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0

히틀러 1 | 기회주의자? 의지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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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1 | 이언 커쇼 | 기회주의자? 의지의 사나이? 아니면 행운아?

하지만 히틀러가 독일 역사에서 그저 ‘우연’히 나타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히틀러를 부각시킨 특별한 상황이 없었더라면 히틀러는 무명인으로 남았을 것이다. 히틀러가 다른 시대로 훌쩍 뛰어넘어 가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히틀러의 개성, 히틀러의 말투는 그런 특별한 상황이 없었더라면 눈길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전쟁, 혁명, 민족적 수모, 볼셰비즘에 대한 공포는 워낙 광범위한 독일 국민을 뒤흔들었고 히틀러는 그런 상황을 발판으로 삼았다. 그는 상황을 기가 막히게 활용했다. (『히틀러Ⅰ(Hitler: 1889-1936 Hubris)』, p603)

‘의지의 승리’가 아니라 ‘기회의 승리’?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 감독이 1934년 9월 나치당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촬영한 다큐멘터리에 히틀러(Hitler)는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제목은 히틀러가 자신을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력으로 앞길을 헤쳐나간 영웅적 정치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과 히틀러의 그러한 불굴의 오만과 위대한 착각에 비위를 맞추듯 히틀러를 미화하려고 애썼던 나치 신화의 한 요소를 대변해 준다. 하지만, 이언 커쇼(Ian Kershaw)는 히틀러 전기 『히틀러Ⅰ(Hitler: 1889-1936 Hubris)』을 통해 히틀러가 끝내 정권을 차지하게 된 원인은 의지보다는 기회주의와 약간의 행운이 더 크게 작용했음을 설득력 있게 설파한다. 사실 히틀러 하면 떠오르는 것은 타고난 연설가로서의 천재적인 대중 선동 능력과 단호한 의지다. 커쇼 역시 연설가로서 히틀러 능력은 부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히틀러의 대중 선동 능력이 나치당의 성장과 히틀러의 정치적 삶에 크게 이바지한 점까지도 인정하지만, 히틀러가 끝내 정권을 차지하게 된 이런 저러한 복합적인 이유 중에 히틀러의 의지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기존의 해석에는 단호한 비판의 날을 세운다.

권력의 심장부에 있었던 사람들의 계산 착오

역사학자에게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게 된 원인에 관해 물어본다면 그 누구도 객관식 문제를 풀어내는 것처럼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는 못한다. 그것은 히틀러가 부상하는데 히틀러의 개인적 요소와 주변적 요소, 그리고 시대적 배경이 서로 복잡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히틀러가 권력을 차지하게 된 출발점을 총리가 된 시점으로 본다면, 그 대답은 몇 가지로 간추려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것은 결코 필연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커쇼는 히틀러가 총리 자리에 오른 것은 히틀러의 활약보다는 권력의 심장부에 있었던 사람들의 계산 착오에 있었다고 본다. 권력의 심장부에 있었던 사람이란 다름 아닌 민주주의를 파계하려는 우익 보수 세력이었고, 그들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혈안이 된 나머지 히틀러를 충분히 자신들의 의지대로 다룰 수 있는 만만한 인물로 보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히틀러에 대한 과소평가는 1923년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히틀러를 정치계에서 완전히 쫓아낼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히틀러가 총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정권을 잡으려는 나치당의 노력이 주효했다기보다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이 그만큼 밀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권위주의 체제에 자기들 이해관계가 걸려 있었던 대지주와 군부는 히틀러의 권력 쟁취를 도운 일등 공신이었고, 대기업은 비록 정치적으로는 근시안적이었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했지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마지막으로 패전, 실패한 혁명, 대공황 등으로 말미암아 총체적 난국과 빈곤에 시달리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뼛속까지 염증을 느끼고 있었던 독일 국민도 히틀러를 선택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한몫 거들었다.

