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9

산소 | 닉 레인 | 원소계의 야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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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 | 닉 레인 | 생명과 죽음을 관장하는 원소계의 야누스

장수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는 것이라는 점이다. 앞서도 보았듯이, 미토콘드리아는 난자로만 전해지며 따라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열세 개도 모두 어머니한테서 물려받는다. 만일 이 유전자들이 정말로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우리는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의 수명을 따라가게 된다. (p455)

노화와 죽음을 불러들이는 주범, 산소

사람을 포함하여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동물이 산소(酸素, oxygen)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확고부동한 사실이다. 그런데 생명의 원동력으로 알려진 산소가 노화와 죽음을 불러들이는 주범이라면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사람의 세포는 산소 덕분에 숨을 쉬고 에너지를 얻고 있지만, 호흡 과정에서 생기는 자유라디칼(free radical) 때문에 - 산소가 철을 부식시키는 것처럼 - 세포는 녹슬고 있다. 세포는 호흡과 동시에 산소의 강력한 산화 작용으로 서서히 노화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는 산소에서 생명력을 얻으며 산소와 함께 진화했다는 사실 때문에 산소가 우리에게 어떠한 해를 끼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것도 사람에 따라선 몸서리치도록 두렵고 마냥 미루고만 싶은 노화의 주범이라니, 어디 될법한 말인가.

사람이 산소에 적응하도록 진화됐다는 것과 다른 포유류에 비해 비교적 긴 수명을 가졌다는 것, 그럼으로써 지금까지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의 말을 빌리면)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의 운반체 노릇을 성공적으로 해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종족의 번식’을 최우선으로 삼는 유구한 진화사에서 다른 동물과는 달리 그 이상의 뭔가를 더 갈망하고 욕구하는 사람에겐 100세도 짧게 느껴진다. 그뿐만 아니라 죽음과 소외, 질병을 예고하는 노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임에도 인류는 지금까지 (비도덕적이고 악랄한 방법을 포함하여) 온갖 수단으로 노화와 죽음에 대항해 왔다. 현대 의학은 인간의 한계 수명을 115세로 가정하고 있지만, 알다시피 대부분 사람은 100세는커녕 90세도 넘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살아갈 에너지를 공급하는 산소가 한편으로는 우리를 곱게 늙도록 가만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산소는 생명과 죽음을 관장하는 원소계의 야누스 같은 존재다.

사람의 몸도 산소가 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산소가 독성이라는 사실은 사람의 신체 구성에서도 나타난다. 사람의 체액 구성이 조상인 단세포 생물들이 예전에 살았던 바닷물과 똑같은 것처럼 사람 몸의 산소 농도는 호흡효소가 처음 생겼을 당시의 산소 농도(대기 중 산소 압력의 0.3% 미만)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몸 안팎의 산소 농도 차이로 말미암은 부담이나 부작용을 처리하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항산화제 평형을 유지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그러나 그 평형이 언제까지나 지속하는 것은 아니다(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영원한 젊음을 얻게 될 것이다). 평형은 개체가 번식이 끝나는 시기를 지나면서 서서히 깨지는데,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노화 현상으로 나타난다. 번식을 마친 개체는 자신의 소임(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는 것)을 다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선택 압력이 낮아진다. 그것은 자유라디칼로 말미암은 세포와 유전자 손상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면, 적당한 시기에 번식을 통해 건강한 유전자를 남기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진화상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화는 한 개체의 일생 중에서 비교적 뒤늦게 찾아온다. 만약 번식을 마치기도 전에 노화가 먼저 오는 종이 있다면, 그 종은 자연 선택으로 일찌감치 도태되었을 것이다. 노화나 노인병이 인생 말기에 찾아오는 것에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비록 산소가 야누스처럼 두 얼굴을 가졌지만, 진화를 산소라는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보면 우리는 산소를 미워하기보다는 마땅히 감사하는 마음을 더 가져야 할 것 같다. 바다와 토양이 생명이 자랄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을 제공했다면, 산소는 생명력이라는 오묘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엔진이다. 지구상의 생물 다양성은 산소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생물 다양성이 활짝 만개한 덕분에 그 틈새를 통해서 인류가 진화할 수 있었는데, 만약 생물 다양성을 이루어낼 수 없었다면 지구는 일찌감치 화성처럼 불모의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산소(OXYGEN)』의 저자 닉 레인(Nick Lane)은 산소가 있었기에 생물 다양성뿐만 아니라 유성생식, 성별, 인간의 의식 자체가 존재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지구 생명의 역사는 산소의 역사와 길을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Oxygen: The Molecule That Made the World by Nick Lane
<깨끗한 공기가 그립다>

