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로버트 서비스 | 폭력, 억압, 감시의 핏빛 삼위일체
그러나 냉전은 끝났고 서방이 승리했다. 승리가 결정된 특정한 날짜는 없다. 군사적 항복 같은 어떤 사건도 없었다. 사람들이 거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 과정은 완결되었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패배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코뮤니스트』, p713)
체코슬로바키아 극작가 바츨라프(Václav Havel) 하벨은 다음과 같이 상황을 묘사한다. “우리 모두는 전체주의 체제에 익숙해졌고, 체제를 바꿀 수 없는 사실로 수용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계속 굴러가게 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저 전체주의 체제의 희생자인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전체주의 체제 창출을 함께 도왔기 때문이다.” (p563)
옛날에,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옛날에 천년왕국 운동이 있었다. 한편, 충분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증적인 과학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산업혁명 이후에도 천년왕국을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볼셰비키라 불리었고, 곧 다가올 자본주의의 파멸을 역사적 필연이라 주장하며 완벽한 사회에 대한 오랜 꿈을 이루게 될 사회주의 시대를 실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지구 역사상 최초로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했고, 천년왕국을 건설할 실질적 기반이자 힘이 될 권력을 장악하는 데도 성공했다. 세상에 지금껏 없었던 국가 체제를 막 완성한 입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천년왕국에 바짝 다가서는 듯했다.
하지만, 인민에게 새롭고 독창적인 국가 체제는 한마디로 괴물이었다. 혁명으로 권력의 정점에 올라선 사람들은 훗날 이름하여 ‘전체주의’라 불리게 될 가혹한 체제의 맷돌을 마음껏 돌리면서 그 속에 자유, 민주, 사적 소유, 사생활, 전통, 종교 등 진정 인민들이 원했던 모든 가치를 꾸역꾸역 밀어 넣은 다음 인정사정없이 으깨버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곧 완성될 사회주의 유토피아에 대한 선전만은 멈추지 않았다. 입으로는 천국을 이야기하면서도 눈과 귀로는 인민들을 감시하고, 두 손과 두 발로는 인민들을 사정없이 짓밟는 이 놀라운 예비 천년왕국에서 인민들은 미래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에 의지하며 모든 것을 인내하고 인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희망하던 미래는 사악하고 음흉한 공산주의자들이 선전하는 천년왕국이 아니라, 어떻게든 몰락해 버린 공산주의자들이 그들의 눈앞에서 말끔히 사라지는 날이었다.
<레닌 연설, 1920년, Grigory Goldstein b.1870 d.1941 / Public domain> |
그들의 바람대로 공산주의는 역사의 종말을 고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오래 버티는 바람에 그 역사적 날을 보지 못하고 맷돌 속에서 갈리고 갈리다 끝내 먼지가 되어 사라진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매일매일 되풀이되는 가차 없는 삶 속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몰락해야만 되찾을 수 있는 자유를 은밀하게 상상하고, 공산주의와 절대 공존할 수 없었던 종교적 삶에 몰래 의지하며 고된 삶을 위로했을 것이다. 하지만, 니체의 말대로 신은 죽었고 신의 빈자리는 끔찍하게도 레닌으로 대체되었으며 신전을 관리하는 대사제 자리에는 악마도 무릎 꿇고 한 수 배우려고 하는 스탈린이 들어섰다. 폭력, 억압, 감시라는 저주받을 삼위일체는 완성되었고, 이에 탄력을 받은 체제의 맷돌은 진정 인민들이 원하는 것들을 꼼꼼히 갈아엎어 버림으로써 한 세기를 풍미할 전체주의적인 공산주의 체제를 완성했다.
사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초기에 보여준 약간의 성장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가혹한 소련 체제가 그토록 오래도록 유지되고, 또한 대물림의 대물림된 이유가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또한, 소련 체제의 완성과 유지, 그리고 전염성을 통해 설명되는 공산주의는 본질적으로 전제적인지 아니면 잠재적으로 해방적인지에 대한 역사적 논쟁에 대한 결말도 역시나 궁금하다.
마르크스 이전의 공산주의부터 카불에서 할크(Khalq)가 권력을 장악한 20세기 마지막 공산주의 혁명까지 통찰하면서 앞의 공산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려는 책이 바로 로버트 서비스(Robert Service)의 『코뮤니스트: 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Comrades!: A History of World Communism)』라 할 수 있다. 한때 지구의 3분의 1을 붉게 물들였던 공산주의가 어렴풋이 싹튼 다음 근근이 줄기를 뻗고, 그럼으로써 끈질기게 뿌리를 내리고 야심 차게 성장하여 괄목할만한 번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탐구하려는 이 하나의 목적만으로도 이 책 『코뮤니스트』를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당연히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는지라 다소 딱딱하고 지루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한때 냉전체제의 한 축으로서 제3차 세계대전의 원흉이 될 수 있었던 공산주의를 모르고서는 인류의 현대사를 얘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비록 공산주의 사상에는 흥미가 없을지라도 20세기 현대사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로 공산주의를 바라본다면 『코뮤니스트』만큼 유혹적인 책도 없다.
노동자들은 재능에 따라 과제를 배당받고 일에 따라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생시몽(Saint-Simon)의 주장보다 더 급진적인, 사람들이 수행한 일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지불받아야 한다는 블랑(Louis Blanc)의 주장은 꽤 매력적이다.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물질적 제화를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물질적이고 소비적인 탐욕이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준으로 적절하게 조절될 수 있다면, 이런 사회에서는 누구나가 물질적으로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점이 나름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던 나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공산주의 역사는 이런 장밋빛 이상과는 전혀 다르게 폭력과 억압, 감시의 핏빛 삼위일체를 신봉한 가혹한 전제적인 체제로 발전하고 굳어졌다. 그러다 과거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수많은 전제주의 정부의 실례를 따라 몇몇 변종을 제외하고는 1989년 동유럽이 무너지던 날 전후로 무더기로 사라졌다. 이로써 공산주의는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실패가 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 공산주의를 배양했던 억압, 착취, 가난, 그리고 절망감이 인류에게 남아있는 한 공산주의, 혹은 그 변종이 활동할 틈은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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