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그리고 일상적인 생각을 쓰고. 이 모든 것을 음악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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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30.

[책 리뷰] 혁명의 퀴퀴하면서도 구수하고 진득한 체취가 느껴지는 ~ 중국의 붉은 별(에드거 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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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퀴퀴하면서도 구수하고 진득한 체취가 느껴지는 진중한 기록

원제: Red star over China by Edgar Snow
결국엔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이 운동을 태동시킨 기본적인 조건들이 역동적인 승리의 필연성을 그 자체 속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붉은 별』, 550쪽)

도적떼, 불한당에서 혁명군으로

오, 저우언라이를 비롯한 중국 혁명 1세대들은 1차 국공합작이 진행 중이던 1927년 장제스의 상하이 배반으로 5만 명이던 당원이 1만 명으로 대폭 줄은 위기에도 살아남았다. 생존자들은 공개적인 지상 투쟁을 잠시 뒤로하고 지하로 잠입해 소생의 기회를 엿보았지만, 장제스는 쉽사리 틈을 주지 않았다. 몇몇 제국주의 국가의 원조에 힘입은 장제스는 집요하게 초공전을 펼쳤고 공산당은 결국 실로 기나긴 고난의 연속이자 국가의 대이동이라 할 수 있는 9,600킬로미터 대장정에 들어섰다. 피로와 굶주림, 국민당과의 간헐적인 전투로 출발 인원의 절반 정도가 사망하거나 이탈하였음에도 이들은 당시 중국의 서북 변방인 산시성의 바오안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이곳에서 이들은 어떠한 시련에도 결코 꺼진 적이 없었던 혁명의 불씨를 다시 크게 지필 수 있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라는 혁명의 결실을 감격과 뿌듯함 속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당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의 중심부에서 공산주의자들은 국민당과 제국주의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었지만, 국민당의 철옹성처럼 빈틈없는 언론 봉쇄망에 갇혀 외부와는 단절되어 있었다. 국민당은 홍군을 비적, 도적, 다루기 어려운 무법자와 불만분자들의 집단이라고 선전했고, 마오를 비롯한 공산당 주요 인물들의 사망 기사는 수시로 신문의 지면을 낭비했다. 에드거 스노(Edgar Snow) 역시 홍군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국민당 거짓 선전에 영향을 받았을 정도로, 그리고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이 영국에서 처음 출판되었던 1937년에는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내용을 입증할 만한 증빙 자료가 사실상 하나도 없었을 정도로 중국 공산당과 홍군의 실체에 대해 세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베일에 싸인 신비롭고도 괴이한 존재이거나 아니면 국민당 말대로 도적떼이고 불한당이었다 .

서양 기자로서는 최초로 마오를 인터뷰하다

칫 했으면 국민당의 계산된 은폐와 허위 선전으로 역사 속에 묻히거나 오명을 뒤집어썼을지도 모르는 중국 공산당과 홍군의 초창기 역사는 한 사람의 투철한 기자 정신의 부단한 성과인 『중국의 붉은 별』을 통해 일부분이나마 드러날 수 있었다. 홍군은 비적, 도적, 부랑자가 아닌 뚜렷한 정체성과 확고한 신념을 지닌 혁명군이었고, 글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피눈물 나는 투쟁과 기나긴 시련의 시간을 이겨내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국민당의 압도적인 물량 공세 속에서도 에드거 스노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에선 좌절이나 초조함, 피로, 슬픔 등 어둡고 절망적인 표정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불굴의 의지에 걸맞은 눈부신 낙관주의로 똘똘 뭉친 그들은 당시 암울했던 중국의 마지막 남은 빛이자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

에드거 스노는 홍군의 정체를 파악하고 서양 기자로서는 최초로 마오를 인터뷰하고자 1936년 6월, 공산당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국민당 쪽의 민단과 진짜 비적들이 호시탐탐 여행객의 주머니를 노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대장정의 마침표가 찍힌 바오안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저우언라이가 짠 계획에 따라, 때론 그 자신의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노동자, 농민, 홍군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그들의 작업을 지켜보고, 그들의 공연을 관람하고, 그들의 정치 집회에 참여하고, 그들과 함께 운동경기도 했다. 서양인의 눈에는 낯설고 이질적인 이념과 문화를 가진 그들이었지만, 에드거 스노는 개의치않고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홍군이 흘린 피와 땀이 식기도 전에, 그들의 벅차고 우렁찬 외침이 황야의 건조하고 맑은 공기를 가르며 황무지 너머로 사라지기도 전에 단호하고 간결한 문장 속에 그들의 혁명적 삶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그래서 그의 글 속에는 아직도 혁명의 퀴퀴하면서도 구수하고 진득한 체취가 느껴진다 .

혁명은 끝나고 사회가 품어야 할 이상도 사라지다

국이 개방되고 새로운 사료도 발굴되면서 어느 정도 완성된 중국 혁명사는 이미 세상 곳곳에 흔해졌다. 그러나 대장정의 위업을 막 끝낸 직후 혁명의 크나큰 도약을 위해 잔뜩 웅크리고 있던 당시의 상황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그것을 세상에 중계한 사람은 에드거 스노뿐이다. 우리는 중국 혁명의 결과는 알고 있지만, 그들이 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치고 죽음도 무릅쓴 채 그런 고군분투에 뛰어들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할뿐더러 이해하기도 어렵다. 수많은 중국 인민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혁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참혹한 현실, 인민의 신뢰를 받는 데 성공한 공산당의 부단한 노력, 어떠한 상황에도 꺾이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홍군의 낙관주의, 그리고 이들이 품었던 혁명적 이상과 대의를 위해 대가 없이 희생한 그 모든 것들이 역사의 고전으로서 『중국의 붉은 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그러나 요즘의 중국을 보면 혁명 세대들이 품은 벅찬 이상과 뜨거운 대의가 빛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현재 중국은 미국의 뒤를 바짝 쫓는 명실상부한 경제 대국이지만, 급격한 경제 성장에 따른 몸살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환경오염, 인플레이션, 청년 실업, 극심한 빈부격차, 부패, 범죄, 도덕적 가치 상실, 세대 간 단절 같은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했으며, 특히 도시와 농촌 간의 극심한 소득 격차와 지역 간 성장 불균형, 그로 말미암은 삶의 질적 차이는 인민 내부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홍군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사회주의 이상과 대의, 덕목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은 현대를 살아가는 중국인에게 중요한 거울이 될 수 있다. 현재의 중국을 있게 한 혁명 세대들이 과연 무엇을 위해 뜨거운 피와 눈물을 흘리고 기꺼이 목숨을 바쳤는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는 이 책은 중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비판적으로 모색하는 기회와 양식을 제공한다. 또한, OECD의 불명예스러운 통계 49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경제력에 걸맞지 않은 매우 저조한 국민행복지수를 보여주는, 국가와 사회가 마땅히 품어야 할 이상을 잃고 어둠과 절망 속에서 방황하는 우리에게는 검은 밤하늘의 북두칠성 같은 한 가닥 빛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

이 리뷰는 2016년 12월 30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약간의 수정을 거쳐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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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24.

[책 리뷰] 에도식으로 어우러진 괴담과 범죄 미스터리 ~ 한시치 체포록(오카모토 기도)

Hanshichi Torimonocho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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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에도식으로 어우러진 괴담과 범죄 미스터리

원제: 半七捕物帳 by 岡本綺堂
한시치는 에도 시대의 숨은 셜록 홈즈였던 것이다. (『한시치 체포록(半七捕物帳)』, 39쪽)

‘체포록’의 유래

도 시대에 도시의 사법, 행정, 입법, 경찰, 소방 등을 관장하는 행정부교소에서 경찰 업무를 맡았던 하급관리 직책으로 도신(同心)이 있었고, 도신은 자신의 수하에 오캇피키(岡っ引)라는 민간인을 두었다. 도신에게서 약간의 보수를 받긴 하지만, 정식 관리로 등록된 직책도 아니고 도신에게 받는 보수가 생계를 꾸려나갈 정도로 충분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따로 부업을 하는 오캇피키들이 많았다고 한다. 에도 시대 탐정물의 효시인 『한시치 체포록(半七捕物帳)』에서 한시치의 직업이 바로 그 ‘오캇피치’다.

평민이었던 한시치가 오캇피치로서 하던 일은 지금으로 보면 일종의 사립탐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단 살인 사건 등의 큰 사건이 일어나면 검시 관리들이 현장을 한 번 둘러본 다음 그 자리에서 해결이 안 되면 한시치 같은 오캇피키에게 수사를 요청한다. 사건을 넘겨받은 오캇피키는 자신들의 손과 발 노릇을 하는 정보원인 데사키들을 부려 목격자 진술을 확인하거나 주변 인물들을 수소문하기도 하고 때론 자신이 직접 발품을 팔아 정보를 수집하면서 사건을 해결한다. 오캇피키는 그렇게 해서 모은 정보를 직속상관이라 할 수 있는 도신에게 보고하고 도신은 다시 윗사람에게 보고하는데, 이때 관청의 서기가 이러한 보고들을 기록한 장부가 바로 ‘체포록’이다 .

괴담에 스며든 인간의 욕망

본뿐만 아니라 동서양 괴담에 정통한 오카모토 기도(岡本綺堂)답게 한시치가 맡은 사건들은 하나같이 기괴하기 짝이 없다. 한 모녀의 꿈에서만 나타나는 물에 젖은 귀신, 행방이 들쑥날쑥하다 갑자기 나타나 어머니를 살해하고 도망친 처녀, 억울한 누명을 복수하기 위해 찾아온 원혼, 법의를 걸치고 죽은 여우, 낚시꾼에게 잡힌 잉어 남편을 찾아온 여자, 단발머리를 한 귀여운 여자아이가 가져오는 단발뱀의 저주 등 사건의 발단에는 전설의 고향에나 등장할법한 으스스하고 소름끼치는 기담이 자리한다. 아직 미신이 팽배하던 시대라서 그런지 이런 기담들은 등장인물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짐으로써 작품의 배경 속으로 깊숙이 스며든다. 그리고 이러한 괴담 뒤에는 시대를 통틀어 변하지 않는 인간의 시커먼 욕망이 안갯속을 헤매는 원혼처럼 떠돌고 있으니 괴담이 곧 인간이고 인간이 곧 괴담이다 . 그럼에도, 눈썰미가 날카로운 한시치는 괴담에 한눈팔지 않는다. 과학적 냉철한 사고를 하는 그는 그 속에 숨은 진의를 놓치지 않고 사악한 인간의 의도를 밝혀냄으로써 얽히고설킨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낸다. 그래서 괴담으로 시작하지만 결말은 그 나름의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추리로 끝난다.

괴담, 추리 소설뿐만 아니라 역사, 시대 소설로 읽기에도 충분한

작품이 가진 또 하나의 묘미는 괴담이 유행하고 실제로도 많은 사람이 미신을 믿던 시기에 살았던 서민들의 삶이 따로 고증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미야베 미유키는 시대 소설을 쓰기 전에 항상 『한시치 체포록』을 읽는다고 할 정도니 이 작품은 괴담, 추리 소설뿐만 아니라 역사, 시대 소설로 읽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한시치 체포록』은 오싹한 괴담과 범죄 미스터리를 순수한 에도식으로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 소설과 시대 소설로서의 고색창연한 풍미까지 갖춘, 각양각색의 독자에게 호소할 수 있는 다양한 읽을거리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이 리뷰는 2016년 12월 24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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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18.

[책 리뷰] 신이 인류에게 내린 최후의 문제 ~ 물의 세계사(스티븐 솔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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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인류에게 내린 최후의 문제, 물

원제: Water: the epic struggle for wealth power and civilization by Steven Solomon
근대 세계의 참을 수 없는 갈증, 산업 기술의 발전, 그리고 60억에서 90억으로 향하는 인구 증가 같은 요소 때문에 현재의 관행과 기술로는 자연으로부터 얻는 깨끗한 물의 공급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 (『물의 세계사』, 10쪽)

생명과 문명의 토대, 물

명은 물이고 물은 곧 생명이다. 우리 몸의 70%는 물로 채워져 있고, 우연인지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인지 신의 섭리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도 70%가 물이다. 물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인류는 비옥한 삼각주와 범람원에 정착함으로써 문명의 싹을 피울 수 있었다. 그러나 초기 문명은 강의 유량을 통제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매년 되풀이되는 범람과 홍수의 정도에 따라 시시때때로 기근과 풍요를 겪었다. 기근이 닥칠 땐 왕조가 쇠퇴하고 새로운 권력이 들어섰으며, 풍요로울 땐 국경이 확장되고 인구가 증가하는 등 문명은 물의 흐름에 따라 확장과 쇠퇴를 거듭하였다. 강의 유량을 통제할 수 있는 관개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문명들은 하류에서 상류로 이동하면서 수원지를 장악할 수 있었고, 이렇게 최적의 전략적 위치를 차지한 쪽으로 정치권력의 무게 중심도 이동했다. 수원지를 확보하고 지속적인 관개 기술의 혁신과 확장으로 안정된 물 공급을 확보한 정부는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고, 안정된 기반 위에서 문명은 탄력을 받아 역사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 또한, 인류는 물을 항해에 이용함으로써 운송과 상업을 통한 시장 경제적인 발전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물레방아, 더 나아가 증기기관의 발명, 다목적 댐 건설 등 물을 산업적인 힘으로 전환하고 더불어 위생 혁명에 성공함으로써 현재의 경이로운 발전에 도달했다.

