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그리고 일상적인 생각을 쓰고. 이 모든 것을 음악을 들으며.

Recent Comments

2016년 12월 30일 금요일

[책 리뷰] 혁명의 퀴퀴하면서도 구수하고 진득한 체취가 느껴지는 ~ 중국의 붉은 별(에드거 스노)

book cover
review rating

혁명의 퀴퀴하면서도 구수하고 진득한 체취가 느껴지는 진중한 기록

원제: Red star over China by Edgar Snow
결국엔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이 운동을 태동시킨 기본적인 조건들이 역동적인 승리의 필연성을 그 자체 속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붉은 별』, 550쪽)

도적떼, 불한당에서 혁명군으로

오, 저우언라이를 비롯한 중국 혁명 1세대들은 1차 국공합작이 진행 중이던 1927년 장제스의 상하이 배반으로 5만 명이던 당원이 1만 명으로 대폭 줄은 위기에도 살아남았다. 생존자들은 공개적인 지상 투쟁을 잠시 뒤로하고 지하로 잠입해 소생의 기회를 엿보았지만, 장제스는 쉽사리 틈을 주지 않았다. 몇몇 제국주의 국가의 원조에 힘입은 장제스는 집요하게 초공전을 펼쳤고 공산당은 결국 실로 기나긴 고난의 연속이자 국가의 대이동이라 할 수 있는 9,600킬로미터 대장정에 들어섰다. 피로와 굶주림, 국민당과의 간헐적인 전투로 출발 인원의 절반 정도가 사망하거나 이탈하였음에도 이들은 당시 중국의 서북 변방인 산시성의 바오안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이곳에서 이들은 어떠한 시련에도 결코 꺼진 적이 없었던 혁명의 불씨를 다시 크게 지필 수 있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라는 혁명의 결실을 감격과 뿌듯함 속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당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의 중심부에서 공산주의자들은 국민당과 제국주의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었지만, 국민당의 철옹성처럼 빈틈없는 언론 봉쇄망에 갇혀 외부와는 단절되어 있었다. 국민당은 홍군을 비적, 도적, 다루기 어려운 무법자와 불만분자들의 집단이라고 선전했고, 마오를 비롯한 공산당 주요 인물들의 사망 기사는 수시로 신문의 지면을 낭비했다. 에드거 스노(Edgar Snow) 역시 홍군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국민당 거짓 선전에 영향을 받았을 정도로, 그리고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이 영국에서 처음 출판되었던 1937년에는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내용을 입증할 만한 증빙 자료가 사실상 하나도 없었을 정도로 중국 공산당과 홍군의 실체에 대해 세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베일에 싸인 신비롭고도 괴이한 존재이거나 아니면 국민당 말대로 도적떼이고 불한당이었다 .

서양 기자로서는 최초로 마오를 인터뷰하다

칫 했으면 국민당의 계산된 은폐와 허위 선전으로 역사 속에 묻히거나 오명을 뒤집어썼을지도 모르는 중국 공산당과 홍군의 초창기 역사는 한 사람의 투철한 기자 정신의 부단한 성과인 『중국의 붉은 별』을 통해 일부분이나마 드러날 수 있었다. 홍군은 비적, 도적, 부랑자가 아닌 뚜렷한 정체성과 확고한 신념을 지닌 혁명군이었고, 글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피눈물 나는 투쟁과 기나긴 시련의 시간을 이겨내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국민당의 압도적인 물량 공세 속에서도 에드거 스노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에선 좌절이나 초조함, 피로, 슬픔 등 어둡고 절망적인 표정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불굴의 의지에 걸맞은 눈부신 낙관주의로 똘똘 뭉친 그들은 당시 암울했던 중국의 마지막 남은 빛이자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

에드거 스노는 홍군의 정체를 파악하고 서양 기자로서는 최초로 마오를 인터뷰하고자 1936년 6월, 공산당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국민당 쪽의 민단과 진짜 비적들이 호시탐탐 여행객의 주머니를 노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대장정의 마침표가 찍힌 바오안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저우언라이가 짠 계획에 따라, 때론 그 자신의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노동자, 농민, 홍군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그들의 작업을 지켜보고, 그들의 공연을 관람하고, 그들의 정치 집회에 참여하고, 그들과 함께 운동경기도 했다. 서양인의 눈에는 낯설고 이질적인 이념과 문화를 가진 그들이었지만, 에드거 스노는 개의치않고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홍군이 흘린 피와 땀이 식기도 전에, 그들의 벅차고 우렁찬 외침이 황야의 건조하고 맑은 공기를 가르며 황무지 너머로 사라지기도 전에 단호하고 간결한 문장 속에 그들의 혁명적 삶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그래서 그의 글 속에는 아직도 혁명의 퀴퀴하면서도 구수하고 진득한 체취가 느껴진다 .

