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불의 연회 | 교고쿠 나쓰히코| 여타 추리소설을 압도하는 거대한 플롯의 그 복잡성이란
철학까지 넘보려는 추리소설 아닌 추리소설
일반적인 소설로 분류하기에는 뭔가 애매하고, 그렇다고 이보다 격식을 더 차리는 문학의 범주로 욱여넣기에는 자격 미달인 것이 뻔히 보이는 그런 소설들을 뭉뚱그려 흔히 장르소설이라 부른다. 로맨스소설, 무협소설, 판타지소설, 공포소설, 범죄소설 등이 그러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기분이 엉망이라 책 같은 것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때, 또는 심각한 것에 진지하게 머리를 쓸 여유나 여력이 없을 때, 그래서 지친 뇌세포에 잠시 휴식을 안겨주고, 그럼으로써 헝클어진 머릿속도 정리하고 무겁게 가라앉은 기분도 전환할 겸 해서 찾는 추리소설 역시 그러하다. 그런데 이런 소설 중에서도 가볍게 넘겨볼 수 없는 만만치 않은 녀석들이 간혹 있다. 그렇다는 것을 알고 읽으면 그럭저럭 견딜 만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손을 댔다가는 초상을 치를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울상 정도는 충분히 짓게 하는 녀석, 그것은 바로 교고쿠 나쓰히코(京極 夏彦)의 ‘백귀야행(百鬼夜行)’ 일명 교고쿠도 시리즈다.
어렵다면 어렵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대학 교재나 논문처럼 텍스트를 읽어나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뜻은 아니다. 어려운 것은 우리(정확하게는 한국 사람)의 상식과는 터무니없이 동떨어진 일본산 요괴의 배경을 이 잡듯이 헤집고, 그것도 모자라 요괴의 기원을 미친 듯이 추적하는 그 집요한 장광설이다. 여기에 범죄의 미스터리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의의와 그 사유에 대한 천착이라는 철학적인 미스터리까지 넘나드는 중뿔나게 넓은 오지랖까지 더해지면, 가벼운 마음으로 손에 든 추리소설이 더는 추리소설이 아니게 된다. 이쯤 되면 추리소설을 가장한 요괴 연구서인지, 요괴 연구서를 가장한 철학 개괄서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갈피를 잡을 수가 없으니, 용기를 내어 책을 더 읽어야 할지, 아니면 이쯤에서 현명하게 포기해야 할지 종잡기도 어렵다. 아무 생각 없이 책장을 펼친 독자를 무책임하게 곤란한 지경으로 빠트리는 것이 고서점 주인 교고쿠도의 특기이지만, 한편으론 그의 세 치 혀끝에서 펼쳐지는, 마치 백만대군이라도 단박에 물리칠 것 같은 기세로 맹렬하게 휘몰아치는 현란한 언변에 한번 맛을 들인 독자는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 곤란하다.
교고쿠도의 장광설이 어느 정도냐 하면, “효스베라는 것은 갓파지만, 갓파와 지나치게 동떨어진 이름인 이상 갓파라고 불리지 않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고 간단하게 정리될 말을 무려 20페이지나 되는 분량을 소비해가며 설명한다. 교고쿠드의 장광설은 추가된 페이지만큼 원고료를 더 받을 수 있는 작가에겐 호재일지 몰라도, 아무 대책 없이 무방비로 노출된 독자는 교고쿠도의 설명이 늘어진 테이프처럼 길어질수록 눈꺼풀을 짓누르는 무게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쓸데없는 말은 일절 하지 않는 교고쿠도이니만큼 나처럼 문어발식으로 여러 방면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에겐 지적 욕구를 보충하는 영양가 충만한 시간이기도 하다. 다만, 그것이 세상 사는 데는 별 쓸데없는 지식이라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말이다.
<Utagawa Kuniyoshi,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
엄청난 분량만큼이나 엄청나게 복잡한
그렇다 하더라도 사건이나 범죄, 등장인물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요괴 이야기를 교묘하게 짜인 플롯의 한 축을 담당하는 미스터리와 미묘하게 짝지은 다음, 이것에 신변잡기와 개똥철학과 민속학과 요괴학이라는 양념을 넣고 마구잡이로 흔들며 뒤섞어 놓는다. 그리고 여기에 교고쿠도의 세 치 혀로 방전시키면 그 괴상망측한 혼합물에서 스탠리 밀러의 ‘원시 수프(primordial soup)’ 실험처럼 출처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가 증식하고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그러면서 플롯은 더욱 복잡해지고 다층적으로 뻗어나가지만, 그러면서도 플롯의 정교함이나 오묘함이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깊이가 배가 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여기에 『도불의 연회(塗佛の宴)』는 (아마 내 생각으로는) 중심 이야기와 직접적인 관계에 있는 등장인물 수가 역대 최고일(거의 스무 명?)이다. 그뿐만 아니라, 보통은 사이비 종교처럼 의심스럽고 수상한 단체 하나만으로도 소설 한 편 정도는 충분히 완결지을 수 있지만, 『도불의 연회』에는 이런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체가 ‘성선도’, ‘조잔보’, ‘한류기도회’, ‘길의 가르침 수신회’ 등 무려 네 개나 등장한다. 이것도 모자라 역시 정체를 알 수 없는 풍수사와 민속학자와 심령 소년이 개별적으로 합세해 이야기의 다층성과 복잡성을 한층 더 키운다. 이 모든 단체와 모든 등장인물이 겉으로는 사적인 목적과 사적인 의지를 갖고 서로 무관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가닥가닥 나뉜 하천들이 합쳐져 강이 되는 것처럼 결국 이 모든 목적과 의지는 거대한 하나의 집념으로 통합되어 교고쿠도가 풀어야 할 하나의 저주로 귀결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도불의 연회』는 ─ 추리소설치고는 상당하다고 할 수 있는 네 권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이 시사하듯 ─ ‘백귀야행’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가장 다층적인 플롯과 그물망 같은 복합적이면서도 정교한 이야기 연결 고리를 가진 소설이다.