최후의 통첩 앞에 선 물 위기

류의 존속뿐만 아니라 문명이 찬란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물은 앞으로도 인류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물 공급이 수요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정점을 지났다는 전 지구적인 위기의 신호는 이미 중동, 아프리카에서 물을 사이에 둔 폭력 사태로 현실화됨으로써 인류의 장래를 더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 비단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세계 인구의 37%를 차지하면서도 담수량은 11%에 불과한 중국과 인도가 물 위기를 극복하지 못해 주요 곡물 수출국에서 주요 수입국으로 처지가 바뀐다면 세계 곡물 가격을 급격히 상승시키고, 가뜩이나 만성적인 물 부족으로 빈곤에 시달리는 국가들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증가 추세를 보이는 세계 인구와 세계 인구 증가 속도보다 두 배 이상 빠른 물 사용량 증가 속도, 그리고 물이 에너지, 식량, 기후변화와 불가분의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인류는 지구의 자원을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공평하게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최후의 통첩 앞에 선 셈이다.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인류가 위기 때마다 놀라운 혁신과 의지로 위기를 극복하고 그 탄력으로 문명을 발전시키고 유지해 온 것처럼 현재의 물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다면, 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은 (과거 코페르니쿠스의 발견, 르네상스 등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며,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듯이 물 혁명을 주도한 국가는 세계질서의 중심 국가로 우뚝 설 것이다.

누구는 펑펑 쓰지만, 누구는 한 모금에도 허덕이게 하는 물

국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바이두에 로그인하면 건강을 위해 하루에 8잔의 물을 마시라는 안내 문구가 나온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의 가정집에서는 수도꼭지를 틀면 8잔이 아니라 욕조도 한가득 쉽게 채울 수 있다. 그럼에도, 하루 8잔 마시기가 쉽지 않다. 건강해지고 싶지 않아서도 아니고 물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단지 물 마시기가 귀찮아서이다. 그러나 수백만의 어린이들과 여성들이 교육과 생산적인 일을 포기하고 대신 매일 수 킬로미터를 걸어서 그날그날의 생존에 필요한 물을 길어야 한다. 11억이 하루 생존에 필요한 최소 식수도 구하지 못하지만, 또 다른 11억은 이들보다 열 배 이상이나 많은 물을 사용한다. 누군가는 필요하면 필요한 만큼 생수통 뚜껑을 열어, 혹은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마시지만, 누군가는 한 모금이 없어 갈증에 허덕인다 .

생존에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물과 관련된 문제는 다른 자원보다 특별한 위치에 있으며 그만큼 해결도 쉽지 않다. 물은 석유, 가스, 철, 석탄 같은 저장이 가능한 천연자원들과는 달리 풍족한 국가들이 아껴쓴다고 해서 부족한 국가로 쉽게 돌릴 수 있는 자원이 아니며 1인당 최소 필요량도 다른 자원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석유처럼 운송으로 해결하기도 어렵다.

만능 해결법은 없다, 그러나

늘 소개하는 책 『물의 세계사(Water: the epic struggle for wealth power and civilization)』 저자 스티븐 솔로몬(Steven Solomon) 역시 물 부족이라는 지구적 위기를 해결할 단 하나의 만능해결책은 없으며 어떠한 선행 모델이나 제도적 틀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은 일을 해 나가면서 풀어야 한다 고 설명한다. 즉, 국가 간 혁신적인 물관리 기술은 공유하면서 각각의 국가는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리적 조건들에 맞게 최적화된 물관리 프로세스를 독자적으로 진행하며 전 지구적인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 어느 정도 체계적인 물관리 기술을 확보하고 현실 적용에 성공한 선진국들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수도 있겠으나, 이미 오래전부터 물 부족을 겪고 온 저개발 국가나 빈곤국가들엔 엄청난 부담이다. 물은 곧 생명이기 때문에 물 부족 국가들은 최후의 위기에 닥치면 자포자기적인 심정으로 돌발적인 전쟁을 일으킬 소지도 다분하다. 이는 곧 세계의 위기로 치달을 것이다.

만능 해결법은 없을지라도 세계 공동체가 누구나 하루에 필요한 최소량의 깨끗한 물을 누려야 한다는 인간의 권리에 대한 믿음에서 물 위기를 바라본다면, 그리고 우리의 도덕성, 지성과 인류애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면 물 위기는 전 인류가 하나의 구심점으로 새 문명, 새 시대로 도약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물이 공기처럼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신과 자연이 인류에게 내린 최후의 시험대일 수도 있다 .

마치면서...

대를 시작으로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까지 모든 시대 모든 문명을 아우르는 방대함에 놀라고, 이렇게 방대한 세계사를 다룸에도 세밀함을 놓치지 않았다는 치밀함에 다시 한번 놀란다. 물이 흐른 자국에 스며든 인류의 피와 땀은 고스란히 인류의 문명으로 피어났고, 그것을 기록한 책 『물의 세계사』는 독보적인 사서다. 사람이 곧 물이고 물이 곧 사람이며 인류의 정치와 권력 투쟁, 자원 경쟁,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생존의 근원에는 물이 흐르고 있으니, ‘물이 세계사’는 곧 ‘인류사’이기 때문에 인류의 부단한 문명사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겐 스티븐 솔로몬의 『물의 세계사』는 필독서이며, 현재의 물 위기를 심각하게 느끼는 사람에겐 이 책의 한 장 한 장이 현실을 설명하고 이해하고 비판하는 데 필요한 지적 거름을 줄 수 있는 귀중한 조언자이다.

이 리뷰는 2016년 12월 18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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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12.

[책 리뷰] 상상력은 축복인가, 아니면 저주인가? ~ 우아한 제국(외르겐 브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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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은 축복인가, 아니면 저주인가?

원제: Nadens Omkrets by Jørgen Brekke
모든 연쇄살인범의 공통점은 단 한 가지, 어린 시절 상상력이 풍부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라면서 현실의 어려움과 맞부딪칠 때마다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상상의 세계는 어둡고 슬픈 곳, 폭력과 억압, 무자비한 행위가 난무하는 곳으로 변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은 연쇄살인범이 통제력을 행할 수 있는 곳으로 남아 있게 된다. 이 아이들이 훗날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은 살인 장소에서 자기 상상력의 현실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강사의 말은 펠리시어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연쇄살인범은 영화제작자와 작가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는 것 아닐까요? 그들이 하는 작업의 본질은 같습니다. 연쇄살인은 허구를 현실화 하는 일이니까요.”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 99쪽)

르겐 브레케(Jorgen Brekke)의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범이 저지른 살인에는 두 가지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한 가지는 과거나 지금이나 많은 살인 사건의 원인이자 강력한 집행자인 질투다. 다른 한 가지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섬뜩한 예술적 광기가 번득이는 엽기적인 상상력의 현실화이다 . 소설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 속 연쇄살인범처럼 인간의 피부에 비상한 관심을 둔 상상력이 풍부한 자는 비단 현대의 연쇄살인범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소설 속 소설’ 형식으로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16세기 중세에도 인간의 상상력은 막힘이 없었다. 다만, 현재의 연쇄살인범은 주로 기괴하고 잔인한 관상 취미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의 피부에 비상한 관심을 두었다면, 16세기에는 좀 더 실용적인 목적에 인간의 피부를 활용했다. 바로 양피지에 쓰일 최고급 가죽의 재료로 사용했던 것이다. 실제로 사람의 피부가 양피지로 제작되었던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해부학 실험을 위해 공동묘지에서 신선한 시체를 직접 가져와 실험하기도 했다는 유명한 해부학자 베살리우스의 행적과 인간의 광적인 수집욕을 떠올리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설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은 현대와 500여 년 전의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두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독자를 현혹한다. 그럴 뿐만 아니라 미국과 노르웨이에서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국적 연쇄살인이라는 이색적인 발상을 펼친다. 독특한 개성과 사연을 지닌 등장인물들이 텍스트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며 우수 어린 인생의 향연으로 소설에 활기를 더한다. 뇌종양 수술로 과거의 기억을 상실한 채 이제 막 복귀한 싱사커 형사, 성폭행과 마약 중독이라는 불행한 과거를 안고 경찰이 된 펠리시어 형사, 추리 소설 마니아로 홈스 같은 날카로운 관찰력과 명철한 추리력을 보여주는 자유분방한 홀룸, 한때 아내와 아들을 살해한 용의자로 주목을 받은 것도 모자라 새로운 사건에서 또다시 용의자 선상에 오른 바텐 등 저마다 드라마틱한 과거를 소유한 등장인물들은 미국과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살인 사건에 역시나 드라마틱하게 얽히고설킨다. 개인적인 불행으로 점철된 지난 과거가 그들 인생의 제1막이었다면 ‘우아한 사건’에 우아하지 못하게 엮인 제2막은 가슴이 시리도록 비극적인 드라마다 .

끝내 범인의 정체는 드러나고 지긋지긋했던 사건은 종결되지만, 단지 불운과 우연 때문에 삶을 송두리째 잃은 한 개인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과거로 묻히고 만다. 그래서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면, 범인이 잡히면서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이나 쾌감, 통쾌함보다는 사람의 지나친 상상력과 지나치게 부족한 상상력의 부조화가 불러온 비극적 결말에 할 말을 잃는다. 여기서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길이 중요했던 것일까?

무튼, 범인은 바로 독자 앞에 존재하지만, 외르겐 브레케는 맨 마지막까지 히든카드를 내보이지 않기 때문에 엘러리 퀸의 ‘독자와의 대결’ 같은 페어플레이 방식의 추리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현대와 중세를 넘나드는 이중의 시공간적 구성과 중세 특유의 음울하고 퀴퀴한 냄새가 스며든 고서의 비밀을 파헤치는 모험 속으로 빨려가는 듯 전개되는 이야기는 누구라도 풍덩 빠져들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 이다.

이 리뷰는 2016년 12월 12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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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6.

윈도우 서버 2016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백신과 프리징

윈도우 서버(Windows Server) 2016에 설치해 본 적이 있는 백신들을 대충 정리했다. 이외에도 카스퍼스키, Eset, F-Secure, VIPRE 등 다른 유명 백신 회사에서도 서버용 제품이 존재하지만, 아래 제품들이 구글링(?)으로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Avast for business(무료, 딜레이가 심해 삭제.)

Symantec Endpoint Protection(한 번 설치하면 별도의 인증이 필요 없다, 프리징 경험.)

Webroot(잘 찾아보면 180일 프로모션이나 유효한 시리얼키를 구할 수 있다, 가장 가벼운 백신이지만 역시 프리징 경험.)

360 Total Security(무료, 현재 사용 중이지만 아직 프리징은 없다, 프리징 경험.)

FortiClient(설치는 무료인데 실시간 감시를 활성화하면 인터넷이 안 된다. 뭔가 따로 설정이 필요할지도.)

Ad-Aware Free Antivirus+(무료, 설치해 본 적은 없지만, 윈도우 서버에도 설치가 된다고 한다.)

Malwarebytes ANTI-MALWARE(프리징 경험, 서비스가 중복으로 여러 개 실행되는 버그가 있다.)

Nano Antivirus(무료에 가볍지만, 제품 성능이나 신뢰도는 낮은 편, 역시 프리징 경험.)

MAX Anti Virus Beta1(국산이고 무료에 가볍지만, 역시 프리징 경험.)

Zemana Anti-Malware(프로모션을 자주 하는 편, 가볍지만 프리징 경험.)

