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그리고 일상적인 생각을 쓰고. 이 모든 것을 음악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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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6. 28.

[책 리뷰] 러시아의 비속함을 말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다 ~ 죽은 혼(고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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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비속함을 말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다

Original Title: Мертвые души by 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 Гоголь
그럼에도 매 순간 뭐든지 착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갑자기 무슨 바람이라도 불었는지, 자선 모임, 이런저런 장려 모임, 그리고 정체 모를 것들을 세운다. 목적은 아름답다. 하지만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은 아마 우리가 처음부터 갑자기 만족해 버리고, 이미 다 잘되었다고 느끼는 데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죽은 혼(Мертвые души)』, p269)

서구적인 개혁보다는 강력한 리더를 선호한

편 『외투(Шинель)』와 『코(Ηос)』, 그리고 니콜라이 고골(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 Гоголь)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감찰관(Ревизор)』 등에서 기발한 착상과 재치있는 문장으로 관등 사회를 풍자했던 고골은 『죽은 혼(Мертвые души)』에 그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고골 자신이 두 번이나 『죽은 혼』 2권의 원고를 불태웠다는 일화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그만큼 일생의 대작을 완성하고 말겠다는 강렬한 의지와 절실함이 그의 심정을 압박했다는 방증이다.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간 ‘코’가 의젓한 제복을 입고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관료 행사를 한다는 기상천외한 소재를 사용한 『코』처럼 죽은 농노를 사러 다니는 기괴한 일을 하는 치치코프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감찰관』처럼 러시아 관직 사회의 부정과 부패를 재치있게 풍자하고 있으며, 『외투』에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를 통해 비천한 하급 관리를 묘사했듯 작품에 등장하는 무기력하고 어리석은 지주와 나태한 농노, 권태로운 시골 풍경을 통해 러시아의 비속함을 표현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무기력과 가난으로 말미암은 러시아의 비속함에서 벗어나고자 고골이 제한한 해법은 농노 제도 폐지 같은 급진적인 개혁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을 나왔지만 방탕함과 무질서로 영지 관리에 실패한 지주 흘로부예프는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그들이 살아갈 능력을 키워줄 모범적인 모델이 필요하다며 한국의 60, 70년대 개발독재처럼 러시아인은 독촉하는 사람이 없으면 일을 못 한다고 비꼰다. 즉 모두를 지배하는 한 명의 우두머리가 없으면, 지극히 질서 정연한 혼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골은 제2권에서 현명하고 근면한 지주 코스탄조글로를 등장시켜 러시아가 지금의 비속함에서 벗어나려면 농노제 폐지 같은 급진적인 개혁과 무분별한 서양식 문물의 도입보다는 모범적인 지주의 훌륭한 통솔과 농민의 자발적인 노동이 혼연일체가 되어 농사를 근본으로 삼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치치코프 역시 자신의 부도덕함을 본보기가 되지 못한 아버지 탓으로 돌리며 본보기가 규범보다 더 강하다고 발명한다. 실제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마을과 주민들의 상태는 그 땅을 지배하는 지주의 근면성과 성실성에 비례한다.

이로 미루어보면 러시아의 위기를 타개하려면 서구적인 개혁보다는 러시아를 이끌 강력하며 모범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고골은 본 것 같다.

종교를 통한 도덕적 완결성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살짝

편, 민첩한 처세술만으로도 N시의 유지들로부터 성대한 환영과 귀부인들의 총애를 받는 주인공 치치코프는 몇 번의 좌절과 실패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자 오뚝이처럼 끊임없이 다시 일어서는 근면 성실한 노력파이다. 그렇다고 그가 도덕적으로 모범적인 인간이라는 뜻은 아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다음번 인구 조사 때까지 죽은 농노에게도 인두세를 부과하여 지주들에게 부담을 안겨주었는데, 치치코프는 바로 이러한 사회 제도의 부조리를 간파하여 죽은 농노를 매수하러 다니는 약삭빠른 인물이다.

