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 | 프랑크 디쾨터 | 인민 잔혹사의 음울한 피날레
이 거대한 변화에서 무대의 중앙을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농민들이었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은 통상적인 낙수 효과의 개념처럼 도시에서 농촌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시골에서 도심 지역으로 진행되었다. 경제를 변화시킨 개인 기업가들은 평범한 수백만 명의 농민들이었고 실질적으로 그들이 국가를 움직인 셈이었다. 중국의 경제개혁을 이끈 위대한 설계자가 존재한다면 보통의 인민들일 터였다. (P492~493)
인민, 중국의 경제개혁을 이끌다!
공산당이 선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진실, 즉 해방이 어떻게 인민을 짓밟고 어떻게 그들의 삶을 파탄의 지경으로까지 몰고 갔는지 파격적으로 폭로한 『해방의 비극(The Tragedy of Liberation)』에서 출발한 프랑크 디쾨터(Frank Dikoter)의 ‘인민 3부작’은 전쟁도, 내전도 없었음에도 대한민국 정도의 인구를 단 4년 만에 증발시킨 참상을 고발한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을 거쳐 어느덧 그 긴, 그렇지만 절대 지루하지 않은 여정의 종착점인 『문화대혁명(The Cultural Revolution): 중국인민의 역사 1962~1976』에 이르렀다. 이제 막 『문화대혁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심정을 한마디로 토로하라고 다그친다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잘 만들어진 추리소설 속에서나 등장할법한 기가 막힌 대반전을(엄밀히 말하자면 기존 역사관을 뒤집는 충격적인 가설?), 그것도 무방비 상태에서 맞닥트렸으니 그 혼란과 충격은 과히 당신의 짐작을 뛰어넘고도 남는다.
야구 선수가 휘두른 방망이에 머리를 크게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띵하지만, 혼란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 전적으로 이 책의 주장에 동의한다면 ─ 기존의 주류 역사에 과감히 반기를 들고 나선다는 짜릿한 쾌감과 시큰한 우쭐함이 곧바로 파도처럼 전신을 덮쳐온다. 이미 누구나 다 알 것 같은 엎질러진 물이나 다름없는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에 무슨 반전이 있으며, 있어 봤자 별거 있겠느냐고 힐문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볼 땐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선택 범위가 비록 동네 도서관에 한정되지만, 나름 중국 현대사 관련 책을 조금은 읽어봤다고, 그래서 대충이나마 알 것은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이지만, 프랑크 디쾨터가 『문화대혁명』을 통해 펼치고자 하는 견해는 세상을 뒤집어엎는 놀랍고도 충격적인 반전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렇게도 놀랍단 말인가?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중국의 경제개혁을 이끈 위대한 설계자는 중국 개혁 • 개방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아니라 그저 우리처럼 평범하고 평범한 보통의 인민들이었다는 기발한 역사 해석과 마주치게 된다.
경제개혁으로 공산당 입지를 다진 덩샤오핑
우리가 짐작하는 것처럼, 혹은 알고 있는 것처럼 덩샤오핑이 진심으로 개혁 • 개방 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했던 것이 아니라 그는 그저 대세를 따랐을 뿐이다. 전통적인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뿌리 뽑히는 것도 모자라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과 죽 끓듯 변덕스러운 정치적 반동이 가하는 모진 핍박과 내전을 방불케 하는 대혼란에 내동댕이쳐진 인민들은 스스로 살길을 모색해야 했다. 처음에는 혼자이거나 가족끼리, 그리고 조금씩 더 나아가 이웃끼리 마을들끼리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보이지 않는 덫을 살피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극진한 조심스러움과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모진 본능이 뒤섞인 눈빛에는 그 시대에는 충분히 반동적이라고 불릴만한 위험한 변화를 예견하는 선동적인 침묵을 내포하고 있었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총체적 난국’이라는 곤경에서 어떻게든 벗어날 방법을 스스로 궁리할 수밖에 없었던 인민들 사이사이로 잠복 기간이 긴 전염병처럼 소리 없이 조용하게 퍼져 나갔다. 그것은 대담하게도 자본주의로의 회귀였다. 마오쩌둥 살아생전에는 꿈도 꿔서는 안 될 그런 도리였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마오쩌둥의 공상적 이상주의가 휘두른 잔악무도한 폭정의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도 가장 큰 인내심으로 근근이 버텨 온 인민들이 소리 없는 혁명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직 마오쩌둥이 ─ 거의 반송장이나 다름없는 상태일지라도 ─ 살아 있을 때!