백신을 한 가지만 쓰지 않고 자꾸 바뀌게 된 계기는 프리징 때문이다. 하드디스크에 부하가 걸렸을 때 멀티태스킹이 무리하게 진행되면 프리징이 걸리곤 했는데, 윈도우 10에서도 같은 증상을 겪었다. 짐작건대 AMD 노트북에 SSD(x110) + HDD 조합에서 이런 증상이 발생하는 것 같다. 윈도우 7에서는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것을 보면 지금의 메인보드와 SSD, HDD에 특정 백신 조합이 윈도우 10과 뭔가 궁합이 맞지 않는 것 같다. 백신을 의심하게 된 원인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백신을 제거한 상태에서 좀 전에 프리징이 걸렸던 작업을 그대로 재현했더니 이번에는 프리징 없이 작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30일 추가: 백신을 제거한 상태에서도 프리징은 없어지지 않았다. 특정 컴퓨터에서의 SSD + HDD 조합에서 뚜렷한 원인 없이 간헐적으로 프리징이 발생하는 문제는 윈도우 8.1 이후 서버 제품을 포함해서 모든 윈도우에서 발생하는 고질적인 증상이다. 아직 윈도우 10 RS3와 RS4는 사용해보지는 않았지만, 이놈들도 별반 차이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윈도우 서버 2016을 파티션이 아니라 VHD에 설치하고 나서부터는 동영상/음악 파일 이름 변경할 때 가끔 발생하는 프리징은 없어졌다. 그리고 몇 번의 업데이트를 거친 덕분인지 하드디스크에 부하가 걸릴 때도 가끔 발생하던 프리징의 빈도수가 예전보다는 감소했다. 그래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 점만 제외하면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윈도우 서버 2016인데 참으로 답답하다.

2018년 4월 1일 추가:몇 달 전부터 컴퓨터가 완전히 먹통이 되는 프리징이 없어졌다. 윈도우 업데이트로 해당 버그가 해결되었을 수도 있고, 혹은 Abelssoft에서 제작한 SSD Fresh 2018 유틸로 SSD 최적화를 했는데, 뜻밖에도 이게 효과가 있었을 수도 있다. 아주 어쩌다 프리징이 생겨도 예전처럼 컴퓨터를 강제로 꺼야 할 정도로 먹통이 되지는 않고, 몇 분 지나면 풀리는 정도가 좀 약해진 프리징이다. 이것도 최근에는 겪어보질 못했다. 백신은 Max 베타에서 정식 버전으로 갈아탔다.

이 리뷰는 2016년 12월 6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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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민중의 고통과 외침마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끌어올린 ~ 30년 전쟁(웨지우드)

The Thirty Years War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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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고통과 외침마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끌어올린 역작

원제: The Thirty Years War by C. V. Wedgwood
이 암울한 전쟁은 편협하고 비열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고위직에 있을 때 어떤 위험과 재앙이 일어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생생한 교훈이다. (『30년 전쟁(1618-1648)』, 7쪽)

30년 동안이나 지속된 전쟁

틀러 같은 미치광이는 없었다. 그 말은 누군가의 집요한 의도나 음흉한 음모로 전쟁이 벌어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전쟁은 일어났고, 간헐적으로 30년 동안이나 지루하게 계속된 전쟁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끝났다 . 전쟁의 결과는 처참했고 독일 제국의 문명은 몇 세기나 뒤로 후퇴했다. 도덕과 경제가 무너지면서 사회는 타락했고,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농부들의 삶은 지옥으로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무의미한 전쟁이었고 유럽과 독일의 다수는 전쟁을 바라지 않았다.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도 전쟁을 막고자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일찌감치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불러올 정도로 강한 의지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을뿐더러 평화보다 개인적 사심을 채우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전쟁을 수행하면서도 평화를 바라는 이중적인 정책으로 세상과 자신을 기만했다. 그 결과 전쟁은 3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전쟁을 가장 반대했음에도 가장 큰 피해를 본

1618년 프라하에서 일어난 신교도의 반란이 30년 전쟁의 서막이었음을 그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혹은 짐작했더라도 과연 전쟁을 조기에 끝낼 수 있었을까? 빈곤, 정치 불안, 종교 분열, 이해관계의 충돌 등 전쟁에 불씨를 댕길 화약고들이 산재해 있는 상태에서 고위층들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그들의 무능력을 증명했고, 성숙하지 못한 여론과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못했던 농민들은 봉기를 일으키는 것 외엔 고통을 표출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태였다는 점에서 전쟁은 필연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30년의 기나긴 시련의 고통을 견디어냈음에도 민중은 자유를 얻지 못했다. 1631년 틸리의 제국군에게 함락당한 마그데부르크는 주민 3만 명 가운데 약 5천 명만이 살아남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용병들의 만행은 ‘마그데부르크의 재앙’이라는 이름으로 불명예스러운 역사의 한 장을 차지했으며, 역사 추리소설 『거지왕』(올리퍼 푀치, 김승욱 옮김, 문예출판사)에서는 주인공 야콥 퀴슬의 회상을 통해 털끝만큼의 인간성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처참함의 현장을 재현한다.

화약 냄새,다친 사람들의 비명,죽은 사람들의 텅 빈 눈. 그는 양손 검을 들고 전장을 행군하며 그 시체들을 짓밟는다. 그들은 열흘 동안 마그데부르크를 포위했는데,이제 틸리가 공격을 명하고 있다. 공병들이 세운 장벽 뒤에서 무거운 대포가 포효하고,커다란 포탄들이 성벽을 부순다. 야콥과 용병들은 고함을 지르며 거리를 달려 누구든 마주치는 사람들을 학살한다. 남자,여자,아이……. (『거지왕』, 173~174쪽)

전쟁을 반대했음에도 그 피해를 숙명처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면서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었던 민중들과는 달리 독일 지배자 중 그 누구도 집을 잃고 한겨울 추위에 나앉은 사람도, 입에 풀을 문 채 죽은 사람도, 아내와 딸이 성폭행을 당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의 무정한 눈에 간혹 비친 민중의 고통은 한번 혀를 차고 넘어가면 그만인 불편한 구경거리 중 하나였을 뿐이다. 전쟁을 통해 겪는 아픔과 슬픔에서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현격한 차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니 이로써 민중은 두 번 죽는 셈이다. 여기에 역사가마저 민중을 외면한다면 그들은 세 번 죽는 셈이다 .

민중의 고통과 외침마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

은 역사가가 전쟁을 기술하면서 개인적 고통이나 희생은 거대한 역사적 흐름에 응당 따르는 어쩔 수 없는 대가로 취급하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전쟁을 가장 반대하고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이지만, 정작 전쟁과 관련된 정책에는 가장 영향력 없는 다수를 희생양으로 전쟁이 치러짐에도 역사는 이들을 애써 외면한다. 현실에서도, 역사에서도 외면받는 이들은 그저 통계 수치에 들어가는 인격도 개성도 없는 숫자놀이의 장난감일 뿐이다. 이런 역사가들의 냉정함과 몰인정함에 질렸다면 『30년 전쟁(1618-1648)(The Thirty Years War)』을 통해서 다소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C. V. 웨지우드(C. V. Wedgwood)는 정책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것이 역사의 중요한 교육적 목적 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30년 전쟁(1618-1648)』은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인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선제후, 군주, 황제, 왕 등 30년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쟁의 실마리를 풀어가면서도 웨지우드의 날카로우면서도 인간적인 눈썰미와 모든 이를 향해 열려 있는 명징한 귀는 민중의 고통과 외침마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끌어올린다. 저명한 과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을 떠올리게 하는 엄밀함,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Fulton Benedict)에 버금가는 명철함이 돋보이는 이 책에서 우리는 역사의 냉혹함을 읽고 민중의 고통을 생생하게 느낀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저자가 주창한 역사의 중요한 교육적 목적에 백기를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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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30.

[책 리뷰] 광기에서 출발한 괴물 같은 사랑 ~ 워더링 하이츠(에밀리 브론테)

Wuthering Heights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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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에서 출발한 괴물 같은 사랑

원제: Wuthering Heights by Emily Brontë
“내겐 연민이 없다! 연민이 없어! 벌레가 꿈틀거리면 창자가 터지도록 더 짓뭉개고 싶단 말이야. … .” (『워더링 하이츠』, 241쪽)

그것은 광기에서 출발한 괴물 같은 사랑이었다!

‘폭풍의 언덕’이란 제목으로도 알려진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ë)의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는 원작을 각색한 동명의 영화 덕분에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막상 원작 『워더링 하이츠』를 읽고 나니 로맨스 영화 같은 낭만적인 사랑보다는 폭풍에 갈가리 찢기고 부러진 가련한 나무처럼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그 개운치 않은 뒷맛에서 스멀스멀 발효된 책을 확 찢어발기고 싶은 반감은 바로 히스클리프에의 피도 눈물도 없는 복수극에서 온다. 애초 사랑을 품지 않았더라면 시작되지도 않았을 그의 복수극은 사랑은 아름답고 낭만적이어야 한라는 우리의 순진한 기대와 상상을 무참히 짓밟는다. 사랑의 실패로 말미암은 슬픔이 단지 슬픔으로만 그치지 않고, 더불어 눈물과 회한으로만 그치지 않고 분노의 증기를 피어오르게 하는 사악한 에너지가 될 때, 이 모든 것이 증오로 발효하여 복수심으로 치닫는 인간의 나약하고 사악한 감정은 인간의 집념과 집착이 불러올 수 있는 파괴적인 결말의 좋은 예시일 것이다. 그러나 히스클리프의 복수심의 가장 큰 지류가 캐서린에 대한 사랑에서 왔다면, 사랑의 표현과 방법이야 어찌 되었든 그만큼 큰 사랑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 잔인은 복수의 길과 처참한 결말에서 느꼈듯 그것은 광기에서 출발한 괴물 같은 사랑이었다.

사랑과 증오, 그 아찔한 종이 한 장만큼의 차이

칠고 쓸쓸한 거리에서 자란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그의 성격만큼이나 거칠고 투박하다. 반면에, 정상적인 부모 밑에서 사랑과 교육을 받고 자란 캐서린은 신경질적일 정도로 민감한 감정을 가졌다. 겉으로는 무덤덤한 히스클리프는 오로지 캐서린만 열 수 있는 튼튼한 강철 금고 속에 사랑을 안전하게, 그러나 타인은 쉽게 알 수 없도록 은밀하게 품고 있었다면, 주변 상황에 신속하게 녹아들고 반응하는 민첩하고 쾌활한 캐서린은 자루 속에 보관된 화약처럼 언제 어디서든 꺼내 폭발시킬 수 있는 빠르고 강렬한 사랑을 품고 있었다.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금고 속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설령 문제가 생기더라도 쉽게 내색하지 않지만, 그의 사랑이 만족하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 병이 들면 금고는 조금씩 썩어들어간다. 그렇게 부식된 금고는 그의 마음마저 오염시키며 결국엔 복수심으로 강렬하게 표출된다. 캐서린은 인형을 다루듯 사랑을 즐기고 지배하려는 섬세한 감정과 쉽게 꺾이지 않는 자존심에 신경질적인 오만함이 위험하게 섞여 있다. 그래서 그녀는 에드거와 히스클리프가 자신의 섬세하게 분리된 사랑을 이해해 주려고 하지 않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치욕을 견디느니 자신이 가진 모든 열정과 사랑을 폭발시켜 두 남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잔인하게 증명한다. 이렇듯 히스클리프와 캐서린과의 기이한 관계와 융화되기 어려운 두 사람의 성정에서 점화된 섬뜩한 사랑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고 기대하는 통속적인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애증과 집념의 아우라로 점철된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두 사람에게 선물하는 괴물 같은 사랑이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못 이룬 사랑은 단지 두 사람의 불행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구박받고 천대받아옴에도 집요하게 참아온 히스클리프에게 유일한 희망은 캐서린이었다. 그러나 홧김에 내뱉은 캐서린의 말이 씨가 되어 히스클리프가 무던히 살아온 인고의 세월을 하루아침에 깨트려 버린다. 그는 집을 뛰쳐나가 무대에서 잠시 사라지지만, 다시 나타났을 땐 악마도 울고 갈 정도로 잔인하고 냉정한 복수의 화신이 된다. 그는 자신의 사랑을 허락할 수 없는 사회를, 자신의 진실한 사랑을 외면한 채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 캐서린을 응징한다. 이쯤 되면 캐서린에 대한 히스클리프의 순수한 사랑은 애증과 집념에서 발효한 복수심에 짓밟힌 상태다. 그는 차마 캐서린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못하지만, 그녀와 관계된 두 집안을 철저하게 몰락시킴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캐서린의 비극적인 결말을 완성한 장본인이 된다. 그가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했다면, 어찌 되었든 그녀의 가족에게 최소한의 인정은 남겨두었어야 했다. 다르게 보면, 사회와 두 집안에 대한 그의 증오는 천 년 묵은 나무의 뿌리처럼 깊게 마음속에 박혀 있어 캐서린이란 존재도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던 것이다.

마치면서...

스클리프를 사랑에 미친 남자로 보든 아니면 복수에 눈이 먼 악마로 보든 이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독자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살아온 인생길에 따라 판단은 얼마든지 달리 내릴 수 있는 여지가 있을 정도로 에밀리 브론테의 『워더링 하이츠』는 다의적이고 다각적인 해석이 가능한 진솔한 문학의 정수이다. 그러므로 ‘오독’이란 있을 수 없으며 그 ‘오독’조차 개인적 감상의 한 의견일 뿐이다.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감동과 느낌, 해설을 끌어낼 수 있는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이기 때문이다.

