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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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수북 | 나는 첫눈에 그의 문장에 반해버렸다

산남수북 | 한사오궁 | 나는 첫눈에 그의 문장에 반해버렸다

산남수북 | 한사오궁 | 나는 첫눈에 그의 문장에 반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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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시골을 예찬하듯 나는 그의 글을 예찬한다

오랜만에 진짜 진짜 좋은 글과 마주쳤다.

『산남수북(山南水北)』을 읽고 있으면 도시인이라면 한 번쯤은 마음속에 품을 법한 시큼털털한 사람 냄새가 물큰물큰 풍기는 시골에 대한 향수에 젖어 들게 되고, 나 같은 토박이 도시인에겐 있지도 않은 ─ 드라마 「전원일기」 같은 ─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한바탕 용솟음치게 만든다. 증세가 심하면 영영 가보지 못할 그곳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엉덩이가 들썩들썩 춤을 출 수도 있고, 그렇게 애간장을 태우다가 제풀에 지쳐 곤히 잠들지도 모른다. 가지 못해도 괜찮고 갈 수 없어도 괜찮다. 세계 명소를 구석구석 찾아다녀도 꿈속에선 언제나 고향으로 되돌아온다는 한사오궁(韩少功)의 신기한 체험이 나에게서도 실현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묵은 때를 벗겨내듯 도시의 찌든 때를 한 꺼풀 벗겨주는 산골 마을에 대한 솔직담백한 예찬을 담은 『산남수북』은 마법처럼 환상적이고, 그가 이해하는 대자연만큼이나 경이롭다. 책을 읽는 것을 때려치우고 지금 당장 짐을 꾸려 아무 시골로 내달리고 싶은 마음이 울컥 들게 할 정도로 그의 마법 같은 필치는 영험한 힘을 발산한다. 그 영험함은 박수무당의 신들림보다는 고향에 대한 지독한 애정과 관심에서 비롯한 집착이 빚어낸 영성스러운 뭔가에 가깝다.

정말이지 몇백 권에 달하는 책과의 접선 중 한 권 만나볼까 말까 한 책이다. 무엇보다 산길을 걷다가 아담과 이브가 재회하는 전설의 재림을 목격해도, 혹은 비로드 같은 하얀 턱수염을 폭포수처럼 늘어뜨린 신선이 꽃사슴과 토끼를 비롯한 산짐승들에게 덕담을 들려주는 신기한 광경과 마주쳐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산골 마을을, 그리고 그곳에서 펼쳐지는 온갖 군상이 엮어낸 소설보다 더욱 소설 같은 이야기를 그윽한 정취와 구수한 해학이 빼곡하게 서려 있는 빼어난 필치로 묘사한 점이 매혹적이다. 신 아저씨의 말에 약간의 양념을 뿌려본다면, 한사오궁의 붓끝에선 천지가 태동하고, 건곤이 열리고,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격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의 텍스트는 무뎌질 대로 무뎌진 감수성과 생활에 짓눌려 빈대떡처럼 납작해진 정서를 회복시키고, 조악하고 빈약한 언어생활에 이골이 난 베르니케 영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영약이다. 한사오궁이 산골 마을을 예찬하듯 나는 그의 글을 예찬하고 싶다.

표정이 있고 사람처럼 감정의 기복이 있고, 그래서 때론 미친 사람처럼 울다가 웃으며 거리를 쏘다니고, 때론 젠체하는 시인처럼 자연의 호흡과 산골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절구를 쏟아내는, 그런 경이로운 경지에 이른 문장력을 예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산남수북 | 한사오궁 | 나는 첫눈에 그의 문장에 반해버렸다

우리가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을까?

봄이면 울긋불긋한 꽃들은 미인 대회를, 알록달록한 새들은 콩쿠르를 개최하는 곳. 여름이면 천적의 발걸음 소리를 탐지해낸 영민한 개구리들이 숨을 죽이는 곳. 가을이면 불그스름한 치파오를 맵시 나게 빼입은 낙엽들이 천지를 물들이는 곳. 겨울이면 산을 덮은 눈과 밥 짓는 연기가 누가 더 새하얀지 경쟁을 펼치고 이 둘을 구름이 남몰래 시샘하는 곳. 영근 달빛이 집안 곳곳을 도둑처럼 살금살금 훑어가는 곳. 바람을 원군으로 삼은 구름이 태양을 심판 삼고 하늘을 무대로 삼아 치열한 전쟁을 펼치는 곳. 고수가 검술을 연마하듯 나뭇가지를 파르르 떨고 곡예사가 공중제비를 돌 듯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미친 나무가 사자처럼 포효하는 곳. 도도하고 자유로운 낭만 고양이 미미가 아침마다 무공을 단련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 주인과 목숨을 맞바꿨다고 인정받은 충직한 개 허쯔가 묻혀 있는 곳. 떠돌이 개 싼마오가 주인의 슬리퍼 위에서 무거운 숨을 끝으로 세상을 하직하던 곳. 죽기 직전에 소형 청룡언월도가 펼치는 심오한 면도로 삶의 마지막 극락을 맛볼 수 있는 곳. 배트맨의 맞수 조커가 짓는 불가항력적인 미소를 보유한 미소 걸인의 과학보다 정확한 일기예보를 들을 수 있는 곳.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두 남자가 혈육 같은 우정을 맺기도 하는 곳. 문명의 세계에선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경공술을 펼치는 미개인 마오공(毛公)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건재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곳.

