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고래 | 한스 테비슨 | 화석을 읽고 고래를 스케치하는 탐사 수필
나는 결국은 내가 답하게 된 질문들에 답을 하러 파키스탄에 간 것이 아니었고, 전쟁이 터져서 내 첫 번째 탐사 일정은 초주검이 되었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끈기와 행운에 의해서였고, 그 탐사 일정이 훗날 내가 일부가 된 흥분되는 발견들로 가는 길을 닦았다. (p271)
표지 속 수수께끼의 다섯 동물
표지에 인쇄된 것 중 글자는 쏙 빼고 그림만 본다면,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판단하기가 꽤 곤란하다. 꽤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표지의 동물들은 뱀장어처럼 매끈하고 길쭉하게 잘 빠진 녀석도 보이고, 설치류나 양서류 비스름한 녀석도 보이지만, 내 식견으로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다. 자기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나를, 아니 나의 무지를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들의 인상이 아무리 험상궂다 하더라도 그들은 한때 지구 위에 존재했던 다섯 종(種)의 동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다섯 동물이 사이좋게 나란히 한 표지를 장식했다고 해서 모두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 서로는 어떻게든 연관이 있는 동물들이다. 그중 네 마리는 같은 목(目, Order)에 속한 동물들인데 놀랍게도 그들이 속한 목은 바로 고래목(Cetacea)이다. 사실 창조론자들은 고래를 어째서 화석기록이 진화를 뒷받침하지 않는가를 보여주는 으뜸가는 일례로 써먹었다고 하는데,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왔던 동물이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진화의 방향성은 사람이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다. 현생 고래와 현생 고래의 진화적 경로를 대표하는 표지 속에서 멋쩍게 포즈를 취하는 네 종을 나란히 비교해 보면 ─ 적어도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람이라면 ─ 희미하게나마 연결고리를 찾을 수가 있다. 하지만, 고래의 조상을 대표하는 표지의 네 종 중 한 종만 빠져도 가뜩이나 빈약해 보이는 이들의 연결고리는 완전히 끊어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었고, 그래서 고래는 ─ 앞서 거론한 것처럼 ─ 창조론자들의 만만한 먹잇감이었다.
고래의 조상 중 육지에서 살았던 고래와 바다에서 살았던 고래의 잃어버린 연결고리는, 육지에서는 걷고 물속에서는 헤엄을 칠 수 있었던 암불로케투스(Ambulocetus)이다. 이 화석이 발견된 덕분에 창조론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줄 수 있었고, 더불어 고래의 기원과 진화의 과정을 이해하고 연구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그리고 이 중요한 고리를 발견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책 『걷는 고래(The Walking Whales)』의 저자 J. G. M. 한스 테비슨(J. G. M. Hans Thewissen)이다.
고래의 에오세 친척, 인도히우스
표지의 다섯 동물 중 다른 목에 속한 나머지 한 마리는 에오세(Eocene)에 살았던 우제목(偶蹄目)인 인도히우스(Indohyus)다. 하마가 고래와 가장 가까운 현생 친척이라면, 이 너구리만 한 초식동물이 에오세에서 고래목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셈이다. 인도히우스를 처음으로 발굴한 사람도 테비슨인데, 그럼으로써 고래목의 유연관계에 대한 케케묵은 쟁점도 해결되었다. 그동안 고생물학자들은 고래목이 메소닉스목(Mesonychia)이라 불리는 발굽이 달린 식육 포유류의 멸종한 집단과 가까운 관계라고 가정했는데, 인도히우스라는 화석증거는 고래목은 에오세 어느 원시 우제목에서 유래했으며, 고래목의 가장 가까운 현생 친척은 하마임을 보여준다. 이로써 DNA 분석으로 고래목과 가장 가까운 현생 친척은 하마과임을 예측했던 분자생물학자들의 데이터도 맞아떨어졌다.
