 진지하지만, 그냥 캄캄하고 어두운 밤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지어낸 이야기로 치부한 제시는 조금만 이해하면 무서운 게 사라진다는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코디의 걱정을 잠재우려고 한다.

Before I Wake 2016 scene

코디를 잠재우고 거실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부부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두 사람이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어디선가 갑지가 날아든 가지각색의 나비가 어느새 거실을 가득 채운 것이다. 하지만, 나비는 갑자기 날아든 것처럼 부부 앞에서 갑자기 사라진다. 남편과 함께 신비한 현상을 겪자 제시는 용기를 내어 어젯밤에 션을 본 일도 남편에게 털어놓는다. 제시에게 그 일은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했던 경험이었다. 다음 날 부부는 더욱 놀라운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나비와 함께 이번에는 죽은 아들 션이 나타난 것이다. 이 일로 두 사람은 코디의 꿈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어렴풋이 추측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션의 사고 장면, 즉 아이의 발이 약간 위로 들려 있는 상태에서 발버둥치는 것으로 보아 제시가 아이의 발을 잡고 들어 올려 익사시킨 것은 아닐지, 그래서 그녀만 그 충격으로 집단 정신치료를 받는 것이 아닌지 상상해 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코디의 꿈은 처음에는 자신이 좋아하던 나비로 시작한다. 그러던 것이 부부가 애타게 보고 싶어하던 션으로 옮겨가는데, 이것은 코디가 (또다시 버림받지 않고자) 부부에게 잘 보이려는 무의식이 꿈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션으로 연기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나날이 갈수록 그것이 부담되니까 ‘캔커맨’을 등장시켜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것은 아닐까? 이러면 잘 보여야 할 사람도 사라지니까 말이다. 결국, 코디는 새 부모에게 잘 보이고 싶은데, 새 부모는 그런 코디의 애처로움은 외면한 채 코디가 가진 희귀한 재능만을 탐낸 비극적 결과가 사람들의 실종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유추해 보면서 「썸니아」 리뷰를 마친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썸니아(Before I Wake, 2016)」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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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8일 금요일

[영화 리뷰] 그가 강간을 하는 이유, 우리가 강간을 보는 이유 ~ 약살(Red To Kill, 1994)

Red To Kill 1994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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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강간을 하는 이유, 우리가 강간을 보는 이유

"내가 죽도록 네년을 강간하겠다" - 강간범

"해봐! 와서 날 강간해봐!" - 카록

영화의 첫 인사는 꽤 상냥하다. 상냥하다 못해 오금을 저리게 한다. 음침하고 추루한 아파트에서 자식의 장애를 비관한 모자의 투신자살이 애피타이저로, 그리고 오늘의 주요리로는 젊은 여자의 채 식지 않은 싱싱한 시체를 정체 모를 남자가 포효하며 강간하는 섬뜩한 장면이 뒤를 따른다. 디저트로 알맞게 솟아오른 여자의 검은 유두뿐만 아니라 보기 좋게 숲을 이룬 검은 음모도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이쯤 되면 이 영화 「약살(Red To Kill, 1994)」의 장르나 등급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친절한 imdb는 간단명료하게 ‘호러’라고 구분 짓지만, 영화 「약살」은 그런 ‘장르’ 놀이를 아주 우습게 짓밟는다. 근육질 남자가 잔인하게 여자를 강간하며 짐승처럼 울부짖는, 분명히 누군가는 금지된 욕망을 자극받아 짜릿한 전율을 발작적으로 일으키게 할 그것을 그저 단순히 ‘공포’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극단적인 강간 장면과 이와 쌍벽을 이루는 과도한 노출 장면은 매우 불쾌하면서도 남자의 비틀린 성적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대리 만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약살(Red To Kill, 1994)」에 등장하는 야만적인 남자 주인공은 어쩌면 모든 남자의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은 위선적 가면 아래 숨겨진 판도라 상자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강간범 같은 근육질의 우람한 남자가 되는 것도 모든 남자의 꿈이 아닌가?