혁명은 끝나고 사회가 품어야 할 이상도 사라지다

국이 개방되고 새로운 사료도 발굴되면서 어느 정도 완성된 중국 혁명사는 이미 세상 곳곳에 흔해졌다. 그러나 대장정의 위업을 막 끝낸 직후 혁명의 크나큰 도약을 위해 잔뜩 웅크리고 있던 당시의 상황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그것을 세상에 중계한 사람은 에드거 스노뿐이다. 우리는 중국 혁명의 결과는 알고 있지만, 그들이 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치고 죽음도 무릅쓴 채 그런 고군분투에 뛰어들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할뿐더러 이해하기도 어렵다. 수많은 중국 인민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혁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참혹한 현실, 인민의 신뢰를 받는 데 성공한 공산당의 부단한 노력, 어떠한 상황에도 꺾이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홍군의 낙관주의, 그리고 이들이 품었던 혁명적 이상과 대의를 위해 대가 없이 희생한 그 모든 것들이 역사의 고전으로서 『중국의 붉은 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그러나 요즘의 중국을 보면 혁명 세대들이 품은 벅찬 이상과 뜨거운 대의가 빛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현재 중국은 미국의 뒤를 바짝 쫓는 명실상부한 경제 대국이지만, 급격한 경제 성장에 따른 몸살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환경오염, 인플레이션, 청년 실업, 극심한 빈부격차, 부패, 범죄, 도덕적 가치 상실, 세대 간 단절 같은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했으며, 특히 도시와 농촌 간의 극심한 소득 격차와 지역 간 성장 불균형, 그로 말미암은 삶의 질적 차이는 인민 내부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홍군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사회주의 이상과 대의, 덕목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은 현대를 살아가는 중국인에게 중요한 거울이 될 수 있다. 현재의 중국을 있게 한 혁명 세대들이 과연 무엇을 위해 뜨거운 피와 눈물을 흘리고 기꺼이 목숨을 바쳤는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는 이 책은 중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비판적으로 모색하는 기회와 양식을 제공한다. 또한, OECD의 불명예스러운 통계 49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경제력에 걸맞지 않은 매우 저조한 국민행복지수를 보여주는, 국가와 사회가 마땅히 품어야 할 이상을 잃고 어둠과 절망 속에서 방황하는 우리에게는 검은 밤하늘의 북두칠성 같은 한 가닥 빛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

이 리뷰는 2016년 12월 30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약간의 수정을 거쳐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Share:

2016년 12월 24일 토요일

[책 리뷰] 에도식으로 어우러진 괴담과 범죄 미스터리 ~ 한시치 체포록(오카모토 기도)

Hanshichi Torimonocho book cover
review rating

순수한 에도식으로 어우러진 괴담과 범죄 미스터리

원제: 半七捕物帳 by 岡本綺堂
한시치는 에도 시대의 숨은 셜록 홈즈였던 것이다. (『한시치 체포록(半七捕物帳)』, 39쪽)

‘체포록’의 유래

도 시대에 도시의 사법, 행정, 입법, 경찰, 소방 등을 관장하는 행정부교소에서 경찰 업무를 맡았던 하급관리 직책으로 도신(同心)이 있었고, 도신은 자신의 수하에 오캇피키(岡っ引)라는 민간인을 두었다. 도신에게서 약간의 보수를 받긴 하지만, 정식 관리로 등록된 직책도 아니고 도신에게 받는 보수가 생계를 꾸려나갈 정도로 충분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따로 부업을 하는 오캇피키들이 많았다고 한다. 에도 시대 탐정물의 효시인 『한시치 체포록(半七捕物帳)』에서 한시치의 직업이 바로 그 ‘오캇피치’다.