여기에 히틀러가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커쇼는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이어지는 독일 정치 문화의 중요한 줄기들을 거론한다. 그것은 폐쇄적 민족주의, 제국주의, 인종주의, 반마르크스주의, 전쟁 미화, 자유보다는 질서를 강조하는 전통, 강한 권위에 끌리는 마음이었고, 아울러 단기적으로는 바이마르 민주주의가 출범할 때부터 부딪쳤던 첩첩이 쌓인 위기들이었다. 여기에 주어진 상황을 잘 활용하면서 시류에 영합하는 기회주의적이면서도 영악한 히틀러의 상황 대처 능력이 ‘지도자 히틀러’의 탄생을 ‘우연’이 아닌 무언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히틀러가 군대에서 연설할 수 있는 재능을 발견하여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이 순전히 우연이었음을 고려해보면 ‘지도자 히틀러’ 탄생에 우연성이나 우발성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우물쭈물하고 자꾸 뒤로 미루는 히틀러의 우유부단한 통치 방식이 오히려 나치당과 관료 체제의 느슨한 통합을 이끌었다는 점과 시의적절하게 터진 의사당 방화 사건이나 힌덴부르크의 사망, 1차 세계대전 참전 등 히틀러는 운도 꽤 따랐다.

히틀러는 기회주의자인가? 행운아인가? 아니면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인가?

그렇다면 ‘지도자 히틀러’ 탄생에서 얼마만큼을 우발성 내지는 심지어 역사의 우연 탓으로 돌려야 하는가? 얼마만큼을 당시 독일을 다스렸던 비범한 남자의 행동과 동기 탓으로 돌려야 하는가? 얼마만큼을 민주주의에 적대적인 세력 탓으로 돌려야 하는가? 또 얼마만큼을 히틀러를 스치고 지나갔던 행운 탓으로 돌려야 하는가? 또 얼마만큼을 광신적으로 히틀러를 숭배했던 나치 일당과 독일 국민 탓으로 돌려야 하는가? 이 책은 바로 이런 물음에 답을 구하려는 진중한 노력의 결과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간단히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요소가 의도적이든 우연히든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고 부족한 부문을 서로 메워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는데 각자 나름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것들은 둘째치고 정권을 장악하는데 히틀러의 의지는 얼마나 도움이 되었던 것일까? 연설이나 선동 분야를 제외하고는 히틀러의 개인적 능력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으로 보는 커쇼의 답은 당연히 부정적이다. 커쇼는 히틀러의 의지보다는 다분히 기회주의적인 면을 부각시킨다.

Hitler: 1889-1936 Hubris: 1889-1936: Hubris by Ian Kershaw
<어렸을 때의 히틀러, German Federal Archives / Public domain>

부랑자보다 약간 나았던 청년 시절

사실 1차 세계대전 전에 그림을 팔아 생활비를 벌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부랑자보다 약간 나은 생활을 했던 히틀러의 청년 시절을 돌이켜보면 과연 히틀러가 뭐라도 이루어보겠다는 약간의 의지가, 아니 그러한 의지가 존재했는지조차 의심이 들 정도로 게으르고 방만하고 나태한 삶을 살았다. 그나마 재능이라 할 수 있는 그림 실력을 부지런히 발휘해 돈을 열심히 벌려고 하지도 않았고, 사교성이 좋아 인맥을 두루 넓힌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예술가가 되겠다고 열심히 공부한 것도 아니었다. 낮에는 반쯤은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하루하루 먹고살 궁리를 해야 했고, 밤이면 바그너의 음악에 빠져 공상과 망상의 바다에 자신을 질식시켰다(마치 세상을 등진 채 책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 자신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그 당시 히틀러의 삶은 그가 지독히도 경멸하던 막노동꾼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히틀러는 삽 대신 붓을 들었고, 술과 담배 대신 독서와 음악에 취했을 뿐이다. 말 그대로 그냥 되는대로 살았던 히틀러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전쟁터에서 제 세상을 찾은 듯 보였지만, 그것도 금방 끝나고 말았다.

뜻밖에 군대에서 깨달은 연설 능력

히틀러는 어떻게든 제대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군대에서 공짜로 재워주고 먹여주고 월급까지 주었기 때문이다. 학력이 출중한 것도 아니고, 연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우 뛰어나지는 않지만 보통 이상은 하는 그림 실력을 제외하곤 아무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패전으로 엉망진창이 된 독일 경제의 폐허 한복판으로 내몰린다는 것은 예전의 부랑자와 다를 바 없는 삶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히틀러가 군대에서 정치에 발을 내디디면서 처음 맡은 임무는 훗날 등에다 칼을 박았다는 배신자로 부르게 될 사회주의 세력이 이끌던 혁명 정부의 일을 도운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히틀러는 좌파 정권이 집권하는 동안 소속 대대의 대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 정부의 홍보 부처를 도와 부대원들에게 ‘교육’ 자료를 배포하는 일을 맡았다.