제2권에서 치치코프는 지주 코스탄조글로를 만나 커다란 깨달음과 동시에 자신도 코스탄조글로 같은 지주가 되어 훌륭한 영지 관리와 아름다운 가정을 일구는 꿈을 꾸지만, 그의 사기 행각이 총독에게까지 보고되는 바람에 결국 그는 모든 재산과 문서가 압수당하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자신의 몰락이 곧 현실로 닥쳐왔다는 위기를 느낀 치치코프는 코스탄조글로가 러시아를 이끌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추켜세운 바 있는 전매 독점 상인 무라조프에게 애걸복걸하며 그동안 굳세게 지켜온 체면이며 자존심 등은 한순간에 모두 무너져 내린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치치코프는 무라조프의 종교적 훈계를 받아들여 감옥에서 나가게만 해준다면 참회하는 기독교인의 소박한 삶을 받아들이겠다고 굳게 약속하지만, 치치코프가 고용한 법률 고문이 관리들에게 뇌물을 먹이고 도시에 흉흉한 소문들을 퍼트려 모든 것을 뒤집어 놓는 바람에 치치코프는 자신의 모든 재산과 문서를 가지고 유유히 감옥을 나오게 된다. 이로써 그가 감옥에서 굳게 맹세했던 개과천선은 작심삼일이 되어 버리고 치치코프는 다시 탐욕스러운 옛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편, 몰락한 지주 흘로부예프는 무라조프의 도움으로 기독교인으로의 새 삶을 받아들인다.

제2권에서 치치코프의 탐욕의 고삐와 도덕적 불순함을 종교적 수행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고골이 모든 것을 비우고 종교적으로 전향한 것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며, 종교를 통한 도덕적 완결성을 추구하는 것은 톨스토이의 『부활』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종교적 이유 때문인지 제2권은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마치면서...

러나 제1권은 작품의 심오한 예술적인 측면을 제외하고서라도 매우 재미있고 유쾌한 ‘읽기’를 제공한다. 지극히 평범한 두뇌를 가진 나는 전문적인 비평가나 예리한 독자처럼 이 작품에 내포된 고골의 사상, 문화, 종교, 예술적인 면 등을 파헤칠 능력은 없지만, 고골의 완숙한 문학적인 기교와 재치 넘치는 익살스러운 표현, 인물들의 행동을 역동적으로 세심하게 묘사한 탁월한 문장과 생동감 넘치는 작중 인물의 설정에는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 리뷰는 2015년 6월 28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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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6. 21.

[책 리뷰] ‘라면’, 그리고 나의 학창 시절 ~ 도쿄라멘(베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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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그리고 나의 학창 시절

Original Title: 도쿄라멘 by 베쯔니

라면과 뗄 수 없었던 나의 학창 시절

면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한국에서 태어난 이상 야심한 밤에 한국인의 출출한 배를 달래주는 라면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영상 매체의 직간접 광고와 크고 작던 어느 마트를 가던 터줏대감처럼 턱 하니 한 자리를 차지하며 위용을 뽐내는 라면은 낮이고 밤이고 시도 때도 없이 허기지는 우리의 가련한 배 속을 자비롭게 채워주는 기특한 녀석이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점심을 거의 매일 라면과 함께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라면의 유해성에 대한 자각이나 비판적 인식이 눈을 뜨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의심조차 없었던, 그저 배부르면 장땡이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옆에 같이 붙어 있던 중고등학교 매점에서 라면을 먹었었는데 가격은 250원이었고 국물만 사면 50원이었다(참고로 매점에서 팔던 삼X 호빵도 50원이었던 시절이다). 그런데 라면 국물이 일반적인 스프 맛이 아니었으며 그 맛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맛있었다. 그 후 5학년 무렵에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상계동으로 이사 가고 난 전농동에서 강 건너 강동구로 이사 오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먼 통학 거리 때문에 전학해야 했고, 새로 다니게 된 학교에는 매점이 없었다. 그래서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담치기’로 학교 옆 아파트 지하상가에서 점심을 해결하면서 만난 것이 바로 라볶이였다.

B상가 지하에 있다고 해서 ‘B 뽀빠이’라고 간판을 건 아파트 지하상가의 분식집 할머니가 만들어 준 난생처음 먹어보는 라볶이는 모양도 신기하고 맛도 역시 최고였다. 가격은 천 원이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내 생각으로는 그 당시(80년대 중후반)에는 지금처럼 라볶이가 아직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근처 분식집에서도 라볶이를 파는 곳은 없었다 .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매점에는 우동과 라면, 그리고 밥류의 식사를 한 가지씩 팔았다. 이때도 역시 난 이 중에서 가장 저렴한 700원짜리 라면을 먹었는데, 한창 허기진 나이였음에도 그다지 맛있다고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얼마나 형편없었느냐 하면 고등학교 졸업한 해에 학교 축전 일로 후배를 찾아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오랜만에 다시 먹어본 그 맛은 가히 ‘폭력’이었다. 역시 시장기가 최고의 반찬이었던 것이다.

