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1

규방철학 | 텁텁하고 에로틱한 수면제

La Philosophie dans le boudoir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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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철학 | 사드 | 텁텁하고 에로틱한 수면제

으제니: 오세요, 엄마, 이리 와, 내가 당신 남편이 되어줄게. 당신 남편 것보다 좀 더 굵지 않아?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자 들어간다……. 아! 소리를 지르네, 엄마, 소리를 질러, 당신 딸과 하면서!……. 돌망세, 당신이 나에게 들어오는구나!……. 그러니 나는 지금 동시에 근친상간에, 불륜에, 남색까지 겸한 것이 되는군. 이 모든 것이 바로 오늘 처녀를 잃은 여자에게 마련된 것이라!……. 친구들, 대단한 진보가 아닌가요. (p285)

사드 명성에 걸맞은 발칙한 ‘교육’

대담하게도 사드(Marquis de Sade)는 어머니는 딸에게 이 책을 읽도록 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사드의 말대로라면 『규방철학: 쥐스틴을 지은 작가의 유고작(La Philosophie dans le boudoir)』은 일종의 교육지침서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상한 ‘교육’하고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지침서이니만큼 만약 이 책을 읽는 독자 (앞으로 이 책을 읽을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을지도 심히 의심스럽지만) 중 한창 꽃봉오리를 피우려는 어여쁜 딸을 둔 어머니가 있다면 절대적으로 오해 없기를 바란다.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이 책을 온전히 섭렵한 처녀에게 기대할 수 있는 교육의 성과 중 더도 말고 딱 하나만 언급하겠다. 주인공 으제니는 매독 환자가 엄마를 강간하게 하여 매독균을 은밀한 그곳으로 주입한 다음 혹시라도 매독균이 유실될까 봐 앞과 뒷구멍을 실로 꿰맨다. 이 얼마나 괴상한 교육의 발칙한 결과인가? 또한, 이러한 책을 읽는 나는 이 얼마나 후안무치한 사람인가?

사정이 이러하니 당신 모녀가 광적인 사드 후작 추종자가 아니라면 순진하고 연약하고 부드러운 딸을 위해 『규방철학』을 애써 준비하는 후회막급인 일은 생각지도 마시라. 그렇게 말하는 나는 왜 이 책을 당돌하게 찾았는가? 감옥에 갇힌 사드가 정염(情炎)이 이끄는 대로 이 책을 썼다면, 호기심에 갇힌 나는 정념(情念)이 이끄는 대로 이 책을 손에 쥐었을 뿐이다. ‘손에 쥐었다’라고 말한 이유는 도서관에서 이 책의 표지를 만지작거릴 때까지만 해도 이 책을 대출할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때는 이미 사드와 관련된 책을 두 권이나 읽었던 상태였고, 그 덕분에 ‘사드의 책이라고 하더라도 그 악명만큼 별로 대단한 것도 없구나!’ 하는 판단이 지배적으로 자리 잡은 상태였다. 그래도 사드의 나머지 다른 책은 어떤가 하는 궁금증은 끝내 견뎌낼 수 없었던 것 같다. 어느새 이 책이 내 손에 슬그머니 쥐어져 있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사실 큰 기대를 걸고 책장을 넘긴 『미덕의 불운(Justine, Les Infortunes de la Vertu)』이 불순한 어른을 위한 불경(不經) 동화 정도로만 여겨졌기에 사드 문학에 대한 실망감이 상당했다. 사드 문학은 그냥 이 정도에서 손을 떼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도서관에 진열된 책장에 기대어선 채 몇 페이지 훌훌 넘기면서 대충 살펴보니 이것이 웬걸! 『규방철학』은 『미덕의 불운』처럼 밋밋하지가 않았다. 누가 봐도 방탕아로서 사드가 떨친 악명을 확연하게 떠올리게 하는 난잡한 장면들이, 아직 녹이 슬지 않은 한 남자로서 거절할 수 없는, 색정을 다룬 원색적인 삼류소설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화려한 난교파티의 기괴한 연출이 수두룩했다. 이러하니 아직 남자인 나로서는 감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방탕아들이 감히 철학을 논하다!