Red To Kill 1994 scene 01

영화 「약살(Red To Kill, 1994)」은 앞선 언급한 대로 끔찍한 두 사건을 시작으로 강간의 포문을 연다. 모자(母子)의 투신자살 현장에는 그들을 담당했던 사회복지사 카록이 있었다. 그녀는 모자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무력감에, 한편으로는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푸대접하고 괄시하는 세상 사람들의 흉흉한 인심에 넌더리를 낸 나머지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사직을 결심한다. 하지만, 사직이 처리되기까지는 무려 3개월이나 걸렸다. 하는 수 없이 카록은 사회복지사로서 마지막 일이 될 교통사고로 죽은 한 남자의 정신지체 딸 밍밍을 떠맡는다.

Red To Kill 1994 scene 02

카록은 밍밍을 찬 선생이 운영하는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보호소로 데려간다. 그곳에는 밍밍처럼 주변 사람들로부터 바보 멍청이 취급받는 장애인들이 찬 선생의 보호와 감독 아래 작은 사업을 꾸려가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된 밍밍은 서서히 잃어버린 활기를 되찾아 가고, 카록은 댄서가 되고 싶은 꿈을 포기하지 않는 밍밍으로부터 잊어버린 사명감을 되찾게 된다. 하지만, 장애인들을 기필코 내쫓으려고 소란을 일으키는 아파트 주민들과의 계속되는 마찰과 강간살인범이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니는 위험한 상황이 이제 막 안정을 찾은 밍밍과 카록을 그냥 놔두지를 않는다.

Red To Kill 1994 scene 03

이런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한마디로 무지막지한 영화지만, 뜻밖에 (비록 그것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아파트만큼이나 싸구려 같을지라도) 소소한 감동과 여자들만의 진한 의리도 엿보이는 영화다. 아쉬운 점은 덩치에는 걸맞지 않게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볼일(?)을 보는, 정력 면에서는 보기보단 뭔가 후달려 보이는 야수에게 걸리는 여자는 죄다 젖가슴을 내보이기 마련인데, 카록만은 끝까지 정절을 지킨다는 것이다. 심지어 순진한 처녀 밍밍마저 예외 없이 까발려지는 데 말이다. 아마도 카록의 출연료가 가장 비쌌던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카록이 야수에게 겁탈당하기 직전, 카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알몸을 야수에게 바치려는 (비록 그 갸륵한 의도는 성공을 이루지 못했지만) 밍밍의 숭고한 우정은 정말이지 고금에 보기 드문 진정한 의리였다. 착실한 모습을 보일 땐 배우 ‘유준상’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던 남자가 트라우마와 연결된 빨간 옷을 입은 여자만 마주치면 헐크처럼 옷을 찢어발기며 야수처럼 포효하는 짐승으로 돌변하는 남자 배우의 처량한 연기도 볼만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약살(Red To Kill), 1994)」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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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4일 목요일

[영화 리뷰] 각성하라 좀비들이여! ~ 랜드 오브 데드(Land Of The Dead, 2005)

Land Of The Dead, 2005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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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라 좀비들이여!

각성한 좀비들, 그들의 길을 찾아 나서다!

"살아 있다고 착각하는 거겠죠." - 찰리
"착각하는 건 우리 아닐까?" - 라일리

죽음과 무덤에서 기적처럼 살아난 시체들이 인정사정없이 사람을 잡아먹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수년이 지났다. 생존자들은 미국 전역에 걸쳐 전초 기지를 만들어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가진 자들은 전기 울타리와 강으로 둘러싸여 요새화된 빌딩, 무자비한 카우프만의 통치 아래 지난날 문명의 영광을 재현한 ‘피들러 그린’에서 여전히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었고, 없는 자들은 그 주변에서 예전과 다름 없이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다.

