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그리고 일상적인 생각을 쓰고. 이 모든 것을 음악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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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27.

AMD 카탈리스트 설치 시, '응용프로그램 설치 실패' (Application Install: install package failure)

AMD 카탈리스트 드라이버 설치 중 "Application Install: install package failure"라는 오류와 함께 그래픽 드라이버만 설치되고 CCC(Catalyst Control Center)는 설치가 안 될 때가 있다. 윈도우 이벤트 오류를 보고 찾아낸 해결 방법은 D 드라이브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디스크 관리]에서 다른 운영체제가 설치된 VHD 파일을 D 드라이브로 연결하고 다시 설치하니 해결되었다. 아니면, 스크린샷처럼 새로운 VHD를 만들어 D 드라이브로 연결하면 된다.

이 리뷰는 2015년 5월 27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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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24.

[책 리뷰] ‘음식학’을 위한 한 수 ~ 음식인문학(주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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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학’을 위한 한 수

Original Title: 음식인문학 - 음식으로 본 한국의 역사와 문화 by 주영하
한국음식을 맛있게 먹는 방식은 밥과 국, 반찬을 입속에서 섞어 먹는 것이 제격이다. 국밥은 국에 밥을 만 것이고, 비빔밥은 밥에 반찬을 넣은 것이다. (『음식인문학』, p315)

람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생존하려면, 각자 나름의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생명 유지 활동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한다. 사람은 날것이든 조리를 해서든 뭔가를 먹음으로써 힘을 얻고 이것은 대다수 동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자연적인 발생으로만 생산되는 먹이를 찾아 먹는 동물들과는 달리 사람은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르는 등 먹는 것을 생산하기 위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기술을 오래전부터 익혀오면서 다양한 식량 자원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고, 이렇게 생산된 재료를 더러는 날로도 먹지만 대부분 가공하고 조리하여 ‘음식(飮食)'으로 만들어 먹는다.

사람에게 음식은 생명 유지 활동을 위한 영양분을 제공한다는 기초적인 의미를 넘어서 음식이 주는 다양한 풍미로 말미암은 기쁨과 포만감은 생활의 활력소가 될 뿐만 아니라 음식의 변천 과정에는 문화와 사회, 정치경제의 역사적 변천 과정의 흔적도 각인되어 있다. 또한, 음식은 알게 모르게 먹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여건 등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하루 세끼로도 모자라 때론 부수적으로 간식이나 야식까지 꼬박 챙겨 먹는, 더군다나 TV의 화젯거리로 지겹도록 나오는 ‘식사’와 ‘음식’의 역사와 문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음식인문학 - 음식으로 본 한국의 역사와 문화』은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완전한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음식의 역사와 문화의 기존 연구방법 등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보완하는 접근법으로 저자 주영하가 제시한 독립적인 새 학문인 ‘음식학’의 자리매김을 위한 준비 과정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음식 역시 사회를 지배하는 문화의 일부이기 때문에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으며, 음식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는 친척이나 사회조직이 간여하며, 종교적 세계관 등의 사상적인 면도 개입되어 있다. 그러므로 음식을 연구함에 물질적인 접근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적인 접근법도 필요하다. 그래서 과학 • 예술 • 역사 •사회, 그리고 다른 여러 학문 분과를 포함하여 음식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하는 학문이 바로 음식학이다.

1990년대 이후 급증한 음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기존의 학문 체계에서는 충족시킬 수 없었을뿐더러 기존의 연구성과 역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고, 이러한 난국을 타파할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음식학’이라는 새롭고 독립된 학문이다. 또한, 음식학이 발전적으로 사회에 이바지할 구실을 할 수 있으려면 음식학에 참여할 수 있는 여러 학문 분야의 연구자들이 그동안 묵시적으로 존재해왔던 서로 다른 학문 분야 간의 벽을 허물고 자유롭게 논의를 주고받으며 소통할 수 있어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은 저자가 1999년 이후 학회지나 연구논문집에 발표한 글들을 수정, 보완해서 집대성한 내용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읽기에는 다소 딱딱하고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논문들을 관통하는 ‘음식’이라는 주제 자체가 사람의 일상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에 독자에 따라서는 충분히 흥미를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특히 3장의 「한국음식의 매운맛은 어떻게 진행했는가」와 5장의 「비빔밥의 진화와 담론 연구」, 6장의 「주막의 근대」,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의 눈에 비친 조선음식을 중심으로 구성한 8장 「타자화된 조선음식」 등은 보통의 독자들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내용이므로 『음식인문학』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 부분만이라도 우선으로 읽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또한, 『음식인문학』은 저자도 인정했듯 보통의 교양서적을 생각하고 설렁설렁 읽으려고 책장을 열었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는 학문적인 깊이가 있는 책이다. 그러나 지혜롭게 이 책을 선택한 독자는 약간의 각오와 함께 조금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현명하게 마지막 장까지 차근차근 더듬어 길을 밝혀간다면, 반드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이 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그 ‘무언가’는 다음 독서를 위한 왕성한 호기심과 지식욕을 자극함으로써 독서를 지속하는 탁월한 약발이 될 것이며 더불어 ‘음식’에서 배와 식욕을 채워주는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혜안도 길러줄 것이다.