그렇게 소리소문없는 조용한 혁명은 농민에게서 노동자로, 시골에서 도시로, 시장 상인에서 기업으로, 그리고 종국에는 중국을 집어삼켰다. 중국 경제 성장의 원류는 화궈펑도 아니고, 덩샤오핑도 아니었으며, 그것은 인민들 스스로 궁색한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삶에 대한 끈덕진 애착과 바퀴벌레 같은 끈질긴 생명력으로부터 파동치는 막강한 자본주의 물결에 있었다. 덩샤오핑은 그 물결에 떠밀려오는 여럿 배 중 적당하다고 여긴 배 위로 적당한 시기에 매우 적절하게 올라탔을 뿐이다. 영악한 통치술을 선보였던 덩샤오핑은 공산당을 공고히 하고 철권통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경제 성장을 이용했다. 그는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오로지 경제 성장에만 묶어놓는 우를 범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것으로 덩샤오핑이 집권 초기에 모호한 태도를 보인 이유가 약간은 이해될 수 있다. 훗날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인민의 피로 진압할 철권 통치자로 거듭날 그가 한때 사상해방과 민주를 지지했던 이유는 양심에 따른 것도 아니었고, 정치적 가치관에 따른 선택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대세를 역행하여 인민의 지지를 잃지 않으려는 노련한 정치적 술책일 뿐이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철저히 보수파였으며, 자신의 권력을 다지고 공산당이 인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경제 성장을 이용했다. 즉, 공산당 일당 독재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공산당에 위협만 되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대체로) 얼마든지 봐줄 수 있었던 것이 덩샤오핑 통치의 핵심이다. 그래서 그는 인민의 민주화 욕구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군침 도는 미끼를 던지며 경제개혁을 제대로 이용했다. 아니 이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오쩌둥 사후에도 경제개혁이 이루어지지 않고 문화대혁명 같은 암울한 시기가 계속되었더라면, 과거 중국의 농민 봉기 역사를 보더라도 유방(劉邦) 같은 인물이 또다시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경제개혁은 순전히 인민의 의지로 시작된 조용한 혁명이었다. 그렇기에 덩샤오핑은 개혁 • 개방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계획이나 구상을 제시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었으며, 그 역시 중국의 경제 성장을 원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 방법은 원칙적으로 사회주의적이어야 했다. 하지만, 떠밀리듯 경제개혁이라는 거대한 조류에 올라탄 덩샤오핑의 처신만큼은 역시 통치술의 대가다웠다. 그야말로 ‘위대한 조타수’였다. 당근과 채찍으로 민주에 대한 인민의 욕구를 표면적으로나마 잠재울 수 있었으며, 더불어 중국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그로 말미암아 중국 공산당은 건재할 수 있었다.
<Tibetan students from sang, in front of Tiananmen Square, Beijing, China, 1966> |
무색해진 ‘중국 특색 사회주의’
이로써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의미가 명확해진다. 그것은 공산당의 존재성과 정당성, 그리고 일당 독재에 방해되거나 위협이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경제 성장을 이룩하고자 하는 것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가는 무엇일까? 조금은 아쉽게도 프랑크 디쾨터는 ‘그리고 그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라는 의미심장하면서도 모호함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는 문장을 끝으로 위대한 ‘인민 3부작’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아마 나머지는 교수가 강의 후 과제를 내듯 고심하고 생각할 줄 아는 독자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겨놓은 것이리라.
중국은 국가 경제력에서 곧 미국을 추월하는 위치에 있는 명실상부한 경제 대국이지만, 그 안에 사는 인민의 행복지수는 한국뿐만 아니라 필리핀, 코소보보다 낮다. 중국인은 불행하다. 디쾨터가 ‘인민 3부작’을 완성하기 전에 이미 량샤오성(梁晓声)은 중국인은 우울하다고 진단했다. 이렇게 비교적 간단명료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그 원인을 놓고 따져보면 복잡하기 그지없다. 한 사람이 앓는 우울증의 원인을 진단하기도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어마어마한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인의 우울증 원인을 밝히는 일은 오죽할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공산당이 자신의 존재성, 정당성을 경제 성장에만 묶어놓을수록, 그렇게 경제 성장주의에만 매달릴수록 중국은 ‘사회주의’ 변두리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경제 성장 지상주의에만 매달려온 국가들이 앓을 수밖에 없는 골칫거리에 자본주의의 길을 걸어온 전 인류가 겪는 공통적 문제가 더해진 온갖 잡다한 폐해가 중국을 물귀신처럼 붙잡고 늘어진 형국이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는 그럴듯한 표어 속에 숨은 진의가 까발려진 지금 중국의 사회주의적인 선전은 유명무실해졌다. 중국에서 사회주의는 이제 공산당 당헌 속에서나 존재하는 허울뿐인 과거의 유물이다.
어떤 방면에서는 미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지만, 그것을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중국이니 그 폐해에 대한 원인파악과 대책 또한 미적지근할 수밖에 없다. 반자유 • 반민주 • 반평등 • 반인권을 기조로 외국 자본과 중국 정부가 손을 잡고 농민의 토지와 자연 자원을 약탈하고, 생태 환경을 훼손시키고, 수억 명의 노동자와 ‘농민공(農民工)’으로부터 대규모 이윤을 함께 착취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중국은 신속하게 전 세계의 제조공장으로 우뚝 섰다. 그렇게 얻은 부는 국가가 큰 몫을, 집단은 가운데 몫을, 그리고 남은 끄트머리를 개인이 차지함으로써 완성된 ‘중국 특색 사회주의’와 ‘중국 특색 노예제도’가 탄생했다. 그것이 롼밍(阮銘)이 『덩샤오핑 제국 30년(鄧小平帝國三十年)』에서 밝힌 ‘덩샤오핑 제국’의 정체이자 마오쩌둥 제국의 폐쇄적인 공산 노예제도에서 진화한 개방적인 공산 노예제도, 바로 ‘신노예제도’다. 아마도 이것이 앞서 말한 ‘그 대가’ 중 가장 큰 월척이지 않을까?
