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 | 시마다 소지 | 살인자로 돌아온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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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28일 오후. 경시청 1과 형사 요시키에게 뜻밖의 전화가 온다. 어리광을 부리는 듯 묘하게 콧소리가 나는 목소리, 바로 5년 전에 헤어진 아내 미치코의 전화였다. 도쿄에 볼일이 있어 잠깐 들렀다고 말한 그녀는 곧 떠난다고 했다. 요시키는 미치코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매달리지는 않았다. 이런 요시키의 부단함을 알아차린 걸까. 미치코는 매몰차게 배웅도 나오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그럼 건강 조심하고, 부디 위험한 짓 하다가 죽지는 말아줘. 안녕.”
이 말과 함께 전화는 끊겼다. 애써 명랑하게 꾸민 듯한 그녀의 음성에는 슬픈 듯 아닌 듯 묘한 여운이 담겨 있었다.
미치코는 12월 28일 금요일 23시 5분에 출발하는 아오모리행 유즈루 9호에 타고 있었지만, 요시키는 열차가 출발하고 나서 플랫폼에 도착하는 바람에 창에 기댄 그녀의 모습만 볼 수 있었다. 겨자색 셔츠블라우스, 그 위에 얇은 흰 카디건을 걸친 여인. 옷자락 부분에 회색 M자가 보였다. 점점 작아지는 그녀를 바라보던 요시키는 문득 미치코가 우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손을 흔들었는지도 모른다. ‘어째서 이 여자는 이렇게 슬프게 살아야 하는가.’ 요시키는 멀어져가는 유즈루 9호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틀 후, 아오모리 서에서 수사협력 의뢰가 왔다. 그저께 29일 유즈루 9호 침대차에서 흉기로 목 부분 경동맥이 절단된 여자 시체가 나왔는데 신원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죽은 신원불명의 여자는 ‘죽고 싶어, 이제 죽어버리고 싶어’라고 적힌 메모와 학을 본뜬 금속숟가락을 소지하고 있었다. 순간 숨이 막힌 요시키는 학을 본뜬 금속 숟가락이라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미치코는 금속 공예를 했고 전부터 학을 좋아했다. 또한, 죽은 여자는 ‘M’이라는 자수가 들어간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고 했다. 요시키는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휴가를 낸 요시키는 수사본부가 설치된 아오모리 서로 갔다. ‘죽고 싶어, 이제 죽어버리고 싶어’라고 적힌 메모는 미치코의 글씨가 틀림없었지만 아니었다. 관 속의 여자는 미치코가 아니었다. 잠시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린 요시키는 또 다른 걱정이 떠올랐다. 미치코가 피해자가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이제는 반대로 그녀가 가해자, 즉 살인자일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요시키는 미치코가 혼자서 작은 공예 가게를 운영했던 홋카이도의 구시로로 갔다. 그런데 벌써 구시로 서에서는 미치코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유즈로 9호 사건 때문이 아닌 열흘 전 미치코가 살던 아파트에서 두 명의 여자를 살해한 용의자로 찾고 있었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요시키는 어안이 벙벙했다. 살인 사건이 도시에 떠도는 무슨 괴담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미치코가 살던 아파트 앞에는 요시쓰네에게 거절당해 자살한 두 여자가 묻혔다는 큰 돌이 있는데, 그 돌에서 죽은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사람들은 ‘밤에 우는 돌’이라는 불렀다. 그런데 미치코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된 두 여자의 사망추정 시간에도 그 돌이 울었다고 목격자들은 진술했다. 또한, 살인사건이 있어났던 밤에 갑옷 무사의 망령이 나타났으며 1층 관리실에서 관리인과 함께 마작을 했던 학생들이 찍은 사진에도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막상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갑옷 무사의 망령을 보지 못했다고 입을 모아 말해다. 또한, 관리인은 자신이 지키고 있던 아파트의 하나뿐인 입구로는 죽은 두 여자가 그날은 절대로 출입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죽은 두 여자에게는 거액의 보험금이 들어 있었지만, 남편들에게는 아내의 사망추정 시간에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요시키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틀뿐이었다. 이틀 후면 미치코에게 수배령이 내려질 것이다.