이 리뷰는 2015년 5월 24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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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10.

[책 리뷰] 가식적인 영광에 가려진 위대한 통치자의 진짜 얼굴 ~ 람세스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파라오

Ramesses-Egypt's-Greatest-Pharaoh-book-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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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적인 영광에 가려진 위대한 통치자의 진짜 얼굴

Original Title: Ramesses: Egypt's Greatest Pharaoh by Joyce Tyldesley

집트의 파라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은 라메세스, 즉 람세스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람세스 2세(이하 람세스)다. 람세스는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일부를 이루는 19 왕조의 세 번째 왕으로 재위 기간은 BC 1279~1213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집트 내에서는 왕의 휘하에 있는 아주 효율적인 선전기구가 람세스를 신적인 속성을 지닌 살아 있는 전설의 위치로까지 끌어올렸다. 누비아에서 람세스는 이미 완전한 신이 되었다. 나일 강이 매년 적당히 범람하여 계속 풍년이 이어지고, 국제정세가 안정되고, 람세스가 자신의 동년배들은 물론이고, 상당수의 자식들이나 손자들보다 더 오래 살 만큼 예외적인 장수를 누리는 등의 행운이 겹친 덕에 이집트는 이웃나라들이 시샘할 만큼 안정되고 일관된 한시 대를 향유할 수 있었다. 행운이 따라서든 통치를 잘해서든 간에 이집트는 람세스 치하에서 번영했고, 백성들은 그에게 고마워했다. (『람세스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파라오 』, 중에서)

람세스 2세 사후 이집트는 끊임없는 쇠락을 길을 걸으면서 오랜 기간 번영을 누렸던 람세스 2세의 시대는 돌아오지 않는 옛 영광이 되었고 치세를 이끌었던 그는 신적인 존재로까지 격상되었다.

조이스 타일드슬레이(Joyce Tyldesley)의 『람세스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파라오(Ramesses: Egypt's Greatest Pharaoh)』는 신화와 전설 뒤에 숨겨진 람세스 2세의 인간적인 모습을 현존하는 증거들을 토대로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3천 년도 더 지난 시대의 이야기를 매우 빈약한 증거와 자료를 근거 삼아 논리적으로 완성된 하나의 사실로 엮어내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저자의 상상력과 추리가 적절하게 보태졌음에도 이야기 중간마다 빈 곳이 많이 드러나지만, 그 빈 곳이 많을수록 독자는 더욱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야기의 빠진 부분이나 앞뒤 연결이 느슨한 부분을 독자의 상상력으로 채움으로써 독자만의 대서사시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스는 위대한 파라오가 되게 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위대한 파라오들은 하나같이 용감한 전사요, 강력한 건설자요, 교양 있는 저술가요, 영험한 신관들이었다. 그래서 파라오들이 신전 벽 등에 남긴 기록은 과대 포장된 승리뿐이었다. 람세스는 비용이나 노력을 절약하기 위해 전임자들의 업적과 기념물들을 가로채거나 정교한 양각 부조 양식이 아닌 속도는 빠르지만 정교한 맛은 덜한 음각 방식으로 기념물을 장식했으며 좀 더 많은 기념물을 남기고자 날림공사도 내버려 뒀다. 역대 왕들을 뛰어넘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람세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한 노력 덕분에 람세스의 명성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할 것이다. 더불어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한 붕 뜬 명성에 가려진 인간 람세스의 진짜 모습은 더더욱 자취를 감춰질 것이다.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 『람세스』는 람세스의 바람대로 위대한 파라오의 모습을 적절하게 잘 그려냈지만, 그것이 진정한 람세스의 모습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나일 강을 거슬러 1천 마일』에서 람세스 왕이 현대 이집트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듯하다고 말한 아멜리아 B.에드워즈는 “그의 사람됨을 서술하려는 모든 시도는 … 사실상 자신의 환상을 표현하는 일에 불과하다.”라고 갈파했을 정도다.

