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그리고 일상적인 생각을 쓰고. 이 모든 것을 음악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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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31일 일요일

(최대) 무료 1테라 용량이라고 현혹하는 ~ Datum 클라우드

홈페이지: Get 1TB Free Cloud Storage Today!

오랫동안 바이두와 스택을 사용하다 보니 이젠 무료 용량 1테라 이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와중에, ‘무료 1테라’라는 달콤한 문구로 날 현혹하는 녀석을 만났다. 이름하여 ‘Datum’ 클라우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고 나발이고 이 글을 찾은 사람에겐 가장 중요하고도 궁금한 것은 정말 ‘1테라’인가 하는 것인데,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Datum(다툼) Cloud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바이두처럼 일단 가입만 하면 쉽게 거저먹을 수 있는 ‘1TB 무료 클라우드’는 아니다. 다만, 까탈스럽게도 무려 세 단계나 거쳐야 하는 데이터 식별 및 인증 과정을 거치면 100G의 기본 용량을 받는데, 여기서 친구 초대(최대 5명)할 때마다 100G,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공유하며 각각 100G,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다 완료하면 200G를 받는다. 고로 기본으로 주는 100G + 친구 초대 5번 500G + 페이스북과 트위터 공유 200G + 완료 보상 200G를 다 합산하면 정확하게 1T가 된다.

그래도 굳이 사용해 보고자 싶다면, 가입 과정을 캡처해서 편집한 동영상과 가입 과정을 글로 정리한 내용을 참고하면 크게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Datum 클라우드 가입 방법

1. 구글 플레이에서 Datum ID 앱을 설치.

2. [Datum ID]를 터치하여 세 번의 식별 과정 중 첫 번째 과정 시작.

3. 보안을 위해 6자리 PIN 번호를 입력.

4. 타인에게 알려주어서는 안 될 12개의 복구 단어 기억(어딘가에 잘 적어두자).

5. 번호에 맞게 순서대로 복구 단어 입력.

6. 두 번째 단계인 이메일 인증 완료.

7. 세 번째 단계인 휴대전화 인증 완료(가상 번호로도 가능할지는?).

8. 이 모든 과정을 완료했다면, 첫 화면에서 [Get 1TB Free Storage]를 터치하고 다음 화면에서 [COUNT ME IN!]를 터치하고,

9. 접근 코드에 아래 글자를 입력하면,

10. 서버 URL주소와 서버에 접근할 수 있는 Access Key ID와 Secret Access Key를 받으면서 기본 용량 100G 확보.

<S3 Browser에서 Datum 클라우드 접속하기>
<오, 이 고약한 속도는 무엇인고?>
<S3 Browser 프로 버전만 멀티 쓰레드 가속이 가능하다>

시원치 않은 접근성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Datum 클라우드를 이용할 수 있나?

Datum 클라우드에서 별도로 제공하는 백업 프로그램은 없고 "Other S3-Compatible Service"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모두 이용할 수 있다. Datum 홈페이지에는 ‘Arq Backup’를 추천하지만, 무성의하게도 30일 평가판이다. 혹자는 GoodSync 같은 범용 동기화 프로그램이면 Datum 클라우드를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나 역시 그렇게 짐작했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GoodSync 뿐만 아니라 BestSync, Syncovery, Cyberduck도 ‘Amazon S3’만 지원하지 ‘Other S3-Compatible Service’는 지원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Other S3-Compatible Service'는 듣보잡이다. 결국, 구글링해서 찾아낸 것이 ‘S3 Browser'다. 개인은 무료로 이용 가능하며, 프로 버전만 업로드/다운로드 가속을 위한 '분할(멀티 쓰레도 가속)'을 지원한다. Datum 클라우드를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별로 없다는 것도 처참한데, 속도 역시 처참하다. 업로드 속도가 스택(Stack) 클라우드와 비슷한 것으로 보아 서버가 유럽에 있나 보다. 아무튼, 속도는 둘째치고 ’Other S3-Compatible Service’이라는 생소한 접근성이 떨떠름하다. 차라리 스택처럼 WebDAV를 지원했으면 좋았을 것을...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유효 기간 1년!!!>

거지 같은 접근성에도 개의치 않고, 속도는 S3 Browser 프로 버전으로 해결하고, 그래서 오로지 1T 달성을 위해 모든 임무를 완수한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이 있으니 바로 ‘Valid for one year’ 라는 문구다. 즉 기본으로 받은 100G 용량의 유효 기간은 달랑 1년이라는 말인데, 친구 추가나 페이스북 공유로 해서 추가된 용량의 유효 기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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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특별함은 없지만, 모호함이 암시하는 가능성의 미학 ~ 위미(비페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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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함은 없지만, 모호함이 암시하는 가능성의 미학

Original Title: 玉米 by 畢飛宇
마음이 차가워진 것이다. 마음이 한번 얼면 그만큼 더 자라는 법이다. 사람이란 이런 식으로 한 차례 한 차례 나이를 먹어가고, 마음도 한 차례 한차례 죽어간다. 세월과는 아무 상관 없이. (『위미(玉米)』, p105)

당당히, 그리고 교묘히 나를 압박하는 세 자매

먹기 전에는 배고픔을 느끼고, 배불리 먹고 나서는 만족스러운 포만감을 느끼면서도 다음 식사는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이 옹졸하고 탐욕스러운 새가슴을 살짝 긴장시키는 것처럼 새로운 책을 읽기 전에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들끓는 문학적 배고픔에 시달리고, 읽고 나서는 문학적 성취감으로 한껏 고양된 지적 포만감으로 알량한 거드름을 피우면서도 ‘어떤 이야기로 리뷰를 시작해야 할까?’라는 하는 의무 아닌 의무에 부담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부담에 앞서 당혹감이 먼저 나를 찾아왔다.

마지막 페이지는 이미 넘겨졌고, 그렇게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내가 만났던 세 자매는 못내 나를 닦달하는 것이다. 똑똑하고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줄 아는 셋째 위슈(玉秀)는 쌍꺼풀진 큰 눈을 치켜뜨고 ‘당신이 고작 책 한 권 읽은 거로 우리에 대해 뭘 안다고 떠든다는 거예요?’라고 내가 이제 막 뭔가를 쓰기도 전에 시퍼런 날을 세운다. 평소엔 침묵으로 차분함과 위엄을 두루 자아냈던 첫째 위미(玉米)는 어찌 된 일인지 침묵을 깨고 ‘우리에 대해 쓰고 싶으면 실컷 써보세요’라고 오만과 자신감을 분간하기 어려운 당당한 어투로 격려인지 협박인지 모를 한마디를 내뱉는다. 위미의 말은 위슈가 세운 날 위에 묵직한 돌을 얹어놓은 것처럼 나의 폐부를 깊이 파고든다. 언니들과는 달리 땅딸막하지만 튼튼한 체구를 지닌 막내 위양(玉秧)은 고양이처럼 얌전히 웅크린 채 나를 말끄러미 쳐다본다. 나를 올려다보는 위양의 순진한 눈동자 속에는 자신들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를 사뭇 기대하는 어린이 같은 순진한 호기심이 언뜻 비치면서도, 실수인 척하면서 바퀴벌레를 짓밟아 죽인 요조숙녀의 가식적인 놀람 속에 가려진 냉소도 숨겨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집 지키던 강아지가 도둑놈 바짓가랑이를 물듯이 나를 물고 늘어지고, 지금까지 힘겹게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던 손가락에는 풍선에 바람 빠지듯 힘이 빠지고, 세 자매의 협박 아닌 협박에 머릿속은 쓰레기통 비워지듯 깨끗하게 텅 비워진다. 천지를 진동시키고 태산을 쓸어버릴 듯한 그녀들의 기세에 눌려 쥐포처럼 납작해지지 않는다면, 기껏해야 산산이 부서져 그녀들의 콧방귀 장단에 맞춰 아지랑이 춤을 춰야 하는 한 줌의 먼지가 되리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써야 한다. 그녀들도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내가 아직 살아있다.

삶을 밀어붙이는 강력한 동력원, 복수와 증오

루아침에 몰락한 집안의 권위와 가세를 세우고, 한편으론 파혼의 수치를 씻고자 간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시집간 위미는 철저하게 권력을 추구한다. 반면에 윤간의 치욕과 아픔을 뒤로하고, 그리고 위미와 대립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구미호 같은 기질을 살려 한몫 잡으려는 위슈는 악의 없는 꽃뱀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10년 후, 모든 사람에게 평범하고 평범한 아이로만 보였던 위양은 신통방통하게도 사범학교에 진학하고, 그곳에서 평범한 속에 빛을 내는 방법을 발견한다. 그것은 어둠 속에 숨어 동료를 감시하고 밀고하는 첩자가 되는 일이었다.

위미의 권력 추구가 자신의 가족을 업신여긴 고향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에서 기인한 것일까? 위슈가 전심전력으로 여우 짓을 했을 뿐 아니라 꽃뱀 짓을 한 것은 윤간의 통한을 씻고자 하는 복수심에서 기인한 것일까? 위양이 룸메이트를 밀고한 것이 누군가 자신을 무고(誣告)한 것에 대한 복수였을까? 물론 그녀들은 ‘아니야’라고 앙칼지게 소리 지르고 고개를 좌우로 연방 흔들며 강력하게 부인한다. 위미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약간의 권력을 누리며 예전 권위를 조금이나마 되찾아 가족들이 안락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위슈는 나중에야 그것이 진정 사랑이었음을 깨달았다고, 위양은 당의 가르침대로 충실하게 공작했을 뿐이라고 발뺌한다.

그녀들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우리는 복수심과 증오가 삶을 밀어붙이는 강력한 동력원이자 동기라는 것을 안다. 복수심과 증오심은 한 사람이 가진 천부적인 기질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어 가공할만한 힘으로 성장하기도 하고, 평생 그대로 묻히고 말 수도 있었던 잠재력이 복수심이나 증오심에 자극받아 봇물 터지듯 터지면서 무시무시한 의지력으로 그 사람의 삶을 장악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은 충실하게 사회가 지향하는 원칙을 지켰을 따름인데 본의 아니게 타인의 삶을 짓밟는 일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복잡한 감정 문제와 삶의 원칙과 인생의 목적은 결국 ‘행복’이라는 보편타당한 단어 하나로 귀결된다. 복수를 하든, 권력을 추구하든, 남자를 홀리든, 동료를 밀고하든 그 자신이 행복하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지금까지 행해진 그 모든 행위가 정당하든 정당하지 않든, 합법이든 위법이건, 도덕적이든 비도덕적이든 등등에 개의치 않고 자기합리화 속에 정당화된다. 그러나 이러란 자기합리화도 그 사람이 행복을 느낄 때야 가능성이 있고 타당성이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그래서 그녀들은 행복할까?’라고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녀들은 행복할까?

렇게나 기세등등했던 위미도 어딘가 불편한 모양인지, 아니면 하등 대답할 가치가 없는지 이 질문에는 학처럼 가녀린 목선을 드러내며 도도하게 고개를 외로 틀뿐이다. 위슈의 매혹적으로 빛나던 쌍꺼풀진 큰 눈의 초점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어딘가 위태롭다. 간망한 눈빛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위양의 의기소침한 표정은 마치 내가 내리는 대답에 따라 자신들의 행복이 결정되는 양 민망하기 그지없다. 그녀들의 가련하면서도 안절부절못한 태도는 나를 부담의 늪으로 미끄러트리는 것도 모자라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떨게 한다.

