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24

에너지 디자인 | 미래에도 지금 같은 에너지적인 삶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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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디자인 | 바츨라프 스밀 | 미래에도 지금 같은 에너지적인 삶이 가능할까?

우린 이미 에너지의 노예

인류 초창기 가축, 나무 등의 재생에너지를 시작으로 최초의 기계적 장치인 물레방아, 풍차를 지나 산업혁명을 이끈 석탄과 화석연료 시대의 거두 석유를 거쳐 21세기를 조금 넘어선 지금은 천연가스로의 에너지 전환이 상당 부분 이루어지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인류 문명은 과거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류가 대책 없이 소비한 화석연료로 말미암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때문에 그 번영이 한낱 물거품이 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다시 한번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에너지 디자인(Energy at the Crossroads: Global Perspectives and Uncertainties)』의 저자 바츨라프 스밀(Vaclav Smil)이 현대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속성은 바로 우리가 누리는 문명이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하는 고도의 에너지 집약형이라고 설명한 것처럼 우리는 일상적인 생활뿐만 아니라 경제 및 사회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에너지원을 소비한다. 약속한 시각에 울리며 주인을 깨우는 똑똑한 알람 시계 소리에 깨어나는 이른 아침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자장가 삼아 잠드는 야심한 밤까지, 그리고 우리가 꿈을 꾸는 와중에도 더위를 식혀줄 에어컨이나 선풍기, 일용할 양식을 언제나 신선하게 보관해주는 ‘쿨한’ 냉장고에 이르기까지 365일 24시간, 아니 단 1초라도 우린 에너지의 혜택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에너지 없는 문명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에너지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에너지의 노예’나 마찬가지다.

에너지가 주는 각종 혜택과 편리함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실로 상상하기조차 싫지만, 그렇다고 이런 것들이 인류 문명이 파멸로 치닫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미 시작한 기후변화와 기후재앙 속에서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비관적인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아쉽게도 미래적인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여러 난관에 부딪혀 있다. 상용화된 재생에너지 기술 중에서 일반 대중이 마땅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저렴하면서도 기존 에너지 체계를 효율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적당한 기술이나 상품이 별로 없다. 현재의 화석연료 발전소를 대체할 만한 가장 유력한 재생에너지로는 풍력 발전이 거론되지만, 풍력 발전은 지역과 시간에 따른 발전량 차이가 상당히 커서 전략적으로 기존의 발전소를 대체하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이다. 댐을 이용한 수력발전은 농업 및 생활용수 제공과 홍수 예방 기능의 장점도 있지만, 수중 생태계 파괴와 저수지에서의 온실가스 발생 등의 환경 문제가 있다. 또한, 대량의 이주민 발생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사람을 생각하지 않은 댐 건설로 발생한 실향민의 고통은 문순태의 소설 『징』에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몇 세대 동안은 현재처럼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에너지 생활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아마도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것이 앞으로 석유나 천연가스가 고갈되지 않고 얼마 동안 현재의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될 수 있는가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바츨라프 스밀이 무수히 많은 예로써 제공한 에너지와 관련한 기술적 예상의 오류와 장 • 단기 유가 예측의 실패 사례들이다. 내가 중 • 고등학교 때 수업을 들을 때만 해도 석유는 앞으로 30~40년 후면 고갈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금도 역시 30~40년 후이다. 마찬가지로 전기 자동차가 처음 선보였을 때도 10년 안에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자동차가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할 것이라고 떠들었지만 그로부터 대략 20여 년이나 지난 지금도 역시 10년이다. 핵에너지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화석 발전을 대체할 가장 유력한 에너지로 호평을 받았지만, 현재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과 폐기물 처리 문제 때문에 잘해야 현상 유지이거나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사양길을 걷고 있다.