평민이었던 한시치가 오캇피치로서 하던 일은 지금으로 보면 일종의 사립탐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단 살인 사건 등의 큰 사건이 일어나면 검시 관리들이 현장을 한 번 둘러본 다음 그 자리에서 해결이 안 되면 한시치 같은 오캇피키에게 수사를 요청한다. 사건을 넘겨받은 오캇피키는 자신들의 손과 발 노릇을 하는 정보원인 데사키들을 부려 목격자 진술을 확인하거나 주변 인물들을 수소문하기도 하고 때론 자신이 직접 발품을 팔아 정보를 수집하면서 사건을 해결한다. 오캇피키는 그렇게 해서 모은 정보를 직속상관이라 할 수 있는 도신에게 보고하고 도신은 다시 윗사람에게 보고하는데, 이때 관청의 서기가 이러한 보고들을 기록한 장부가 바로 ‘체포록’이다 .

괴담에 스며든 인간의 욕망

본뿐만 아니라 동서양 괴담에 정통한 오카모토 기도(岡本綺堂)답게 한시치가 맡은 사건들은 하나같이 기괴하기 짝이 없다. 한 모녀의 꿈에서만 나타나는 물에 젖은 귀신, 행방이 들쑥날쑥하다 갑자기 나타나 어머니를 살해하고 도망친 처녀, 억울한 누명을 복수하기 위해 찾아온 원혼, 법의를 걸치고 죽은 여우, 낚시꾼에게 잡힌 잉어 남편을 찾아온 여자, 단발머리를 한 귀여운 여자아이가 가져오는 단발뱀의 저주 등 사건의 발단에는 전설의 고향에나 등장할법한 으스스하고 소름끼치는 기담이 자리한다. 아직 미신이 팽배하던 시대라서 그런지 이런 기담들은 등장인물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짐으로써 작품의 배경 속으로 깊숙이 스며든다. 그리고 이러한 괴담 뒤에는 시대를 통틀어 변하지 않는 인간의 시커먼 욕망이 안갯속을 헤매는 원혼처럼 떠돌고 있으니 괴담이 곧 인간이고 인간이 곧 괴담이다 . 그럼에도, 눈썰미가 날카로운 한시치는 괴담에 한눈팔지 않는다. 과학적 냉철한 사고를 하는 그는 그 속에 숨은 진의를 놓치지 않고 사악한 인간의 의도를 밝혀냄으로써 얽히고설킨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낸다. 그래서 괴담으로 시작하지만 결말은 그 나름의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추리로 끝난다.

괴담, 추리 소설뿐만 아니라 역사, 시대 소설로 읽기에도 충분한

작품이 가진 또 하나의 묘미는 괴담이 유행하고 실제로도 많은 사람이 미신을 믿던 시기에 살았던 서민들의 삶이 따로 고증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미야베 미유키는 시대 소설을 쓰기 전에 항상 『한시치 체포록』을 읽는다고 할 정도니 이 작품은 괴담, 추리 소설뿐만 아니라 역사, 시대 소설로 읽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한시치 체포록』은 오싹한 괴담과 범죄 미스터리를 순수한 에도식으로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 소설과 시대 소설로서의 고색창연한 풍미까지 갖춘, 각양각색의 독자에게 호소할 수 있는 다양한 읽을거리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이 리뷰는 2016년 12월 24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Share:

2016년 12월 18일 일요일

[책 리뷰] 신이 인류에게 내린 최후의 문제 ~ 물의 세계사(스티븐 솔로몬)

water book cover
review rating

신이 인류에게 내린 최후의 문제, 물

원제: Water: the epic struggle for wealth power and civilization by Steven Solomon
근대 세계의 참을 수 없는 갈증, 산업 기술의 발전, 그리고 60억에서 90억으로 향하는 인구 증가 같은 요소 때문에 현재의 관행과 기술로는 자연으로부터 얻는 깨끗한 물의 공급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 (『물의 세계사』, 10쪽)

