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3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 진실을 우롱하는 이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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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 우타노 쇼고 | 진실을 우롱하는 지독한 이기심

“ … 닥치는 대로 정보를 공개해서 질서를 혼란시키는 게 정의일까? 세상에는 ‘필요악’이라든지 '거짓도 방편’이라는 말이 있어. 사람이라는 생물은 거짓말이나 악을 잘 이용해서 지금까지 계속 번성해 왔지.” (p306~p307)

오늘 소개하는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家守 連作推理小說)』는 내가 지금까지 읽은 수백 편의 추리 소설 중 최고의 반전 펀치를 날린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의 작가 우타노 쇼고(歌野晶午)의 단편 소설집이다. 총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모두 가정집에서 일어난 밀실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밀실 살인 사건을 주된 테마로 하는 듯 보이지만,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의 숨겨진 묘미는 ‘의도치 않은 살인’이 반 박자 늦게 불러오는 ‘섬뜩함’이다. 보통 추리 소설을 읽는 재미는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 범죄를 엉킨 실타래 풀듯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데 있지만(물론 이 소설에도 의도적인 살인이 한 건 등장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살인 사건들처럼 우연하고 우발적으로 일어난 의도치 않은 살인이 불러오는 예기치 못한 섬뜩함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이렇게만 설명하고 나니 속 빈 강정처럼 뭔가 싱겁게 들린다. 과실치사라고 불려도 무방한, 살인 사건 같지 않은 살인 사건들 속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처럼 미스터리한 맛이 무엇 있겠으며, 또한 명탐정 김전일처럼 명쾌하게 추리할 만한, 명석한 두뇌를 가진 독자들의 탐정 기질을 충분히 자극할 수 있는 건더기가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는가 하고 넘겨짚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 될 수도 있다. 우타노 쇼고도 그 점을 생각했는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신문기사처럼 그저 보이는 대로 싱겁고 맹숭맹숭하게 독자 앞에 갖다 바치는 대신 ‘우연’, 혹은 ‘우발성’이라는 범죄 아닌 범죄 속에 묻힌 사람들의 본능처럼 발동하는 이기심을 간과하지 않으며 그 뒤에 살포시 은폐된 진실을 들여다본다. 마치 악마가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낯선 집에 함부로 들락날락한 것을 부모님에게 들켜 혼나는 것이 무서워 친구가 낯선 집에서 숨바꼭질하다 실종된 것을 숨긴 소년들(인형사의 집), 수십 년 전에 유괴된 동생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유일하게 도로 개발에 반대하며 집을 팔지 않고 버티다가 보상금에 눈이 먼 남편에게 살해된 아내와 그 아내가 유괴된 것으로 믿었던 동생의 비밀(집 지키는 사람), 고액에 혹해서 치매 노인의 가짜 아들 역할을 맡았다가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한 청년(즐거운 나의 집), 시골 마을 사람들의 집단 이기심에 의해 계획적으로 은폐되고 날조된 살인 사건(산골 마을), 복권처럼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인 ‘프로버빌리티(probability) 범죄’로 아내를 가혹하게 다룬 남편의 예기치 못한 비극적 결말(거주지 불명) 등 총 다섯 편의 이야기는 우타노 쇼고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반전의 파괴성이나 기발한 맛은 덜하지만, 사람의 죽음조차 태연하게 덮어버리려는 지독한 이기심을 예기치 못한 살인을 은폐하려는 인물들의 비겁한 행위 속으로 잘 녹아내리게 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호소력이 있다.

Iemori Reasoning Work by Akino Utano
<이런 집이라면 기꺼이 놀러가고 초대한다>

마지막으로, ─ 오늘 했던 이야기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 다섯 편의 단편 중 마지막 편인 「거주지 불명」에서 아내를 친정으로 쫓아내어 자유를 되찾고자 하는 목적으로 집에 얽힌 무서운 이야기로 아내를 겁주던 남편 도시미쓰는 아내가 집을 되팔자는 성화에 일일이 답변하다가 이런 말을 내뱉는다.

“ … 아파트는 싫어. 정원도 없는 집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도미시쓰가 사는 일본의 바로 옆 나라는 애초 집 살 때 정원 같은 거 고려할 생각조차 못 한다. 소음에 시달려 신경병 환자가 되고 먼지를 잔뜩 먹어 목이 막혀도 상관없다. 다만, 장래에 집값이 얼마나 오를 것인가만을 따져본다. 도시미쓰를 보면 한국의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오명이 단지 정부와 대기업이 짜고 치는 고스톱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 판에 놀아나는 무지한 국민도 문제이다. 우리보단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일본의 주택 환경이 부럽기도 하고, 내 집 앞 골목이나 인도에서조차 마음 놓고 걸어 다닐 수가 없는 한국의 불량하고 비인간적인 주택 환경에 분노가 치밀기도 하여 별 시답지도 않은 몇 마디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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