이 리뷰는 2016년 11월 30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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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4.

[책 리뷰] 30년 동안의 고도성장이 남긴 흔적들 ~ 중국을 읽다(카롤린 퓌엘)

The 30 years that changed China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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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의 고도성장이 남긴 흔적들

원제: Les 30 ans qui ont changé la Chine(1980-2010) by Caroline Puel
이 이야기는 중국인들의 경험, 그들의 꿈, 그들이 미래를 보는 시각을 설명해준다.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중국이 지닌 복합적인 성격과 중국이 세계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을 읽다, 37쪽)

‘대약진(大躍進 運動)’,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등 마오쩌둥(毛澤東)의 망상적인 사회주의 실험의 늪에서 겨우 벗어난 중국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두 번째 영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주도로 개방 • 개혁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공산당의 정당성을 경제 성장에 접목시킨 덩샤오핑의 개혁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만들었고, 이에 힘입어 중국은 인류사에서 볼 수 없었던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성공적으로 베이징 올림픽, 상하이 세계 박람회 등 굵직한 세계적인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안정되고 경제력 있는 대국으로 성장하며 세계화 흐름에 무사히 유입된 중국은 더는 고립된 대륙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서구 열강과 일본에 느꼈던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떨쳐버리고 강대국이 되고자 하는 야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었던 중국은 이제는 세계화 흐름의 변화를 주도하는 명실상부한 대국이 되었으며 이미 세계 언론들은 무분별, 위협, 인권을 들먹거리는 대신 중국을 ‘또 다른’ 강대국으로 대우하고 있다 .

전히 공산당 일당 체재지만, 덩샤오핑 이후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권력 계승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으며 되찾은 정치적 안정성은 권력 투쟁에 소요되는 불필요한 소모를 줄이고 경제 성장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21세기 중반까지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이 될 것이라는 중국의 자신만만한 야심은 충분한 가능성을 갖춘 듯하다. 그러나 이 놀라운 성장과 함께 나타난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역대 중국 왕조들처럼 민중 봉기에 시달릴지도 모르고 의식이 조금씩 깨어가는 인민들에 의해 중국 공산당이 부정되는 최악의 사태도 올 수도 있다. 2005년에만 중국 전역에서 8만 오천 건의 시위가 집계되었을 정도로 중국 성장의 모순들은 점점 더 극렬하게 드러났다 . 부패한 지방 관료들의 부정 • 부패는 베이징 정부의 확고한 결의에도 사그라질 기세를 보이지 않으며, 자본주의적인 변화와 함께 사회주의 덕목이 사라지면서 인플레이션, 실업, 유동 인구, 불평등, 부패, 범죄, 도덕적 가치 상실, 세대 간 단절 같은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했다. 특히 극심한 소득 격차와 그로 말미암은 삶의 질적 차이는 인민 내부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

베이징 정부 역시 이러한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자본주의적 기쁨을 충분히 누리는 중산층들의 세력과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의 일정 부분을 사회에 환원시킬 사회주의 정책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지가 앞으로 중앙 정책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또한, 자유 언론과 보편적 인권의 부재, 부실한 사법제도 등 여전한 전제주의적인 경찰국가 이미지는 경제 발전과 함께 성숙해 가는 인민의 의식 속에 잠자는 화약고 같은 정치 개혁과 충돌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불어 티베트와 신장 자치구의 독립 문제 등 넓은 대륙을 지배하는 데 따르는 문제점 역시 한둘이 아니다. 후진타오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사람을 기본으로 삼고,전반적 • 협력적 • 지속 가능한 발전 개념을 구축하고,경제 • 사회 • 인간의 전반적 발전을 촉진하자’라는 내용이 강력히 반영된 ‘과학적 발전관’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웠었고, 뒤를 이은 시진핑 주석은 ‘중국몽(中國夢)’과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등을 내세우며 앞으로 당내 민주화와 공민(사회) 민주화를 동시에 강화해 나간다는, 모호하지만 정치 개혁의 뉘앙스를 풍기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웠다. 지난 30여 년간 이룩한 경제 성장을 그대로 이어가 그들의 목표인 세계 최강대국을 이룩할 수 있을지, 아니면 과거 중국의 왕조들처럼 인민들의 거센 항의에 발목이 잡히면서 중국 공산당 존재가 위협당할지 윤곽일 서서히 잡혀갈 앞으로의 30년은 지난 30년만큼이나 중국과 중국 공산당에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

롤린 퓌엘(Caroline Puel)의 『중국을 읽다 1980-2010: 세계와 대륙을 뒤흔든 핵심 사건 170장면』은 중국의 지난 30년의 성장 과정을 주요 사건 위주로 일목요연하게 기술되어 있다. 카롤린 퓌엘의 명쾌한 설명을 따라 펼쳐지는 중국의 놀라운 성장 궤적은 압도적이고 위협적이다. 세계 제1의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거대하고 야심 찬 나라를 마주한, 그리고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엄청난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또한, 중국은 간혹 예상치 못한 대륙적인 호인 기질을 발휘하여 서구 국가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고, 삼국지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계략인 이간질을 사용해 협상국을 고립시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도 한다.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평화롭게 우뚝 일어선다는 뜻의 ‘화평굴기(和平屈起)’라는 표현으로 그들의 정책을 설명하면서도 중국 방식의 세계 평화라는 또 다른 뜻을 숨겨둔다.

마오쩌둥 시절의 변덕스러움 만큼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종잡기 어려운 변화무쌍한 대내외 정책을 구사하는 중국을 알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지정학적상 중국의 직접적인 영향력을 받는 우리로서는 중국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이 지속적인 경제 발전과 더불어 평화적인 북한 핵 문제 해결, 더 나아가 평화 통일을 위해서라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중국의 정치적 속성과 그 변천 과정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중국 현대정치사』(로드릭 맥파커 지음, 김재관 • 정해용 옮김, 푸른길)가 더 좋은 선택이지만, 이 책은 정치 • 외교에 집중한 학술적 성격이 짙은 책이기에 일반 독자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중국을 읽다(Les 30 ans qui ont changé la Chine(1980-2010))』는 사회, 경제, 문화 등 일반 독자가 쉽게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하고 폭넓은 분야를 통해서 중국의 격변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따분하지 않게 중국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리뷰는 2016년 11월 24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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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19.

[책 리뷰]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 갈 ‘책’과 ‘독서문화’ ~ 책의 문화사(데틀레프 블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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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 갈 ‘책’과 ‘독서문화’를 가늠하다

원제: Von Autoren, Büchern und Piraten: Kleine Geschichte der Buchkultur by Detlef Bluhm
지적 소유물을 강탈하는 성향은 호모 사피엔스 유전자에 잠재해 있다. (『책의 문화사』, 235쪽)

리는 책의 역사에서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파급 효과를 일으킬 매체혁명의 과도기에 살고 있다 . 그것은 바로 전자책의 대중화인데, 전자책은 지금까지 책의 역사에 있었던 어떠한 매체혁명과도 다른 성격과 특징을 띄고 있다. 점토판을 시작으로, 파피루스, 양피지를 거쳐 지금의 종이 등 매체혁명의 주인공들은 물질적인 매체를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양피지든 종이든 지금까지의 책은 사람이 손으로 직접 만져 재질감을 느낄 수 있는 물질적인 매체에 인쇄됐다. 그러나 전자책은 지금까지 생산된 책의 재질과는 전혀 다른 매체인 전자 잉크 패널, LCD 패널 등의 디스플레이 기술을 사용한다.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복제라는 종이책에 비하면 가히 혁명적인 생산과 판매 방식을 사용하는 전자책은 비용과 자원도 그만큼 적게 든다.

전자책의 장점은 우선 책의 부피와 무게의 제한에서 완전히 탈출했다는 것 이다. 더는 가방 속에 참고서나 수험서, 또는 여러 권의 책을 무겁게 넣고 다닐 필요가 없다. 전자책은 전자책을 볼 수 있는 태블릿, 스마트폰 등의 기기에 저장 용량이 허용하는 만큼, 혹은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다면 필요한 만큼 책을 보관하거나 내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무제한에 가까운 책장을 한 손에 들고 다니는 격이 된다. 이렇게 가볍고 휴대가 편리한 전자책은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에 컴컴한 곳에서도 볼 수 있으며, 빠르고 간편한 색인 기능으로 본문 검색도 가능하다. 또한, 전자책 기기의 추가 기능으로 전자 사전과 인터넷 검색, 그리고 TTS(텍스트 음성 변화) 기능으로 기기가 전자책을 읽어주는 것도 가능하다.

반면에 단점으로는 인간의 눈은 반사된 빛을 감지하는데 맞추어 진화해 왔기 때문에 직접 조명으로 책을 읽는 전자책은 눈을 쉽게 피로하게 만든다. 그리고 전자책으로 출간한 책의 수는 종이책과 비교하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산 전자책은 타인에게 대여할 수 없어서 친구나 가족 등 지인끼리 책을 서로 권유하며 돌려보는 기존의 독서 문화를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크게 느끼는 아쉬운 점은 종이 특유의 부드럽고 편안한 재질감이다.

이런 단점에도 전자책 시장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지속한다면 『책의 문화사: 우리는 어떻게 책을 쓰고 읽고 소비하는가?』의 저자 데틀레프 블룸(Detlef Bluhm)도 지적했듯 앞으로 종이책의 운명은 ‘소멸’보다는 ‘소외’로 전락할 듯싶다 . 그렇게 된다면, 종이책은 중상위층의 허영을 만족시켜줄 고상한 장식품으로서의 옛 영광을 다시 찾고, 전자책은 보편적인 독서 문화의 주 매체로 자리 잡을 것이다.

틀레프 블룸(Detlef Bluhm)의 『책의 문화사』는 지금까지 발견된 역사 기록 중 책을 최초로 거래한 것으로 알려진 《사자의 서》부터 현재의 ‘아마존’과 ‘구글’에까지 약 4,500년 동안 ‘책’이 거쳐온 문화를 다루고 있다. 더불어 책을 문화적이자 산업적으로 뒷받침해온 동반자로서 함께 변화를 겪어 온 출판과 서점 산업의 발전 과정도 세심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책하면 빼놓을 수 없는 표절과 지적재산권 개념의 역사적 진화 과정도 담겨 있다. 특히 저작권 시비나 논란이 호메로스나 호라티우스 시대부터 존재했었음에도 성문법으로 자리 잡기까지에는 무구한 시간이 흘렀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모든 내용이 독일 중심의 유럽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독일 중심의 ‘책의 문화사’만을 기술함에도 이만한 분량이 쓰였으니 지면의 한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구성일 수도 있겠지만, 유럽보다 무려 천 년이나 넘게 일찍 종이를 사용한 동양의 유구한 역사적 가치를 무시한 것 같아 동양인으로서 좀 씁쓸하다고 말한다면 억지 일려나.

아무튼, 책을 벗 삼고 책에 의존하는 내겐 단어와 문장의 텍스트가 아닌 물질적인 존재로서의 책, 즉 ‘내 친구가 이렇게 성장해왔구나.’ 하는 이해와 더불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 갈 책과 그 변화에 따른 여파가 앞으로의 독서 문화에 미칠 영향의 갈피를 미리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는 짧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 리뷰는 2016년 11월 19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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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12.

[책 리뷰] 과도한 지적 활동의 방관자, 빈약한 지적 활동의 이기주의자 ~ 겨울집(아베 도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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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지적 활동의 방관자, 빈약한 지적 활동의 이기주의자

원제: 冬の宿 by 阿部 知二
가몬과 마쓰코 사이의 감정의 기복, 그 승패의 관계만큼 기괴한 도착(倒錯)으로 가득찬 것은 없었다. (『겨울집(冬の宿)』, 52쪽)

‘내 기억은 모두 어떤 계절의 색깔로 물들어 있다.’

업 논문을 준비하던 주인공 M은 학교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한적한 곳에 있는 기리시마 댁(霧島家)에 하숙하게 된다. M은 기리시마 댁에서 가을부터 다음 해 봄까지 머무르지만, 기리시마 댁의 계절은 언제나 겨울이었다. 쇠락해 가는 기리시마 댁은 보통 가난한 가족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위안이자 희망이라 할 수 있는 단란한 가족애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북극의 모든 얼음을 집 구석구석에 쌓아놓은 것 같은 무겁고 차가운 분위기가 집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간간이 부르는 찬송가 소리마저 장송곡처럼 집안을 짓누른다. 그래서 기리시마 댁은 ‘겨울집(冬の宿)’이다 .