생명과 문명의 토대, 물

명은 물이고 물은 곧 생명이다. 우리 몸의 70%는 물로 채워져 있고, 우연인지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인지 신의 섭리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도 70%가 물이다. 물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인류는 비옥한 삼각주와 범람원에 정착함으로써 문명의 싹을 피울 수 있었다. 그러나 초기 문명은 강의 유량을 통제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매년 되풀이되는 범람과 홍수의 정도에 따라 시시때때로 기근과 풍요를 겪었다. 기근이 닥칠 땐 왕조가 쇠퇴하고 새로운 권력이 들어섰으며, 풍요로울 땐 국경이 확장되고 인구가 증가하는 등 문명은 물의 흐름에 따라 확장과 쇠퇴를 거듭하였다. 강의 유량을 통제할 수 있는 관개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문명들은 하류에서 상류로 이동하면서 수원지를 장악할 수 있었고, 이렇게 최적의 전략적 위치를 차지한 쪽으로 정치권력의 무게 중심도 이동했다. 수원지를 확보하고 지속적인 관개 기술의 혁신과 확장으로 안정된 물 공급을 확보한 정부는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고, 안정된 기반 위에서 문명은 탄력을 받아 역사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 또한, 인류는 물을 항해에 이용함으로써 운송과 상업을 통한 시장 경제적인 발전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물레방아, 더 나아가 증기기관의 발명, 다목적 댐 건설 등 물을 산업적인 힘으로 전환하고 더불어 위생 혁명에 성공함으로써 현재의 경이로운 발전에 도달했다.

최후의 통첩 앞에 선 물 위기

류의 존속뿐만 아니라 문명이 찬란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물은 앞으로도 인류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물 공급이 수요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정점을 지났다는 전 지구적인 위기의 신호는 이미 중동, 아프리카에서 물을 사이에 둔 폭력 사태로 현실화됨으로써 인류의 장래를 더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 비단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세계 인구의 37%를 차지하면서도 담수량은 11%에 불과한 중국과 인도가 물 위기를 극복하지 못해 주요 곡물 수출국에서 주요 수입국으로 처지가 바뀐다면 세계 곡물 가격을 급격히 상승시키고, 가뜩이나 만성적인 물 부족으로 빈곤에 시달리는 국가들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증가 추세를 보이는 세계 인구와 세계 인구 증가 속도보다 두 배 이상 빠른 물 사용량 증가 속도, 그리고 물이 에너지, 식량, 기후변화와 불가분의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인류는 지구의 자원을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공평하게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최후의 통첩 앞에 선 셈이다.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인류가 위기 때마다 놀라운 혁신과 의지로 위기를 극복하고 그 탄력으로 문명을 발전시키고 유지해 온 것처럼 현재의 물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다면, 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은 (과거 코페르니쿠스의 발견, 르네상스 등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며,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듯이 물 혁명을 주도한 국가는 세계질서의 중심 국가로 우뚝 설 것이다.

누구는 펑펑 쓰지만, 누구는 한 모금에도 허덕이게 하는 물

국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바이두에 로그인하면 건강을 위해 하루에 8잔의 물을 마시라는 안내 문구가 나온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의 가정집에서는 수도꼭지를 틀면 8잔이 아니라 욕조도 한가득 쉽게 채울 수 있다. 그럼에도, 하루 8잔 마시기가 쉽지 않다. 건강해지고 싶지 않아서도 아니고 물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단지 물 마시기가 귀찮아서이다. 그러나 수백만의 어린이들과 여성들이 교육과 생산적인 일을 포기하고 대신 매일 수 킬로미터를 걸어서 그날그날의 생존에 필요한 물을 길어야 한다. 11억이 하루 생존에 필요한 최소 식수도 구하지 못하지만, 또 다른 11억은 이들보다 열 배 이상이나 많은 물을 사용한다. 누군가는 필요하면 필요한 만큼 생수통 뚜껑을 열어, 혹은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마시지만, 누군가는 한 모금이 없어 갈증에 허덕인다 .

생존에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물과 관련된 문제는 다른 자원보다 특별한 위치에 있으며 그만큼 해결도 쉽지 않다. 물은 석유, 가스, 철, 석탄 같은 저장이 가능한 천연자원들과는 달리 풍족한 국가들이 아껴쓴다고 해서 부족한 국가로 쉽게 돌릴 수 있는 자원이 아니며 1인당 최소 필요량도 다른 자원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석유처럼 운송으로 해결하기도 어렵다.