중국 최초의 여황제 무측천을 서술한 역사가들도 그러했듯 역사가들은 오래전 인물의 개성과 행위 동기들을 서술할 때 강한 표현이나 자신의 감정이 개재된 정서적인 표현들을 주저 없이 사용한다. 그래서 무측천은 그녀가 남긴 위대한 업적은 무시되고 음탕하고 잔인한 군주로만 알려진 때도 있었다. 람세스 역시 권력을 멋대로 휘두르며 자신의 기념물을 남기는 대만 전념한 폭군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그래서 신학자 케네스 키친은 “람세스 2세의 행동과 태도를 우리 자신의 사회적 가치들에 비추어서 교만하고 과대망상적이라는 식으로 쉽게 재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의 그런 면들은 우리 문화가 아니라, 그의 문화의 표준과 이상에 해당하는 것들과 비교해봐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세스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를 하려면 일단 그 시대를 알아야 하고 그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증거와 자료들은 거대한 빙산의 단편적인 조각뿐이다. 그럼에도, 조이스 타일드슬레이는 그 불완전한 조각들에서 완전한, 완벽한 하나의 사실은 아닐지라도 놀랍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끌어내고 있다. 그것은 현재로서는 인간 람세스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퍼즐 조각들이다. 그리고 이 조각들을 가지고 한 편의 유기적인 이야기로 완결짓는 것은 역시 독자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 속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황제의 자리를 탐낸 무측천은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려고 낙서(洛書)를 위조하거나 자신의 행동이 '하늘의 뜻'에 들어맞음을 알리고자 낙양에서 전례 없는 배낙수도(释洛受圖) 행사를 거행해 자신을 신화적인 존재로 만들려고 했듯이 람세스 역시 전설을 이용해 자신이 나라를 통치할 운명을 타고난 신의 아들로서 최소한 반신적인 인물로 만들고자 했다는, 위대한 통치자들이 권력 강화를 위해 사용한 편법이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여덟 남매를 둔 어느 부유한 미망인이 남긴 유언이다.

저는 이집트의 미망인입니다. 저는 여덟 아이를 키웠고, 그 아이들에게 제 신분에 걸맞게 모든 것을 골고루 갖춰줬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늙고 나니, 제 자식들이 더이상 저를 돌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재산을 저를 모시는 아이들에게 줄 겁니다. 저를 소홀히 대하는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물려주지 않을 겁니다. (『람세스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파라오 』, 중에서)

이 유연을 남긴 미망인이 죽은 지 적어도 3천 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많은 부모가 같은 문제로 낙심하고 고민하는 것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아 놀랍기만 하다.

이 리뷰는 2015년 5월 10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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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3.

[책 리뷰] 학자와 상인의 도리를 논하다 ~ 태풍(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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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와 상인의 도리를 논하다

Original Title: 野分 by 夏目漱石

리에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의 저자로 잘 알려진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태풍(野分)』은 2011년에 국내 처음으로 번역되어 소개되었을 정도로 많이 알려진 소설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두 작품에서 독자를 사로잡은 해학이나 풍자는 온데간데없고 대신 소설의 주인공 시라이 도야의 입을 빌려 저자 나쓰메 소세키의 이상주의를 설파하는 데 중점을 두는 듯한 뉘앙스가 매우 강한 소설이다.

주인공 시라이 도야는 문학자이지만, 생계를 위해 지방의 중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한다. 그러나 도야는 가는 곳마다 고지식하게 자신의 이상주의적인 의견을 내세우다 동네 유지들이나 토박이들에게 눈에 나고 선생과 학생들에게는 짓궂은 장난이나 놀림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고초를 겪다 결국 도쿄로 돌아오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저작인 ‘인격론’을 틈틈이 써가며 하루하루 힘든 삶을 이어간다.