Land Of The Dead, 2005 scene

그러던 어느 날. 카우프만의 보급 부대를 이끌던 라일리는 정찰 나갔다가 보통의 멍청한 다른 좀비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행동을 보이는 영리한(?) 좀비를 발견한다. 한때 ‘빅 대디’ 주유소의 주인이었을 그 좀비는 인간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라일리가 본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여전히 인간에겐 좀비는 오로지 ‘먹기’만을 원하는 무뇌충이었다. 하지만, ‘빅 대디’의 영향으로 조금씩 각성해 가는 좀비들은 자신들을 사냥하는 것을 오락처럼 즐기는 인간들의 무지막지함에 대해 분노를 터트린다.

Land Of The Dead, 2005 scene

라일리는 지긋지긋한 이곳을 떠날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다. ㄱ러나 카우프만의 온갖 더러운 짓거리를 도맡아 처리해 오면서 ‘피들러 그린’ 입주를 위해 간절히 돈을 모아왔던 촐로는 자격 미달로 입주를 거절당하자 ‘피들러 그린’ 빌딩을 폭발시키겠다고 카우프만을 협박한다. 테러범과의 협상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카우프만은 라일리를 보내 촐로를 상대하게 하는데….

Land Of The Dead, 2005 scene

작금의 좀비 영화를 탄생시킨 '좀비의 아버지' 조지 로메로(George A. Romero) 감독의 2세대 좀비의 탄생을 예고하는 영화 「랜드 오브 데드(Land Of The Dead, 2005)」. 「랜드 오브 데드」의 영향 때문일까? 「웜 바디스(Warm Bodies, 2013)」에서는 예전의 인간적 감정으로 살아있는 사람과 교감하는 좀 더 진화한 좀비가 등장하기도 한다.

아무튼, 역대 작품들에서 좀비를 단순한 오락거리로만 활용하지 않고, 좀비와 등장인물들과의 역학적 관계를 통해 문명과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했던 대가답게 「랜드 오브 데드」도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인류 문명이 산산이 조각날 위기에 부딪혔을 때,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과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세력 사이의 갈등을 영상으로 담아내고 있다. 비록 예전만큼 날카롭지도, 명확하지도 않지만, 순수한 탐욕의 결정체인 좀비라는 프리즘을 통해 인간 세계를 바라보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은 아마도 그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좀비 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괜한 기우일까?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랜드 오브 데드(Land Of The Dead, 2005)」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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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0일 일요일

[영화 리뷰] 뿌린 만큼 거둔다는 것! ~ 무간도 2 - 혼돈의 시대(Infernal Affairs II, 2003)

Infernal Affairs II 2003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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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 만큼 거둔다는 것!

“경찰 여러분! 놈이 날 죽이면 맘대로 쏘시오. 뿌린 만큼 거두게 될 것이다” - 한침

「무간도」 1편에 이어 2편도 다시 봤다.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꽉 짜인 이야기로 관객의 숨통을 틀어잡고, 명불허전 명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로 관객의 혼마저 빼놓는, 마치 죄업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지옥처럼 완전무결한 1편을 봤으니, 감성과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응당 2편을 보는 것이 도리다. ‘도리도리 짝짜꿍’의 즐거운 도리가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그 진중한 ‘도리’ 말이다.

「무간도」 2편은 1편보다 약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진영인이 경찰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범죄조직의 경찰 쪽 첩자로서의 임무를 시작하는 그 전후를 시작으로 한침이 홍콩 범죄 조직의 거두로 부상하고 진영인이 그 밑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고로 1편의 경찰학교 장면에서 잠깐 등장했던 두 배우 진관희, 여문락이 유덕화와 양조위를 대신하고 있다. 더불어 진영인이 경찰학교에서 퇴학당한 이유도 밝혀진다.