Energy at the Crossroads: Global Perspectives and Uncertainties by Vaclav Smil book review

마냥 기댈 수만은 없는 화석연료

그렇다면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량에 대한 지금의 예측 역시 크게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 더불어 나무에서 석탄으로, 그리고 석유로의 전환과 천연가스의 개발은 자원 고갈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연료가 값싸고 질 좋기 때문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앞으로 혁신적이고 친환경적인 에너지로의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석유와 천연가스는 고갈되기도 전에 소비 감소로 이어지면서 점차 사라지거나 지금의 석탄처럼 일부 산업에서만 간신히 명목을 유지해나갈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1985년 이후 낮은 석유 가격에도 상대적으로 낭비가 심한 미국에서조차 석유 집약도가 감소한 것에서 보듯, 세계 경제의 석유 집약도가 감소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미 석유에서 천연가스로의 에너지 전환은 시작했다. 만약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의 고갈로 가격이 올라가면 여러 국가와 에너지 회사는 지속 가능한 재생에너지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또한,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진 시기는 사회 전체에 엄청난 혜택을 가져다주었다.

그렇다고 화석연료는 낭비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바츨라프 스밀의 말대로 지금처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시대가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러한 시대가 인류 문명이 존속하는 기간 내내 지속할 수는 없을 것이며, 화석연료가 일으킨 환경 문제는 이미 전 지구적 문제로 확대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화석연료는 미래에도 충분할 것이라는 주장만 믿고 아무 대책 없이 낭비하다 화석연료가 정말로 고갈의 조짐을 보이거나 지구온난화가 터닝포인트를 넘어 가속되면 낭패 중의 낭패다. 반대로 수십 년 아내로 화석연료가 고갈할 수 있다는 비관론에 맞추어 현재의 풍요로움을 버리고 다시 원시시대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여기서 지구에 사는 모든 문명인에게는 너무나 중요하면서도 누구나 수용 가능한 대책을 제시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 하나가 제시된다.

‘미래에도 지금처럼 적절한 에너지와 함께하는 풍요로운 삶을 누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역시 결론은 하나다

에너지 전환 효율을 높이면 될까? 하지만 역사적으로 에너지 전환 효율이 높아질수록 에너지 사용량은 줄어드는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면서도 에너지 사용에 일정한 제약을 가해야만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량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바츨라프 스밀의 단순 명확한 주장처럼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지구온난화가 많은 과학자의 우려만큼 지구 기후에 큰 변화를 주지 않는다고 해도, 혹은 기후변화의 불확실성을 인정한다 해도 에너지 소비량 자체를 줄이는 ‘후회하지 않는’ 전략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에어로졸의 배출이나 발생, 광화학 스모그와 산성 강하물, 수질오염, 토질 악화 등을 줄임으로써 생태계는 복원되고 그에 따라 감소한 생물 다양성도 복구될 수 있다. 생태계가 복원되고 생물 다양성이 증가하면서 지구의 자연환경이 불로장생의 묘약을 먹은 도사가 회춘하듯 짙고 푸른 녹색의 생동감 넘치는 행성으로 되돌아가기를 사람들 대부분이 바란다는 것은 확실하다는 점에서 에너지 소비 감소 정책은 우리의 후손에게 후회와 실망보다는 잘했다는 생각을 더 들게 할 것이다. 또한, 이런 정책이 장기적으로 경제적 이익도 가져다줄 것이라고 바츨라프 스밀은 예상한다.

Energy at the Crossroads: Global Perspectives and Uncertainties by Vaclav Smil book review

마치면서...

거부할 수 없는 에너지 제국의 비참한 노예가 되어버린 인류 문명의 에너지 역사서가 바로 『에너지 디자인』이다. 지난 100여 년간의 에너지 산업의 성공과 실패와 다가올 미래의 에너지 산업의 변혁, 현재 진행 중인 화석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에너지가 환경과 삶의 질에 끼치는 광범위한 영향, 에너지 산업에 대한 정량적 예측에 대한 반론과 규범적 실천계획, 불확실한 화석연료의 미래, 비화석 연료의 가능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에너지 절감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에너지와 인류 문명 사이의 역학 관계를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에너지와 에너지 정책이 문명뿐 아니라 개개인의 삶에 끼치는 지대한 영향과 그 복잡한 역학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에너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얻음과 동시에 긍정적인 미래 에너지 사회를 그려볼 수 있다. 다양한 도식과 많은 예제를 활용함으로써 입문자를 배려한 점이 상당히 돋보이지만, 그냥 무턱대고 읽기에는 전반적으로 꽤 난이도가 있는 교양서적이므로 차분하게 볼 것을 권장한다.

겉치레가 에너지 절약을 이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화려한 제품을 위해 에너지가 더 많이 나간다. (『에너지 디자인』, p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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