한편, 대학을 졸업한 다카야나기는 일생일대의 작품을 써 성공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자신에게는 돈도 없고, 시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세상은 하나같이 초라한 몰골의 자신을 멸시하고 괴롭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톨이로 남아 아무 글도 쓰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그의 곁에는 유일한 친구인 나카노가 있지만, 곱게 자란 부잣집 도련님인 나카노는 다카야나기의 절실하고 절박한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태평한 청춘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잡지사의 기자로 일하던 도야에게 나카노를 취재할 기회가 생긴다. 다카야나기에게 괴롭힘을 당해 중학교 선생 자리에서 쫓겨난 도야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던 나카노는 다카야나기에게 도야 선생의 소재를 알려준다. 다카야나기는 자신 때문에 그가 안정된 직장인 학교에서 쫓겨나 힘든 삶을 사는 것 같은 죄책감을 짊어진 채 도야의 집을 찾는다.

자신을 무시하고 부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적대시하며 벽을 쌓고 스스로 외톨이가 되었던 다카야나기는 자신과 같은 외톨이면서도 고상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도야 선생의 태연스러운 자세에 감명과 함께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나 다카야나기의 창백한 얼굴에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소설 『태풍』에서는 ‘태풍’은 불지 않는다. 그러나 작품의 계절적 배경이 늦가을에 접어들면서 시종일관 문장과 낱말들 사이를 유유자적 흐르는 인정 없는 가을바람은 주인공 다카야나기가 사는 집 초라한 정원의 오동나무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마지막 잎사귀마저 사정없이 공중으로 날려버린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다 이를 지켜본 다카야나기는, “떨어졌다. 떨어졌어”라고 풀이 죽은 듯 말한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장면은 쓸쓸하면서도 은근히 소름 끼친다. 세상을 놀래줄 대작을 남기는 공상의 힘으로 겨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청년 다카야나기는 오동나무에 외톨이로 남아 있던 마지막 잎사귀에서 동병상련의 애틋한 감정을 느끼며 의지하고 있었는데, 그 잎사귀마저 무정한 바람에 날려 떨어지자 자신도 저 잎사귀처럼 대작은커녕 완성된 작품 하나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과 초조한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닐까.

다카야나기의 회의적이고 염세적인 마음은 또 한 명의 외톨이지만 다카야나기처럼 어둡고 쓸쓸한 외톨이가 아닌 도야 선생을 만나면서 변화한다. 도야 선생은 외톨이는 숭고하다고 말한다. 도야 선생은 다카야나기가 남들보다 높은 평면에 있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그 평면을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외톨이이고, 커다란 차별이 있다고 자인했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번민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자신은 이름 같이 미덥지 못한 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그저 자신의 만족을 얻으려고 세상을 위해서 일하고 있으며, 그 결과 악명이 되든, 오명이 되든, 미친놈이 되든 상관없고 단지 이렇게 일을 하지 않으면 만족을 얻을 수 없어서 일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도야 선생이 본 천지는 타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천지였다. 다카야나기 군이 본 천지는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천지였다. 타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천지이기 때문에 돌봐 주는 사람이 없어도 원망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천지였기 때문에 자신을 상대해 주지 않는 세상을 잔혹하다고 생각했다. 보살피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과 보살핌을 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은 이 정도로 다르다. 타인을 지도하는 자와 타인에게 의지하는 자는 이 정도로 다르다. 다카야나기 군은 그 차이를 몰랐다. (『태풍(野分)』, p156)

야 선생은 돈이나 명성 등의 세속적인 일이나 사람들 시선에 ‘구애(拘礙)’받지 않는 초연한 삶을 살고, 다카야나기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과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하나하나 신경 쓰다 보니 쓸데없는 고통과 걱정을 안고 사는 꼴이 된다. 이러한 도야 선생의 생각은 잡지에 기고한 「해탈과 구애」라는 글을 통해서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참된 자기만의 깨달음의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 구애의 번민을 불식시켜 가능한 한 그들로 하여금 제일종의 해탈에 다가가게 하는 것을 도덕이라고 한다. 도덕이란 도를 가진 선비로 하여금 도를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그들에게 부여하는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이 대도덕(大道德)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를 속인(俗人)이라고 한다. 천하 대다수의 사람들은 속인이다. 자신의 지위에 집착하기 때문에 이 대도덕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의 부에 집착하기 때문에 이 대도덕을 이해하지 못한다. 타락한 사람은 자신의 술과 자신의 여자에 집착하기 때문에 이 대도덕을 이해하지 못한다. (『태풍(野分)』, p111~112)

구애를 벗어나기 위한 해탈에는 취미의 선구인 광명과 사회의 기름인 취미가 요구된다.