독자에 따라서는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법한 괴담에 둘러싸인 소설의 사건이 다소 현실과는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건 곳곳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괴기는 『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北の夕鶴2/3の殺人)』, 아니 시마다 소지(島田荘司) 특유의 ‘색깔’이기도 하다. 여기에 주어진 시간에 사건을 해결하고 헤어진 아내를 찾아야만 하는 요시키의 절박한 상황, 그리고 잘 짜여진 추리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철저하게 준비된 대형 트릭은 기괴한 ‘색깔’과 꽤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이로써 ‘색깔’은 더욱 선명해지면서도 현실과의 괴리감은 철저하게 부정되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사건의 흐름에 독자는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간다.
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추리 소설이지만, 여기에 한가지가 더 보태졌다. 바로 사랑 때문에 진지하게 고뇌하는 형사 요시키의 끊임없는 자아 성찰이다. 보통의 추리 소설에서는 보기 어려운 명탐정의 고민이다.
요시키는 사라진 헤어진 아내 미치코의 행방을 추격하고 동시에 미치코와 엮인 미궁에 빠진 사건을 추리하는 바쁜 와중에도 끊임없이 미치코와 함께했던 과거를 회상한다. 다소 버릇없이 자란 좀 특이한 성격으로 평소에도 제멋대로 행동했던 그녀가 이유도 명확히 말하지 않고 제멋대로 떠났지만, 6년이나 같이 살았음에도 그녀를 끝내 이해해주지 못했던 자신의 무심함을 원망하며 미치코가 갑작스럽게 떠나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는다.
여자들은 말이나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 남자의 애정 따윈 알 수 없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진심을 알리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 자신의 몰인정을 원망한다. 아내에게 어떤 이유가 있든지 항상 함께 있어 주고, 적어도 늦은 밤에라도 같이 있어 주고 고민을 들어주는 평범한 생활을 하지 못한 자신의 게으름을 원망한다. 일과 아내 중 어느 것이 중요하냐는 짜증 날 정도로 흔한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했던 자신의 우유부단을 원망한다.
결국, 요시키는 의지하기에 부족한 남편이었다고 자책하며, 시험받는 기분으로 이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사표도 각오했고 당연히 목숨도 바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미치코를 위해서, 그리고 진정한 남자가 되지 못한 자신을 위해서이다.
대지주의 외동딸로 태어나 지역 농민들에게 공주처럼 대접받으며 자란 미치코는 어린아이처럼 자주 토라지는 여자였다. 개를 구하다 차에 부딪혔을 때 ‘뭐야, 고작 개새끼잖아. 애라면 몰라도!’라고 씨부렁거리는 개를 칠 뻔한 운전자의 말을 듣고는, ‘개니까 구한 거야!’라고 당돌하게 반격했다. 또한, 그녀는 병적으로 작은 병과 나방, 그리고 모리오카 집의 반야 가면이 있는 방을 무서워했다. 이 모든 것은 그녀가 함께 살기에는 상당히 까다로운 여자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요시키는 이혼의 원인을 두고 그녀를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문제점을 먼저 의식하고 반성한다. 그리고 괴한의 습격에 이은 교통사고에도 오뚝이처럼 쓰러지지 않고 거북이처럼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망가진 상태에서도 목숨을 바쳐 미치코를 구하겠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지만, 정말 멋진 녀석이다.
이혼한 아내를 못 잊는 요시키의 회고와 고민은 어쩌면 연인과 이별한, 그리고 이혼한 경험이 있는 남녀라면 한 번쯤 겪는 보편적인 문제이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고 되풀이되는 인생의 굴레이기도 하다. 똑 부러지게 얘기하면 ‘있을 때 잘해’인데, 사람 사는 게 어디 그렇게 쉽게 마음먹는 대로 되나.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원만히 마무리될 상황에서도 그 한마디를 못 하고 왜 그리 구구절절 핑계와 변명을 늘어놓는지. 사람이란 때론 알 수 없을 정도로 가증스러운 동물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
아무튼, 도가 지나치지 않은 적절한 괴기스러움과 허를 찌르는 대형 트릭, 그리고 소설의 ‘색깔’을 퇴색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산뜻한 덧칠을 해주는 요시키와 미치코의 극적으로 진행되는 로맨스는 다양한 독자를 만족하게 할 수 있는 가지가지 요소를 충분히 갖춘 것 같다.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너를 이해시킬 수 없었다. 이제는 몸으로 증명해 보이겠다. 내가 얼마나 너를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지금 보여줄 것이다. (『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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