너무 빨리 등장했던 ‘라멘’

러던 중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진짜 일본식 라면을 먹어봤다. 1994년 강동구 길동 사거리 롯데리아 옆 건물 1층에 일본 라면 전문점이 들어섰는데, 아마도 그 당시에는 정말 보기 드문 가게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라면 한 그릇에 거금 4,500원을 주고(아마도 그 당시 일반음식점의 백반류가 보통 3천 원 정도 했을 것이다) 먹을 형편을 논하기보다는 그러한 돈이 수중에 있었더라도 선뜻 사 먹을 배짱이 안 되었다 . 차라리 그 돈이면 바로 옆 건물 1층 레코드 가게에서 카세트테이프 앨범을 샀을 것이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여자친구의 도움으로 먹게 되었는데, 가게에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을뿐더러 그 맛은 ‘어, 이런 것을 4,500원씩이나 주고?’였다. 아마도 인스턴트 봉지 라면에 길들어진 나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진짜 육수로 끓인 그런 고급스러운 맛은 시기상조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가게는 몇 달 못 가서 문을 닫았다. 한국에는 돼지 뼈나 닭 뼈로 진하게 육수를 우려내고 기름에 튀기지 않은 수재 면발의 일본식 진짜 라면보다는 인스턴트 봉지 라면이 먼저 선을 보였고, 하필 그 당시에는 국민 대부분이 배고픈 시기였던 데다가 저렴한 가격으로 한 끼를 거뜬히 때울 수 있는 먹을거리가 별로 없었던 모든 면에서 부족한 시기였기에 라면은 곧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음과 동시에 라면은 싼 음식의 대명사가 되었다. 요즘에는 인스턴트 라면에도 고급화 바람이 불면서 다양한 제품들이 나오고 경제적 풍요 덕분에 다양한 먹을거리를 찾게 된 우리는 일본식 정통 라면에도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지만, 일본처럼 라면 한 그릇을 먹으려고 한 시간 이상 기다릴 인내심이 한국 사람에게도 있는지 모르겠다. 나 같은 경우는 맛에 그리 까다롭지 않기에 아무리 맛있다는 소문이 난 집이라도 줄 서서까지 먹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 생각한다.

진짜 라면은 어떤 것인가?

쯔니의 『도쿄라멘』은 라면의 본고장 일본 각 지방의 특색이 담긴 다양한 소스와 육수로 국물을 낸 ‘라멘’과 그 라멘을 파는 식당을 소개한 책이다.

라멘을 끓이는 냄새가 아주 좋아 곰도 불러들인다는 무시무시한 ‘곰라멘’, 통조림처럼 깡통에 들어 있어 바로 뚜껑을 따서 바로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캔라멘’, 한 그릇에 10만 원이 넘는 최고급 라멘과 그 가격에 걸맞은 회원제 라멘 전문점 등 기상천외한 발상의 나라답게 다양한 라멘과 식당이 소개되어 있다. 더군다나 지은이 베쯔니는 각 라멘집을 순방하며 직접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먹음직스러운 라멘의 생생한 컬러 사진까지 친절하게 책 속에 담아 야심한 밤에 무방비 상태에서 이 책을 감상할(?) 독자의 허전한 뱃속을 요동치게 하기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다. 고로 야심한 밤에 이 책을 보며 평소의 금기를 깨고 무의식적으로 가스레인지에 물을 끓일 냄비를 올려놓는다고 하더라도 애꿎은 책을 탓할 수는 없으리라. 그보다는 본인의 나약한 의지력을 탓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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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6. 7.

[책 리뷰] 몇 가지 오류에도 충분히 흥미로운 ~ 한 중 일 밥상문화(김경은)

Korea-China-Japan-and-Food-Market-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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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오류에도 충분히 흥미로운 삼국의 밥상문화

Original Title: 한 중 일 밥상문화 by 김경은

음식은 인류의 삶을 응축하고 있다. ….