마오쩌둥 시대 인민의 잔혹사
이로써 ‘인민 3부작’이 완성되었다. 이 시리즈는 중국 현대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나 호기심을 품은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지만, 취미로 책을 읽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은 알짜다. 중국에서 가장 최근에 공개된 공산당 문서를 기반으로 집필된 책이라 기존 저서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세밀하고 구체적인 상황까지 살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인민 3부작’이라는 시리즈 제목이 은유하듯 삼부작 모두 인민의 삶을 중심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마오쩌둥의 공상적 공산주의에 대한 병적인 집념이 어떻게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무지막지한 대중 실험으로 체현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가혹한 실험의 연속에서 인민의 삶이 어떻게 무너져 내렸는지를, 그 어마어마한 숫자의 억울한 사상자와 피해자를 대신하여 이 책은 철저하게 밝힌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식량조차도 해결하지 못한 마오쩌둥 시대에 기근은 하나의 표준이었고, 혼란과 숙청과 정치적 투쟁은 일상이었다. 마오쩌둥이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중국은 혼란에 빠졌고, 수만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의 인민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허무하게 증발했다. 하지만, 상대가 그 위대한 마오쩌둥이었기에 인민은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을 하소연할 수도 없었고,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살아남았다. 변덕스러운 마오쩌둥 때문에 그들은 시시각각 궁지에 몰렸지만, 그때마다 그들은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복종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면서도 절대 선은 넘지 말아야 했다. 그 선은 항상 마오쩌둥이 일으키는 바람에 따라 요리조리 움직였다. 고의든 실수든 일단 선을 넘어서는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다면 지옥이 아가리를 벌리며 마중 나왔다. 고개를 숙인 채 낯을 심하게 가리는 고양이처럼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거듭되는 박해와 시련을 통해 생존하는 법을 깨우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잊을만하면 가해지는 숙청을 통해 정부가 노린 것은 실재하거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적을 물리적으로 제거하기보다는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겁을 주어 다루기 쉬운 인민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그렇다. 살아남으려면 다루기 쉬운 인민처럼 보이면 된다. 그것은 가장 훌륭한 연기자로 거듭나는 길이다 (그래서 중국 배우들의 연기력이 유난히 뛰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단 한 번의 실수라도 용납되지 않았다. 완벽한 연기자가 되어야 했다. 전설적인 명배우처럼 오로지 연기에만 매달리고 연기에만 목숨을 걸어야 했다. 당과 사회, 이웃뿐만 아니라 때론 가족과 자신마저 감쪽같이 속여야 하는, 달마대사도 혀를 내두르고 도망갈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이자 인내와 고난의 행군이었다. 많은 인민이 중도에 지쳐 쓰려지거나 정체가 탄로 나는 바람에 모진 박해를 겪었다. 때론 목숨마저 빼앗겼다. 그러나 대다수 인민은 훌륭한 연기로 훌륭하게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인민이 조용하지만, 지속적인 반전을 가했다. 그것이 바로 프랑크 디쾨터가 『문화대혁명』에서 말한 문화대혁명 중반 이후 농민이 일으킨 ‘아래부터의 혁명’, 즉 경제개혁의 시작을 알리는 자본주의 물결이다.
프랑크 디쾨터의 ‘인민 3부작’은 마오쩌둥 시대 인민의 잔혹사를 대변하는 데 가치를 둔 책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또한, 중국 경제개혁의 원류를 농민에게서, 그것도 농민의 의식적이고 조직적인 혁명이 아니라 기근에 대한 생생한 두려움에서 비롯한 생존에 대한 본능적인 갈망에서 찾고 있다. 그런 갈망이 중국 전역에서 잡초처럼 우후죽순 자라나면서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사회와 또 하나의 경제를 지하조직처럼 이루었다. 그것이 ‘제2의 사회’, ‘제2의 경제’ 가설이다. 이 가설이 튼튼한 토대를 쌓는다면 역사를 이끄는 원동력은 몇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인민이라는 진실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셈이다. 프랑크 디쾨터의 『문화대혁명』은 매끄러운 언변으로 역사 저술의 지루함을 덜어내 텍스트 읽기의 부담을 경감시켜 많은 독자가 충분히 접할 수 있는, 인민의 대변자로 자처하고 나선 저자의 비굴하지 않을 정도로 낮고 따뜻하면서도 예리한 시점이 돋보이는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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