만능 해결법은 없다, 그러나

늘 소개하는 책 『물의 세계사(Water: the epic struggle for wealth power and civilization)』 저자 스티븐 솔로몬(Steven Solomon) 역시 물 부족이라는 지구적 위기를 해결할 단 하나의 만능해결책은 없으며 어떠한 선행 모델이나 제도적 틀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은 일을 해 나가면서 풀어야 한다 고 설명한다. 즉, 국가 간 혁신적인 물관리 기술은 공유하면서 각각의 국가는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리적 조건들에 맞게 최적화된 물관리 프로세스를 독자적으로 진행하며 전 지구적인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 어느 정도 체계적인 물관리 기술을 확보하고 현실 적용에 성공한 선진국들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수도 있겠으나, 이미 오래전부터 물 부족을 겪고 온 저개발 국가나 빈곤국가들엔 엄청난 부담이다. 물은 곧 생명이기 때문에 물 부족 국가들은 최후의 위기에 닥치면 자포자기적인 심정으로 돌발적인 전쟁을 일으킬 소지도 다분하다. 이는 곧 세계의 위기로 치달을 것이다.

만능 해결법은 없을지라도 세계 공동체가 누구나 하루에 필요한 최소량의 깨끗한 물을 누려야 한다는 인간의 권리에 대한 믿음에서 물 위기를 바라본다면, 그리고 우리의 도덕성, 지성과 인류애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면 물 위기는 전 인류가 하나의 구심점으로 새 문명, 새 시대로 도약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물이 공기처럼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신과 자연이 인류에게 내린 최후의 시험대일 수도 있다 .

마치면서...

대를 시작으로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까지 모든 시대 모든 문명을 아우르는 방대함에 놀라고, 이렇게 방대한 세계사를 다룸에도 세밀함을 놓치지 않았다는 치밀함에 다시 한번 놀란다. 물이 흐른 자국에 스며든 인류의 피와 땀은 고스란히 인류의 문명으로 피어났고, 그것을 기록한 책 『물의 세계사』는 독보적인 사서다. 사람이 곧 물이고 물이 곧 사람이며 인류의 정치와 권력 투쟁, 자원 경쟁,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생존의 근원에는 물이 흐르고 있으니, ‘물이 세계사’는 곧 ‘인류사’이기 때문에 인류의 부단한 문명사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겐 스티븐 솔로몬의 『물의 세계사』는 필독서이며, 현재의 물 위기를 심각하게 느끼는 사람에겐 이 책의 한 장 한 장이 현실을 설명하고 이해하고 비판하는 데 필요한 지적 거름을 줄 수 있는 귀중한 조언자이다.

이 리뷰는 2016년 12월 18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Share:

2016년 12월 12일 월요일

[책 리뷰] 상상력은 축복인가, 아니면 저주인가? ~ 우아한 제국(외르겐 브레케)

Nadens Omkrets book cover
review rating

상상력은 축복인가, 아니면 저주인가?

원제: Nadens Omkrets by Jørgen Brekke
모든 연쇄살인범의 공통점은 단 한 가지, 어린 시절 상상력이 풍부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라면서 현실의 어려움과 맞부딪칠 때마다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상상의 세계는 어둡고 슬픈 곳, 폭력과 억압, 무자비한 행위가 난무하는 곳으로 변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은 연쇄살인범이 통제력을 행할 수 있는 곳으로 남아 있게 된다. 이 아이들이 훗날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은 살인 장소에서 자기 상상력의 현실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강사의 말은 펠리시어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연쇄살인범은 영화제작자와 작가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는 것 아닐까요? 그들이 하는 작업의 본질은 같습니다. 연쇄살인은 허구를 현실화 하는 일이니까요.”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 99쪽)