아무튼, 모든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이야기를 새끼 꼬듯 실컷 비틀고 일그러뜨려 놓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논리와 추리와 박학다식이 일목요연하게 집대성된 교고쿠도의 장광설로 헝클어진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미스터리 실타래를 얼음판 위에서 박덩이 굴리듯 술술 풀어나간다. 그야말로 최고 경지에 도달한 교고쿠도의 말발이 보란 듯이 한껏 그 요염한 자태를 신랄하게 뿜어대며 이치로서 모든 갈등을 해소시킨다. 마치 신탁을 받는 것처럼 신비로움과 두려움이 엇비슷하게 교차하는 그 경이로운 과정은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절경이자 희열이다.
교고쿠도 시리즈는 추리소설치고는 너무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면이 강할 뿐만 아니라 가뜩이나 복잡한 이야기를 비틀대로 비튼다는 기괴함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경향이 짙지만, 기존의 사건과 트릭,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는 추리에만 편향된, 마치 누가 묻지도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천명하며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긋는 듯한 기존 추리소설에 싫증이 난 독자에겐 매우 신선한 경험을 전해줄 수 있는, 그래서 한번 맛 들이면 의외로 중독성 강한 소설이다.
그냥 참고 들어라, 그리고 믿어라! 교고쿠도 할렐루야!
다만, 『도불의 연회』에서 완결지으려고 하는, 마치 적벽대전이라도 벌이려는 것처럼 많은 인파가 등장하는 원대한 결말에는 역대급으로 많은 단체와 많은 사람이 깊이 관여해서인지 ‘추리’의 완성도는 ‘백귀야행’ 시리즈 중에서 가장 떨어진다. 원래 교고쿠 나쓰히코의 ‘백귀야행’ 시리즈가 오로지 ‘추리’와 ‘트릭’으로만 승부를 보는 본격 추리소설처럼 ‘단서, 동기, 용의자, 범죄’만으로 구성된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추리를 지향하는 것은 아닌지라 원래부터 ‘추리’ 성향은 약했지만, 그래서 일부 추리소설 애독자에겐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도불의 연회』는 일단 스케일 자체가 마치 대하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실로 엄청나다. 이는 오직 ‘트릭’과 ‘추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플롯이 아닐뿐더러 설령 그렇게 구성할 수 있다고 해도 꼬일 대로 꼬인 복잡하고 다층적인 ‘트릭’과 ‘추리’를 많은 독자가 이해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애초 교고쿠 나쓰히코 소설의 지향점이 다른 추리소설과는 엄연히 다를 뿐만 아니라 그의 소설을 처음 읽는 독자가 아니라면 추리 성향보다는 표정 없는 고서점 주인 교고쿠도의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현학적이고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압도하는 듯한 장광설이야말로 ‘백귀야행’ 시리즈의 참맛이다.
처음 들을 때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은 모르지만, 듣다 보면 조만간 알게 된다. 맥락 없이 부유하는 듯한 전개는 때가 되면 맥락을 갖게 된다. 정말 모르더라도, 도통 이해할 수 없더라도 참고 듣게 되면 언젠가는 그 오묘함을 알게 된다. 사정이 그러하니 일단은 그냥 참고 듣는 것이 상책이다. 대부분이 비아냥과 억지와 말꼬리 잡기와 궤변으로 이루어져 있을지라도 그 밑바탕에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방대한 정보가 태산처럼 버티고 있기에 반박하기는 어렵고 대처하기는 더더욱 나쁘다. 일견 무관하게밖에 생각되지 않는 말과 지식에 현혹되지 않고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고 의혹에 의혹을 더하더라도 일견 무관하게밖에 생각되지 않는 말과 지식이 조합되고 쌓아 올려져 반쯤 주문이 되고 축언이 되고 때론 저주가 되어 혼탁한 민심을 맑게 하고 흐트러지고 동요하는 세상의 이치를 바로잡게 되는 그때쯤이 되면 흥미로운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그냥 믿어버리고 만다. 한마디로 교고쿠도 할렐루야다!