학도에게는 광명을 체득할 것이 요구된다. 광명에서 흘러나오는 취미를 실현할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구애 받지 않을 것이 요구된다. 구애 받지 않기 위해서 해탈이 요구된다. (『태풍(野分)』, p114)

다카야나기는 도야 선생의 글을 읽고 도야 선생과 대화를 하며 넓은 세상으로 끌려 나온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작품 마지막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막힘없는 도야 선생의 연설을 듣고 그동안 자신의 꽉 막힌 가슴 속에 담겨 있던 묵직한 응어리가 한순간 허물어지는 통쾌한 쾌감에 감격한다. 도야 선생의 연설은 『태풍』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나쓰메 소세키의 철학과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지만, 100여 년 전 메이지 유신의 일방적인 근대화 40여 년을 겪고 난 후인 도야 선생의 주장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경제 발전을 어느 정도 달성한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에도 놀라울 정도로 들어맞는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무릇 한 시대에 있어서 초기 사람들은 자손을 위해서 살아갈 각오를 해야 합니다. 중기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서 살아갈 결심을 해야만 합니다. 후기 사람들은 아버지를 위해서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해야만 합니다. 메이지는 40년이 지났습니다. 초기라고 봐도 상관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현대의 청년들인 여러분은 자기발전에 크게 힘써 중기를 형성해 나가야만 합니다.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고, 앞을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오로지 자아를 마음껏 발전시킬 수 있는 지위에 서 있는 여러분은 인생의 가장 커다란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태풍(野分)』, p220)

도야 선생의 주장을 대한민국 과거와 현실에 억지로 꿰맞추어 보면 ‘초기 사람’인 지금의 30, 40대의 부모 세대들은 자손을 위해서 ‘전례가 없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고, 30, 40대는 ‘전례가 없는’(한강의 기적) 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중기 사람’들로서 자기발전에 힘써야 하는 세대들이다. 우리의 현실과 얼추 들어맞는 것 같지 않은가. 학점, 자격증, 어학연수 등 요즘처럼 자기발전에 목매달았던 시대가 또 어디 있었을까. 그렇다면 도야 선생이 말한 자기발전도 이런 뜻이었을까? 요즘 젊은이들처럼 많이 배워 머리에 든 것은 많지만 오로지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생각에 세상과 사회의 부조리에 의문을 갖지 않는 벙어리와 장님이 되기 위한 자기발전을 말한 것일까? 아니면 학문을 닦고 수양을 쌓아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그것으로 널리 이롭게 할 수 있는 인격적 완성을 위한 자기발전일까.

후기에 이르면 유연성을 잃게 됩니다. 단지 전대를 조술(祖述)하는 것 외에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움직일 수가 없어서 인간이 썩으면 다시 파란이 일어납니다. 일어나지 않으면 화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화석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파란을 일으키는 겁니다. 이것을 혁명이라고 합니다. (『태풍(野分)』, p221)

기발전도 소용없었던 것일까. ‘전례가 없는’ 사회도 결국 과거의 전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 조선왕조가 500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상승 곡선 뒤에 하강 곡선을 그려왔듯이 ─ 현재의 대한민국이나 일본도 언젠가는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로 전환되어 결국에는 끝장을 볼 수도 있다는 말인가! 역사적으로 국가나 정부의 흥망성쇠가 반복됐던 것처럼 말이다. 도야 선생 주장의 핵심은 바로 학자와 부자, 학문과 자본과의 대립이다.

학자이기 때문에 돈이 없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때문에 학자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학자는 돈이 없는 대신 사물의 이치를 아는 것이며, 상인은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그 대신 돈을 버는 것입니다. (『태풍(野分)』, p228)

저 사람은 부자이고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고 있으니 이치도 알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말할 필요도 없이 교양도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교양을 쌓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돈을 벌 시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연은 공평하기에 한 사람에게 돈도 벌게 하고 동시에 교양도 쌓게 할 정도로 편을 들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간단한 도리도 모르고 지금의 부자들은 자만에 빠져서 자신들은 사회의 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중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으니 세상에 자신만큼 이치에 통달한 사람도 없다, 학자가 됐든 뭐가 됐든 내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가련하기 짝이 없는 생각으로 그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교양 없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태풍(野分)』, p229)