르겐 브레케(Jorgen Brekke)의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범이 저지른 살인에는 두 가지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한 가지는 과거나 지금이나 많은 살인 사건의 원인이자 강력한 집행자인 질투다. 다른 한 가지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섬뜩한 예술적 광기가 번득이는 엽기적인 상상력의 현실화이다 . 소설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 속 연쇄살인범처럼 인간의 피부에 비상한 관심을 둔 상상력이 풍부한 자는 비단 현대의 연쇄살인범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소설 속 소설’ 형식으로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16세기 중세에도 인간의 상상력은 막힘이 없었다. 다만, 현재의 연쇄살인범은 주로 기괴하고 잔인한 관상 취미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의 피부에 비상한 관심을 두었다면, 16세기에는 좀 더 실용적인 목적에 인간의 피부를 활용했다. 바로 양피지에 쓰일 최고급 가죽의 재료로 사용했던 것이다. 실제로 사람의 피부가 양피지로 제작되었던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해부학 실험을 위해 공동묘지에서 신선한 시체를 직접 가져와 실험하기도 했다는 유명한 해부학자 베살리우스의 행적과 인간의 광적인 수집욕을 떠올리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설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은 현대와 500여 년 전의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두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독자를 현혹한다. 그럴 뿐만 아니라 미국과 노르웨이에서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국적 연쇄살인이라는 이색적인 발상을 펼친다. 독특한 개성과 사연을 지닌 등장인물들이 텍스트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며 우수 어린 인생의 향연으로 소설에 활기를 더한다. 뇌종양 수술로 과거의 기억을 상실한 채 이제 막 복귀한 싱사커 형사, 성폭행과 마약 중독이라는 불행한 과거를 안고 경찰이 된 펠리시어 형사, 추리 소설 마니아로 홈스 같은 날카로운 관찰력과 명철한 추리력을 보여주는 자유분방한 홀룸, 한때 아내와 아들을 살해한 용의자로 주목을 받은 것도 모자라 새로운 사건에서 또다시 용의자 선상에 오른 바텐 등 저마다 드라마틱한 과거를 소유한 등장인물들은 미국과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살인 사건에 역시나 드라마틱하게 얽히고설킨다. 개인적인 불행으로 점철된 지난 과거가 그들 인생의 제1막이었다면 ‘우아한 사건’에 우아하지 못하게 엮인 제2막은 가슴이 시리도록 비극적인 드라마다 .

끝내 범인의 정체는 드러나고 지긋지긋했던 사건은 종결되지만, 단지 불운과 우연 때문에 삶을 송두리째 잃은 한 개인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과거로 묻히고 만다. 그래서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면, 범인이 잡히면서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이나 쾌감, 통쾌함보다는 사람의 지나친 상상력과 지나치게 부족한 상상력의 부조화가 불러온 비극적 결말에 할 말을 잃는다. 여기서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길이 중요했던 것일까?

무튼, 범인은 바로 독자 앞에 존재하지만, 외르겐 브레케는 맨 마지막까지 히든카드를 내보이지 않기 때문에 엘러리 퀸의 ‘독자와의 대결’ 같은 페어플레이 방식의 추리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현대와 중세를 넘나드는 이중의 시공간적 구성과 중세 특유의 음울하고 퀴퀴한 냄새가 스며든 고서의 비밀을 파헤치는 모험 속으로 빨려가는 듯 전개되는 이야기는 누구라도 풍덩 빠져들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 이다.

이 리뷰는 2016년 12월 12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Share:

2016년 12월 6일 화요일

윈도우 서버 2016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백신과 프리징

윈도우 서버(Windows Server) 2016에 설치해 본 적이 있는 백신들을 대충 정리했다. 이외에도 카스퍼스키, Eset, F-Secure, VIPRE 등 다른 유명 백신 회사에서도 서버용 제품이 존재하지만, 아래 제품들이 구글링(?)으로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Avast for business(무료, 딜레이가 심해 삭제.)

Symantec Endpoint Protection(한 번 설치하면 별도의 인증이 필요 없다, 프리징 경험.)

Webroot(잘 찾아보면 180일 프로모션이나 유효한 시리얼키를 구할 수 있다, 가장 가벼운 백신이지만 역시 프리징 경험.)

360 Total Security(무료, 현재 사용 중이지만 아직 프리징은 없다, 프리징 경험.)

FortiClient(설치는 무료인데 실시간 감시를 활성화하면 인터넷이 안 된다. 뭔가 따로 설정이 필요할지도.)

Ad-Aware Free Antivirus+(무료, 설치해 본 적은 없지만, 윈도우 서버에도 설치가 된다고 한다.)

Malwarebytes ANTI-MALWARE(프리징 경험, 서비스가 중복으로 여러 개 실행되는 버그가 있다.)