<『걷는 고래』는 여행 스케치 같은 수필처럼 읽힌다> |
화석을 읽고 고래를 읽는다
고인류학자 도널드 조핸슨(Donald Johanson)이 최초의 인류 화석 ‘루시’를 발굴하고 해석해가는 과정을 담은 책 『루시 최초의 인류(Lucy)』에서 자신이 이룩한 업적과 성공에 대한 ─ 어떻게 보면 교만에 가까운 ─ 자부심과 이것을 시기하고 견제하는 동료 학자들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마음껏 드러내었던 것에 반해 『걷는 고래』의 저자 J. G. M. 한스 테비슨는 다소 차분하게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 차분함 속에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학구적 열정이 끓어 넘칠 듯 말듯 고이 감춰져 있다. 그 열정은 전쟁과 테러, 적대적인 자연환경, 이질적인 문화 등의 외부적인 어려움과 시간, 돈과 같은 개인적인 어려움에서 기인하는 각종 위험과 역경을 배낭처럼 둘러메고 거의 중노동에 가까운 화석 탐사 일정을 끈질기게 소화해냈다는 것으로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는다. 그 열정의 대륙 속에는 현생 고래와 조상 고래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채 나란히 존재하며 그들은 탐정처럼 자신들의 삶과 죽음의 행적을 끈덕지게 뒤쫓는 테비슨을 귀찮은 듯하면서도 대견스러운 눈빛으로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에 대한 보답인 양 고래들은 물속과 육지를 바삐 오가며 신들린 듯 춤을 추고 있다. 우리는 저자와 함께 화석을 읽고 고래를 읽는다. 그들은 어느덧 더부룩한 털을 없애고 늘씬하고 매끈한 몸매로 탈바꿈했고, 공기의 진동을 듣는 귀 대신에 ─ 훗날 인류가 보고 배울 ─ 초음파 탐지기를 장착했다. 사지는 잠시 물속을 노처럼 휘젓는 구실을 하다가 곧 퇴화하고, 그 대신 유연한 몸놀림과 넓고 튼실한 꼬리로 바닷속을 자유자재로 헤엄쳐 다니게 되었다. 이때쯤이면 누구라도 진화의 무궁한 업적을 깨닫고는 넋을 잃지 않을 수가 없다. 억울하도록 아쉬운 것은 수백만 년 후에 고래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빈약한 내 머리로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여행 스케치 같은 수필
한편으론 테비슨이 인도와 파키스탄을 오가는 다사다난했던 탐사 과정을 기록한 『걷는 고래』는 여행 스케치 같은 수필이다. 이야기는 그가 겪었던 고된 현장 작업과는 달리 거칠지도 격렬하지 않다. 읽는 이로 하여금 몽상에 빠지게 하는 나긋나긋하게 단조로운 문장은 미지의 아늑함마저 물씬 풍겨 온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암석과 땅을 온종일 파고, 조련사 앞에서 강아지처럼 노는 범고래를 바라보고, 화석을 찾아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프라이팬 그 자체인 펀자브의 평원으로 들어선다. 납치, 전쟁 등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발이 묶이기도 하고, 괴짜 같은 주인의 변덕 때문에 연구가 시급한 화석을 눈앞에 남겨둔 채 쫓겨나기도 한다. 어느 공항에선 서른다섯 명의 서로 다른 낯선 사람들이 외국인인 저자의 돈을 뜯으러 모기떼처럼 집요하게 달라붙는다. 심지어 경찰까지도. 찬디가르에 곧게 뻗은 큰길을 지나며 살아 있는 존재들만 무시한다면 괜찮은 도시라고 감탄하기도 한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에게 나눠주려고 일부러 가져간 사탕이지만, 종교적 텃세 때문에 여자아이에겐 주지 못한다. 가난하지만 손님만큼은 푸짐하게 대접하려는 현지인의 문화는 저자를, 그리고 그 상황을 읽는 나까지도 곤혹스럽게 만든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낯선 문화, 그리고 거리에서 원숭이의 손을 뜯어먹는 개도 마주칠 수 있는 낯선 환경. 이 모든 것을 과학자의 진지함과 호기심이 번득이는 시선으로 관찰하고 잠시 머릿속에서 버무린 다음 깨끔하게 글로 묘사한다. 고래의 기원과 진화의 역사를 진지하게 파헤쳐가는 여정도 짜릿하지만, 그 여정 곳곳에 알맞게, 그리고 보기 좋게 널려 있는 담백한 수필을 감상하는 것도 묘미다. 그래서 저자의 과학적 열정과 엄밀함에 세련된 수필이 더해져 완성된 『걷는 고래』는 과학서적으로는 보기 드물게 문학적 교양과 과학적 지식을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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