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03

알렉스 | 미워할 수 없는 살인자

Alex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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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 피에르 르메트르 | 미워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살인자

불행한 여자, 곧잘 계획적이면서도 나약하고, 고혹적이면서도 자멸의 충동에 시달리는, 경찰이 아무리 수사망을 넓혀도 결국 미지의 인물로 남아 있는 살인범, 거대한 이 밤의 여인 알렉스 흘릴 눈물조차 메말라버린 알렉스. (『알렉스(Alex)』, p372)

작은 새장 속에 갇혀 고통받는 아름다운 여인, 고어물에나 등장할법한 잔인한 수법으로 여섯 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평생 아물 수 없는 가혹한 상처를 입은 여린 소녀. 경악을 금치 못할 잔혹한 살인범이지만 끝내 독자의 마음속에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비참하면서도 애처로운 사연을 단말마처럼 남기고 떠난, 미워할 수 없는 가련하고 아름다운 살인자 알렉스. 어떤 이유로든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다면, 소녀의 마음속에 살의를 품게 하는 파렴치하고 간악한 자들의 행태는 정당한가. 한 소녀의 정신적 성장마저 가로막은, 마음속 깊이 무겁게 가라앉은 십 년 묵은 원한이 시위를 당긴 화살이 원수에게 명중하지 못한다면 결국 되돌아와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히리라는 것을, 원수가 아니면 자신이 죽어야 하는 이토록 절박한 상황에서도 살인은 미워해야만 하는 죄인가?

Alex by Pierre Lemaitre
<당신은 알렉스?>

미워할 수 없는 아름다운 살인자가 등장하는 『알렉스(Alex)』는 저자 피에르 르메트르(Pierre Lemaitre)의 다른 작품 『실업자(Cadres Noirs)』처럼 범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양산해낸다는 나름의 철학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사회파 미스터리다. 이런 점만이 아니라 『알렉스(Alex)』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아름다운 살인자’ 알렉스와 알렉스를 추적하는 ‘땅딸보’ 형사 카미유의 (솔직히 말해 두 사람의 육체적 대조가 더 흥미롭지만) 심리적 설정과 구성은 여타 범죄 소설과는 달리 단순하지도 만만하지도 않다. 알렉스처럼 카미유도 지워지지 않는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산다. 명색이 강력계 형사임에도 납치범으로부터 아내를 구해내지 못한 자괴감과 예술과 양육에서 예술을 선택하며 자신을 버린 냉정한 어머니에 대한 애증은 강박관념처럼 카미유의 신경 세포들을 괴롭힌다. 그래도 세월 속에 상처가 조금씩 아무는가 싶었더니 알렉스의 납치 사건을 통해서, 그리고 알렉스의 과거를 통해서 카미유의 상처는 다시 터질 수밖에 없으니 이 얼마나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가. 알렉스를 추적하며 자신의 상처도 다시 돌아봐야 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상황에서 카미유는 알렉스를 구렁텅이에서 구해내야만 자신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운명적인 계시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알렉스에 대한 집요한 추적에는 단순히 형사의 의무가 아니라 마치 자신과 싸우고 집 나간 딸을 찾는 아빠의 간곡함과 애틋함마저 느껴지기 때문이다.

서로 쫓고 쫓기며 생존 대결을 펼치는 살인마와 형사지만, 정서적 안정을 기반으로 인격의 기초가 다져져야 하는 가정이 뿌리째 뽑혀버렸다는 점과 납치 사건의 피해자라는 점에서 알렉스와 카미유 두 사람은 같은 상처를 안고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카미유는 알렉스의 가슴 아픈 과거가 밝혀지기 전에 이미 그녀의 살인에서 단순한 광적 기질이 아니라 애틋하고 수수로운 뭔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다. 이러한 카미유와 알렉스의 묘한 공감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카미유의 스케치 실력에서 어렴풋이나마 드러난다. 틈만 나면 알렉스의 초상화를 그리는 카미유의 집념에는 단순히 몽타주를 완성하겠다는 직업적 의무 그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다. 카미유의 그림 속 그녀는 생글거리며 웃거나 하염없이 울기도 한다. 때론 뭔가 하고픈 말이 있는 것처럼 입술을 파르르 떨고 있다. 형사임에도 감히 살의를 품어서는 안 될 대상에까지 강한 살의를 품곤 하는 카미유는 몽타주를 빙자한 초상화를 그림으로써 알렉스의 고적한 살의와 아물지 않는 상처를 어루만져주면서 동병상련의 교감을 나누고 싶었을까? 하지만, 끝내 살아있는 실물은 보지 못했으니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그리다 만 초상화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키가 작은 괴짜 형사 카미유와 세상에서 가장 가련하고 아름다운 살인자 알렉스의 이루어지지 못한 만남은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며칠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까칠한 보풀을 일으키며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한마디로 추리 소설적인 스릴감과 범죄 소설적인 통쾌함에 이례적으로 도스토옙스키적인 내면의 고독과 투시까지 겸비한 범죄 소설 같지 않은 범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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