Nano Antivirus(무료에 가볍지만, 제품 성능이나 신뢰도는 낮은 편, 역시 프리징 경험.)

MAX Anti Virus Beta1(국산이고 무료에 가볍지만, 역시 프리징 경험.)

Zemana Anti-Malware(프로모션을 자주 하는 편, 가볍지만 프리징 경험.)

백신을 한 가지만 쓰지 않고 자꾸 바뀌게 된 계기는 프리징 때문이다. 하드디스크에 부하가 걸렸을 때 멀티태스킹이 무리하게 진행되면 프리징이 걸리곤 했는데, 윈도우 10에서도 같은 증상을 겪었다. 짐작건대 AMD 노트북에 SSD(x110) + HDD 조합에서 이런 증상이 발생하는 것 같다. 윈도우 7에서는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것을 보면 지금의 메인보드와 SSD, HDD에 특정 백신 조합이 윈도우 10과 뭔가 궁합이 맞지 않는 것 같다. 백신을 의심하게 된 원인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백신을 제거한 상태에서 좀 전에 프리징이 걸렸던 작업을 그대로 재현했더니 이번에는 프리징 없이 작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30일 추가: 백신을 제거한 상태에서도 프리징은 없어지지 않았다. 특정 컴퓨터에서의 SSD + HDD 조합에서 뚜렷한 원인 없이 간헐적으로 프리징이 발생하는 문제는 윈도우 8.1 이후 서버 제품을 포함해서 모든 윈도우에서 발생하는 고질적인 증상이다. 아직 윈도우 10 RS3와 RS4는 사용해보지는 않았지만, 이놈들도 별반 차이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윈도우 서버 2016을 파티션이 아니라 VHD에 설치하고 나서부터는 동영상/음악 파일 이름 변경할 때 가끔 발생하는 프리징은 없어졌다. 그리고 몇 번의 업데이트를 거친 덕분인지 하드디스크에 부하가 걸릴 때도 가끔 발생하던 프리징의 빈도수가 예전보다는 감소했다. 그래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 점만 제외하면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윈도우 서버 2016인데 참으로 답답하다.

2018년 4월 1일 추가:몇 달 전부터 컴퓨터가 완전히 먹통이 되는 프리징이 없어졌다. 윈도우 업데이트로 해당 버그가 해결되었을 수도 있고, 혹은 Abelssoft에서 제작한 SSD Fresh 2018 유틸로 SSD 최적화를 했는데, 뜻밖에도 이게 효과가 있었을 수도 있다. 아주 어쩌다 프리징이 생겨도 예전처럼 컴퓨터를 강제로 꺼야 할 정도로 먹통이 되지는 않고, 몇 분 지나면 풀리는 정도가 좀 약해진 프리징이다. 이것도 최근에는 겪어보질 못했다. 백신은 Max 베타에서 정식 버전으로 갈아탔다.

이 리뷰는 2016년 12월 6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Share:

[책 리뷰] 민중의 고통과 외침마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끌어올린 ~ 30년 전쟁(웨지우드)

The Thirty Years War book cover
review rating

민중의 고통과 외침마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끌어올린 역작

원제: The Thirty Years War by C. V. Wedgwood
이 암울한 전쟁은 편협하고 비열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고위직에 있을 때 어떤 위험과 재앙이 일어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생생한 교훈이다. (『30년 전쟁(1618-1648)』, 7쪽)

30년 동안이나 지속된 전쟁

틀러 같은 미치광이는 없었다. 그 말은 누군가의 집요한 의도나 음흉한 음모로 전쟁이 벌어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전쟁은 일어났고, 간헐적으로 30년 동안이나 지루하게 계속된 전쟁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끝났다 . 전쟁의 결과는 처참했고 독일 제국의 문명은 몇 세기나 뒤로 후퇴했다. 도덕과 경제가 무너지면서 사회는 타락했고,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농부들의 삶은 지옥으로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무의미한 전쟁이었고 유럽과 독일의 다수는 전쟁을 바라지 않았다.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도 전쟁을 막고자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일찌감치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불러올 정도로 강한 의지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을뿐더러 평화보다 개인적 사심을 채우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전쟁을 수행하면서도 평화를 바라는 이중적인 정책으로 세상과 자신을 기만했다. 그 결과 전쟁은 3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전쟁을 가장 반대했음에도 가장 큰 피해를 본