각 나라의 다양한 음식은 사회구성원들에게 대대로 전승됨으로써 문화적 형태를 갖추게 된다.… 형성된 음식문화에는 특정 사회집단의 의식구조와 생활방식 및 행동양식이 함축되어 있다. 각 나라의 기호식품이나 대표적 음식을 살펴보면 문화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 중 • 일 동양 3국의 문화는 ‘쌀’이라는 동일한 문화의 뿌리를 갖고 있다. …. (『한 중 일 밥상문화』, 머리말 중에서)

젓가락 모양에서 드러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게는 한 나라나 민족, 좁게는 특정 사회집단이나 지방의 문화를 투영하는 ‘밥상문화’는 그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필수 코드이자 그들의 독특한 취향을 나타내는 색깔이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공통된 식생활을 가졌음에도 서로 비슷한 점만큼이나 다른 점도 많은데, 그것은 생태 환경 및 지정학적 차이와 공존과 대립, 갈등을 반복해 온 기나긴 시간 동안 뚜렷하게 갈라진 민족성의 구별로 저마다 문화적 진화의 갈래를 달리했기 때문이다. 그 뿌리는 ‘쌀’이라는 곡물에서 시작되었지만, 이 쌀을 기본으로 하는 삼국의 밥상에는 서로의 얼굴 생김새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것처럼, ‘공통점’과 ‘차이점’이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삼국 모두 식사할 때 포크나 나이프가 아닌 젓가락을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둥그런 식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하는 중국은 멀리 있는 음식도 쉽게 집을 수 있도록 삼국 중 가장 긴 젓가락을 사용한다. 또한, 기름진 음식을 즐겨 먹는 중국은 먹기 편하도록 젓가락 끝이 뭉툭하게 처리된 나무젓가락을 사용하여 음식이 미끄러지는 문제를 방지했다. 왼손에 밥그릇을 들고 젓가락으로 식사하는 일본은 독상이기 때문에 젓가락이 굳이 길 필요가 없다. 그리고 생선을 발라 먹거나 회를 먹는 데 쉽도록 젓가락 끝이 뾰족하다. 한국인은 가족이 함께 먹기는 해도 유교적 신분 질서에 따라 밥상을 따로 차렸기 때문에 중국처럼 젓가락이 길 필요도 없고, 중국처럼 기름기 많은 음식도 많지 않고, 그렇다고 일본처럼 해산물을 많이 먹는 것도 아니므로 중국처럼 뭉툭하거나 일본처럼 뾰족할 이유도 없었다. 중국과 일본의 중간쯤에 있는 한국 젓가락 모양의 특성은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해 무척 흥미롭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이 주로 나무젓가락을 사용한 것과는 반대로 금속젓가락을 사용했다.

삼국 모두 식사할 때는 젓가락을 사용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식사 방법이나 밥상 차림, 먹는 음식의 종류에 따라 그에 걸맞게 젓가락이 진화해오면서 젓가락의 세밀함에서 조금씩 차이 난다. 그뿐만 아니라 밥상문화에는 중국의 실용성이나 일본의 개인주의 등의 민족성까지 알게 모르게 담겨 있기도 하다.

‘밥상문화’에 깃든 삼국의 공통점과 차이점

즘에는 한국에서도 ─ 일회용 젓가락이 아닌 ─ 나무젓가락을 많이 사용한다. 우리 집은 오래전부터 나무로 만든 젓가락과 숟가락을 사용해왔는데, 그 이유는 나무가 쇠보다는 가벼우며 손이나 입에 닿는 촉감도 부드럽고 따뜻하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 중국식의 긴 젓가락도 병용해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개인의 취향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현대와 와서는 서로 간의 문화적 경계성도 차츰 흐려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 숟가락은 쌀밥을 먹을 땐 국이나 찌개를 꼭 함께 먹어야 밥을 먹는 것 같다고 주장하는 한국에서만 젓가락과 함께 병용해서 사용할 뿐이다. 중국과 일본에서 숟가락이 일상적인 밥상에서 사라진 지 꽤 오래되었듯이, 한쪽에서는 소통과 교류의 원활함으로 문화적인 경계가 흐려지기도 하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그 경계면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쪽으로 진화되어오기도 했다. 간단하게 삼국의 밥상문화를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삼국이 가진 문화의 다양성과 민족성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 중 일 밥상문화』(지은이 김경은)는 삼국의 대표 ‘음식’과 ‘밥상’만으로 삼국의 문화를 비교하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가 즐겨 먹는, 그리고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라 할 수 있는 자장면, 짬뽕, 김밥 등의 유래도 포함되어 있으며, 곰 발바닥이나 모기 눈알, 원숭이 해골, 바다제비집 등 식도락가들의 진귀한 음식도 포함되어 있다. 주영하 교수가 『음식인문학』에서 새로운 학문으로 주창한 ‘음식학’을 떠올려본다면, 『한 중 일 밥상문화』는 삼국의 대표 음식과 밥상 차림을 조리학, 영양학, 민속학, 미식학, 역사학 등의 관점으로 비교 분석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음식인문학』처럼 독자의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하기보다는 독자의 군침을 삼키게 할 대목이 더 많다. 고로 배고플 때 이 책을 본다면 라면 한 봉지라도 끓여 먹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물론 책에 등장하는 천하일품의 요리와 라면과의 격차는 필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극명의 차이지만, 시장기가 반찬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전주비빔밥의 유래?