나는 그녀들의 행복을 운운하는 것을 떠나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가족의 급격한 몰락을 겪고 그로 말미암아 주변 사람들부터 천시당하고 괄시받는 한창 예민할 나이의 소녀가 앞으로 어떻게 삶을 헤쳐나가야 할까? 위슈처럼 한창 꽃 피울 나이에 집단 강간이라는 끔찍한 경험을 겪은 여자가 남은 삶을 과연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세월이 약이라고 그 어떤 트라우마라도 세월의 녹이 스며들면 완전치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녹에 가려지면서 조금씩 치유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 어느 정도라도 치유가 되는 데 필요한 세월은 얼마이며, 그 시기 동안 받는 고통은 누가 어떻게 보상해줄까?

민주적 법치가 정비된 국가라 할지라도 범죄를 당한 피해자에게 국가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이른 시일 안에 범인을 잡아 감옥에 가두는 것 외엔 이렇다 할 보상을 해줄 수 없듯, 결국 이 모든 것들은 한 사람이 평생 짊어져야 할 지극히 개인적인 짐으로 남는다. 그것은 마음속 깊이 새겨진 상처이고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가야 할 응어리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위슈처럼 집단 강간을 당하거나 위미나 위양처럼 마을 사람들에게 괄시당하고 업신여겨지는 그런 비극적인 일을 겪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치열한 경쟁 속에 휘말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크고 작은 충돌과 마찰을 겪게 되고, 그럼으로써 증오와 분노, 수치와 원한, 실패와 좌절이라는 격한 감정의 가시는 정신과 육체 속으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온다. 가시는 생각하고 움직일 때마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듯 상처를 들쑤시면서 우리를 고통의 열반 속으로 인도한다. 여기에 슬픔과 고통의 경중은 상대적이라는 점을 고려하고, 사람은 어떤 동물보다 감정 이입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세 자매의 일이 결코 그녀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참담한 현실에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그녀들이 행복하냐고 묻고 있다면, 할 말 못 할 말 다 쏟아낸 지금의 나로선 그녀들에게 직접 물어보라는 말 이외엔 더 토해낼 말이 없다.

인류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집단 광기로부터의 치유

지막으로 중국 인민을 정신적으로 강간했던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배경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으며, 또한 세 자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어떤 식으로 투영된 작품인지 묻는다면, 1970년 봄에 시작된 일타삼반(一打三反)과 ‘5 • 16’ 분자 색출 운동이라는 두 가지 운동이 진행됨에 따라 조반파의 핵심 분자들이 잇달아 숙청되고 탄압받으면서 1971년이면 사실상 문화대혁명의 혼돈, 혼란, 파괴가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가는 시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소설에서는 문화대혁명 초기의 과격했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비페이위(畢飛宇)의 『위미(玉米)』는 (특히 과격했던) 문화대혁명 초기의 혼란과 파괴를 몸소 체험한 작가들이 문화대혁명이 쓸고 지나간 잔해와 상처를 다룬 ‘상흔 문학’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그렇다고 문화대혁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작가들이 내놓은 새로운 중국을 대표하는 문학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치가 않다. 천지를 진동시켰던 문화대혁명 초기는 아슬아슬하게 비껴가고, 그 진동이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가라앉고 평온을 되찾으려 하는 19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옛 상처를 파헤쳐 고름을 짜내려는 ‘상흔 문학’에서 조금씩 벗어나려는 과도기적인 소설이라고 굳이 분류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사실상 문화대혁명은 그녀들의 성장이나 인격 형성 과정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는 것이 내 견해다. 그것보다는 초기 산업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도시에 대한 농촌 사람들의 막연한 선망, 경외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은 옌롄커(閣連科)의 『여름 해가 지다(夏日落)』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에서 어떻게든 가족의 호구를 도시로 입적시키고자 하는 군인들의 발악과도 같은 집착에서도 잘 나타난다. 『위미』에서도 농촌을 벗어나 도시에 거주하는 것 자체가 농촌 사람들이 볼 땐 반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며 부러움의 대상이다. 때론 위미처럼 뛰어난 외모와 젊다는 것 외엔 특별하게 내세울 것이 없는 농촌 여성들도 도시에 사는 간부 남편을 만나 단박에 신분 상승을 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신데렐라 콤플렉스’ 같은 심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복수심에서든 그보다는 조금 단순하고 보편적이라 할 수 있는 출세욕에서든, 어찌 되었든 성공을 꿈꾸고 야심을 불태우는 대담한 여성은 어느 시대를 가나 존재한다는 점에서 세 자매의 이야기는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현재의 중국에서도 성립될 수 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태어나 성장했지만, 혁명적 대의와 과업을 거창하게 운운하기보다는 그보다는 세속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출세와 복수, 애증 등 혁명 과업에서는 금기시되는 개인적 감정과 야욕에 더 긴밀하게 엮여 있는 이 소설은 문화대혁명이 이제는 창작의 중심에서 벗어나 변두리나 풍경 정도로 이완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중국이 인류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집단 광기가 일으킨 대혼란에서 어느덧 자가 치유되는 단계에 진입했음을 방증한다.

마치면서...

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시간이다. 지금까지 혼자 잘도 주절대고 떠들어댔지만, 결국 두서없는 지루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나의 형편없는 리뷰로 말미암아 비페이위의 『위미』도 지루하다고 지레짐작해서는 안 된다. 굴욕과 치욕을 겪은 세 자매의 혁명적 이상 같은 모호한 지향성을 지닌 복수심을 다뤘다는 점에서 특별히 우아하고, 특별히 아름다운 감동도, 그리고 특별한 통쾌함도 없지만, 재치가 깨알처럼 쏟아져 나오는 유쾌한 문장과 100m 달리기에는 못 미치지만 10,000m 달리기보다는 빠른, 즉 3,000m 달리기 정도에서 느낄 수 있는 속도감이 독자를 사로잡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어딘지 모르게 마무리가 미적지근하고 막연하지만, 그 모호함 속에 세 자매 인생의 격류가 거침없이 흐르고 있다는 점에서, 그 모호함은 독자가 추리하고 분석해야 할 그 무엇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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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5일 월요일

[책 리뷰] 정직하지만 교묘한 ‘심리 트릭’에 매혹되다 ~ 불연속 살인사건(사카구치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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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하지만 교묘한 ‘심리 트릭’에 매혹되다

Original Title: 不連続殺人事件 by 坂口 安吾
“ … 문에 끈을 달아 저절로 닫히게 한다거나 밀실살인을 가장하는 그런 잔재주는 그 자체로 결국 흔적을 남기고 마니까요 잔재주를 일체 배제한 점이 바로 범인의 어떤 한 심리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지요. 그는 자기의 속마음이 드러나는 걸 무엇보다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조심조심하고 있지요 그런 침착성과 침묵은 범인이 천재적인 살인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범인의 진짜 동기는 무엇일까요? 어떤 살인이 범인의 진짜 목적일까요? … ” - 교세이 (『불연속 살인사건(不連続殺人事件)』, p186)

오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던

1947년 9월호부터 다음 해 8월호까지 잡지에 연재된 『불연속 살인사건(不連続殺人事件)』은 사카구치 안고(坂口 安吾)의 첫 추리 소설이다. 소년 시절부터 반 다인(S.S. Van Dine)과 엘러리 퀸(Ellery Queen), 그리고 애거사 크리스티(Dame Agatha Christie) 등의 추리 소설을 즐겨 읽었던 사카구치는 성인이 되어 문인 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동료 문인들과 함께 추리 소설의 범인 맞추기 게임을 했는데, 그는 누구보다 게임에 열심히 임했음에도 범인을 맞춘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범인 맞추기 게임에서 매번 지기만 해서 오기가 발동했는지, 아무튼 그는 ‘자네들이 절대 알아맞히지 못할 추리 소설을 내가 꼭 쓸 테니까, 어디 두고 보게’라는 전설 같은 말을 남기고 훌쩍 사라졌다가 어느 날 약 350장의 원고용지 묶음을 가지고 잡지 편집부에 나타났고, 그렇게 탄생한 소설이 바로 『불연속 살인사건』이다. 또한, 이 소설이 잡지에 연재되기 시작했을 때 엘러리 퀸(Ellery Queen) 추리 소설만의 별미인 ‘독자에게 도전’을 본떠 범인 맞추기 현상금 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 범인 맞추기 대회에는 우리도 익히 그 명성을 아는 에도가와 란포(江戸川 乱歩) 등 쟁쟁한 문인들이 도전했는데, 뜻밖에도 1등은 도쿄 물리 학교의 한 학생이 차지했다고 전설처럼 전해진다.

탐정 교세이와 긴다이치

렸을 때부터 추리 소설을 즐겨 읽었음에도 동료와의 범인 맞추기 게임에서는 번번이 실력 발휘를 못 한 한이 맺혔던지 『불연속 살인사건』에서 활약하는 탐정 교세이(巨勢)는 사카구치처럼 문인일 뿐만 아니라 소설이 엉성하니까 범죄를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즉 소설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탐정의 자질이 있다는 어딘가 역설적인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이것은 마치 사카구치 자신은 범인 맞추기 게임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추리 소설은 잘 쓸 수 있다고 동료에게 해명하면서도, 한편으론 늘 범인 맞추기 게임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신 자신을 위로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식의 구차한 해명을 굳이 늘어놓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 소설은 ‘심리 트릭’을 기가 막히게 활용했다.

탐정 교세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짚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이 소설이 연재되기 바로 1년 전에 요코미조 세이시(横溝 正史)의 긴다이치 코스케(金田一 耕助) 시리즈 첫 소설인 혼징 살인사건(本陣殺人事件)이 나왔다는 점이다.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두 소설 모두 살인 잔치라도 벌이듯 대량 살인이 처참하게 벌어진다는 점과 얄궂게도 범인이 계획한 모든 살인이 다 끝나고 난 후에야 진상이 밝혀진다는 점(대부분의 추리 소설 이야기 구성이 이와 비슷하겠지만)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긴다이치와 교세이 역시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면모를 풍긴다는 점이다. 앞으로 나서서 적극적으로 활약하기보다는 좋게 말하면 겸손하게,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소심하게 경찰 수사 뒤에서 사태를 관망하는 한편, 어딘지 미덥지 못한 어수룩하고 능청 떠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죽을 사람이 다 죽고 난 후에야 마침 기다렸다는 듯 진상을 밝힌다. 아마도 추리 소설 마니아였던 사카구치로서는 『불연속 살인사건』을 준비하면서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것이 첫 추리 소설을 쓰는 부담감을 조금 덜어주는 의미에서 약간의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산장을 애욕의 산란장으로 전락시키는 문인들