흔히 말하는 장수 비법, 다 과학적 근거가 있다?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35억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산소의 기원을 밝히는 일보다는 앞서 언급한 대로 산소와 노화의 관계를 밝히는 일에 더 관심이 많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대부분이 아직 가설 수준에 머물러 있고, 실험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많지 않지만, 닉 레인의 『산소(OXYGEN)』는 노화가 진행되는 전반적인 흐름이나 원인에 대해 대략적인 개념을 잡을 수 있는 (TV 속 쇼닥터의 약장수 같은 광고성 궤변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과학적 지식과 조언으로 충만한 책이다. 지질학, 고생물학, 화학, 의학, 생물학, 유전학 등 서로 다른 분야를 넘나들면서 이해의 연결고리를 제공하는 다양한 학문적 성과, 실험적 증거, 논리적 가설을 바탕으로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리고 약장수처럼 장황하게 밀어붙이지 않는 닉 레인의 친절한 설명은 다소 깊이가 있는 이 책을 읽는 부담감을 어느 정도 덜어줄 뿐만 아니라 독자가 자연스럽게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주인공이 ‘산소’이듯 때때로 설명이나 가설은 세포, 세균, 유전자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화학적 분석과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오래전에 학교를 졸업한 (나 같은) 독자에겐 다소 난감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으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조망하는 데 큰 무리는 없다. 그리고 이 책 막바지에 등장하는 ‘미토콘드리아 노화’ 이론은 닉 레인의 또 다른 책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책 리뷰] 세상을 지배할 단 한 번의 진화 ~ 미토콘드리아(닉 레인)」)에서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진다.

아직 현대 의학 기술로는 노화와 관련된 유전자들을 직접 조작하여 수명을 연장시킬 수는 없지만, 노화를 서서히 진행시킬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하며 그것은 장수하는 사람들의 생활 습관에서도 잘 나타난다. 사람이 장수하려면 음식을 적게 먹고 - 그중에서도 채소와 과일을 풍부히 섭취하고 - 적당히 운동하고,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낙관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흔히 말한다. 예전에는 그것이 그저 교과서적인 공허한 말로만 들렸다면, 『산소(OXYGEN)』를 제대로 읽었다면 왜 그러한 생활 태도가 젊음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노화를 늦추는데 어떻게,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는지 세포적인 수준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으면 음식을 적게 먹으면 대사 스트레스를 낮춰 미토콘드리아에서 자유라디칼이 새어 나와 건강한 세포를 공격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덤으로 이 책을 읽고 나면 적게나마 돈도 절약할 수 있다. 왜냐하면, 널리 선전하는 항산화제 건강보조식품들이 실제로는 노화 예방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과학적 근거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이터에 흙이 사라진 오늘날,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것이 면역력을 약화시켜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은 반드시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마치면서...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계에 의존하면서까지 의식 없는 삶을 연장하는 것을 생명에 대한 모욕으로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말년을 얼마만큼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느냐는 더더욱 중요하다. 그러려면 흔히 비꼬면서 말하기도 하는, 이른바 ‘바른 생활 태도’가 필요하다. 음식을 적게 먹고, 채소와 과일을 포함하여 골고루 먹고, 적당히 운동하고, 스트레스를 피하고, 삶의 속도를 느리게 유지한다. 이것이 신체의 노화를 예방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면, 사람의 정신 건강과 깊은 관련이 있는 뇌의 노화를 – 치매나 알츠하이머 등 - 예방하려면 독서를 통해 꾸준히 뇌를 운동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운동으로 근육을 단련하듯 독서로 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내 믿음에서 착안한 의견이다.

이 모든 일은 사람의 육체를 구성하는 세포가 산소로부터 산화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추려는 최선이자 최소한의 시도다. 『산소(OXYGEN)』를 읽고 나면 예전에는 의사들이나 장수하는 사람들이 으레 내뱉는 말로만 들렸던, 그래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진부한 조언들이 진지하다 못해 심각하게 들린다. 먹는 것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고, 자칫 잘못하면 운동에 대한 강박관념에도 시달릴 수 있다. 그럼에도 건강한 삶과 노화를 조금이라도 늦추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원초적인 희망이라는 점에서 닉 레인은 많은 것을 알려준다. 노화를 인문학적으로 다룬 다른 책들과는 달리 노화의 주범인 ‘산소’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노화를 직설적이자 직접적으로 다룬 이 책은 단지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생활 방식을 어떻게 가져야 할지에 대한 조언도 은근슬쩍 내비친다. 산소와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겐 ‘산소’라는 분자를 통해 생명의 비밀을 캐내려는 이 책은 사람의 삶과 죽음의 언저리를 둘러싼 베일을 걷어내려는 야심 찬 시도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 우리의 삶과 죽음에는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 같은 동반자 ‘산소’가 늘 함께하고 있다.

참고로 이 책을 읽었다면 다음 책으로는 닉 레인의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와 피터 워드(Peter Ward)의 『진화의 키 산소 농도(Out of thin air)』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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