이때부터 이미 기회주의적인 히틀러의 특성이 드러난다. 히틀러가 사회주의에 반감을 품지 않았을 리는 만무하지만, 히틀러는 단지 생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군대에 남고 싶었다. 군대에 남는 것이라는 (훗날에는 권력 쟁취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면 비록 신념에 어긋나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히틀러의 특성이다. 훗날 히틀러는 나치당을 이끌면서 권력 쟁취라는 목적 아래 나치당과는 다른 이념을 가진 여러 사회 집단을 받아들이는데, 좋게 말하면 유연성 있는 상황 대처 능력이라 할 수 있고 달리 말하면 기회주의적인 처사라고 볼 수 있다.

1919년 5월 혁명 정부가 무너지고 키를 마이어(Karl Mayr) 대위를 통해 군대를 反볼셰비즘과 민족주의 방향으로 올바르게 교육하는 선전요원으로 선택되고 나서야 히틀러는 자신이 연설할 수 있다는 재능을 깨닫게 된다. 히틀러가 자발적으로 선전요원으로 나섰다기보다는 선택되었다는 점에서 다분히 기회주의적인 냄새가 풍긴다.

‘북 치는 사람’ 히틀러

그렇다고 히틀러가 자신의 연설 능력과 대중 선동 능력을 깨닫게 되면서 바로 권력으로 향한 의지를 드러낸 것도 아니다. 1923년 11월 쿠데타 실패로 란츠베르크 감옥에 갇히기까지 히틀러는 위대한 지도자의 앞길을 닦아놓는 북 치는 사람이라는 역할로 만족했다. 그것은 예전에 품었던 위대한 화가나 건축가가 되겠다는 꿈 대신에 히틀러가 새로 발견한 천직이었다. 하지만, 란츠베르크 감옥에서 『나의 투쟁(Mein Kampf )』을 집필하고 세계관의 틀이 다져지면서 그는 이제 ‘북 치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지도자가 되어야 할 운명을 짊어진 사람으로 인식한다. 이때부터 구렁텅이에 빠진 독일을 이끌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자기도취적인 사명감에 불타올랐고, 이때서야 비로소 권력을 쟁취해 지도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맨 앞에서 설명했듯 히틀러가 총리에 오르는 과정은 절대로 히틀러의 의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이후 독일에서 전개되는 정치 전개 과정을 봐도 히틀러의 의지력 하나보다는 고집, 우유부단함, 도박사 기질 등 그의 다른 성격적인 요소가 독일의 운명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마치면서...

이 책은 히틀러의 일대기 중 히틀러의 할아버지부터 시작하여 독일의 라인란트 재점령으로 히틀러의 지도자적 위치가 완벽하게 확립되는 1936년 봄까지를 담고 있다. 어마어마한 책 두께만큼 히틀러에 대해 밝혀진 모든 자료를 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책이지만, 다른 독재자들의 과거처럼 젊은 시절의 기록은 이 빠진 것처럼 군데군데 빈자리가 많이 보이고, 사용된 자료의 신빙성도 미덥지 못하다. 젊은 시절의 히틀러에게 좀 더 가깝고 투명하게 다가갈 수 없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히틀러의 성장 과정과 히틀러의 개인적 기질과 우연과 행운이 어떻게 독일의 정치 • 사회 • 경제와 상호 작용하고, 그 비상한 맞물림 속에서 어떻게 위대한 선동가가 탄생했고 어떻게 위대한 지도자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세밀하게 통찰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자료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이니만큼 책 무게는 가벼운 운동기구로 사용해도 될 만큼 상당히 부담스럽지만,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시종일관 흡입력을 잃지 않는 명쾌한 문장력 때문에 읽기는 전혀 부담스럽지는 않다. 이 덕분에 지루할 새도 없이 독파할 수 있었다. 두께 때문에 감히 추천하기는 어려운 책이지만, 두께를 훨씬 뛰어넘는 지적 충만감과 역사적 혜안을 안겨줄 수 있는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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