시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있는 산장에서 무려 8번이나 일어나는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문인들이다. 이 소설 속에서 문인들은 서로 노골적으로 야유하고 조롱하고 경멸하고 비꼬고 업신여기고 놀리고 모독하고 험담하는 등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주 무대가 되는 산장을 애욕의 산란장으로 전락시키는 등 문명과 문화를 대변한다는 문인들이 홍등가에서조차 보고 듣기 어려운 파렴치한 짓거리를 서슴없이 행한다. 패전의 영향으로 치부하기엔 정도가 지나친 경향이 있는데 아마도 문인들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의식과 각자의 작품특성이나 성격을 두고 일어나는 논쟁에서 비롯한 날카로운 대립의식 때문에 문인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픈 자포자기적인 심정을 반영한 것은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별생각 없이 보면 마구 내뱉는 말처럼 보이는 거칠게 오가는 설전 속에 의미심장한 가시를 심어두는 문인들의 그럴듯한 말재주를 음미하는 재미도 가히 쏠쏠하고, 그런 설전 속에서 뒤틀리고 왜곡된 인간의 심성을 은연중에 부각시키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심리 트릭’에 푹 빠지다

지막으로 『불연속 살인사건』은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범인 맞추기 현상금 대회를 시작했을 정도로 독자 앞에 정직하고 공정한 소설이다. 고로 눈치 빠른 독자는 네 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쯤 심증만으로 진범을 추려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만만하게 볼 트릭은 아니다. 왜냐하면, 불연속적인 일곱 번의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알리바이 조사를 통한 공통된 용의자도, 살해된 사람들의 신상 관계를 통한 공통된 동기를 가진 용의자도 추려내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독자는 이 일곱 사건이 서로 다른 범인에 의해 계획된 개별적인 사건인지, 아니면 같은 범인에 의해 계획된 연쇄 살인인지 혼란에 빠진다. 아니면 일곱 사건 중 그중 몇 가지는 범인의 진짜 목적과 들어맞는 살인이고 나머지 살인은 잔악하게도 그 목적을 숨기기 위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설정도 떠올려볼 수 있다. 힌트를 주자면 이 소설이 준비한 트릭은 밀실이나 알리바이 같은 물리적이고 시간적인 트릭이 아니라 매우 교묘한 심리적인 트릭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자연스러워 보여도 막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언행이 바로 정답이다. 그 매혹적인 ‘심리 트릭’에 푹 빠져버리지 못한 당신은 더는 추리 소설을 읽을 자격이 없다는 말을 끝으로 지루한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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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2일 금요일

여전히 불펌을 방조, 혹은 조장하는 네이버

불펌을 방조? 아니 조장?

확고부동하게 팔이 안으로 굽는 네이버 검색의 편파성은 비단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원본 글과 복사 글도 구분 못 하는 백치 같은 네이버 검색 엔진의 인공지능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네이버 테두리 안에 있는 (ex, 네이버 블로그, 네이버 카페) 글들에 관해서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유사 문서를 필터링하는 것을 보면, (‘뽐뿌’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와 타사 블로그 등 네이버 서비스 범위 밖의) 원본 글을 네이버 블로그로 그대로 복사하는 것을 못 막는 것이 아니라 방조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네이버의 검색 엔진 로봇 나이가 한두 살도 아닌데, 원본 글과 복사 글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 문제는 검색 엔진의 미흡함이 아니라 부모가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불펌 글이 보란 듯이 유사 문서 필터링을 통과하는 것도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기가 막히게도 불펌 글이 원본 글을 밀어내고 상위에 노출된다. 불펌 글도 버젓이 상위에 노출되니 굳이 머리 굴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그냥 눈알이나 잘 굴려 쓸만한 글을 찾아 불펌하면서도 블로그를 키울 수 있다. 이것이 불펌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증거 스크린샷을 미처 못 찍어 놓은 것이 천추의 한이 되지만) 어쩔 땐 원본이 쥐도 새도 모르게 그냥 사라지기도 한다. 이름하여 네이버 블로거 사용자를 시도 때도 없이 사시나무 떨듯 공포에 떨게 하는 ‘누락’! 자신의 글이 불펌 글에 밀리는 것도 억울한데, 불펌 글에 밀려 누락이 되면 원본 글 주인장은 그야말로 억장을 무너진다. 원본 글이 불펌 글에 밟혀 누락되 현상은 내가 한번 경험한 이후로 다시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시적인 오류였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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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펌 글이 누락되기는커녕 오히려 원본 글보다 검색 순위가 높다!>

결국 푸념이올시다

정확성만큼이나 공정성을 지켜야 할 검색 엔진이 자사 서비스에 올라온 글들을, 그것도 불펌 글을 의도적으로 상위에 노출시키는 비열한 행위에 대해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0여 년 전에도 오늘 내가 쓰는 글과 맥락이 똑같은 글들이 참 많이도 올라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럼에도 변하지 않고 도도하게 버티고 있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겠다. 여기에 언론까지 장악하려 드니 말 다 했다. 이런 네이버가 검색 엔진 하나로 전 세계 인터넷을 장악한 구글보다 한 살 어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비도덕적이고 제대로 된 혁신 하나 보여주지 못하는 기업이 떡 하니 물길을 막고 있으니, 숨통이 트일 리가 없다. 누군가의 말대로 네이버가 망해야 한국 IT가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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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5개 글을 통닭 배달하듯 열심히 실어나른 블로거도 있다!>

아무튼, 악담은 그만하고 상황이 이렇게 저질스러우므로, 네이버 블로그를 사용하지 않는 기타 블로그 사용자는 네이버의 불펌 때문에 당황하거나 짜증을 겪어본 적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내 글을 불펌한 글을 처음 발견했을 땐 뭔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지만, 이것도 익숙해지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나 같은 경우는 한 블로거가 한두 개가 아닌 무려 15개의 글을 불펌한 적도 발견했을 정도다. 이 블로거는 내 글만 아니라 ‘뽐뿌’ 등 여기저기에서 열심히 실어날랐다. 이쯤 되면 선수가 따로 없다. 이 지경까지 오면 신고하는 것도 정말 고역이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두자니 불펌한 블로거가 괘씸해서 뽀드득뽀드득 이가 갈린다. 더욱 가관인 것은 불펌을 해도, 그리고 여러 번 신고 당해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네이버에서 불펌은 걸리면 그만이고, 안 걸리면 좋은 것이다!

간만에 불펌 글을 발견해서 홧김에, 그리고 개선될 기미가 개미 새끼만큼도 보이지 않는 네이버의 뻔뻔한 작태가 하도 답답해서 몇 자 적어보았다. 이런 식으로 타사 블로거를 질식시켜 네이버 블로그로 끌어들이려는 수작일지도 모르겠으나, 애초에 내가 네이버 블로그에 구글로 옮긴 이유는 검색 노출에 유리하고 불리하고 떠나 내가 죽은 후에도 어느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내 글들을 보관해 줄지에 대한 숙고의 결과이기 때문에 난 주우욱~ 구글에 남으련다. 솔직히 구글 외엔 딱히 대안도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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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8일 월요일

비로그인 다운로드를 지원하는 스피드판 유료 버전 ~ SpeedPanX(한글) + 안드로이드 앱

출처: http://www.speedpan.com

비로그인 다운로드를 지원하는 SpeedPanX

그동안 ‘맞춤 버전(定制版)’이라고 해서 기부한 사용자를 위한 스피드판(SpeedPan)이 따로 존재했었는데, 현재 스피드판 홈페이지에는 ‘스피드판 엑스(SpeedPanx)’라는 유료 버전이 추가되었다. 유료 버전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바로 로그인하지 않고 공유 링크를 바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는 것 이다. 오늘 「바이두 로그인 없이 다운로드 하기? ~ proxyee-down 그리고 기타 등등...」에 새로 추가한 ‘P-NL 下载客户端’ 역시 비로그인 다운로드를 지원한다. 최근 들어 비로그인 다운로드를 매우 엄격하게 감시하고 발견 즉시 차단했던 바이두가 웬일일까? 바이두가 태만할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기회가 생기고 더불어 즐거우니 다행한 일이다.

아무튼, 스피드판 엑스 버전은 결제한 만큼 가속화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흐름(트래픽)/시간’이 주어지고, 앞서 언급한 대로 로그인 없이 바이두 공유 자료를 다운로드할 수 있다. 딱히 번역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흐름’으로 번역했는데, 아마도 다운로드할 수 있는 ‘트래픽’을 말하는 것 같다. ‘거리/시간’당 요금이 올라가는 택시 미터처럼 ‘트래픽/시간’을 충전하여 소비하는 개념이다. 처음 실행하면 감칠맛 나도록 1분 동안 체험할 기회가 주어지고, 야속한 1분이 지나가면 인정사정없이 다운로드는 중단되며 가속팩을 충전하라는 알림창이 마치 선전 포고하듯 힘차게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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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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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분'은 속절없이 지나가고>

유료 버전이라 대충 한글화한 점 양해를...

나로서는 사용해 볼 일이 없는 이상 어떤 방식으로 가속이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개인 서버를 통한 유료 계정 접속이 아닌가 싶다. 즉, 사용자가 다운로드를 요청하면 바이두 유료 계정으로 접속된 스피드판 엑스(SpeedPanx) 서버가 대신 받아준 다음 그것을 사용자에게 건네주는 셈이다. 예전에도 이런 방식으로 다운로드 속도를 올려주는 바이두 써드파티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얼마를 못 버티고 서비스를 종료했다. 관건은 스피드판 엑스(SpeedPanx) 서버가 그 많은 트래픽과 부하를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런 고로 서버 유지비를 생각하면 유료화된 일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내 상상이고 이와는 전혀 다른 가속 기술일 수도 있다.

유료 버전인 만큼 사용자가 그렇게 많을 것 같지는 않아 결제와 관련해서 눈에 띄는 몇몇 문장만 한글화했다. 사실 스피드판 한글화 역시 개판 5분 전 이긴 하지만, 기존의 스피드판 사용자라면 결제 관련 기능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기능은 엇비슷해 사용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거의 같은 프로그램을 두 개씩이나 한글화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사용할 일이 없는 유료 프로그램이라는 점이 피떡이 된 시신을 앞에 두고 떡볶이는 먹는 것처럼 한글화 의욕을 부쩍 감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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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가속팩' 구매를 재촉하는 알림창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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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이 지나면 시진핑이 와도 어쩔 수 없다, 오직 지갑을 여는 길뿐!>

오늘도 열심히 업데이트 중인 스피드판 엑스

당연히 결제와 관련해서는 중국 사이트로 연결되는데, 결제가 완료되면 평가판 프로그램을 정식판으로 업그레이드할 때 사용하는 ‘활성화키’ 같은 것을 발급받고, 그것을 스피드판 엑스(SpeedPanx)에 등록하면 된다. 고로 불굴의 개척 정신으로 결제를 완료한 사람이라면, 만약을 위해 ‘활성화키’는 신줏단지 모시듯 할 필요까지는 없을지라도 메일함 같은 곳에 잘 적어두는 것이 좋을 듯싶다.

지금 이 글을 올리는 와중에 또 업데이트되었다. 어제도 서너 번 업데이트된 것 같은데, 완전 짜증에 기분 확 잡쳐버린다. 그만큼 안정화가 아직 안 되었다는 뜻이지만, 한편으론 개발자가 열심히 매달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관계로 만약 한글판 버전이 낮다면 업데이트 버전을 사용할 것을 추천한다. 또한, 낮은 버전 접속을 막아놓은 것으로 보인다.