런데 『한 중 일 밥상문화』에는 『음식인문학』(지은이 주영하)에서 본 내용과 몇 가지 다른 설명이 있어서 정리해보았다. 처음으로 살펴볼 내용은 ‘전주비빔밥’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한 중 일 밥상문화』는 전주비빔밥은 평양냉면, 개성 탕반과 함께 조선 시대 3대 음식으로 꼽힐 정도로 유명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음식인문학』에서 인용한 일본강점기 때의 잡지 《별건곤(別乾坤)》 제24호(1929. 12. 1)에는 <팔도명식물예찬(八道名食物禮讚)>이란 특집기사 중에 ‘경상도 명물(慶尙道名物) 진주(晋州)비빔밥’이란 글이 있다. 이때 활성화된 진주의 우시장 때문에 비빔밥에 육회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고기의 비린 맛과 살균을 위해 고추장이 양념으로 쓰였다고 한다. 1920년대에는 전주비빔밥은 있지도 않았으며 전주비빔밥이 식당의 메뉴로 자리를 잡은 시점은 아무리 오래되었더라도 1930년대를 넘기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주영하 교수의 설명이다. 1929년의 《별건곤》 제24호에는 전주의 대표 음식으로 ‘비빔밥’이 아니라 ‘탁백이국’,즉 지금의 모주와 함께 나오는 콩나물국밥을 꼽았다. 주영하 교수에 따르면 전주비빔밥이 현재의 지위를 차지한 것은 1980년대 이후 지역사회와 외식업체가 합세해서 만든 상업주의의 결과다.

젓가락 장단의 원조는?

다음으로 짚고 넘어갈 대목은 ‘젓가락 장단’이다.

한 • 중 • 일 문화를 비교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이 ‘중국이나 일본에도 젓가락 장단이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한국도 이젠 젓가락 장단을 맞추며 노래하는 일은 거의 사라졌지만, 어떻든 젓가락 장단은 한국인이 즐기던 독특한 놀이였다. (『한 중 일 밥상문화』 중에서)

나의 짧은 생각을 말하자면 조선인들이 젓가락 장단을 맞추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쉽게 머릿속에 떠올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흔히 술자리에서 젓가락 장단에 맞추어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주로 ‘뽕짝’이라 부르는 경쾌한 리듬의 트로트이다. 알다시피 이 트로트는 일본 엔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조선 시대에 젓가락 장단까지 동원해가며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조선 후기에 생긴 신민요인 ‘늴리리야’가 문득 떠오르는데, 이 늴리리야는 굿거리장단으로 이런 단순하지만은 않은 국악의 장단을 흥청망청 취한 상태에서 과연 마구잡이로 두드려대는 젓가락으로 박자나 리듬을 따라갈 수 있을까? 이보다는 기생이 연주하는 장구 소리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놀았을 것 같다.

아무튼, ‘젓가락 장단’에 관한 것도 『음식인문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영하 교수는 1928년 10월 경성에서 일본어로 발간되었고 조선인의 식사를 내지인(일본인)과 서양인의 풍속과 비교 설명한 오카다 미쓰구가 쓴 《내선융화요체》를 인용하면서,

이를테면 “최근에 내지인들의 경박함도 양해가 되어 조선인도 하기 시작했고, 조선 고래의 관습도 점차로 엷어져 왔기 때문”에 일본인의 태도에 대한 오해가 많이 줄었다고 했다. 오카다가 묘사한 이 내용은 부자들이 양반들의 흉내를 내서 기생을 불러 연회를 하는 장면이지만, 어느 사이에 조선 민중들은 술자리에서 젓가락으로 탁자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일본식 연회를 닮아가고 있었다(『음식인문학』, p274)

젓가락 장단을 일본의 유래로 설명하지만, 정작 『음식인문학』에서 인용한 《내선융화요체》 글에는 ‘젓가락 장단’이라는 단어는 없다. ‘내지인의 경박함’을 ‘젓가락 장단’으로 넘겨짚은 것일까? 혹은 인용되지 않은 원문에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로서는 더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현대 엔카의 효시로 보는 ‘엔카 장사단(演歌壮士団, 1888년 결성)’의 유명한 노래 ‘다이너마이트 부시(ダイナマイト節)‘를 (들어보고자 하는 사람은 유튜브나 구글 검색) 들어보면 젓가락 장단으로 흥을 돋우기에 안성맞춤인 곡이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 ’12첩‘ 반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막으로 상차림 격식 중 하나인 ‘12첩’의 존재 여부에 관한 내용이다.