상당한 유산을 상속받은 기리시마 가몬(霧島嘉門)은 방탕한 생활로 가사를 탕진하고 내각조사국의 경비로 근무하고 있지만, 근무복도 직장에 출근하고서야 갈아입을 정도로 내각조사국의 경비로 근무하는 걸 떳떳하게 밝히지는 않는다. 그의 아내 마쓰코(まつ子)는 중매쟁이에게 속은 부모에게 이끌려 가몬에게 시집와 남편이 여자와 술, 사업에 유산을 탕진하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며 갖은 고생을 다 겪어왔다. 그녀는 절실한 크리스천이 되어 금치산자가 된 남편을 구원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고단하고 구차한 삶을 근근이 견뎌왔다. 그리고 이 부부 밑에는 가몬을 닮아 짓궂은 데루오(輝雄)와 늘 오빠에게 괴롭힘을 당해 울보가 된 사키코(咲子)가 있다.

과도한 지적 활동이 불러온 감정의 단절

M은 학교에도 별로 가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친구들이 앞다투어 투신한 사회운동에도 관심이 없다. 감정적인 대인관계에 염증을 느껴 사람을 회피하고 있었던 고독한 M은 뭔가 재밌는 거라도 관찰한다는 호기심으로 기리시마 댁으로 들어간 것이다 . 그러나 M은 처음 다짐한 대로 냉철한 관찰자가 되기는커녕, 보통의 부부 사이에 흐르는 봄처럼 훈훈한 기운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그 대신 겨울처럼 싸늘한 냉기만이 감도는 가몬과 미치코 사이에서 본의 아니게 박쥐처럼 이리 붙고 저리 붙는 작은 악마가 되어 부부 사이의 냉기를 더 차갑게 얼어 붙이는데 일조하는 헤살꾼이 된다.

곧 대학을 졸업하고 새로운 삶의 시작을 눈앞에 둔, 한창 꿈과 열정으로 들뜰 나이의 청년이자 나름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는 M이지만,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그의 태도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삶에 대한 욕구를 일으켜주는 활기 같은 적극성은 찾아볼 수 없다. 이보다 M은 공허한 방관자에 가깝다. M은 가몬으로 인해 몰락한 기리시마 가족을 동정하며 성격 파탄자이자 가정의 불화를 몰고 온 가몬의 문제점을 직시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M은 가몬에게 동정과 우정이 섞인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M은 가몬에게 진심 어린 충고나 조언을 해주기는커녕 가몬에게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면서 마쓰코가 남편에게 금지했던 술과 담배를 몰래 제공하는 나쁜 친구가 된다. 그렇다고 M이 일부러 술과 담배를 부추기는 건 아니다. 마쓰코가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단지 말리지 않는 것뿐이다.

끊고 맺음이 확실하지 못한 M의 우유부단하고 무미건조한 성격은 한때 사귀던 이하라 하마에에 대한 미적지근한 태도에도 드러난다. 결핵에 걸린 하마에가 최후의 생명력을 불태워 죽음도 도외시한 생애 마지막 사랑을 갈구해도 M에게는 그 마지막 불길을 한순간이나마 거대한 불꽃으로 타오를 수 있게 지펴줄 의지도 열정도 없었다. 본능이 일으키는 대로 솔직하게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활화산처럼 불타오르는 가몬의 정열적인 모습이 오히려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M은 자기 생각에 침잠하여 모든 인간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원인을 파악하는 데 몰두한 나머지 인간의 감정을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 하지만,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이성의 지배는 찰나이자 잠재적 희망일 뿐, 인간관계에서 감정을 배제하면 의미를 알 수 없는 공허한 껍질만이 남는다. M이 한참 후에야 데루오의 질투를 깨닫는 것은 감정이 배제된 인간관계가 어떠한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 지 잘 보여준다. 지성과 이성만으로 모든 사물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믿은 M은 오만한 지식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

마치면서...

본 주지파 문학의 대표작가인 아베 도모지(阿部 知二)의 『겨울집(冬の宿)』에 등장하는 회의적이고 방관적이며 소심한 M은 탐욕적인 배금주의에 잠식당한 채 오로지 자신의 삶과 물질적 가치에만 관심을 두는 이기적인 현대인들을 떠올린다. M이 사유와 관념에 몰두한 나머지 행동할 의지를 잃은 소심한 방관자가 되었다면, 현대인은 물질과 소유에 집착한 나머지 나눔과 공유의 기쁨을 잃은 이기주의자가 되었다. 한쪽이 과도한 지적 활동의 소치라면, 또 다른 한쪽은 빈약한 지적 활동의 소치이다 . 그러므로 정신이 빈약한 이 시대에 M이 되어 살아가는 순수한 방관자가 있다면, 그자는 정말로 행복하고 부유한 사람이다.

이 리뷰는 2016년 11월 12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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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6.

[책 리뷰] 별의 탄생과 진화를 떠올리게 하는 ~ 중국 현대정치사(로드릭 맥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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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탄생과 진화를 떠올리게 하는 중국 현대사

원제: The Politics of China: Sixty Years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by Roderick MacFarquhar
모든 위대한 혁명은 천 년의 비전을 제시하지만,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을 다 얻지는 못한다. (『중국 현대정치사』, 627쪽)

별처럼 탄생한 ‘신중국’

급투쟁에 기반을 둔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인민민주독재 등의 강령으로 1921년 창당한 중국 공산당에 의해 태어난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는 별의 탄생과 진화를 떠올리게 한다. 우주를 떠도는 수많은 먼지가 어느 날 밀도 높은 하나의 중심을 향해 모이듯, 넓은 대륙에 점점이 흩어져 있던 혁명가들은 ‘중국 해방’의 이상을 품은 공산당 깃발 아래 모여 놀라운 응집된 투쟁력을 보여주었다. 이제 막 탄생한 별이 중력수축으로 중심온도가 상승하면서 거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듯, 특유의 지도력과 탁월한 역량으로 당을 이끈 마오쩌둥(毛澤東)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혁명 무리는 지칠 줄 모르는 뜨거운 열정을 발산하여 중국 인민을 해방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통일된 중국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제 막 탄생한 별이 지구처럼 생명이 살 수 있는 경이로운 별로 거듭나려면 그냥 기다린다고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운이 좋아 주변적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해도 별이 안정되기까지는 끊임없는 지각변동과 무수한 기후변화라는 길고도 긴 인고와 수난의 시련을 견뎌내야 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떠한가?

폭풍 성장한 중국이 앓는 병

명 1세대들은 지도자이자 우상이기도 한 마오쩌둥의 공산주의적 이상을 현실에 반영한 사회주의 노선에 따라 인류사에 없었던 거대한 대중 선동 실험인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의 수난을 견뎌내야 했다. 이후 잠시 숨을 돌리는가 싶더니 제2대 영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 • 개방 정책으로 중국은 ‘이완과 통제’의 주기적인 방황과 그에 따르는 극심한 혼란을 겪어야 했고, 결국 톈안먼 사태라는 거대한 지각변동을 맞이했다. 냉혹한 통솔력으로 톈안먼의 불을 잔인하게 진압한 덩샤오핑은 남순강화로 개혁 • 개방 정책에 다시 활력을 붙어 넣으면서 3대 영도자이자 문민 지도자인 장쩌민(江泽民)에게 무사히 바통을 넘겼다. ‘3개 대표론’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내세운 장쩌민은 국유기업 해체를 주도하며 대외 개방을 가속하고, 개혁으로 중국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전문직 엘리트들을 정치적으로 포용함으로써 마오쩌둥 노선의 계급투쟁을 묽게 희석시켰다.

IMF, WTO 가입 등 세계 경제에 깊숙하게 개입한 중국은 개혁 • 개방 정책에 따른 시장 경제 체제 도입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극심한 빈부 격차, 도시와 농촌 간의 발전 격차,지역 간의 불균형 발전,환경오염,수출 지향적 성장과 국내 소비의 불균형, 사회주의 복지 시스템의 해체, 청년 실업 등 각종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고자 사람을 기본으로 삼고 균형적인 발전을 내세운 ‘과학적 발전관’의 후진타오(胡錦濤)를 거친 시진핑(習近平)은 ‘중국몽(中國夢)’과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등을 내세우며 앞으로 당내 민주화와 공민(사회) 민주화를 동시에 강화해 나갈 것을 목표로 삼았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경제 발전과 정치적 안정

들은 이 모든 것을 애써 중국 특색 사회주의로 설명하려고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을 맹몽적으로 도입함으로써 많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겪는 고질적인 병폐들을 그지없이 체현한 중국의 현실을 보면 순수한 이데올로기로써 인간 중심의 ‘사회주의’와 자본 중심의 ‘자본주의’, 그리고 그 둘의 어설픈 조합 역시 실패했음이 명확하다. 하나는 너무 가난해서 경제적 정의를 실천할 기본적 여건이 충족되질 못했고, 또 한쪽은 너무 부유해서 손 쓰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한번 불이 붙자 태양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부를 향한 인민의 갈망과 탐욕은 그동안 빵과 고기가 아닌 선전과 대의, 혁명만으로 인민의 배를 채우려고 고집해 왔던 알량한 사회주의 이상을 잠식해버렸다.

마르크스가 예견했듯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면 자본주의를 통해 충분한 부를 축적해야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지속적인 계급투쟁과 선동을 통해 인민을 도덕적으로 완성된 공산주의적 인간으로 고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그 공허한 믿음의 부질없음은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이라는 재난을 통해 증명되었다. 이처럼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중국은 사회주의를 이룩하기 위한 경제발전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개혁 • 개방 정책으로 세계 경제에 뛰어들었다. 중국이 시장 경제 체제를 받아들인 것은 자본주의의 길을 걷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 특색 사회주의’ 건설에 필요한 도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중국은 눈부신 성장으로 미국의 뒤를 바짝 쫓는 G2의 자리까지 올라서며 세계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 경제적 불평등과 지역 간 발전 속도 차이에 따른 내부 갈등, 만연한 부정부패로 말미암은 공산당 입지의 약화, 혁명 세대의 퇴장과 함께 퇴색해진 혁명 이데올로기 등의 부작용으로 중국 특색 사회주의 건설의 장래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낙관적인 것은 덩샤오핑 이후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권력 승계 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과 관료 경력을 쌓은 문민 간부들이 혁명 세대를 대체하여 집단영도체제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개인적 권위에 의존하던 구시대적 정치 투쟁에서 벗어나 안정적이고 제도적인 정치 체제의 기틀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뜨거웠던 별이 식으며 안정기를 맞이하듯, 중국 역시 정치적 안정을 되찾고 있다 .

중국 앞에 놓인 또 하나의 거대한 실험

제 중국이 풀어 할 과제는 덩샤오핑이 언급한 ‘사회주의 초급단계’에서 진화하여 후진타오 지도체계가 내세운 ‘민주주의와 법에 기초하고,공명정대하고,신뢰와 우의를 가지고,열정과 활력으로 충만하고,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고,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주의 사회’인 ‘사회주의 조화사회 건설’을 이룩하는 것이다. 정치가 안정을 되찾을수록 사회 및 경제적 안정에 쏟아부을 수 있는 노력과 시간적인 여유도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인민이 현재의 부조리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을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일부 식자들은 가속화된 개혁 • 개방 정책 때문에 중국이 소련처럼 화평연변(和平演邊)식으로 붕괴시킬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그러나 아직 중국 공산당의 개방 • 개혁 정책 뒤에는 여전히 중국 특색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으며, ‘국가안전위원회(State Security Committee, 國家安全委員會)’를 설립하면서 ‘허용되지 않은 것’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늦추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특히 국가안전위원회는 최근의 추세에 맞게 인터넷에 대한 정부의 감독과 통제를 강화해 나갈 것을 예고하고 있다. 올해(2016년) 일어난 중국 클라우드 서비스의 잇따른 폐쇄는 인터넷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제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작용한 것일지도 모른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 ‘가난한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등 덩샤오핑식의 실용주의 노선이 큰 성과를 얻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이 얻은 큰 결실 뒤엔 인민의 엄청난 불평 • 불만이 도사리는 것 역시 사실이다. 작가 량샤오성(梁曉聲)이 자신의 수필 『우울한 중국인(郁闷的中国人)』을 통해 진단한 중국인의 우울증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개혁 • 개방에 따른 각종 부작용을 덩샤오핑이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먼저 부자가 된 자가 다른 이들을 도와 부자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낙관하면서 문제들을 후세에게 떠넘겼다. 그런데 부자가 – 강제적인 세금 징수가 아닌 – 선의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 부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중산층이라는 경제적 지위를 어렵게 얻은 인민이 훗날 ‘사회주의 중급단계’로 도약할 기회가 왔을 때 순수히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나누어줄까? 이것은 로드릭 맥파커(Roderick MacFarquhar)의 『중국 현대정치사(The Politics of China: Sixty Years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를 배우고 이해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중국의 괄목할만한 현대사가 증명하듯) 공산주의 인간이 자본주의 인간으로 변하기는 물 마시듯 쉽지만, 과연 그 거꾸로도 가능할지. 대약진, 문화대혁명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거대한 실험이 중국의 앞날에 놓여 있는 듯하다 .

마치면서...

