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24

대화 | 고뇌하는 지식인의 참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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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리영희 | 고뇌하는 지식인의 참모습

나는 언제나 이처럼 우리 군부나 정보부나 극우 • 반공 • 반통일적 전쟁주의자들이 몽매한 국민을 속여가며 그들의 정권 연장을 도모하고 민족의 화해를 거부하는 그들의 주장의 가면을 벗기기를 사명으로 여겼지. 대중에게 진실을 밝히고 깨우쳐주려고 했어요. 그리고 자랑은 아니 지만 상당한 성과를 이룩했지. (『대화』, 646쪽)

故 리영희 선생의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는 많은 청년 • 학생 • 지식인들에게는 ‘사상의 은사’로 추앙받고, 권력으로부터는 ‘의식화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온갖 핍박을 받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한 지식인의 자서전이다. 집필 당시 저자의 건강 문제로 『대화』는 독특하게 대담 형식을 선택했다. 그래서 문장을 눈으로 읽는다기보다는 귀로 듣는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면 때론 종이 속의 글자들이 툭툭 부대끼는 소리가 공명하는 것이 마치 대담 현장에서 방청하는 것 같을 때도 있다. 대담의 상대자는 저자와 상당한 친분이 있는 후배이다 보니 비록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토론함에도 선후배 사이의 소탈한 분위기로 말미암아 독자는 어렵지 않게 두 사람의 대담을 따라갈 수 있다. 또한, 이런 간접적인 체득을 통해 상대 질문의 요지를 꿰뚫거나 반박하고 비판하는 논리적인 토론의 한 방법도 배운다.

그러나 무엇보다 독자에게 소중한 경험은 고(故) 리영희 선생의 일생을 점유하는 자아성찰이라는 거울에 독자의 내면을 비춰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의식의 성숙이다. 해방 후 잠시 교직에 있었을 때는 피난갈 돈을 마련하느냐 다른 교사들과 합세하여 학교 금고를 털기도 하고, 한국전쟁 중 ‘유엔군 연락 장교단’에서 장교로 근무할 때는 마음에 드는 기생과 하룻밤을 보내려고 권총까지 쏘며 위협하다가 오히려 기생에게 호된 꾸중을 듣기도 한다. 권력에 압력으로 조선일보사에서 쫓겨났을 땐 먹고 살고자, 그리고 육체노동자들의 삶의 애환과 고통을 몸소 체험하고자 육체노동 현장으로 뛰어들지만, 천상 지식인으로서의 한계를 절감하며 서글픔에 빠지기도 하고, 때론 돈 때문에 논문을 대신 써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하면, 교도소의 절도범이 수용된 감방에서 지냈을 적엔 사회의 최하층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의 삶과 정서를 이해하고자 가까이 접근해보지만, 여기에서도 역시 저자는 지식인으로서의 서글픈 한계를 깨닫는다.

이처럼 누구나 가지는 인간적 결점을 가진 채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때론 적당히 타락하기도 했던 저자가 시대를 뛰어넘는 ‘사상의 은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단점과 잘못, 그리고 붓으로 먹고사는 지식인의 한계를 기꺼이 인정하고 그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하며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자기 수양에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자신의 한계와 단점을 인지한 저자는 행동가나 선동가로 나서기보다는 자신의 특기이자 장점인 혜안과 통찰력을 살려 국민이 보지 못하는, 아니 볼 수 없는 현실과 미래를 글로서 깨우치는 선구적 계몽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저자는 스스로 부과한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맨 위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 한국 국민이 전혀 알지 못하는 자기 운명에 관한 중요한 사실들과 진실, 이런 것을 밝혀서 그들의 ‘의식의 눈’을 뜨게 하는 계몽자라고 밝힌다. 한마디로 곧게 자란 나무라도 듬성듬성 잔가지가 솟아나듯 가끔은 보통 사람처럼 일탈에 빠지면서도 진실을 추구하고 그것을 모든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는 신념만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 일관된 삶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아무 생각 없이 산다고 해서 ‘무뇌충’을 떠올릴 필요까지는 없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어찌 아무 생각도 없을 수가 있겠는가. 단지 그 생각이라는 것이 오로지 자신, 또는 가족과 가까운 친구 정도의 안위와 이익에만 국한되어 있으며 사회나 국가, 더 나아가 세계로까지는 확대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세계 여행을 하며 많은 것을 보고 느껴도 그것이 오직 충동적인 감흥에만 머무르고 새로운 인식으로의 전환과 의식의 확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우물 안의 개구리나 다름없으며 그 여행은 돈과 시간을 낭비해 허영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찌 세상의 부조리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겠는가. ‘의식화’되지 못한,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은 역사가 보여주었듯 반인간적인 노예 제도에서도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살아갈 수 있으며 자본주의의 부당한 착취에서도 감지덕지하며 무탈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역사가 증명하듯 민중 대부분은 그러했으며 우리 또한 그러하다. 그리고 정부와 권력, 기업들도 노예처럼 순진하고 기계처럼 부려 먹을 수 있는 이러한 사람들을 원한다.

대화(리영희)

‘지식인’, ‘계몽가’, ‘사상가’ 등을 언급하다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한국 사상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저자처럼 메이지 유신 시기에 일본인에게 큰 영향력을 끼친 지식인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의 ‘침략 전쟁’과 ‘학살’, ‘식민지배’ 등의 뒷받침되는 사상적 근거를 제공하여 일본인을 선동하고 세뇌시킨 장본인이다. 일본에서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메이지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지식인으로 여전히 꿋꿋하게 존재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그를 통해서 우리는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해야 할 의무를 가진 명망 있는 지식인이 비양심적인 잘못된 길을 걸었을 때 가져올 수 있는 엄청난 파국을 볼 수 있다.

지식인의 책임은 막중한 것이며 영향력이 큰 저명한 지식인일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진정한 지식인은 한시도 고뇌의 끈을 놓칠 수가 없다. 현재 얻은 지식과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자아성찰과 가혹한 지적 수련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바로 보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렇게 얻은 보편타당한 진실의 실마리를 아무 대가 없이 모든 이에게 기꺼이 전해줄 수 있는 지식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인이다. 독자는 고뇌하는 지식인에게서 시대적 과제와 역사적 잘못, 세상의 부조리를 진중하게 고민하는 ‘의식화’된 인간의 참모습을 보고 아기가 걸음마를 떼듯 ‘의식화’의 걸음마를 뗀다.

마지막으로 대담 중에 거론된 다양한 주제 중에 등장한 저자의 의견과 필자가 그동안 다방면의 걸친 독서를 통해 얻은 나름의 생각과 이해들이 일치한 부분도 꽤 있었다. 짧지 않은 시간에 걸친 필자의 독서 편력이 전혀 헛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나 다름없었으니 내겐 이보다 더 큰 위안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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