『한 중 일 밥상문화』는 ‘독상은 보통 3첩, 5첩, 7첩, 9첩, 12첩 등의 식단으로 차려진다.’, ‘수라상에는 12첩이 오르는 게 보통이다.’ 등 ‘12첩’ 밥상의 존재는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음식인문학』에서 주영하 교수는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 등장하는 ‘열두 접시 쌍조치’를 거론하며 과연 조선 시대에 12첩 반상이란 격식이 존재했는지를 의심한다.

문제는 과연 12첩 반상이란 격식이 조선시대에 존재했는가 하는 점이다. 아직까지 조선시대 문헌자료에서 이러한 격식의 상차림이 왕실과 사대부에서 하나의 예제(禮制)로 자리 잡았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현재까지는 최초로 상차림을 적은 한글 필사본 《시의전서(是議全書)》에도 5첩 • 7첩 • 9첩 상차림만 나온다. 이 책은 1890년대에 쓰였고, 1910년대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니 12첩 반상이란 개념은 조선시대 전기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많다. (『음식인문학』, p439)

또한, 빈대떡 등의 부침 요리를 소개하며 ‘중국의 라이빙, 일본의 오코노미야키, 베트남의 반카이, 인도의 도사, 이탈리아의 피자 등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부침 요리이다.’라고 피자를 부침 요리에 포함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다른 것은 잘 몰라도 피자는 구운 요리 아니었던가?

마치면서...

자를 부침 요리로 소개하거나 1920년대까지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전주비빔밥을 뚜렷한 근거 없이 떠도는 풍문인 ‘조선 3대 음식’으로 소개하는 등 오류도 적지 않지만, ‘가깝고도 먼 나라’인 삼국 간의 비슷하면서도 차이를 보이는 문화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밥상문화’라는 익숙하고 친근한 맥락으로 비교 설명한 점은 가볍게 읽을만하다. 특히, 흔히 먹으면서도 영양학적인 면의 소중함을 간과하기 쉬운 녹두나 콩, 누룽지 등을 약과 음식의 근원이 같다는 약식동원(藥食同源) 원칙의 일상화 및 대중화의 한 예로 소개한 점은 건강과 체력을 음식으로 관리하려는 독자에게는 좋은 ‘약발’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피부색을 바꾸는 먹는 화장품’을 ─ 예를 들어 들깨죽을 1년만 상식하면 나이를 거꾸로 먹어 모녀를 자매로 오해할 정도가 된다고 한다고 하니 이 놀랍지 아니한가! ─ 소개한 마지막 장은 아름다워지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맛있고’ ‘먹음직스럽고’ ‘보기 좋은’ 음식들만 소개된 것은 아니다.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소재로 ‘음식’을 선택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등장하는 것이 ‘혐오’ 음식이다. 물론 이 ‘혐오’는 상대적이다. 그리고 당연히 ‘엽기’적인 음식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모기 눈알’을 가지고 요리한 것이 그렇다.

특히 중국의 엽기적인 음식문화를 보면, 정말 인간의 식탐은 이 우주에서 따를 존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만약 지구의 식량이 단 하루아침에 고갈된다면 제일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나라는 중국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왜냐하면 첫째, 중국은 오래전부터 인육을 상육(想肉)이라 부르며 상설시장까지 두고 먹은 경험이 있다. 둘째, 중국의 의서 본초강목(本草綱目)에도 사람의 부위별로 약효가 기록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인육에 대해서는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박식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 셋째, 중국의 인구다. 상황이 절박해지면 다른 나라 사람들도 굶어 죽지 않고자 어쩔 수 없이 인육을 먹게 되겠지만, 중국은 그냥 ‘먹는 것’을 넘어서 ‘요리’해 먹으면서 ‘맛’과 ‘영양’까지 고루 생각할 것이니, 억지로 먹는 것과 즐기며 먹는 것이 어찌 차이가 나지 않겠는가.

이 리뷰는 2015년 6월 7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약간의 수정을 거쳐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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