화인민공화국 건립부터 후진타오가 재임한 2009년까지의 60여 년간의 중국 정치사회를 포괄적으로 다루면서 종합적 평가까지 내린 로드릭 맥파커(Roderick MacFarquhar)의 『중국 현대정치사: 건국에서 세계화의 수용까지 1949~2009』은 실제적인 사회주의 건설이나 중국 정치 • 사회에 관심 있는 독자를 위해서는 보기 드문 훌륭한 책이다. 이러한 독자들에게는 한 장 한 장이 소중한 인연으로 다가와 그동안 가려웠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줄 것이지만, 막연하게 『중국 현대정치사』를 선택한 독자는 학술서이니만큼 교과서처럼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볼 때는 읽으면 득이 되었지 절대 잃을 것이 없는 책이지만, 선택에는 큰 용기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럴 때 용기 한번 발휘해서 광명이라도 찾을지 누가 알겠는가.

이 리뷰는 2016년 11월 06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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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30.

[책 리뷰]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불경스러운 소설 ~ 게 공선(고바야시 다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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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불경스러운 소설

원제: 蟹工船 by 小林多喜二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도,이곳에 비하면 그다지 대수롭지 않을 듯싶어.” (『게 공선』, 75쪽)

감히 불경스러운 소설

롤레타리아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는 『게 공선(蟹工船, 1929)』을 발표한 다음 ‘불경죄’로 기소당했다. 이듬해 보석으로 출옥되지만, 당시에는 비합법적인 공산당에 입당하여 지하활동을 펼치다 첩자의 밀고에 걸려드는 바람에 또다시 체포되고 3시간 이상의 잔혹한 고문 끝에 죽음을 맞이한다. 마지막 체포의 표면적 이유는 공산당 지하활동 때문으로 보이지만, 그에게 가해진 모진 고문의 원인에는 ‘불경죄’를 저지른 『게 공선』에 대한 불만도 있었을 것이다. 비록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공선』은 중편 분량의 작품이지만 당시 일본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서구식 자본주의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이제 막 돈맛과 함께 권력에 취한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봐야 할까? 심기가 불편해진 그들은 자신들이 흘린 떡고물을 먹고 사는 경찰을 수족처럼 부려 감히 반항적인 작품을 쓴 작가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줌으로써 자신들의 이권에 반항하는 모든 이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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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이 아니라 사람이 바글거리는 ‘똥통’

품의 주 무대는 오호츠크 해로 게를 잡으러 가는 ‘게 공선’이다. 그런데 게 공선은 ‘공장선’이지만, ‘선박’은 아니었기에 항해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장법이 적용된 것도 아니었다. 완전무결한 법의 사각지대 그 자체였다. 그래서 회사는 법의 빈틈을 이용해 게 공선에 승선한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부려 먹을 수 있었다. 1926년 9월에 실제로 일어난 ‘하쿠아이호(博愛丸)’ 사건에 작가의 추가적인 현장조사와 문학적 상상력이 더해져 탄생한 이 작품이 묘사하는 ‘사람에 의한 사람의 착취’는 사람이 한 짓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잔혹하기 이를 데 없다.

하코다테 항에서 같이 출발한 다른 선박이 하쓰코 호로 긴급 구조 신호 SOS를 보내왔을 때 회사에서 파견한 감독관은 그 배는 큰 보험에 들어 있기 때문에 가라앉는 게 오히려 이익이라며 끝내 구조 요청에 응답하지 않는다. 그 배는 끝내 구조되지 못하고 425명의 승무원과 함께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처럼 선박을 지휘하는 감독관들은 노동자들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의료 지원은커녕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는 그들의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자꾸 목에 걸릴 정도로 소화하기조차 어렵다. 오죽하면 작가는 이들이 먹고 자는 숙소를 ‘똥통’이라고 표현했을까. 구타와 가혹 행위는 기본이며 이런 와중에 사망자가 발생해도 뭐라 하는 사람도, 뭐라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야비한 감독관들은 혹시라도 노동자들이 단합하여 난동을 부릴까 봐 선원과 노동자, 잡일꾼 등 고용원들을 서로 이간질하여 경쟁시킨다. 이 모든 것을 국가를 위한 헌신이라는 명목으로 그들은 정당화시켰다. 그러하기에 군인도 이들의 무자비한 착취에 기꺼이 협력한다.

막노동 일꾼, 광부, 농부, 학생, 젖비린내나는 소년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각양각색의 게 공선 노동자들은 무지막지한 노동 환경에 적응하면서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직시해 간다. 선원과 보일러공이 없으면 배는 움직이지 않고 노동자가 일하지 않으면 동전 한 푼도 부자의 호주머니에 들어갈 수 없다는 단순 명확한 진리를 깨달으면서 차츰차츰 의식을 일깨운다. 그러다 마침내 일어나고야 말 일이 일어난다. 특별히 누가 선동한 것은 아니었다. 각기병으로 죽은 노동자의 이름만 잠깐 거명될 뿐 나머지 노동자들은 이름조차 거명되지 않을 정도로 작품은 철저하게 ‘집단 표현’에 중점을 둔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결코 혼자서 할 수 없고 혼자서는 의미가 없다는 듯 영웅적인 개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감독관의 횡포에 견디지 못한 게 공선의 노동자들은 분기하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약삭빠른 감독관이 근처 군함에 긴급 신호를 보내는 바람에 노동자들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당하고 만다. 비록 실패했지만 이들은 ‘뭉쳐야 산다’는 말에 숨겨진 진리를 뼈저린 경험을 통해 깨달음으로써 더 큰 도약을 위한 견고한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자본주의 독재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1993년에 일어난 대참사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의 사고 해역을 촬영한 수중 카메라에 우연히 찍힌 익사한 시체의 퉁퉁 부은 얼굴을, 그리고 세월호 침몰사고도 마찬가지이다. 이 두 사건 사이의 간격은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럼에도, 바뀐 것은 없었다. 우리는 생명이 무엇보다 소중한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은 환상이고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이상은 애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 그런 것일까?

지금도 가난한 아이들은 굶어 죽는다. 헤픈 감상에 젖은 내가 꾸역꾸역 힘겹게 자판을 두드리며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아이들은 그렇게 죽어간다. 아파트 단지 내의 음식쓰레기 수거통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멀쩡한 음식들로 매일매일 채워지지만, 그 작고 연약한 아이들의 허기로 고통받는 볼록한 배를 채워줄 음식은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고 꿈꾸던 그런 세상일까?

사회주의가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자본주의는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어렸을 때는 살아있는 생명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배우지만, 실상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문득 깨닫고는 서글퍼진 적은 없는가. 혹은 사람의 목숨조차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냉혹한 자본주의적 논리에 자신도 알게 모르게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몸서리를 친 적은 없는가. 지금도 세상은 변하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지만, 그 세상을 추동하는 기본 틀은 지금처럼 대안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자본주의일 것이기에 좌절감마저 느껴진다. 그래서 이 작품이 주는 충격은 히로시마 원폭급이며 메시지는 사시미 칼처럼 예리하다.

이 리뷰는 2016년 10월 30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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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27.

网易云音乐(NetEase Cloud Music, 무료 음악 감상) NoAD v3.2.1 한글판

중국 사이트에서 받은 광고가 제거된 网易云音乐(NetEase Cloud Music) 안드로이드 어플을 한글화했다. 최신 버전은 컴파일 후 태블릿에서 실행이 안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작동이 잘 되는 낮은 버전으로 작업했으며, 번역은 '발번역'이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길.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중국 음악사이트 안드로이드 어플 중에서 한글 검색되는 제품이 몇몇 있는데, 이 녀석도 그중 하나로 메모리도 비교적 적게 차지하고(약 150~200M), 뮤직 스파이를 사용해 본 사용자는 알겠지만, 网易云音乐은 노래도 꽤 많으며, 현재 듣는 노래와 유사한 성향의 가수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원래 天天动听(ttpod)을 작업하려고 했는데, 변조 방지가 되어 있는지 컴파일한 파일은 네트워크 에러를 내뿜으며 노래가 뜨질 않았다.

NetEase의 모든 노래를 듣기 위해서는 'ProxyDroid' 같은 프록시 어플을 통해 중국 IP로 접속해야 한다. 하지만, 'ProxyDroid'를 사용하려면 루팅이 되어 있어야 하니, 그럴바엔 차라리 Xposed를 설치하고 网易云音乐(NetEase Cloud Music) Unblock 모듈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 이 어플은 NetEase Cloud Music의 지역 및 다운로드 제한(무손실 제외)을 모조리 풀어버리는 매우 유용한 어플이다. 반면에 '쿠워음악'은 한국 IP로도 모든 음악을 제한없이 감상할 수 있다. 혹시라도 퍼갈 땐 출처라도 남겨주길.

참고로 '재생목록'은 다른 사용자가 직접 편집한 재생목록을 공유하는 곳으로 어떤 노래를 들을지 고민할 필요 없이 이것저것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어 편리하다. 마음에 드는 '재생목록'은 로그인이 되어 있다면 '컬렉션' 목록에 수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NetEase Cloud Music 어플 다른 버전(v2.9.2 ~ v3.7.3)은 컴파일 오류가 나거나, 컴파일이 되어도 실행 오류가 나면서 한글화 작업이 안 되는데(그래도 중국 해커들은 잘만 하지만) 그나마 이 버전이 작업이 가능해서 다행이다.

NetEase_noad_v3.2.1_kor_v2.apk

이 리뷰는 2016년 10월 27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2017년 12월 29일 추가: 이런저런 방법은 귀찮고, '저작권 및 지역 제한'구애됨 없이 자유롭게 음악을 감상하고 싶다면, 비록 한글판은 아니지만, 「网易云音乐(NetEase Cloud Music, 무료 음악 감상 및 다운로드) v4.1.2 ~ 저작권 및 지역 제한 언락」 버전을 사용하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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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24.

[책 리뷰] 기회주의자? 범죄자? 아니면 헌신적인 혁명가? ~ 호치민 평전(윌리엄 J. 듀이커)

Ho Chi Minh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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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주의자? 범죄자? 아니면 헌신적인 혁명가?

원제: Ho Chi Minh: A Life by William J. Duiker
그러면서 호는 이렇게 덧붙였다. 카를 마르크스의 꿈이 언제 실현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2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지만,그것도 아직 꿈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까. (『호치민 평전』, 556쪽)

헌신적인 혁명가에서 무원칙한 기회주의자까지

신적인 혁명가이자 노련한 공산주의 요원, 국제 정치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노련하고 현실적인 실용주의자, 억압받는 인민을 서구 제국주의의 굴레에서 해방하는 일에 헌신한 성자, 전 세계에 공산주의적 전체주의를 확산하는 일을 저지른 범죄자, 자신의 명예를 위하여 성실하고 소박하다는 평판을 이용한 무원칙한 기회주의자. 이렇게 극과 극을 오가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 있으니 다름 아닌 베트남 혁명가 호찌민 (胡志明, Ho Chi Minh: 2004년 12월 20일에 발표한 동남아시아 언어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호치민’은 ‘호찌민’으로 표기)이다.

한때는 신격화의 우려까지 낳았을 정도로 폭넓은 인민의 존경을 받았음에도 호찌민으로 알려지기 전의 생애에 대해서는 베일에 가려진 ‘호 아저씨’는 베트남을 식민지화한 프랑스 정부의 집요한 추적 때문에 오랜 시간 망명과 도피 생활을 했다. 그가 평생 사용한 가명은 50개가 넘을 정도라니 그의 과거가 베일에 가려진 것도 그렇게 무리는 아닌 듯싶다. 역사학자 윌리엄 J. 듀이커(William J. Duiker)는 20여 년의 노력과 현존하는 호찌민의 모든 자료를 수렴한 끝에 완성한 『호치민 평전(Ho Chi Minh: A Life)』에서 베일에 가려진 호찌민의 과거를 포함한 그의 인생의 모든 것을 추적했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호찌민에 대한 서로 엇갈린 다양한 평가들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역사적 자료와 해석이기도 하다.

의도적인 이미지인가? 아니면 타고난 성정인가?

찌민은 베트남민주공화국 주석이 되고 나서도 총독궁에 거주하라는 동료의 제안이 너무 호화롭다고 뿌리치고는 총독궁 구내의 조그만 오두막에 지낼 정도로 소박한 삶을 살았다. 온화하고 소박한 호찌민의 이미지가 진짜 그의 내면의 모습인지 아니면 꾸며낸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고 실제로 호찌민이 어떠한 마음을 먹고 살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며 후세는 그의 업적과 행위만을 보고 나름의 그를 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악한 행동을 일삼으면 타인은 그를 악당이라고 평가할 것이며,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선한 행동을 일삼으면 타인은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왜냐하면, 한두 번의 실수로도 본심은 쉽게 탄로 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런 면에서 호찌민은 자신의 소박하고 온화한 이미지를 끝까지 잘 지켰다. 이 또한 상당한 인격 수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레닌과는 달리 혁명가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면서 언행일치를 추구하려고 노력했던 점은 유학자 집안에서 공부하며 자란 영향도 컸을 것이다.