<세 치 혀의 놀아나느냐 정신이 없다> |
행복으로 인도하는 속임수와 불행으로 떨어트리는 속임수
『도불의 연회』의 중요 트릭이라 할 수 있는 ‘기억’이란 소재는 아마 내 기억으로는 다른 ‘백귀야행’ 시리즈 중에서 최소한 한두 번 정도는 교고쿠도의 막힘없는 장광설의 먹이가 된 적이 있었을 것이다. 어디 ‘기억’뿐이겠는가? 의지, 인식, 의식, 존재론적 고찰, 자아 등의 철학적인 소재, 그리고 『도불의 연회』에서는 ‘가족’까지 끌려 나와 심심치 않게 작가의 세 치 혀, 아니 세 치 붓에 놀아나는 불쌍한 녀석들 한 묶음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억’의 뇌과학적이고 세포적인 물리적 접근이 아니라 이보다 근원적이고 신비적인 접근이다. 바로 ‘최면술’인데, 최면술 하니까 중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불리는 저우하오후이(周浩暉)의 『사악한 최면술사(邪惡催眠師)』가 생각난다. 「대최면술사(催眠大师, 2014)」와 「겟 아웃(Get Out, 2017)」이라는 영화도 생각난다. 이 모두 최면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지만, 최면을 사용한 목적은 조금씩 다르다. 최면은 범죄나 사적인 이익에 악용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약물로는 치료할 수 없는 심리 질환이나 정신병을 치료하는 데도 사용된다. 한마디로 ‘최면’ 자체로는 좋고 나쁨을 구분할 수 없다. 문제는 최면을 사용한 목적이다.
『도불의 연회』에서는 최면이나 약물로 타인의 기억을 지우거나 조작한다. 그러면서 과거는 개찬되고 과거가 개찬되었으니 현재도 바뀐다. 그렇다면 기억을 조작당한 사람이 행복하더라도 조작한 행위는 사기 같은 범죄가 되는 걸까? 설령 그 목적이 상대를 속이는 것일지라도 속고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거나 그 속임수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거짓을 폭로하여 행복한 사람을 다시 불행한 현실로 되돌려 놓는 것이 진실이고 정의일까?
반대도 가능하다. 상대에게 몸서리치는 악몽 같은 과거를 심어줌으로써 벌을 준다. 실제로는 그 사람이 하지 않은 일이지만, 기억을 조작하여 자신이 저지른 일처럼 만든다. 그로 말미암아 그 사람은 자신이 하지도 않은 행위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고 번민한다. 허망스러운 자책감에 빠져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면, 실로 죽음보다 더한 벌이다.
교고쿠도는 말한다. 믿고 있는 사람이 있고, 믿음으로써 구원받고 있다면, 설령 거짓이라도 폭로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믿음으로써 구원이 아니라 무간지옥에 빠져 있다면, 그것은 폭로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이야말로 귀신이나 저주에 씐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그것을 무효화해야 한다. 몰아넣고, 풀어내고, 명확하게 밝혀가며 혼탁해진 이치와 비틀려진 과거를 해체하고 재구축한다. 불투명하고 불분명한 것에 이름을 지어주고 형태를 갖춰준다. 사건과 무관한 것은 무관하지 않게 만들어 혼란을 가라앉힌다. 비로소 모호해진 것은 응어리가 질 정도로 명확해진다. 이제 응어리진 것만 털어내면, 사람은 치유되고 이치는 바로잡힌다. 이 세상에 이상한 일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읽는다면
마을 주민이 통째로 사라진 대량 살인 사건? 전설로만 내려오는 불로불사의 묘약? 일본군이 은닉한 비밀 무기와 거대한 군사 자금? 장황한 밑밥치곤 결말이 다소 약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교고쿠도의 말대로 이 세상에 이상한 일은 진짜로 없다고 한다면 역시 상황에 걸맞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결말이라 하겠다. 추리적인 요소는 약하지만, 교고쿠도 시리즈는 독자의 의식을 집어삼키려는 듯한 궤변과 장광설에 끌려다니는 그 자체가 재밌으므로 큰 약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네 권이라 되는 분량은 부담스럽기는 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도불의 연회』 첫 권을 든 독자는 어떠한 연결성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추가되는 새로운 전개에 아마 무척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상수도라도 터진 것처럼 콸콸 쏟아져나오는 이야기를 도대체 언제, 그리고 어떻게 다 정리할 것인가. 그 엄청난 막연함과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중도에 책 읽기를 포기하는 이탈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것은 도서관에 비치된 『도불의 연회: 연회의 준비』 상, 하권보다 『도불의 연회: 연회의 시말』 상, 하권이 훨씬 깨끗하다는 점으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교고쿠도 시리즈 중에서도 아마 가장 추천하기 어려운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추리소설은 이래야만 한다.’라든가, ‘추리소설은 이러이러하다.’라는 고정관념을 잠시 거둬들일 수 있는 현명한 독자라면, 그렇게 곤란하지도 까다롭지도 않은 작품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나 같은 사람도 네 권 전부 다 읽고 (비록 되먹지도 않은 형편없는 리뷰일지라도) 이렇게 장황한 글까지 남기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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