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전쟁 | 하랄트 벨처 | 현재의 수단(Sudan)을 보면 인류의 미래가 보인다
Original Title: Klimakriege by Harald Welzer
기후변화의 발생과 향후 발전 전망에 비추어 볼 때는 자연과학의 한 대상이지만, 그 결과적 측면을 고려하면 사회과학과 문화과학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그 결과들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이지 결코 다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p165)
기후변화의 사회문학적 결과들
인종청소와 민족말살 등 외부에서 볼 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인 폭력을 보통 ‘일탈’이라고 부르며 그 가치와 의미를 축소한다. 그러나 『기후전쟁(Klimakriege)』의 저자 하랄트 벨처(Harald Welzer)는 인종청소와 민족말살이 현대성의 골목길로부터의 일탈 현상이 아니라 현대적인 사회발전들이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가능성 그 자체로서 생성되었으며 질서를 생산하려는 현대적 시도의 결과물로, 사람들이 감성적으로 느낀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현대적 시도들이 낳은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살 테러, 학살 등은 사회학적 민속놀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랄트 벨처가 20세기와 여전히 진행 중인 인종청소, 민족말살, 내전, 학살, 테러 등의 폭력이 현대 발전과정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가치를 비중 있게 다루고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기후변화가 불러올 기후전쟁의 양상과 그 확산 과정을 유추하기 위해서다.
자연과학자들이 기술한 기후변화 관련 책들이 반박하기 어려운 물리학적 증거를 토대로 기후변화를 확신하고 있다면, 이 책 『기후전쟁(Klimakriege)』은 기후변화가 가져올 전 세계적인 사회문화적 결과와 그 파급 효과를, 역시 반박하기 어려운 역사적 통찰 속에서 예견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닥칠 이 재난들은 지금까지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재난이기 때문에 그 결과들을 쉽사리 예측할 수는 없다. 예측의 어려움이 아무 예측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면,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기후변화가 1 • 2차 세계 대전을 넘어서는 대재앙으로써 인류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올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지우기가 어렵다.
기후변화의 재앙적인 결과가 ‘자연’적인 것으로 굳어질까?
지금까지 사회과학자들이 기후변화와 환경변화의 사회적 결과들을 도외시했다고 평가한 하랄트 벨처는 기후변화가 가져올 재앙들을 냉철하게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면서 그 재앙들을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까 하는 전략도 사회과학자가 책임져야 할 몫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기후변화가 일으킬 문제들로 가장 큰 피해를 받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더 무서운 것은 사회적 • 물리적 환경의 변화들은 절대적으로 지각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관찰자의 입장에 따라 단지 상대적으로만 지각된다는 ‘바탕 교체’ 효과 때문에 미래의 세대들은 기후재앙을 ‘자연적’인 걸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레이첼 카슨이 우려한 ‘침묵의 봄’이 만약 다가오는 올봄에 닥친다면 새가 지저귀는 자연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세대인 현재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은 커다란 충격을 받을 것이지만 ‘침묵의 봄’ 시대에 태어나서 자란 아이들은 ‘침묵의 봄’을 당연하게, 즉 ‘자연 상태’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과거의 역동적이고 활기찼던 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앞 세대가 남긴 다양한 기록을 통해 이들도 과거의 봄이 어떠했는지 보고 들으며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간접 체험과 상상은 이들에게 위안이 되기보다는 저주가 될 것이다. 생동감 넘치는 과거의 기록과 죽음처럼 고요한 현재의 ‘침묵의 봄’을 비교하며 위안보다는 분노를 느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기후재앙, 인류의 또 다른 폭력사를 완성할 것인가?
기후변화가 기후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견은 매우 충격적인 사실이지만, 톡 까놓고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하랄트 벨처는 홀로코스트, 르완다 학살, 베트남 전쟁, 각종 테러,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이며 인류 최초의 기후전쟁으로 기록된 수단의 내전 등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진 현대사를 조명하면서 폭력은 일탈이 아니라 현대적 발전과정의 부산물임을 예리하게 간파했다. 즉, 인류에게 폭력은 예측할 수 없는 돌발적인 상황이 아니라 때에 따라, 혹은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며 도구일 뿐이다.
홀로코스트, 르완다 학살, 테러 등 폭력으로 얼룩진 20세기 역사는 안정과 안보에 대한 위협이, 그것이 실제적 위협이었든 아니면 단지 지나친 기우일 뿐이었든 간에 상관없이 극단적인 폭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카트리나 사태는 인류가 자부해 온 문명이 재난 앞에서는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기후변화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국가들, 그리고 그 국가들에 의해 착취되고 희생됨으로써 기후변화에도 가장 취약한 국가들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불운한 나라의 불행한 난민들, 이 두 세력 간의 크고 작은 충돌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앞으로 기후재앙이 더 큰 압력으로 작용한다면 부유한 국가들이 자신들의 안정과 안보를 지키고자 반드시 폭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폭력’이 항구적으로 제외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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