1618년 프라하에서 일어난 신교도의 반란이 30년 전쟁의 서막이었음을 그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혹은 짐작했더라도 과연 전쟁을 조기에 끝낼 수 있었을까? 빈곤, 정치 불안, 종교 분열, 이해관계의 충돌 등 전쟁에 불씨를 댕길 화약고들이 산재해 있는 상태에서 고위층들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그들의 무능력을 증명했고, 성숙하지 못한 여론과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못했던 농민들은 봉기를 일으키는 것 외엔 고통을 표출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태였다는 점에서 전쟁은 필연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30년의 기나긴 시련의 고통을 견디어냈음에도 민중은 자유를 얻지 못했다. 1631년 틸리의 제국군에게 함락당한 마그데부르크는 주민 3만 명 가운데 약 5천 명만이 살아남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용병들의 만행은 ‘마그데부르크의 재앙’이라는 이름으로 불명예스러운 역사의 한 장을 차지했으며, 역사 추리소설 『거지왕』(올리퍼 푀치, 김승욱 옮김, 문예출판사)에서는 주인공 야콥 퀴슬의 회상을 통해 털끝만큼의 인간성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처참함의 현장을 재현한다.

화약 냄새,다친 사람들의 비명,죽은 사람들의 텅 빈 눈. 그는 양손 검을 들고 전장을 행군하며 그 시체들을 짓밟는다. 그들은 열흘 동안 마그데부르크를 포위했는데,이제 틸리가 공격을 명하고 있다. 공병들이 세운 장벽 뒤에서 무거운 대포가 포효하고,커다란 포탄들이 성벽을 부순다. 야콥과 용병들은 고함을 지르며 거리를 달려 누구든 마주치는 사람들을 학살한다. 남자,여자,아이……. (『거지왕』, 173~174쪽)

전쟁을 반대했음에도 그 피해를 숙명처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면서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었던 민중들과는 달리 독일 지배자 중 그 누구도 집을 잃고 한겨울 추위에 나앉은 사람도, 입에 풀을 문 채 죽은 사람도, 아내와 딸이 성폭행을 당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의 무정한 눈에 간혹 비친 민중의 고통은 한번 혀를 차고 넘어가면 그만인 불편한 구경거리 중 하나였을 뿐이다. 전쟁을 통해 겪는 아픔과 슬픔에서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현격한 차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니 이로써 민중은 두 번 죽는 셈이다. 여기에 역사가마저 민중을 외면한다면 그들은 세 번 죽는 셈이다 .

민중의 고통과 외침마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

은 역사가가 전쟁을 기술하면서 개인적 고통이나 희생은 거대한 역사적 흐름에 응당 따르는 어쩔 수 없는 대가로 취급하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전쟁을 가장 반대하고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이지만, 정작 전쟁과 관련된 정책에는 가장 영향력 없는 다수를 희생양으로 전쟁이 치러짐에도 역사는 이들을 애써 외면한다. 현실에서도, 역사에서도 외면받는 이들은 그저 통계 수치에 들어가는 인격도 개성도 없는 숫자놀이의 장난감일 뿐이다. 이런 역사가들의 냉정함과 몰인정함에 질렸다면 『30년 전쟁(1618-1648)(The Thirty Years War)』을 통해서 다소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C. V. 웨지우드(C. V. Wedgwood)는 정책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것이 역사의 중요한 교육적 목적 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30년 전쟁(1618-1648)』은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인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선제후, 군주, 황제, 왕 등 30년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쟁의 실마리를 풀어가면서도 웨지우드의 날카로우면서도 인간적인 눈썰미와 모든 이를 향해 열려 있는 명징한 귀는 민중의 고통과 외침마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끌어올린다. 저명한 과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을 떠올리게 하는 엄밀함,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Fulton Benedict)에 버금가는 명철함이 돋보이는 이 책에서 우리는 역사의 냉혹함을 읽고 민중의 고통을 생생하게 느낀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저자가 주창한 역사의 중요한 교육적 목적에 백기를 들게 된다.

이 리뷰는 2016년 12월 6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Share:

Category

관심 사용자

Recent Comments

Blog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