바로 이곳이 자연에 녹아들고 노동으로 인해 땀을 흘리는 삶이 가장 자유롭고 청결한 삶이라고 주장하는 한사오궁이 도시를 떠나 10여 년을 살았던 팔계촌의 사실 같기도 하고 사실이 아닌 것 같기도 한 정경이다.

『산남수북(山南水北)』에는 발가락끝에서 머리끝까지를 서늘하게 뚫어놓는 비통과 절망으로 넘실대는 외침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그의 이야기에는 고적한 밤공기를 섹시한 음파로 수놓는 풀벌레 소리가 시공간을 뚫고 독자에게로 날아든다. 믿을 수 없는, 믿어지지 않는, 믿고 싶은, 믿을 수 있을법한, 믿을 수도 있을 것 같은 그의 이야기는 상상력 결핍증이 나은 정신의 빈곤에 허덕이는 현대인의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영적인 위안이다.

이쯤에서 중간 결산을 해보면, 우리가 어디서 이런 진귀하고 오묘하고 여기에 운치까지 더해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는가?

산남수북 | 한사오궁 | 나는 첫눈에 그의 문장에 반해버렸다

찾을 뿌리가 없는 사람들

그는 매일 아침 새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지만, 나는 매일 아침 소음의 잡탕의 들으며 잠에서 깬다. 그는 적막함에 반기를 든 풀벌레 소리와 풀잎 소리에 귀가 뜨이지만, 난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각종 소음에 귀를 틀어막고 싶다. 그가 산골 사람의 자연스러운 각양각색의 웃는 얼굴을 즐겁게 수확하고 있을 때, 나는 해질 대로 해어진 팬티의 고무처럼 축 늘어진 표정을 감추려고 억지로 짜 맞춘 듯한 문명미 넘치고 권태로움과 무뚝뚝함에 찌든 미소에 질식당하기 직전이다. 그가 야성미 넘치는 소박함과 원초적인 인정에 취해있을 때, 나는 세련된 무관심과 가식적인 인정에 몸살을 앓는다.

나는 도시의 고층빌딩에 짓눌려 살고, 도시의 소란스러움에 화상을 입고, 도시의 탁한 공기에 폐가 썩어 문드러져 가도 되돌아갈 곳이 없다. 위안을 얻을 고향이 없다. 기댈 뿌리가 없다. 고아나 다름없다. 문명의 고아나 다름없다. 고독과 우울함이 바퀴벌레처럼 득실대는 문명이 뱉은 가래침 같은 이 도시는 나에게 나의 지갑만큼이나 가난한 추억을 안겨줌으로써 나의 영혼을 밑도 끝도 없는 외로움과 아득한 절망이라는 족쇄로 묶어놓는다. 나는 육체도, 정신도 도시에게 완전히 탈탈 털려버렸다. 이곳을 영영 탈출할 희망을 잃은 내게 남은 마지막 안식처이자 도피처는 책뿐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모양이다. 그렇게 욕망에 잠식당해 터무니없이 부족해진 감성을 보충하고, 획일화된 삶이 갉아먹은 추억을 보충하고,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는다. 아마 이마저도 없다면, 우리의 머릿속은 잡초만 우거지고 사람의 온정이라고는 일절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함의 극치라 불릴만하다.

생각해봐라. 마을 사람들이 반신불수를 2년이 넘도록 배고프거나 춥지 않게, 그리고 몸에서 나쁜 냄새도 나지 않게 마지막까지 시중을 들어주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눈동자를 살짝 굴리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삭막함이 오장육부를 쪼그라들게 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우리가 어디에서 들을 수 있겠는가? 산골 사람들이 무지몽매하고 보수적이라지만, 그래서 산골 마을의 아취가 그나마 남아있는 것 아니겠는가?

비록 보잘 것 없지만 광고 수익(Ad revenue)은 블로거의 콘텐츠 창작 의욕을 북돋우는 강장제이자 때론 하루하루를 이어주는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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