그러나 옥에 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호찌민의 옥에 티는 재물도 권력도 아닌 바로 여자다. 그는 혁명과 베트남 독립이라는 대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에서 여성 편력을 즐겼던 것 같다. 본문에 호찌민의 사생아는 그가 65세, 또는 66세에 낳은 아들 한 명만 나오지만, 그의 사후 나돌던 소문을 보면 사생아가 더 있는 것 같다. 또한, 중국 지도자들이 마련한 호찌민의 75세 생일잔치에는 호찌민을 위해 특별히(?) 젊은 여자들이 초대되었으며 몇 달 뒤 중국의 당 지도자 타오 주가 하노이를 공식 방문했을 때,호찌민은 갑자기 이 옛 친구에게 벗을 삼으려고 하니 중국 광둥성의 젊은 여자를 하나 보내달라고 요청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 요청을 보고받은 저우언라이(周恩來)는 고민 끝에 조용히 묻어두었다고 한다.

호찌민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베트남 독립을 위해 헌신적이고 성실한 삶을 살았으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사상적 도구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선택했다. 호찌민을 비롯한 베트남의 혁명가들은 조국을 식민지로 착취하는 형태로 자본주의 체제를 처음 겪었으며, 이 체제는 그의 동포들을 잔인하게 짓밟았기 때문에 사상적으로 사회주의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호찌민에게서는 당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받아들였던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교조주의의 경직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며 필요와 상황에 따라 수단은 언제든지 바뀌고 변형될 수 있다는 사상적 유연함이야말로 베트남 독립에서 호찌민의 가장 큰 기여가 아닐까 . 이 유연함이 부족했던 한반도는 전쟁을 겪으며 수많은 피를 뿌렸음에도 결국엔 분단국가로 고정되고 말았으며, 이후에도 사상적 유연함의 결핍은 소모적인 정치적 파벌 싸움의 소모되지 않는 밑거름이 되곤 한다.

그는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지속적으로 얻어내기 위해 자존심과 체면까지 팽개쳐가며 이들의 비유를 맞추고 아첨하면서 현실주의적인 줄타기 외교를 벌였다. 덕분에 베트남은 중소 갈등의 위기 속에서도 자국의 이익을 성실히 챙길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미국도 찬양하는 비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런 그를 보고 일부는 교활한 기회주의자라고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그 아첨의 목적은 사적인 이익의 추구가 아니라 대의, 바로 베트남 독립임이었으니 그의 애국을 향한 헌신과 의지만은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모자라지 않다.

마치면서...

족주의자인가 아니면 공산주의자인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소박한 이미지는 진짜인가 아니면 단순한 책략인가? 여전히 그늘 속에 감춰진 인물 호찌민에 대한 오늘날의 평가는 윌리언 J. 듀이커의 『호치민 평전(Ho Chi Minh: A Life)』을 통해 혁명가 호찌민의 삶과 베트남 역사의 역학 관계를 더듬어갈 뜻밖의 기회를 얻은 독자의 몫이다 . 또한, 기원전부터 이어져 온 중국의 침략과 간섭뿐만 아니라 식민 지배, 강대국들의 국가 이기주의적 편의에 의한 국토 분단,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말미암은 동족 간의 전쟁을 겪은 베트남 역사는 통한의 한반도 분단 역사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이러한 역사적 유사점은 넘실넘실 파도를 타고 먼바다를 건너온 유리병 속에 담긴 편지처럼 한국의 독자에게 특별한 공감과 메시지를 남긴다.

이 리뷰는 2016년 10월 24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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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20.

[책 리뷰] 독자의 기우에 허를 찌르는 또 다른 미스터리 ~ 거지왕(올리퍼 푀치)

The Beggar King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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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기우에 허를 찌르는 또 다른 미스터리

원제: Die Henkerstochter und der König der Bettler by Oliver Pötzsch
“레겐스부르크에서는 시민이 아니라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해!” (『거지왕』, 248쪽)

달갑지 않은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된 악몽

가우의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목욕탕 주인과 결혼해서 오래전에 먼 제국 도시 레겐스부르크로 떠난 누이동생 리즈베트가 중병에 걸려 위급하다는 급보였다. 다급한 퀴슬은 도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법원 서기 요한 레흐너의 허락도 받지 않고 치료에 쓸 약을 챙겨 급하게 숀가우를 떠난다. 그러나 퀴슬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잘 짜인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교묘하고 악의적인 함정과 가혹한 고문이었다.

한편, 숀가우의 제빵업자이자 시의원인 미하엘 베르히틀트는 자신의 하녀를 임신시키고, 하녀는 아무도 모르게 낙태하는 과정에서 시의원이 준 약초를 과다복용하고는 죽는다. 약초에 대한 지식이 있던 지몬과 퀴슬의 딸 막달레나는 음흉한 베르히톨트의 속마음을 꿰뚫어보지만, 마을 사람 중에서 그 누구도 사형집행인의 딸, 그리고 그 딸과 놀아나는 지몬의 말을 믿어줄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베르히톨트는 막달레나가 더는 이 일을 떠들지 못하게 사람들을 선동하여 위협을 가한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막달레나의 고모 리즈베트처럼 도시를 떠나기로 한다. 목적지는 고모가 있는 레겐스부르크로 정하고 간단하게 짐을 꾸린 두 사람은 도나우 강 위를 흐르는 뗏목에 몸을 싣는다.

‘본격’적인 미스터리의 맛이 조금은 느껴지는

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 『거지왕(Die Henkerstochter und der Koenig der Bettler)』은 아담한 숀가우를 벗어나 제국을 이끄는 거대한 중세 도시 레겐스부르크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예나 다름없는 우리의 고집 세고 호기심 많은 주인공들은 제국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는 음흉하고 거대한 음모에 맞서느냐 어느 때와 다름 없이 험난한 시련과 마주친다. 고문의 대가 퀴슬은 얼핏 이름만으로는 어떤 고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처녀의 무릎’, ‘스페인 당나귀’, ‘못된 리즐’ 등 자신이 즐겨 사용하던 고문 도구의 희생양이 되며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함정에 빠진 퀴슬은 감옥에 갇혀 가혹한 고문을 받으며 하지도 않은 짓에 대해 자백을 강요당하고, 뒤늦게 도시에 도착하여 이 사실을 알게 된 막달레나와 지몬은 퀴슬을 구하고자 안간힘을 짜내며 고군분투하는데, 이 과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이번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자 재미다.

숀가우를 떠나 도시에 도착한 막달레나와 지몬이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은 뗏목 마스터이자 외의원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카를 게스너이다. 그다음으로 카를 게스너의 소개로 찾아간 고래 여관에서 만나는 베네치아 대사 실비오 콘타리니가 있다. 그리고 지몬의 치료를 받은 거지의 소개로 만나게 된 ‘거지왕’ 나탄, 마지막으로 주인공들과는 그리 긴밀하게 접촉하지는 않지만, 사건의 배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레겐스부르크의 회계국장이자 시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파울루스 맴밍거가 있다.

이번 작품의 묘미는 주인공들과 얽히고설키는 주변 인물 중에서 누가 정의의 편이고 누가 악마의 편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그들은 언뜻 보면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그러한 때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쉽사리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치밀함을 시종일관 유지하기 때문에 누가 정의의 편인지 구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특히 일반적인 선입관에 사로잡혀 있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또한, 저자 올리퍼 푀치(Oliver Pötzsch)는 제국을 파괴하려는 음모의 핵심을 추리할 수 있는 소재를 작품 초반에 드러내는 대담성을 과시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켜 있기 때문에 독자는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으며 한여름이 훨씬 지났음에도 손은 올챙이들이 헤엄칠 정도로 땀으로 웅덩이를 이룰 것이다. 물론 아둔한 나는 모든 단서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완성된 지그소 퍼즐처럼 보기 좋게 맞추어진 다음에야 사건의 진상을 깨닫기는 했지만, 눈치 빠른 독자는 꼭 내가 밟은 길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드디어 드러나는 퀴슬의 과거

작들처럼 『거지왕(Die Henkerstochter und der Koenig der Bettler)』도 역사적 검증을 거쳤으며 거대한 부를 상징하는 화려하고 육중한 유력자들의 주택, 깨끗하게 포장된 거리, 위엄 있는 의회 건물과 성당으로 장식한 도시와 그 이면에 감춰진 지저분하고 악취 나는 그늘지고 후미진 골목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천대받는 사람들이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곰팡이처럼 기생하는 도시의 이중적인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놀랍지 않은가. 예나 지금이나 도시의 그늘진 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도시가 제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무자비한지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때론 적대적이기도 한 도시 속의 이 두 체계가 놀라우니만큼 조화를 이루고 산다는 것을.

아무튼, 『거지왕』에서 주인공들의 삶에 많은 변화가 오고 그들의 어둡고 침침했던 과거의 베일도 어느 정도 걷힌다. 특히 자신의 사랑을 방해하는 숀가우를 과감하게 뛰쳐나온 막달레나와 지몬의 운명이 어떻게든 결정되며, 그리고 15살에 아버지가 물려준 양손검을 등에 메고 용병으로 군에 입대한 퀴슬이 ‘두 사람 몫’을 한다는 이유로 하사관으로 승진하고 그런 와중에 겪은 악몽 같은 전쟁 경험이 퀴슬이 빠진 함정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쓸쓸하게 회상된다. 그것은 주변에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지옥처럼 불길이 타오르는 전쟁 중에 만난 아내 안나와의 금기시돼왔던 과거의 베일이 조금씩 걷히기도 하는 불편한 되새김질이기도 하다.

올리퍼 푀치의 전작 두 편을 이미 읽은 독자라면, 『거지왕』 역시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특히 앞의 두 작품의 주요 소재였던 ‘보물찾기’와는 전혀 다른 미스터리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비슷한 이야기가 되풀이되는 것은 아닐지에 대한 이유 있는 기우를 갖은 독자라면 아무 걱정 없이 이 작품의 첫 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2016년 10월 20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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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15.

AMD 크림슨(Crimson Legacy) 레거시 드라이버에서 OpenCL 사용법

Non-GCN Crimson and OpenCL

AMD Radeon Crimson 16.2.1 Legacy Driver는 OpenCL 2.0을 위한 드라이버이기 때문에 OpenCL 2.0을 지원하지 못하는 AMD Radeon HD 7xxxx 미만의 구형 VGA에서 이 드라이버를 설치하면 OpenCL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 구글링 도중 꼼수로 크림슨 레거시 드라이버에서도 OpenCL을 사용할 방법을 발견했다. 방법은 크림슨 레거시 드라이버 설치 후 재부팅 할 때 바로 안전모드로 진입한 다음 크림슨 레거시 드라이버의 OpenCL 관련 파일을 카탈리스트 15.11.1 드라이버에 포함된 파일로 교체하는 것이다. 문제점은 [Radeon 설정]의 [비디오] 탭 설정을 할 수 없다는 것.

카탈리스트 15.11.1 드라이버의 OpenCL 관련 파일을 모아놓은 OpenCL15.11.1x64.zip은 구글 드라이브 링크에서 받을 수 있다.

위 링크에 제시된 OpenCL 파일 교체 방법

1. Uninstall previous drivers with DDU.

2. Install 15.11.1beta if you don't have all the necessary files listed below.

3. Backup these files to another folder.

4. Uninstall 15.11.1beta with DDU.

5. Install latest Crimson drivers. Reboot straight into safe mode (you won't be able to replace atiumd6a and atiumdva without safemode).

6. Replace the files.

7. Normal boot.


Full list of files you need to make OpenCL work with Crimson:

system32

Quote:
amdocl12cl64.dll
amdocl64.dll
atiumd6a.dll
clinfo.exe
OpenCL.dll

syswow64

Quote:
amdocl.dll
amdocl12cl.dll
atiumdva.dll
OpenCL.dll

이 리뷰는 2016년 10월 15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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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13.