<스피드판 엑스 안드로이드 버전>
<가속 패키지 구매하신 분 손!>

스피드판 엑스 안드로이드 버전 출시

2019/04/29: 얼마 전에 판다운로드 제작자가 안드로이드에서 로그인하지 않고 바이두 공유 링크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앱 「바이두 비로그인 다운로드가 가능한 PanDownload for Android」을 배포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스피드판 엑스(SpeedPan X)의 안드로이드 버전이 등장했다. 이 역시 1분 동안 속도 체험이 가능하며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1분을 소진하면 나머지는 가속 패키지를 구매해야 내려받을 수 있다. 뭔가가 꾸준히 나오는 것을 보면 가속 패키지 판매 수익이 꽤 짭짤한가 보다.

▲ 스피드판 엑스(SpeedPanX) 한글판 다운로드

(업데이트: 2019년 6월 24일)

SpeedPanX_ko_v1.7.5.95 압축암호: singingdalong

▲ 스피드판 앱(SpeedPan) 한글판 다운로드

(업데이트: 2019년 6월 20일)

Unsigned_SpeedPan_v1.25.82_ko.7z 압축암호: singingdalong

루팅 및 럭키 패처 작업이 필요한 언사인(Unsigned) 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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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드 게임, 전자책, 유료 앱 등 이 모든 것을 한 방에 ~ ACMarket

출처: https://acmarket.net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루팅해서 사용하는 사람치고 ‘블랙마켓(blackmarket)’ 앱을 설치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둠의 경로로나 구할 수 있었던 유로 앱을 배포하는, 말 그대로 ‘암시장’ 같은 앱이기에 주머니가 가벼운 사용자에겐 노다지 같은 녀석이다. 초기에는 완전 무료였지만, 현재는 그럭저럭 봐줄 만한 수준의 광고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광고가 아니라, 여기서 배포하는 몇몇 앱 중에 악성 코드나 바이러스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태블릿 초기화 후 여전히 설치하는 앱 중 하나지만, 그리고 특별히 피해를 입은 경우도 없지만, 예전처럼 손이 많이 가지는 않는다.

이런 와중에 블랙마켓의 대를 잇고도 남을 기특한 앱을 발견했다. 이름하여 ‘ACMarket’. 제자가 스승을 능가하듯 ACMarket은 유료 앱뿐만이 아니라 모드(Mod) 게임과 도서(전자책), 유료 게임, 여기에 크랙된 앱까지 갖춰줘 있으니 놀라 자빠질 지경이다. 구글 플레이처럼 계정이 필요 없으니 따로 로그인할 필요도 없다. 또한, 루팅도 필요 없다. 현재로서는 이 모두를 (약간의 광고와 함께) 로그인 없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내가 아는 한에서 VIP 계정은 특별한 기능이 별도로 추가된 것은 아니고 광고만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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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드 게임 카테고리>

다만, 무척이나 아쉽게도 전자책은 오로지 영어판이라 나 같은 까막눈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훗날 여러 언어를 지원해 줄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되면 여러모로 굉장한 난리가 날 듯싶다. 모드 게임 역시 약간의 아쉬움이 있는데, 안드로이드 모드 게임을 전문적으로 배포하는 사이트만큼 모드된 온라인 게임(MMORPG)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자료들이 추가된다면 세상 모든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필수 앱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사실 현재 이용할 수 있는 자료와 기능만으로도 필수 앱으로 자리 잡기에 충분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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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모드인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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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과 유료 앱도 배포한다>

이제 ACMarket 하나만 있으면 원하는 앱을 찾아 어둠의 경로를 헤매는 고생과 위험을 더는 감내할 필요가 없다. 물론 ACMarket이 블랙마켓처럼 악성 코드나 바이러스가 포함된 앱을 배포할 가능성을 걱정하거나 의심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용자가 있겠지만, ACMarket에서는 배포하는 모드 게임을 안전한지 아닌지를 테스트하는 과정을 거쳐 배포한다고 한다. 다른 앱까지도 이런 엄격한 테스트 과정을 거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차피 어둠의 경로에서 받는 모든 것들이 갖가지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ACMarket을 사용하지 안 할지에 대한 최종 판단은 역시 사용자의 몫으로 남는다. 내 경험상 이런 부류의 앱이 문제를 일으킨 적은 (운이 좋아서인지) 아직 한 번도 없었다는 점만 밝혀둔다. 정 미덥지 못하다면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그럼에도 정 사용해야겠다면, 백신과 같이 사용하거나 녹스앱플레이어 같은 안드로이드 에뮬레이터에서 미리 테스트해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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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7일 일요일

[영화 리뷰] 이보게, 좀비 한 명 키워보게나 ~ 기묘한 가족(THE ODD FAMILY,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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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좀비 한 명 키워보게나

준걸: 아 뭐 하는 거여 시방!

남주: 아 갑자기 달려오니께

준걸: 아니 갑, 뭐 맛 들였어?

남주: 아 놀래서~

준걸: 아니 괜찮아유?

「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 2004)」 같은 병맛과 「웜 바디스(Warm Bodies, 2013)」의 좀비 로맨스가 짬뽕되어 그 무엇이 될 듯도 했을 법한, 그리고 불순물을 거르지 않은 거친 상상력이 뻗어나는 것을 기꺼이 즐겁게 영광스럽게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지혜와 불굴의 용기를 가진 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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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짜장면을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좀비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잃어버린 강아지를 다시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운 영화다.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들은 파괴적이고 잔인하고 되돌릴 수도 없는 무시무시한 존재로서 좀비 바이러스를 묘사했는데, 「기묘한 가족」의 좀비 바이러스는 반짝이긴 하지만, 사람에게 젊음을 되찾아주는 묘약이다. 그 무엇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좀비의 왕성한 활동성을 회춘의 묘약으로 진화시켰으니 기가 막힌 반전이다. 비록 일시적이긴 하지만, 역대 좀비 바이러스 중에서 가장 ‘행복한 잠복기’와 가장 '유쾌한 부작용'을 가진 녀석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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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A. 로메로 감독이 일찍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2 - 시체들의 새벽(George A. Romero's Dawn Of The Dead, 1978)」에서 무의식, 무뇌충 상태에서도 쇼핑몰로 몰려드는 좀비를 통해 소비지상주의에 빠져 허덕이는 현대인을 날카롭게 풍자했다면, 「기묘한 가족」의 ‘기묘한 가족’들은 돈만 벌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대인의 돈에 대한 무서운 집념을 보여준다. 돈에 환장한 ‘기묘한 가족’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반쯤음 살아 있다고 봐도 무방한 '쫑비'를 회춘 기계로 혹사시키며 일확천금을 꿈꿀 때, 그것은 곧 벌어지게 될 파국을 숨기려는 달콤한 악마의 유혹이자 최후의 만찬이나 다름없다. 결국, 예정된 파멸은 미련 없이 세상을 덮쳐오고 마는데, 이런 아수라장이야말로 좀비 영화에서만 마음 놓고 흐뭇하게 감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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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맛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기가 막힌 반전은 채식주의자 좀비의 등장이다. 먹성 빼면 진짜 시체(?)나 다름없는 좀비가 가장 좋아하는 대표적인 먹거리는 살아 있는, 그래서 따끈따끈한 피를 질퍽하게 머금은 싱싱한 고기다. 그중에서도 좀비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그 엄청난 사람의 식성으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의 쭈글쭈글한 뇌다. 남자가 미녀의 호리호리한 몸매에 넋을 잃듯, 좀비는 사람 뇌의 뇌쇄적인 주름에 넋을 잃는다. 그럼에도 어딘지 어설픈 좀비 ‘쫑비’는 오로지 양배추다. 여기에 마요네즈도 아닌 케첩을 끼얹으면 금상첨화다. ‘쫑비’에게 이보다 더한 진수성찬은 없다. ‘쫑비’가 토끼가 당근을 먹듯 양손에 잡힌 양배추를 정신없이 갉아 먹는 모습은 영락없이 사랑스러운 애완동물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디 한번 좀비 한 마리, 하니 좀비 한 명 키워볼 텐가?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기묘한 가족(2018)」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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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무엇이 파괴와 절멸의 유산을 받들었나? ~ 히틀러 2(이언 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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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파괴와 절멸의 유산을 받들었나?

Original Title: Hitler: 1936-1945 Nemesis by Ian Kershaw
제대로 못 배운 술집 선동가에 고집불통의 인종주의자였고 자기도취와 과대망상에 젖었으며 민족의 구세주를 자처했던 사람이 철학자와 시인의 나라로 알려졌고 발달된 경제를 가진 현대 문명국에서 휘두를 수 있었던 극단적 형태의 개인 통치는 그 운명의 12년 동안 끔찍한 사건들이 펼쳐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히틀러 2(Hitler: 1936-1945 Nemesis)』, p1,023)

나치 체제는 히틀러의 교묘한 전략? 아니면 우연?

틀러는 교활한 악마다. 그는 그토록 많은 학살에 책임이 있으면서도 결코 소름 끼치도록 하얀 자기 손에는 피 한 방울 안 묻혔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위대한 지도자’로 받드는 수하들에게 학살 명령을 직접 내릴 필요도 없었다. 그는 신처럼 하늘 높은 곳에 앉아 수하들이 자신이 추구하는 신념을 종교처럼 따르도록 단단히 혼을 빼놨으며, 히틀러를 따르는 수하들은 주인 앞에서 칭찬받고 싶어 하는 강아지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히틀러가 좋아할 만한 행동을 스스로 찾아낸 다음 충실하게 실행으로 옮겼다. 한때 화가 지망생이었던 히틀러가 스케치하듯 대충 큰 그림을 그려놓으면, 그를 추종하는 수하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어떻게든 나머지 공간을 채워 넣는, 그런 형태였다. 그는 직접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었고, 자신의 손에 더러운 것을 묻힐 필요는 더더욱 없었을뿐더러, 그래서 어딘가 일이 잘못되어도 독일 국민의 경외하는 ‘위대한 지도자’라는 강철처럼 견고하고 새 자동차의 후드처럼 매끄러운 명성에 흠집이 날 일도 없었다. 권력의 최고 정점에 선 히틀러의 후광이 비치는 범위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려고 수하들은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들은 히틀러의 총애가 보장하는 달콤한 권력의 한 조각을 받아내려고 히틀러가 좋아할 만한 일들을 알아서 계획하고 추진했다.

느슨하면서도 꽤 견고하게 지속했던 나치 체제와 히틀러 주위를 배회하는 권력 게임 시스템이 확답보다는 두루뭉술하게 넌지시 언급하기를 즐기고, 그런 식으로 결정을 회피하려 드는 히틀러 개인의 우유부단하고 폐쇄적인 성격적 특성에서 기인한 우연일까? 아니면 히틀러가 의도한 교묘한 전략이었을까? 만약 우연이었다면 1차 세계 대전 직후 정치계에 우연히 발을 들여놓으며 자신의 숨은 재능을 발견했던 것처럼, 두 번 시도된 폭탄 암살에서 크게 다치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남았던 것처럼 히틀러는 타고난 행운아다. 다만, 그것은 독일을 몰락으로 이끌고 전 세계를 참혹한 전쟁의 늪으로 물귀신처럼 잡아 끌어들인 악마의 행운이다. 반면에 그것이 히틀러의 의도적인 계획으로 나타난 전략적 결과였다면 그는 메피스토펠레스도 울고 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천재이며 악마 중의 악마다.