흥미롭게도 『규방철학』은 연극적 특색을 띠는데, 그 이유에는 사드가 일생에 걸쳐 연극을 좋아했었다는 기질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미덕의 불운(쥐스틴)』 역시 언제라도 연극으로 연출할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된 작품으로 보인다. 감옥에 가기 전 사드는 ‘사회극단’을 조직하고 직접 연출을 하거나 배우로서 무대에 오르기도 했으며, 그가 말년을 보낸 ‘샤랑통(Charenton)’ 요양소에서도 연극을 향한 식지 않는 열정을 보여 주었다. 사드는 훗날 집단정신 치료요법으로 발전하는 ‘사이코드라마’를 창조하여 광인들의 광연(狂演)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이 소일거리를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 하지만, ─ 읽으면 알겠지만 ─ 이 작품을 실제로 연극으로 공연하기는 (만약 실현된다면 대박이다!) 무척이나 어려울 것 같다. 쾌락을 향한 끝없는 추구라는 나름의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등장인물들의 행위는 보통의 남녀가 행하는 일반적인 성교하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근친상간, 남색, 동성애, 비역질, 용두질, 강간, 윤간 등 체면이나 겉치레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기겁할만한 변태적 욕망이 마치 서커스를 관람하는 것처럼 독자의 두 눈앞에서 적나라하게, 그리고 보란 듯이 펼쳐진다. 이것도 부족해 영아살해와 근친살해까지 부추기니 가히 사드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단지 이 정도라면 좀 과한 음란소설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삼류소설처럼 결코 저속하거나 천박하거나 상스럽지 않다. 그것보다 진지하다 못해 엄숙하게까지 느껴지는 철학적 풍모를 띄우고 있으니 쉽사리 비웃을 수도 없다. 우리가 보기에는 음란한 행위로써 쾌락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즉 단순명료해 보이는 그 모든 것들이, 실제 그것에 임하는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철학을 토대로 이론을 논하고 가설을 세운 다음 그것을 현실로 체현함으로써 증명하는 하나의 시험장이다.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난교 체험에서는 어떻게 자세를 취해야 할지 등에 대해 가전제품 설명서처럼 자세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방탕처럼 보이지만, 엄격한 질서와 규칙을 기반에 입각한 쾌락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사드 문학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보통의 삼류소설과는 절대적으로 구분된다.

La philosophie dans le boudoir by Marquis de Sade
<Charles-Amédée-Philippe van Loo / Public domain>

‘불멸의 에로리스트’라는 평판이 무색하지는 않은 쾌락 추구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더는 신성모독을 즐길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의 부재를 슬퍼했던 사드에게 종교, 덕, 도덕 등 인위적인 모든 것은 거부하고 위반하며 왜곡하고 부정해야 할 대상이다. 그 이유는 진정한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드가 보는 자연의 질서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해 그것은 약육강식과 다름없다. 달리 말해 파괴와 죽음에 기초한 평형 상태다. 살인 역시 죄가 될 수 없다. 살인은 그 형태만을 바꾸어 자연으로 다시 되돌려줌으로써 자연이 새로운 창조를 일구게끔 이바지하는, 즉 자연의 평형 상태를 유지하는 든든한 밑거름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섭리인 파괴를 인위적으로 구속하는 모든 형태의 선과 덕, 도덕, 종교, 법은 자연의 흐름에 거스르는 것이다. 반면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끌리기 마련인, “파괴, 악행, 압제 같은 것이야말로 자연이 인간의 가슴에 새겨 넣은 가장 중요한 성향들이다. 결국, 자연은 평형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우리 가슴 속에 악행에 대한 취향을 새겨 넣은 셈이다.” (장 폴 브리겔리(Jean-Paul Brighelli)의 『불멸의 에로티스트 사드(Sade)』 p482).

소위 기벽이라 불리는 것, 쾌락을 추구하려는 욕망 역시 자연이 불어넣어 준 것이므로 거스르면 안 될뿐더러 만약 이에 저항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람이 범할 수 있는 유일한 죄다. 고로 정념의 목소리는 자연의 목소리나 다름없으며, 불타오르는 정념을 충족시키고자 행하는 모든 행위는 정당하다. 등장인물이 실천으로 옮기는 모든 기벽, 성벽, 변덕은 자연이 준 것이므로 이것을 거스르지 않는 이상 자연을 위반할 일도 없다.

대충 이러한 것이 『규방철학』에서 지루하게 반복되는 사드의 자연 철학이다. 온갖 기행을 자연의 이름으로 합리화시키며 쾌락 철학을 구축하려는 사드에겐 욕망이 곧 법이고 쾌락이 도덕이다. 안하무인 격이지만, 모든 구속을 허락하지 않는 경이로운 쾌락의 자유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불멸의 에로리스트’라는 평판이 무색하지는 않다. 보는 이에 따라서 ‘미친’, ‘쓰레기’ 같은, 혹은 점잖게 말해 ‘반사회적인’ 소설이라고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이지만, 논리적이고 일관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광기를 발산했다는 점에서 매우 독보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끝으로 불경에 대한 욕망과 잔혹한 취향으로 간간이 독자를 흥분시키기도 하지만, 그렇게 약발이 긴 편은 아니다. 무심하게도 반복되는 설교는 나의 눈꺼풀을 짓누르기 일쑤다. 덕분에 내겐 에로틱하고 관능적이면서도 동시에 강력한 수면제로도 작용하는, 그래서 사드의 기벽만큼이나 인상적인 ‘수면용’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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