[책 리뷰] 우아한 美 vs 야성적인 美 ~ 검은 수도사(올리퍼 푀치)

The Dark Monk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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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美 vs 야성적인 美

원제: Die Henkerstochter und der schwarze Moench by Oliver Pötzsch
“저는 비명이라면 이미 질릴 만큼 들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치유 쪽에 좀 신경을 쓰고 싶어서요.” (『검은 수도사』, 267쪽)

자상한 신부의 죽음으로 드러난 보물의 수수께끼

로렌츠 성당의 코프마이어 신부가 독살당했다. 지나친 식탐으로 유명한 신부이기는 하지만, 이 뚱뚱한 신부는 아버지처럼 친근하게 서민을 보살필 정도로 자상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독살당해야 할 만큼 원한을 살 위인은 되지 못했다. 처음으로 신부의 시신을 살핀 지몬과 지몬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숀가우(Schongau)의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Jakob Kuisl)은 신부가 죽으면서 남긴 작은 메시지를 통해 지하에 오랫동안 숨겨져 왔던 납골당을 발견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신부의 유일한 가족인 여동생 베네딕타를 통해 신부가 성당 개축 공사 중 발견한 납골당에 대해 아우크스부르크의 주교와 베네딕타에게 편지를 보내 알렸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베네딕타는 오빠의 편지를 받자마자 말을 타고 달려왔지만 살아있는 오빠를 만나지는 못했던 것이다. 납골당의 먼지 쌓인 옛 무덤에는 템플기사로 보이는 유해가 담긴 무거운 석관이 있었고, 지몬과 야콥뿐만 아니라 검은 수도복을 입은 낯선 세 사람도 템플기사의의 비밀을 추적하고 있었다.

한편, 코프마이어 사건으로부터 사형집행인을 떼놓으라는 뇌물을 받은 숀가우 서기 요한 레흐너는 때마침 극성을 부리고 있던 강도단 토벌을 위해 결성한 토벌단의 대장으로 사형집행인을 임명한다. 야콥을 빼앗긴 지몬은 베네딕타와 함께 코프마이어 신부의 독살 사건을 추적하고 지몬의 민첩한 두뇌가 곧 두각을 나타내면서 놀라운 사실들을 하나둘씩 발견하게 된다.

한 때 템플기사단은 교황에게까지 돈을 빌려주었을 정도로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 부에 눈이 먼 프랑스 국왕 필립 4세의 음모 때문에 템플기사단은 모조리 소탕당했다. 그러나 기사단의 재산은 일부만이 발견되었을 뿐, 나머지는 종적을 감추었다. 지몬은 이 나머지 보물, 세상의 어느 나라 왕좌든 사들일 수 있을 정도의 보물이 숨겨진 장소에 대한 수수께끼의 시작이 납골당에서 발견한 템플기사의 유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야성적인 막달레나, 우아한 강적을 만나다

작 『사형집행인의 딸(The Hangman s Daughter)』에 이은 시리즈 두 번째 소설 『검은 수도사(Die Henkerstochter und der schwarze Moench)』의 주 미스터리도 보물찾기다. 약탈의 시대 ‘중세’와 보물찾기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일지 모르겠지만, 아직 읽지 않은 세 번째 이야기 『거지왕(Die Henkerstochter und der Koenig der Bettler)』에서도 보물찾기를 들고 나온다면 글쎄, 조금은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기우도 든다. 기우는 기우일 뿐, 간만에 발견한 색다른 추리소설을 어디 그리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특히 아버지 사형집행인처럼 한 성격 하는 막달레나와 뜨거운 학구열만큼이나 최신 유행에 겉멋이 잔뜩 든 땅딸막한 지몬 사이의 줄타기처럼 위태위태한 사랑이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편을 안 읽고는 배길 수가 없을 것 같다. 『검은 수도사』에서는 투박하고 거친 야성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막달레나의 강적으로 프랑스적인 우아함에 라틴어도 술술 외우는 지성미까지 갖춘 베네딕타가 등장함으로써 지몬과 막달레나의 사이는 예측불허의 위기로 치닫고, 두 사람의 관계는 가시밭을 걷는 것처럼 끊임없이 위기가 닥쳐온다. 지몬처럼 호기심의 갈증을 해갈시키고자 온몸을 위험 속에 던질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호기심을 자랑하는 나로서는 다음 편에서 이 불협화음 연인이 또다시 어떤 운명의 시련을 맞이하고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지 궁금해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회적 최하층인 사형집행인의 딸과 앞날이 창창한 의사 지몬의 결합은 당시에는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최악의 궁합이지만, 신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두 사람의 신분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할지, 아니면 결국 높은 장벽을 통과하지 못하고 사회적 요구에 순응하며 각각 다른 운명을 걷게 될지. 그래도 흐름을 놓고 보면 어떻게든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것 같기는 하지만, 뻔한 결말의 통속극을 보는 시청자들처럼 결말이 불을 보듯 분명할지라도 눈으로 기필코 확인해야 속이 후련한 것이 우리네 인지상정 아닌가.

마치면서...

지막으로, 『사형집행인의 딸』 후기에서도 언급했지만, 저자 올리퍼 푀치(Oliver Pötzsch)는 실제로 존재했던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의 후손 중 한 사람으로서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거쳐 작품의 배경을 매우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그 디테일 속에는 올리퍼 푀치(Oliver Pötzsch)가 상당한 자부심을 품는 가문의 조상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검은 수도사』를 포함한 시리즈의 중심이 되는 숀가우를 중심으로 한 경제, 문화, 사회, 정치에 대해 광범위한 묘사는 독자가 17세기 숀가우의 한 시민이 된다면 하루일과를 어디서 어떻게 보낼지 상상하는 데 전혀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세밀하며, 만약 중세를 갈망하는 모험가 기질이 다분한 독자라면 이만한 작품을 쉽게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리뷰는 2016년 10월 13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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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6.

[책 리뷰] 30년 참혹한 역사를 기록한 이 책에서 무엇을 ~ 베트남 10,000일의 전쟁(마이클 매클리어)

The Ten Thousand Day War  Vietnam book cover
review rating

30년 참혹한 역사를 기록한 이 책에서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

원제: The Ten Thousand Day War: Vietnam 1945-1975 by Michael MacLear
“수년간 베트남전에서 실시했던 전술이나 전략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었고, 단순한 교훈마저도 남기지 못했다.”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531쪽)

소름끼치도록 조용히 시작되었던 전쟁

식적으론 ‘전쟁’이 아니었던 베트남전의 시작은 훗날 벌어졌던 처참한 살육전과 비교해보면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그 서막은 1945년 4월 미국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 전략 사무국)의 아르키메데스 패티(A. Patti) 소령이 중국의 남쪽 국경 마을의 허름한 찻집에서 베트남의 국부(國父) 호찌민(胡志明)을 만나는 시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베트남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준비하고 있었고 미국은 이런 베트남을 도와 호찌민의 군대를 훈련,무장시킨다. 미군은 때론 그들과 함께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때 앞의 두 사람은 가까운 미래에 프랑스의 자리를 미국이 대신하여 이 조그만 땅에서 20세기 가장 길고도 가장 처참했던 전쟁이 펼쳐지라고 꿈엔들 상상했을까.

디엔비엔푸(DienBienPhu) 전투의 승리로 베트남은 오랫동안 갈망했던 독립을 쟁취하는 듯했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가 바뀜으로써 그들의 꿈은 멋 훗날로 미루어진다. ‘도미노 이론’이라는 강력한 반공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국가적 이성이 마비된 미국은 자유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베트남 문제에 개입하였고 베트남은 한반도처럼 분단국가의 절망을 맛볼 수밖에 없게 된다. 통일 국가를 위한 남북 총선거를 지지하던 제네바 협정은 무너지고 미국은 1964년 8월 5일 오전 11시,아무런 선전 포고도 없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베트남전에 직접 참전한다.

미국의 선택은 저주받은 늪이었고 독이든 성배였으며 어리석고 무모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무려 20여 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철저히 군사 목표물에만 제한되었다고 주장한 미군의 북폭은 수많은 도시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함으로써 많은 난민과 민간인 희생자를 만들었다. 막강한 화력과 막대한 물량을 지원받은 미군은 크고 작은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전쟁이라는 큰 맥락에서는 패배함으로써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치욕을 안은 채 베트남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북베트남에 의해 통일이 되면서 결국 미국의 개입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던 행위였음을 증명한다.

개미가 코끼리를 이기다

국의 자본주의적 오만과 과대망상적인 국가 이상주의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만 희생된 이 전쟁에서 북베트남은 정말 놀라운 의지와 투쟁, 그리고 단결력을 보여주었다. 베트남은 경제적으로는 빈곤한 나라지만,BC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긴 세월 동안 외세의 칩임에 대항하여 투쟁한 역사를 가진 문화적 자존심이 강한 나라이며, 13세기에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몽골의 쿠빌라이 칸(Kublai Khan )을 물리친 나라이기도 하다. 여기에 ‘호 아저씨’ 호찌민을 정점으로 한 정치 지도자들의 청렴성과 도덕성은 인민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주었고, 이 믿음을 기반으로 강대국들과의 싸움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불굴의 투지와 인내력을 발휘한 덕분에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호찌민은 마지막으로 ‘단결’이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는데, 베트남전은 굳게 뭉친 한 민족의 독립 의지를 꺾어버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매우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역사의 교훈이다 .

이에 반해 전쟁 중반을 넘어서면서 미군 병영에는 병사들이 장교에게 현상금을 걸거나, ‘수류탄으로 해치워!’라는 등 장교를 암살하라는 으스스한 은어가 유행하였고, 실제로 하극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기강과 사기는 추락했다. 또한, 참전 용사 데이브 크리스천은 “내가 베트남에 갔을 때 17세였다. 나는 베트남이 왜 중요한지 설명할 수 없었고,아무도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20 세가 되자 전투하는 방법은 알았지만,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는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라고 고백함으로써 당시 미군에게 전쟁에 대한 동기부여나 목적의식이 전혀 없었음을 회고했다. 야심만만하게 프랑스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젊은 대통령 케네디를 향해 드골(deGaulle)은 ‘미국은 끝없는 전쟁과 정치적인 수령에 천천히 휘말리게 될 것’이라고 진심 어린 충고를 했고, 이를 무시한 미국은 뼈저린 패배의 쓴맛과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얻었다.

30년 참혹한 역사를 기록한 이 책에서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

자 마이클 매클리어(Michael MacLear)는 기본적으로 『베트남 10,000일의 전쟁(The Ten Thousand Day War: Vietnam 1945-1975)』은 미국이 베트남전에 왜 참전했는지와 오늘날 미국과 베트남,그리고 베트남전에 관여한 국가와 국민에게 베트남전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한다. 그러나 1945년 4월 패티 소령이 호찌민을 만날 날부터 1975년 4월 30일 마지막 미군이 대사관의 성조기를 가지고 베트남을 떠나는 - 1858년 프랑스 전함이 다낭에 닻을 내린 이후 베트남 인민들이 처음으로 외국인들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 그날까지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서술한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에서 독자가 무엇을 보고 느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것은 보는 이의 가치관과 사상, 관점, 그리고 입장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필자는 베트남 인민의 독립 투쟁과 승리에서 한반도 통일의 가능성을 찾고 싶었다. 다만, 무력 통일보다는 긴장 완화와 화해라는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베트남전 전후 상황과 미군 철수 직후 일어난 북베트남 세력에 의한 무력통일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 그리고 강대국의 간섭과 민족의 단결력 부족으로 분단된 한반도는 결국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극복하지 못한 채 참혹한 전쟁을 거쳐 분단이 고착되는 민족적 비극을 경험했다. 이후에도 남한은 적극적으로 통일의 방편을 모색하기보다는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의 길을 국가 1순위로 지정했다. 덕분에 남한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물질적 풍요를 이루었지만, 자본주의적 이해득실에 익숙해진 우리는 통일의 대가로 지급해야 할 물질적 희생을 가늠할 수밖에 없었고, 근시안적으로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많아 보이는 통일은 점차 다음 세대로 미루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남북한은 현 체제를 방어하고자 국방력에 막대한 예산을 쏟을 수밖에 없었고 이로써 군사적 대치와 정치적 대립은 더욱 팽팽해짐으로써 남북한 동포의 이질감은 깊어만 가고 민족의 염원인 통일은 그만큼 멀어져갔다.

베트남 통일은 미국이 개입함으로써 30여 년이나 미루어졌다. 평화롭게 남북 선거를 통해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 미국의 개입으로 국토가 황폐화되고 무고한 수많은 생명의 피를 흘리는 뼈 아픈 대가를 치르고서야 얻게 되었다. 이념의 대립과 외세의 간섭으로 말미암은 분단 등 한반도의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결국, 분단된 민족의 통일은 외세의 간섭이 있거나 외세에 의존해서는 이루기가 매우 어려우며 설령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필요없는 대가를 지나치게 많이 지급하게 될 것이라는, 또한, 통일은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듯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확고한 신념과 의지, 그리고 어떠한 역경도 이겨낼 수 있는 인내력과 투쟁력,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 곳으로 집중시킬 단결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베트남 인민의 투쟁 역사는 말해준다.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을 번역한 역자(유경찬 분)는 사람이 사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비굴하지만 여유 있게 사는 요령과 궁핍하지만 당당하게 사는 자세로 사는 방법이 있는데, 베트남은 후자의 길을 택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통일의 대가로 의젓하게 궁핍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남한은 어떠한 길을 선택했고 어떠한 길을 걷고 있는가?

이 리뷰는 2016년 10월 6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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