히틀러를 지지하는 그들은 ‘좀비’가 아니었다

마 진실은 그 중간쯤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히틀러는 악마라는,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구분 짓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일은 없다. 그것은 전부 아니면 전무, 아리아인과 유대인이라는 선악 세력의 결전, 승리가 아니면 완전한 파멸이라는, 즉 모든 문제를 ‘흑백’의 단순 명쾌한 논리로 환원해 사람들의 정신을 단숨에 빨아들이는 재주가 탁월했던 히틀러의 전철을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주창한 흑백 논리에 스며든 못 말리는 자기 파괴 경향이 어떠한 결말을 가져왔는지 명백하게 드러난 시점에서 또다시 흑백 논리의 유혹에 빠져든다는 것만큼 어리석고 바보 같은 일은 없다. 제아무리 그것이 단순하고 명쾌해서 많은 사람을 아주 쉽게 현혹하고 설득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극과 극을 가르는 흑백 논리가 가져올 자기 파괴적이고 공허한 결말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그런 식으로 히틀러를 꾸짖고 비난한다고 해서,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그저 그런 보통 사람들이었던 그 수많았던 독일 국민이, 문명의 혜택과 교육을 받으며 교양을 쌓을 수 있었던 선진 시민이, 특별히 악하게 태어난 것도 아니고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러듯 자기 한 몸과 가족이 무탈하게 살아가는 것을 낙으로 알고 삼았던 평범한 사람들이, 히틀러의 뛰어난 언변술에 현혹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좀비처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완전히 얼이 빠진 상태도 아니었던 사람들이, 그런 평범하고 교육도 받을 만큼 받은 사람들이 좌파나 반체제 세력, 유대인 등 일부 사람들에 한해 막강한 파괴력을 발휘한 나치의 무자비한 탄압에 굴복한 것도 아니면서, 히틀러를 마치 하느님처럼 받들면서 전 세계의 힘센 나라들을 모두 적으로 삼고 싸우는 가망 없는 전쟁에서 왜 필사적으로 싸우려 했는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추천할 수밖에 없는 20세기 인류사의 역작

틀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라 불리는 이언 커쇼(Ian Kershaw)의 히틀러 전기 『히틀러 2(Hitler: 1936-1945 Nemesis)』는 이해관계가 나치와 직접적으로 얽히고설킨 대기업, 자본가, 정치인 등 기존의 권력 계층뿐만 아니라 고위 장성, 고급 관리, 변호사, 기업가 등의 상층 부르주아와 상인, 숙련공, 소농, 하위 공무원, 노동자 같은 중하류층에 이르는 다양한 계층과 남녀노소를 불문하는 다양한 연령층의 완전무결한 지지가 어떻게 단 한 사람의 의지와 결합하고, 더 나아가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가지고 주사위를 굴리려고 하는 한 사람의 손아귀에 어떻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고, 그럼으로써 지도자 신화가 탄생하고 그 신화가 독일과 전 세계를 지옥의 구렁텅이로 끌고 들어가는 모든 과정을 아우르며 통찰하는 전무후무한 책이다.

히틀러를 알고 싶고, 2차 세계 대전을 알고 싶고, 한 걸음 더 나아가 20세기 인류를 알고 싶으면 절대 빠트릴 수 없는, 히틀러가 인류에 미친 어마어마한 영향력만큼이나 두 권 합쳐 2천 페이지가 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이다. 한 권의 무게가 무려 2kg이 넘으니 급할 땐 아령으로 써도 부족함이 없는 무게 때문에 괴력의 보유자가 아닌 이상 두 손으로 받쳐 읽기는 불가능하고, 웬만한 독서대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께도 무지막지하다. 2천 페이지 넘는 책을 일일이 스캔해서 전자책으로 만드는 위대한 과업을 고단하게 달성한 나 자신이 뿌듯하게 느껴질 정도다. 괴물 같은 책의 부피 때문에 섣불리 선택하기는 어려운 책이지만, 그럼에도 감히 추천할 수밖에 없는 20세기 인류사의 역작이다.

그도 우리처럼 꿈을 꾸는 인간이었다는 섬뜩한 사실

무튼, 나도 괴짜인 것이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패색이 짙어져 가는 상황에서 하루하루가 다르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망가져 가는, 그리고 린츠 재건축 모형을 보며 좋아하는 히틀러를 보면서 일말의 난감한 연민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만큼 히틀러의 일생을 다룬 커쇼의 문학적 필치가 뛰어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히틀러는 생전에 고향 도시 린츠를 재건축하고 싶어 했다. 린츠를 재건축하는 공상은 종일 우울한 소식만 날아들며 히틀러의 골치를 지끈지끈 썩일 때, 그의 유일한 현실 도피처였다. 전쟁이 끝나면 고향 린츠로 돌아가 살려고 했던 히틀러는 암묵적으로 전쟁의 패배가 확실시되던 1945년 2월이 되어서야 린츠 재건축 모형을 보게 된다. 그리고는 어린아이처럼 마냥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결코, 지어지지 못하리라는 것을 스스로 뻔히 아는 모형을 내려다보면서 히틀러는 몽상에 잠겼고 친구 쿠비체크와 린츠를 다시 짓는 꿈을 꾸던 젊은 시절의 환상으로 돌아갔다. 벌써 아득한 옛날이었다. 그러고는 가혹한 현실로 돌아왔다. (『히틀러 2(Hitler: 1936-1945 Nemesis)』, p948)

이때 히틀터의 외모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전보다 더 수척했고 전보다 더 늙었다. 허리는 구부정했으며 걸음도 제대로 못 걸었다. 왼손과 왼팔은 수전증 환자처럼 수습 못 할 정도로 떨었다. 얼굴에서 핏기는 사라졌고 눈은 충혈되었으며 눈가는 축 처졌다. 입가에서는 치매 걸린 노인네처럼 때때로 침이 흘러내렸다. 홀로코스트를 일으킨 장본이었던 그도 때론 (자기도취적이지만) 꿈을 꾸는 사람이었고, (대부분 자업자득이지만)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쇠약해지고 늙어가는 한 인간일 뿐이었다. 이런 히틀러의 마지막 모습이 혹시라도 관객의 동정을 살까봐, 히틀러에게 연민을 불러일으켜 그에 대한 역사적 판결을 완화시키려는 수작 아니냐는 비난의 화근이 될까 봐, 영화에서는 히틀러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기 어렵다. 그는 죽는 그 순간까지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으로 고민한 흔적이 역력히 없는 뻔뻔하고 거만한 얼굴로 등을 꼿꼿이 세운 채 벙커를 활보하고 다닌 의지의 사나이만은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짙은 패색이 안개처럼 전장에 무겁게 드리우고 패배가 눈앞으로 바짝 다가와도 승리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 않았던 자기기만적이고 자기도취적인 낙관의 화신 히틀러가 간혹 최측근들 앞에서 우울하고 절망에 빠진 침울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면 믿어지는가? 하지만, 그런 모습은 찰나였을 뿐이고, 그는 곧 전쟁의 승리를 확신하는 의지와 투쟁을 불사르는 무대 위의 히틀러로 다시 돌아왔다. 어떤 모습이 진짜 히틀러의 모습이고 진짜 히틀러의 심정인지 우리는 영영 알 수 없지만, 말년에 그가 보여준 순진하고 어리석을 정도로 승리를 낙관하고 그러한 심지를 끝까지 지키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려는, 그리고 기필코 한 줌의 권력조차 놓지 않으려는 의지는 정말이지 애처로울 정도로 눈물겹다. 그런 면에서 그는 정말 ‘의지의 화신’이었다. 한편으론, 부랑아, 낙오자 등 별 볼 일 없는 존재에서 세계를 처참하게 짓밟는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는 점은 가히 인상적이다.

마치면서...

런 값싼 동정은 그저 한낱 스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저질 감상일 뿐, 히틀러가 잔악무도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없다. 그는 독일이 전쟁에서 지고, 그로 말미암아 독일 민족이 절멸하는 것조차 사회다윈주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철저하게 의도된 연기였든, 아니면 타고난 천성이었든 정치적 무대에서 그는 따뜻한 인간적 감정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가 살인과 학살을 즐기는 사이코패스였든 아니든, 그는 유대인의 학살을 당연시했다. 그런데 이런 히틀러를 보면서 우리의 무관심과 침묵이 일으킨 ‘지속적인 테러(ENDURING TERRORS)’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을 떠올린다면 황당무계한 비약(飛躍)이 될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기아로, 설사병으로, 홍역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내가 과연 히틀러를 악마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무고한 인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의 인생을 황폐화시킨 히틀러가 악마라면, 5초마다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관심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히틀러로 시작해서 이런 말로 끝을 맺다니, 역시 하고 싶은 대로 막 나가는 리뷰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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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4일 목요일

바이두 공유 금지 파일 공유하는 몇 가지 방법

비밀번호를 걸어도, 친구에게만 살짝 공유해도 바이두 클라우드가 마음먹고 공유 금지한 파일은 천 번 만 번을 시도해도 ‘文件中含有违规内容(자료에 규칙을 위반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라는 경고 문구와 함께 자동으로 공유 취소된다. 일반 공유는 '该文件禁止分享(이 파일은 공유가 금지되어 있습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공유를 가로막는다. 바이두 도움말을 보면,

‘如果分享涉及到遭版权方投诉内容、盗版侵权、色情低俗、反动涉恐、病毒广告、私服外挂等违规资源,将会被系统自动屏蔽。(저작권이 있는 콘텐츠, 불법 복제물, 포르노그래피, 테러 관련, 바이러스 광고, 개인 정보 해킹 및 기타 불법적인 리소스가 포함된 공유는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차단됩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바이두 서비스 계약을 읽어 보면 된다.

구글링을 해보니 2013년에 작성된 글에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연상시키는 ‘1989’라는 숫자가 파일 이름에 있어도 공유가 취소된다고 했는데, 시험 삼아 ‘1989’라는 숫자가 들어간 MP3 파일을 공유해봤는데, (아직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경험상 공유 취소가 바로 안 되고 좀 시간이 지난 다음에 적용되고, 그렇게 취소된 파일을 재공유하면 이번에는 그 즉시 공유 취소가 되는 것으로 보아 처음으로 공유되는 파일은 사람이? 혹은 시스템이 일일이 검사한 다음 결정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공유 취소된 파일을 이름만 바꿔서 재공유하면 괜찮을 때도 있다.

Several ways to share files that are forbidden to share in Baidu
<규칙 위반 자료는 친구에게만 몰래 공유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
Several ways to share files that are forbidden to share in Baidu
<당연히 비밀번호를 사용한 공유도 금지>

MD5 값 변경으로 공유 금지 피해하기

아무튼, 공유 금지 단어나 자료에 대해 굳이 여려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은 감이 잡힐 것이다. 문제는 바이두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가는 방법인데, 가장 간단한 방법이자 가장 먼저 시도해볼 방법은 ‘파일 이름 변경’이다. 단지 파일 제목에 공유 금지 단어가 포함된 경우라면 이 방법으로 공유 취소를 쉽게 피해갈 수 있다. 하지만, 자료 자체가 공유 금지 파일이라면 MD5 같은 파일 해시값으로 필터링 되기 때문에 수만 가지 단어를 사용해 파일 이름을 변경해봤자 헛수고다. 이때는 파일의 해시값을 변경해야 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다들 알다시피 파일을 ZIP, RAR, 7z 등으로 압축하는 것이다. 물론 압축에 비밀번호까지 걸면 금상첨화지만 훗날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개고생하는 일도 생길 수 있기에 압축 파일에 비밀번호를 심는 방법은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방법이 바로 파일의 MD5 해시값 자체를 변경하는 것이다.