Infernal Affairs II 2003 scene 01

영화는 황 국장과 한침이 느긋하게 담소를 나누며 식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직 한침이 작은 보스 정도로 대우받는 시절이었고, 경찰은 ‘삼합회’ 보스 예곤을 주요 목표로 삼았기에 두 사람은 거창하게 우정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는, 그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만남을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예곤이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 암살당한다. 조직은 순신 간에 혼란에 휩싸이고 이 기회를 틈타 회동을 한 한침을 제외한 네 명의 작은 두목들은 예가(倪家)에게 더는 세금을 내지 않기로 하면서 배신을 예고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새로운 보스 자리에 오른 예영호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곧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의 하나로 네 명의 작은 보스들을 무참히 사살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부터 예곤에게 충성했던 한침마저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Infernal Affairs II 2003 scene 02

한편, 한침의 부하인 유건명은 한침이 제공하는 자잘한 정보로 꾸준히 성과를 올리며 경찰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을 때, 유건명의 동기생 진영인은 예영호의 이복동생이라는 이유로 경찰학교에서 퇴학당한다. 하지만, 황 국장은 전교 1등의 수재를 이대로 썩힐 순 없었다. 그리고 그는 삼합회의 새로운 보스 예영호의 동생이다. 그가 만약 예영호 밑으로 들어가 경찰 첩자로 활약해 준다면 예가를 일망타진한다는 학수고대도 시간문제다. 하지만, 진영호가 이 어려운 제안을 받아줄지가 문제였다. 뜻밖에도 진영호는 선뜻 국장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는 예영호 밑에서 차근차근 보스 수업을 받으면서 한편으론 예영호를 무너트릴 정보를 모은다.

Infernal Affairs II 2003 scene 03

영화 속 대사에서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이 무려 다섯 번이나 나온다. 사실 진짜 뿌린 만큼 거둘 것 같은 농사일도 일조량, 강수량 등 기후 변화와 병충해 발생 정도에 따라 뿌린 만큼 거둘 때도 있고, 그보다 더 거둘 때도 있고, 때론 본전도 못 뽑을 때도 있다. 세상일이 영화 속 대사처럼 뿌린 만큼 거둔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공평할 것이다. 뿌린 것은 하나도 없는데 남들이 뿌린 것을 싹 쓸어 가는 짜증 나는 사람들은 더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많은 사람이 매우 드문 일이라고 여기고 싶어하니, 이를 예외로 인정한다면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은 최소한 영화에서만큼은 나름 의미가 있다. 영화에서 암살당한 보스가 자주 했다는 이 말은 딱 두 사람만이 들먹이고 있는데, 그 두 사람이 바로 한침과 예영호다. 두 사람 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는다는 웃지 못할 공통점이 있는데, 그 격언을 자주 들먹인 두 사람이 자신들의 죽음으로 격언의 진실성을 증명해 보이니 결국 영화는 그렇게 비비 꼬아가며 현란하게 전개한 이야기를 통해 ‘권선징악’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뿐만 아니라 범죄 조직을 와해시키고픈 의욕에 도를 넘어선 짓까지 자행한 황 국장, 잠입경찰로서 조직범죄에 깊숙이 가담한 진영호도 죽는다. 주요 등장인물이 뿌린 만큼 거둔 대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면, 아무리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들 자신의 출세와 입지를 굳히고자 보스와 동료를 배신한 유건명 역시 죽어야 한다. 아직 3편은 못 봤지만 말이다. 뭐, 안 죽으면 그만이고. 아무튼, 죄업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지옥 같은 세상이다.

물론 영화는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지만, 오늘따라 머릿속이 왜 이리 둔탁한지, 영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음을 단박에 증명하듯 나의 횡성수설로 어질러진 리뷰가 되고 말았다. 1편보다는 아주아주 조금 부족하지만, 내 졸렬한 문장으로 선뜻 표현하기 어려운 감흥과 감개가 확실히 보장되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무간도 2 - 혼돈의 시대(Infernal Affairs II, 2003)」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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