파일의 MD5 값 변경은 ‘Hash Manager’라는 프로그램으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 공유 취소된 파일을 이 방법으로 MD5 값을 변경하고 나니 스크린샷처럼 공유가 허용되었다.

요즘의 공유는 영구적이기보다는 일시적인 경우가 많아, MD5 값만 변경해서 공유해도 크게 불편할 것은 없다. 설령 바이두 감시망에 다시 걸려 공유가 취소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받아갈 사람을 다 받아갔을 테니 말이다. 압축해서 공유하면 감시망에 다시 걸릴 확률은 줄어들지도 모르지만 압축을 풀어야 하는 번거로움 있고 매우 드물지만 압축 파일이 깨지는 일도 있다. 중요한 자료라면 WinRAR로 압축하면서 복구 기록을 5% 이상 넣어주는 것도 괜찮다. 공유할 자료가 크고 작은 여러 파일이 모인 자료라면 압축해서 공유하는 것이 관리하기도 좋고 받기도 좋다. 하지만, 달랑 수 기가의 동영상 파일 하나라면 그냥 MD5 값 변경으로 공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또한, MD5 값 변경과 파일 압축을 같이 사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공 확률은 매우 낮지만, 성공한다면 가장 안전한 방법인) 바이두 [오프라인 다운로드]에서 사용할 수 있는 torrent 파일(혹은 마그넷 링크)로 공유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오프라인 다운로드]의 더듬이가 예전처럼 민감하지 않으므로 (욕 바가지로 먹기 싫다면) 공유하기 전에 반드시 다운로드 완료가 되나 안 되나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방법은 「토렌트 파일로 바이두 클라우드 4G 이상 업로드」 글을 참고하면 될 듯싶다.

Several ways to share files that are forbidden to share in Baidu
<MD5 값만 변경해도 공유 금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선택은 사용자의 몫

▲ 바이두 공유 금지 자료를 공유하는 세 가지 방법

1. 파일 이름 변경.

2. 1번 실패 시, 공유할 파일을 압축.

3. Hash Manager로 MD5 값 변경.

4. [오프라인 다운로드]에서 사용할 수 있는 torrent 파일로 공유.

5. 이외에도 더 있을 수 있다!

만약 바이두 클라우드가 공유된 파일의 규칙 위반을 검사하는 시스템이 유튜브처럼 컴퓨터가 파일의 영상/음원을 인식할 줄 아는 지능적인 알고리즘이라면 파일 해시값 변경이라는 꼼수로 감시망을 피해 공유된 규칙 위반 자료가 적발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그것이 오직 저작권자의 신고로만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라면 친구에게만 공유한 파일이 저작권자의 컴퓨터로까지 흘러 들어가 바이두에 신고되고 공유가 취소되기까지의 여정은 단세포 생물이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기까지 걸린 여정만큼이나 길 것이다. 내가 볼 땐 이 두 가지 방법에 관리자 감시까지 더해질 것 같지만, 아무튼 바이두 공유 금지 자료를 공유하고자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이 정도 있다는 것은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몇 자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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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1일 월요일

랜심(Ransim) 테스트를 겸한 HitmanPro Alert 간단 리뷰

오늘 간단하게 랜심(Ransim) 테스트를 돌려본 것은 한국엔 그렇게 잘 알려진 것 같지 않은 안티-랜섬웨어(Anti-Ransomware) 프로그램인 히트맨 프로 얼랏(HitmanPro Alert v3.7.9 build 775)이다. 히트맨 프로(HitmanPro)가 오직 바이러스 검사만 지원하는 것에 반해 ‘얼랏(Alert)’은 실시간 감시/방어 전용이다. 고로 얼랏(Alert) 사용자라도 내 컴퓨터의 바이러스 검사를 위해서는 HitmanPro가 필요하다. 원래 이 리뷰는 「몇 가지 무료 안티-랜섬웨어 툴 Ransim 테스트」에 포함할까 했는데 HitmanPro Alert이 유료인 관계로 따로 올리게 되었다. 다만, 구글링이나 얀덱스(Yandex)를 뒤지면 균열 버전을 쉽게 찾을 수는 있다. 참고로 요즘은 구글도 저작권 단속이 강화되는 추세이기에 균열 자료는 구글링보다는 얀덱싱이 더 쏠쏠하다.

Ransomware Simulator Ransim v2.0.0.54 테스트 결과는 앱체크(AppCheck)보다 한 개를 더 놓쳤다. 고로 랜섬웨어 방어 능력은 괜찮은 것 같다. 현재 앱체크와 같이 사용 중인데, 둘 사이의 충돌은 없다. 굳이 두 안티-랜섬웨어를 같이 사용하는 이유는 랜섬웨어가 그만큼 무섭기도 하지만, HitmanPro Alert는 랜섬웨어뿐만 아니라 악성코드, 맬웨어. 프로그램 취약점(Exploit) 공격 방어, 개인 정보 보호 등 앱체크보다 방어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엔진은 Bitdefender 및 Kaspersky Lab 클라우드 기술을 사용하기에 믿을만하다. 또한, HitmanPro Alert의 랜섬웨어 방어 알고리즘은 세이퍼존 안티-랜섬웨어(SaferZone Anti-Ransomware)처럼 랜섬웨어 공격 목표가 되는 (동영상, 문서, 사진 등등) 파일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앱체크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 그래서 서로 알고리즘이 다른 두 프로그램을 같이 쓰면 그만큼 방어 효과도 뛰어날 것 같아 동시 사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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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manPro Alert 메인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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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manPro Alert '안전 탐색'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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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manPro Alert '불법 이용 완화'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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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manPro Alert '위험 감소' 설정>

일단 의심스러운 프로그램이 동영상, 문서, 사진 등 랜섬웨어의 주요 공격 목표가 되는 파일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기에 MPC-HC(Media Player Classic - Home Cinema) 같은 꽤 알려진 멀티미디어 프로그램도 차단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국의 다음팟플레이어나 중국의 아이치이(IQiyi) 동영상 플레이어의 경우는 신뢰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자동 등록된다. 또한, 한글 2018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으로 보면 HitmanPro Alert에 꽤 많은 데이터베이스가 축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뭔가를 할 때마다 심술 난 시어머니처럼 자주 간섭하지는 않으며 웬만한 것은 알아서 관리된다고 보면 된다.

카스퍼스키를 쓰다가 삭제한 것도 별 시답지 않은 것들을 가지고 틈만 나면 귀찮게 굴어서인데, 이 녀석은 그런 점에서는 기특하다. 물론 세세한 것까지 잡아내는 것을 좋아하는 예민한 사람에겐 그만큼 미덥지 않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3시간 동안의 CPU 사용 시간>

총평하자면, CPU 사용 시간만 보면 앱체크(AppCheck)보다는 좀 무겁고 시스템 모니터링 프로그램인 HWiNFO보다는 가볍다. 랜섬웨어 방어 능력도 앱체크(AppCheck)에 크게 뒤지지 않으면서도 앱체크(AppCheck)보다 방어 범위는 좀 더 넓다. 검사 기능이 분리된 것이 좀 아쉽긴 하지만(매번 검사할 때마다 HitmanPro를 내려받는데, 균열 버전은 이것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고로 따로 구해 사용해야 한다) 성능이 괜찮으니 충분히 용서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유료 안티-랜섬웨어인 Ransomware Defender Professional 3.7.0 테스트 영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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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0일 일요일

[책 리뷰] 기회주의자? 의지의 사나이? 아니면 행운아? ~ 히틀러 1(이언 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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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주의자? 의지의 사나이? 아니면 행운아?

Original Title: Hitler: 1889-1936 Hubris: 1889-1936: Hubris by Ian Kershaw
하지만 히틀러가 독일 역사에서 그저 ‘우연’히 나타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히틀러를 부각시킨 특별한 상황이 없었더라면 히틀러는 무명인으로 남았을 것이다. 히틀러가 다른 시대로 훌쩍 뛰어넘어 가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히틀러의 개성, 히틀러의 말투는 그런 특별한 상황이 없었더라면 눈길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전쟁, 혁명, 민족적 수모, 볼셰비즘에 대한 공포는 워낙 광범위한 독일 국민을 뒤흔들었고 히틀러는 그런 상황을 발판으로 삼았다. 그는 상황을 기가 막히게 활용했다. (『히틀러Ⅰ(Hitler: 1889-1936 Hubris)』, p603)

‘의지의 승리’가 아니라 ‘기회의 승리’?

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 감독이 1934년 9월 나치당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촬영한 다큐멘터리에 히틀러(Hitler)는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제목은 히틀러가 자신을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력으로 앞길을 헤쳐나간 영웅적 정치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과 히틀러의 그러한 불굴의 오만과 위대한 착각에 비위를 맞추듯 히틀러를 미화하려고 애썼던 나치 신화의 한 요소를 대변해 준다. 하지만, 이언 커쇼(Ian Kershaw)는 히틀러 전기 『히틀러Ⅰ(Hitler: 1889-1936 Hubris)』을 통해 히틀러가 끝내 정권을 차지하게 된 원인은 의지보다는 기회주의와 약간의 행운이 더 크게 작용했음을 설득력 있게 설파한다. 사실 히틀러 하면 떠오르는 것은 타고난 연설가로서의 천재적인 대중 선동 능력과 단호한 의지다. 커쇼 역시 연설가로서 히틀러 능력은 부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히틀러의 대중 선동 능력이 나치당의 성장과 히틀러의 정치적 삶에 크게 이바지한 점까지도 인정하지만, 히틀러가 끝내 정권을 차지하게 된 이런 저러한 복합적인 이유 중에 히틀러의 의지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기존의 해석에는 단호한 비판의 날을 세운다.

권력의 심장부에 있었던 사람들의 계산 착오

사학자에게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게 된 원인에 관해 물어본다면 그 누구도 객관식 문제를 풀어내는 것처럼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는 못한다. 그것은 히틀러가 부상하는데 히틀러의 개인적 요소와 주변적 요소, 그리고 시대적 배경이 서로 복잡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히틀러가 권력을 차지하게 된 출발점을 총리가 된 시점으로 본다면, 그 대답은 몇 가지로 간추려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것은 결코 필연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커쇼는 히틀러가 총리 자리에 오른 것은 히틀러의 활약보다는 권력의 심장부에 있었던 사람들의 계산 착오에 있었다고 본다. 권력의 심장부에 있었던 사람이란 다름 아닌 민주주의를 파계하려는 우익 보수 세력이었고, 그들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혈안이 된 나머지 히틀러를 충분히 자신들의 의지대로 다룰 수 있는 만만한 인물로 보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히틀러에 대한 과소평가는 1923년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히틀러를 정치계에서 완전히 쫓아낼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히틀러가 총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정권을 잡으려는 나치당의 노력이 주효했다기보다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이 그만큼 밀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권위주의 체제에 자기들 이해관계가 걸려 있었던 대지주와 군부는 히틀러의 권력 쟁취를 도운 일등 공신이었고, 대기업은 비록 정치적으로는 근시안적이었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했지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마지막으로 패전, 실패한 혁명, 대공황 등으로 말미암아 총체적 난국과 빈곤에 시달리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뼛속까지 염증을 느끼고 있었던 독일 국민도 히틀러를 선택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한몫 거들었다.

여기에 히틀러가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커쇼는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이어지는 독일 정치 문화의 중요한 줄기들을 거론한다. 그것은 폐쇄적 민족주의, 제국주의, 인종주의, 반마르크스주의, 전쟁 미화, 자유보다는 질서를 강조하는 전통, 강한 권위에 끌리는 마음이었고, 아울러 단기적으로는 바이마르 민주주의가 출범할 때부터 부딪쳤던 첩첩이 쌓인 위기들이었다. 여기에 주어진 상황을 잘 활용하면서 시류에 영합하는 기회주의적이면서도 영악한 히틀러의 상황 대처 능력이 ‘지도자 히틀러’의 탄생을 ‘우연’이 아닌 무언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히틀러가 군대에서 연설할 수 있는 재능을 발견하여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이 순전히 우연이었음을 고려해보면 ‘지도자 히틀러’ 탄생에 우연성이나 우발성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우물쭈물하고 자꾸 뒤로 미루는 히틀러의 우유부단한 통치 방식이 오히려 나치당과 관료 체제의 느슨한 통합을 이끌었다는 점과 시의적절하게 터진 의사당 방화 사건이나 힌덴부르크의 사망, 1차 세계대전 참전 등 히틀러는 운도 꽤 따랐다.

히틀러는 기회주의자인가? 행운아인가? 아니면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인가?

렇다면 ‘지도자 히틀러’ 탄생에서 얼마만큼을 우발성 내지는 심지어 역사의 우연 탓으로 돌려야 하는가? 얼마만큼을 당시 독일을 다스렸던 비범한 남자의 행동과 동기 탓으로 돌려야 하는가? 얼마만큼을 민주주의에 적대적인 세력 탓으로 돌려야 하는가? 또 얼마만큼을 히틀러를 스치고 지나갔던 행운 탓으로 돌려야 하는가? 또 얼마만큼을 광신적으로 히틀러를 숭배했던 나치 일당과 독일 국민 탓으로 돌려야 하는가? 이 책은 바로 이런 물음에 답을 구하려는 진중한 노력의 결과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간단히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요소가 의도적이든 우연히든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고 부족한 부문을 서로 메워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는데 각자 나름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것들은 둘째치고 정권을 장악하는데 히틀러의 의지는 얼마나 도움이 되었던 것일까? 연설이나 선동 분야를 제외하고는 히틀러의 개인적 능력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으로 보는 커쇼의 답은 당연히 부정적이다. 커쇼는 히틀러의 의지보다는 다분히 기회주의적인 면을 부각시킨다.

부랑자보다 약간 나았던 청년 시절

실 1차 세계대전 전에 그림을 팔아 생활비를 벌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부랑자보다 약간 나은 생활을 했던 히틀러의 청년 시절을 돌이켜보면 과연 히틀러가 뭐라도 이루어보겠다는 약간의 의지가, 아니 그러한 의지가 존재했는지조차 의심이 들 정도로 게으르고 방만하고 나태한 삶을 살았다. 그나마 재능이라 할 수 있는 그림 실력을 부지런히 발휘해 돈을 열심히 벌려고 하지도 않았고, 사교성이 좋아 인맥을 두루 넓힌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예술가가 되겠다고 열심히 공부한 것도 아니었다. 낮에는 반쯤은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하루하루 먹고살 궁리를 해야 했고, 밤이면 바그너의 음악에 빠져 공상과 망상의 바다에 자신을 질식시켰다(마치 세상을 등진 채 책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 자신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그 당시 히틀러의 삶은 그가 지독히도 경멸하던 막노동꾼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히틀러는 삽 대신 붓을 들었고, 술과 담배 대신 독서와 음악에 취했을 뿐이다. 말 그대로 그냥 되는대로 살았던 히틀러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전쟁터에서 제 세상을 찾은 듯 보였지만, 그것도 금방 끝나고 말았다.

뜻밖에 군대에서 깨달은 연설 능력

틀러는 어떻게든 제대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군대에서 공짜로 재워주고 먹여주고 월급까지 주었기 때문이다. 학력이 출중한 것도 아니고, 연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우 뛰어나지는 않지만 보통 이상은 하는 그림 실력을 제외하곤 아무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패전으로 엉망진창이 된 독일 경제의 폐허 한복판으로 내몰린다는 것은 예전의 부랑자와 다를 바 없는 삶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히틀러가 군대에서 정치에 발을 내디디면서 처음 맡은 임무는 훗날 등에다 칼을 박았다는 배신자로 부르게 될 사회주의 세력이 이끌던 혁명 정부의 일을 도운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히틀러는 좌파 정권이 집권하는 동안 소속 대대의 대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 정부의 홍보 부처를 도와 부대원들에게 ‘교육’ 자료를 배포하는 일을 맡았다.

이때부터 이미 기회주의적인 히틀러의 특성이 드러난다. 히틀러가 사회주의에 반감을 품지 않았을 리는 만무하지만, 히틀러는 단지 생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군대에 남고 싶었다. 군대에 남는 것이라는 (훗날에는 권력 쟁취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면 비록 신념에 어긋나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히틀러의 특성이다. 훗날 히틀러는 나치당을 이끌면서 권력 쟁취라는 목적 아래 나치당과는 다른 이념을 가진 여러 사회 집단을 받아들이는데, 좋게 말하면 유연성 있는 상황 대처 능력이라 할 수 있고 달리 말하면 기회주의적인 처사라고 볼 수 있다.

1919년 5월 혁명 정부가 무너지고 키를 마이어(Karl Mayr) 대위를 통해 군대를 反볼셰비즘과 민족주의 방향으로 올바르게 교육하는 선전요원으로 선택되고 나서야 히틀러는 자신이 연설할 수 있다는 재능을 깨닫게 된다. 히틀러가 자발적으로 선전요원으로 나섰다기보다는 선택되었다는 점에서 다분히 기회주의적인 냄새가 풍긴다.

‘북 치는 사람’ 히틀러

렇다고 히틀러가 자신의 연설 능력과 대중 선동 능력을 깨닫게 되면서 바로 권력으로 향한 의지를 드러낸 것도 아니다. 1923년 11월 쿠데타 실패로 란츠베르크 감옥에 갇히기까지 히틀러는 위대한 지도자의 앞길을 닦아놓는 북 치는 사람이라는 역할로 만족했다. 그것은 예전에 품었던 위대한 화가나 건축가가 되겠다는 꿈 대신에 히틀러가 새로 발견한 천직이었다. 하지만, 란츠베르크 감옥에서 『나의 투쟁(Mein Kampf )』을 집필하고 세계관의 틀이 다져지면서 그는 이제 ‘북 치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지도자가 되어야 할 운명을 짊어진 사람으로 인식한다. 이때부터 구렁텅이에 빠진 독일을 이끌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자기도취적인 사명감에 불타올랐고, 이때서야 비로소 권력을 쟁취해 지도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맨 앞에서 설명했듯 히틀러가 총리에 오르는 과정은 절대로 히틀러의 의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이후 독일에서 전개되는 정치 전개 과정을 봐도 히틀러의 의지력 하나보다는 고집, 우유부단함, 도박사 기질 등 그의 다른 성격적인 요소가 독일의 운명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마치면서...

『히틀러Ⅰ(Hitler: 1889-1936 Hubris)』은 히틀러의 일대기 중 히틀러의 할아버지부터 시작하여 독일의 라인란트 재점령으로 히틀러의 지도자적 위치가 완벽하게 확립되는 1936년 봄까지를 담고 있다. 어마어마한 책 두께만큼 히틀러에 대해 밝혀진 모든 자료를 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책이지만, 다른 독재자들의 과거처럼 젊은 시절의 기록은 이 빠진 것처럼 군데군데 빈자리가 많이 보이고, 사용된 자료의 신빙성도 미덥지 못하다. 젊은 시절의 히틀러에게 좀 더 가깝고 투명하게 다가갈 수 없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히틀러의 성장 과정과 히틀러의 개인적 기질과 우연과 행운이 어떻게 독일의 정치 • 사회 • 경제와 상호 작용하고, 그 비상한 맞물림 속에서 어떻게 위대한 선동가가 탄생했고 어떻게 위대한 지도자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세밀하게 통찰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자료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이니만큼 책 무게는 가벼운 운동기구로 사용해도 될 만큼 상당히 부담스럽지만,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시종일관 흡입력을 잃지 않는 명쾌한 문장력 때문에 읽기는 전혀 부담스럽지는 않다. 이 덕분에 지루할 새도 없이 독파할 수 있었다. 두께 때문에 감히 추천하기는 어려운 책이지만, 두께를 훨씬 뛰어넘는 지적 충만감과 역사적 혜안을 안겨줄 수 있는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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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6일 수요일

지역 제한 해제된 쿠워뮤직HD(酷我音乐) v8.5.2.3 SVIP 부분 한글판

출처: 酷我音乐HD v8.5.2.3 去广告破解版

지긋지긋했던 지역 제한에서 탈출!

초대박 앱을 발견했다. 예전에 내 블로그에 「쿠워뮤직(酷我音乐) v9.0.3.0 SVIP 부분 한글판」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 앱은 SVIP 모드로 크랙된 앱이지만, 아쉽게도 (저작권 문제에 얽혀 있는) 지역 제한까지는 크랙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 지역(한국 IP)에서 접속한 사용자는 음악 감상 및 다운로드에 제한이 많아 큰 효용성은 없었다. 다만, 숙련된 안드로이드 루팅 사용자는 ProxyDroid 같은 앱으로 중국 프록시/VPN 서버로 우회하여 지역 제한을 해결할 수는 있었으나, 번거롭기도 하고 일반 사용자는 쉽지가 않다.

그러던 차에 정말 ‘쿨’하게도 지역 제한까지 크랙된 쿠워뮤직HD(酷我音乐) v8.5.2.3를 발견했고, 운 좋게도 (그러나 무척이나 아쉽고 서운하게도 지난번처럼 부분적이지만) 한글화에 성공했다. 이 앱 역시 멋지게 SVIP로 크랙되어 있어 굳이 로그인하지 않아도 MP3에서 무손실(FLAC) 음원까지 마음껏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이 얼마나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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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화가 많이 아쉽지만 더는 '지역 제한' 장벽에 막힐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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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일부 노래는 무손실까지 가능!>

로그인하면 ‘재생목록’, ‘즐겨듣는 노래’ 등의 관리가 가능하고 출석 체크 포인트도 (한 달 개근하면 선물도 주는 것 같다) 얻을 수 있어, 꾸준히 사용할 의향이라면 쿠워 계정(혹은 QQ 계정)을 하나 만드는 것을 추천한다. 반주를 내려받아 노래자랑하고, 그걸 공유해 다른 사용자들로부터 점수나 꽃을 얻고 그것을 토대로 순위를 매기는 도전적인 기능도 있어 자신이 노래를 좀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쏠쏠한 재미가 될 것 같다. 그렇게 모은 포인트로 쇼핑몰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쿠워뮤직 음원 보유량은 중국의 타 음원 서비스(QQ Music이나 Xiami Music)보다 적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지역 제한 없이 무손실 음원까지 기분 내키는 대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는 것이 어딘가! 여기에 추가로 짱짱한 바이퍼 음장 효과와 웅장한 아날로그 5.1 서라운드 음장 효과(개인적으로 추천)도 사용할 수 있다. 당연히 한글 검색 가능하고, 가사 검색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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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전용 다운로드 가속 기능도 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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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한 음장 효과는 보너스>

아무튼, 이런 쓸만한 앱을 소개할 수 있어서, 그리고 부분적으로나마 한글화가 가능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500개 안팎의 자잘한 파일들을 일일이 확인해 가며 한글화하는데 이틀이나 소비했음에도 완전한 한글화가 못 되어서 정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또한, 한글화가 부분적으로만 적용되는 것에 대해 나로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가 골대를 열 번이나 맞춘 것 같다. 그래도 꾸준히 사용하면서 익숙해지고 숙련되고 그렇게 손에 익는다면 음악 감상과 다운로드 관련 앱에서 이만한 앱도 없다.

노래 제목을 알려주는 기특한 앱

마지막으로 쿠워뮤직HD(酷我音乐)에는 스마트폰/태블릿 주변의 음악 소리를 인식해 마치 OCR 프로그램이 이미지에서 문자를 뽑아내듯 노래 제목을 맞추는 재미난 기능이 있다. 어떻게 보면 유튜브의 저작권 음원 인식 기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엔 이 기능에 대해 잘 몰라 번역이 좀 이상하게 되었는데, 아무튼, 동영상에서 보듯 시험적으로 중국 노래 두 곡을 테스트해봤는데, 정확하게 인식했다. 예측하건대 쿠워뮤직에서 서비스하는 음원만 인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음원만 있고 제목을 모르는 노래가 있다면 한 번쯤 테스트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쿠워뮤직HD(酷我音乐) v8.5.2.3 부분 한글판

마지막 업데이트: 2019년 3월 6일

kuwo_music_HD-8.5.2.3_Jxdm_kor.apk 암호: yvk7

▶ 수정 사항

1. 고급 VIP 권한을 해제하고 아이콘을 점등하고 다운로드 속도를 높입니다.

2. 무료로 노래 다운로드하려면 클릭하십시오.

3. 시작 광고 링크를 제거하고 시작 화면을 유지하십시오.

4. 추가 옵션 인터페이스의 라이브 스타 링크를 제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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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러 개의 광고 링크를 제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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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3일 일요일

[책 리뷰] 지성조차 이기심에 묶여야만 하는가 ~ 산둥 수용소(랭던 길키)

Shantung-Compound-book-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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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조차 이기심에 묶여야만 하는가

Original Title: Shantung Compound by Langdon Gilkey
과연 우리는 지혜와 명철, 도덕적 힘을 최대한도로 발휘하여 굶주리는 세상과 우리의 것을 나눌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를 위해 쌓아놓고 자기 배만 불리며, 인간성과 평화로운 세계 공동체를 얻을 수 있는 희망을 다 던져버릴 것인가? (『산둥 수용소(Shantung Compound)』, p445)

젊은이답지 않은 지적 날카로움으로 완성한 회고록

2차대전 때 일본은 중국 점령지역에 있던 영국인, 미국인 등의 외국인들을 위현(현재는 산둥)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수용했다. 당시 북경 연경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랭던 길키(Langdon Gilkey) 역시 2년 반 동안 수용소 생활을 경험한다. 남부럽지 않은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자랐던 그에게 수용소 생활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난의 나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비참하고 고단했던 수용소의 일상 속에서 젊은이다운 왕성한 호기심, 그리고 젊은이답지 않은 지적 날카로움이라는 혜안과 통찰력을 발휘하여 인간의 성품과 도덕성에 대한 예리한 성찰을 남겼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 『산둥 수용소(Shantung Compound)』이다. 길키는 수용소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현대적 낙관주의에 자부심을 느끼고 인간의 합리성과 도덕성을 낙관적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수용소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 자신이 믿었던 낙관주의가 도를 넘어선 순진함과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에 입각한 터무니없는 망상이었음을 깨닫는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인간의 성품과 도덕성에 대한 흠집 정도를 넘어서 그 존재 자체와 근원적인 본질에 대해 뇌 속까지 파고들 정도로 깊은 회의를 품게 하였을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이기심’이다.

굶주림은 문명의 모든 가면을 벗겨버린다

소에 누렸던 물질적 풍요와 안락함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수용소 사람들은 입소 당시만 해도 그토록 끔찍하게 여겨졌던 환경에 놀랍게도 몇 개월 만에 적응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 특유의 창조적인 활력을 발휘하여 쓰레기장 같았던 수용소를 사람이 살 만한 그럴듯한 공간으로 여겨지게끔 탈바꿈시킴으로써 이들은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일상’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수용소에서 창출한 ‘일상’은 어떤 환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적응하고 더 나아가 개척하려는 인간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증명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수용소의 식량 부족 문제가 표면적으로 불거지면서, 그리고 식량 문제가 앞으로 개선될 여지는커녕 현재의 배고픔이 지속적으로 장기화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자 수용소 사람들의 이기심은 폭발해버리고 만다.

군자도 굶주리면 붓을 내팽개치고 이빨을 드러내며 짐승으로 변하듯, 수용소에 전염병처럼 퍼지는 굶주림은 그동안 인류 문명이 줄기차게 부르짖었던 지적 우월함, 교양, 민주주의, 그리고 도덕과 정의가 개미가 뀐 방귀에도 흩어지는 뜬구름 같은 환상이었음을 폭로한다. 특히 길키가 수용된 수용소는 필리핀이나 싱가포르 수용소에 있는 군인 포로들의 상황과는 천지 차이였다. 일본군의 잔혹한 통치 아래에서 하루하루 죽음의 임박함을 느꼈을 군인 포로들과는 달리 산둥 수용소에는 고문 • 폭력도 없었으며 굶어 죽는 사람도 없었다. 길키의 경험은 인류 문명의 도덕적 견고함이 약간의 빈곤만으로도 너무 쉽게 무너졌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사람이 굶주리면 얼마나 파렴치해질 수 있는지는 미국 적십자에서 보낸 구호품 배분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 적십자가 수용소에 보낸 (따로 수령인은 지정되어 있지 않은) 엄청난 양의 구호품은 수용소 사람들에게 골고루 분배된다면 최소 몇 개월 이상은 배고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상당한 양이었다. 현명하게도 일본인 수용소 사령관은 미국인에게는 꾸러미 1.5개, 다른 국적 사람들에게는 꾸러미 1개씩을 배분함으로써 미국인의 자부심도 세워주고 다른 국적 사람들에게도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하는, 누가 봐도 탁월한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7명의 젊은 미국인이 수용소 사령관을 찾아가서 미국 적십자가 보낸 물품을 미국 시민이 아닌 다른 국적 수감자들에게 배포하는 것은 직권 남용이라고 항변한다. 만약 미국인에게만 구호품이 배분된다면 미국인 한 사람당 꾸러미 7개씩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7명의 젊은이가 어떠한 마음에서 수용소 사령관을 찾아간 것인지는 굳이 밝히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의제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수용소 사령관은 심사숙고 끝에 모든 사람에게 꾸러미 1개씩을 배분하고 나머지는 다른 수용소로 보내기로 한다. 7명의 미국인 때문에 200명의 미국인은 꾸러미 반 개씩을 잃은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나머지 193명은 억울했을까?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7명의 미국인 행동이 비도덕적이고 탐욕적인 행동이었다고 생각했던 길키(길키 역시 미국인이다)가 수용소 사령관의 최종 판결이 나기 전에 다른 미국인을 두루 만나며 의향을 타진해 본 결과 그들도 7명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고는 크게 실망하기 때문이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다만 이기적일 뿐이다

사와 관련된 책들을 좀 읽은 사람이라면 맹자 말씀대로 사람은 선천적으로 착하다고 보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그렇다고 사람이 마냥 악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다만 이기적일 뿐이다. 그리고 인류가 자부하는 도덕심 역시 이기심이라는 변덕스러운 바다 위에 표류하는 뗏목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때 도덕적 기준은 표류하는 뗏목 위에 위태롭게 매달린 깃발이 된다.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이리저리 나부끼고 떠다니는, 때론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거나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버리는 깃발과 뗏목 말이다. 만약 이처럼 고정된 도덕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말은 보편적인 도덕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도덕이 사람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멋대로 변용되고 변질할 수 있다면 도덕의 존재 자체를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세상을 축소해 놓은 듯한 수용소의 ‘일상’을 다룬 길키의 『산둥 수용소』는 사람이 물질적인 궁핍함에 처하면 바깥세상에서 쌓아 올린 명예, 명성, 부,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이성, 합리성, 도덕, 양심, 정의 등 인류 문명을 빛낸다고 여겨졌던 보편적 가치관이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해 준다. 그래서 국가가 경제성장에 목매다는 것도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풍요와 만족을 국민에게 제공함으로써 사회에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관이 설 자리를 제공해주려는 의지와 다름없다. 하지만, 우리는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사람의 탐욕과 이기심도 증가하거나 다양해지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편중된 부는 또 다른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공산주의 사회가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이 역시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이 사람을 도덕적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막상 행동으로 옮겼을 때 국가와 사회에 어떠한 재앙과 혼란이 일어날 수 있는지 통한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배웠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치 않을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관을 인류 문명 위에 확고하게 세운다는 것은 유토피아 사회에서나 가능한 것일까. 혹자는 길키처럼 영적인 무언가에서 찾을 수 있지만, 당연히 난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지성조차 이기심에 묶여야만 하는가

『산둥 수용소(Shantung Compound by Langdon Gilkey)』를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약간의 물질적 빈곤만으로도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버리는 양심과 도덕의 허술함보다는 제삼자 처지에선 명백히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사람들이 어떻게든 자신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변명하고 온갖 잡다한 지식을 총동원하여 합리화하려는 의지다. 종교인은 종교적으로, 변호사는 법적으로, 그 밖의 사람들도 바깥세상에서 쌓아온 경험, 지식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든 합리화하려는 집요함은 역겹다 못해 구역질이 다 난다. 인간의 이기심은 단지 생존과 직결된, 혹은 탐욕을 부채질하는 물질적인 문제에서만 그 잔인한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자신이 하는 어떠한 행동도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떳떳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합리화 의지로서도 나타난다.

암울하고도 참혹한 상황에서도 인류를 구원해 낼 것이라 믿었던 지성과 의지조차 이기심을 위해 헌신하는 꼴을 보면, 정말 길키의 깨달음대로 우리는 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약하고도 나약하며 어리석고도 어리석은 동물일지 모르겠다. 나 역시 이 책을 덮고, 그리고 오늘의 깨달음을 뒤로하고 내일이 오면 어느새 본연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간으로 돌아가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신에게 의지하는 것이 정말 만족스러운 해결책이 될까? 지난 2,000년 동안 종교가 신의 이름으로 인류와 그 이웃에게 자행한 온갖 잡다한 악행을 떠올려보면 종교 역시 인류처럼 미덥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어쩌면 길키가 고찰하고 성찰한 인류의 문제는 인류가 영원히 풀어야 할 숙제이자, 영원히 풀 수 없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다소 희망적인 것은 인류는 이러한 문제들을 인지하고 풀어낼 수 있는 지성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그 지성조차 이기심에 묶여 있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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