어떤 의미에서 돈은 귀중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그 귀중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거기까지는 누구도 뭐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돈 이외의 분야에서 그들은 세력을 떨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돈 이외의 표준으로 사회적 지위를 얻은 사람들 사이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학자도 부자들의 영역으로 들어가 금전본위의 구역 안에서 위세를 부려도 좋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들만은 자신들의 영역 안에 얌전히 머물려 하지 않고 다른 영역에까지 들어가 설치려 합니다. 그것이 이치를 모른다는 좋은 증거입니다. (『태풍(野分)』, p231)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에 푹 절어 사는 우리에게 도야 선생의 이러한 주장은 오히려 그가 세상 사는 이치를 더 모르는 어린애로 보이게 한다. 냉소적으로 본다면 가난한 학자의 구차한 변명이자 부자에 대한 질투나 불평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자가 말한 학문(學問)의 이치를 추구하는 진정한 학자나 지식인이 사라져가는 요즘에 시대에서 본다면 그렇게 가볍게 보고 넘길 수는 없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렇게 도야 선생이 유독 부자에 대해 쓰디쓴 질타를 가한 것에는 저자 나름의 고충이 숨어 있다. 이 작품을 발표할 당시(1907년 1월) 나쓰메 소세키는 이미 네 딸의 아버지였다. 이 당시 그의 심정은 1906년 1월 14일에 친구 스가 토라오에게 보낸 편지 속에 잘 나와 있다.

우리 집에서는 또 작년 연말에 아기가 태어났다. 또 여자아이이다. 우리 집은 여자 전문이다. 네 명의 여자아이가 차례차례로 시집을 갈 일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저축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작년 12월에는 여러 곳에 돈을 쓸 데가 생겨서 300엔 가까이를 지불했다. 다행히 저작著作의 인세印稅가 있었기 때문에 급한 대로 썼지만 어쨌든 돈이 들어가는 데는 놀랄 뿐이다. 자네는 될 수 있으면 저축을 해야 된다.

도쿄도 별반 변한 것이 없다. 요즈음은 날씨도 좋다.

나도 대학을 그만두고 세상의 처사処士(민간에 있으면서 임관任官하지 않는 사람)가 되고 싶다. 대학은 학자 가운데 귀족이다. 웬일인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쓰메 소세키 – 생애와 작품』, 권혁건, 고려대학교 출판부)

그래서 나쓰메 소세키는 당시 학자로서 최고의 명예라 할 수 있는 도쿄 제국대학 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와 파격적인 대우를 보장한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한다. 즉, 명예보다는 실리와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선택한 것이다. 그 역시 많은 딸자식 때문에 돈을 벌어 저축해야 한다는, 딸을 많이 가진 아버지라면 가질 만한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훗날 그는 문부성에서 수여하는 박사학위까지 거부한다.

박사가 아니면 학자가 아닌 것으로 세상에서 생각할 정도로 박사학위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학문은 몇몇 박사의 전유물이 되어 소수의 학자적 귀족이 학권学権을 장악해 버리게 되는 동시에, 박사 선출에서 낙선된 다른 학자는 완전히 일반으로부터 등한시되는 결과가 나타나 좋지 않은 폐해의 속출 우려가 있다. (『나쓰메 소세키 – 생애와 작품』, 권혁건, 고려대학교 출판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자신의 저서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에서 한국에서는 비슷한 부류끼리 카르텔을 형성해 계급을 만들어, 학문 발전을 위해서 상호 경쟁하자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거나 끌어내리기만 해 학문에 발전이 없다고 지적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미 100여 년 전에 학자들의 타락을 정확히 예견했던 것이다.

품과 함께 저자의 삶을 들여다보면 학자로서 학문만을 추구해서는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신경질적인 불만과 자신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들이 성공해서 거대한 부를 쌓고 아무 탈 없이 안락하게 사는 모습에 질투가 엿보인다. 그래서 시라야 도야라는 대타를 내세워 포효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덕분에 독자는 『태풍』에서 나쓰메 소세키가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준 해학이나 풍자, 맛깔스럽고 문장이나 고아한 작품의 품격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그보다는 다소 지루하고 상투적인 느낌이 더 와닿는다. 그러나 19세기 말, 위에서부터 물밑 듯이 쏟아져 내려온 일방적인 서구화에 휩쓸리면서 산업화와 물질만능주의 병폐를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비판하고 예견한 나쓰메 소세키의 통찰력을 높이 평가하는 독자라면, 어찌 안 읽으랴. 그 어느 작품보다도 나쓰메 소세키의 사상이 집약된 이 작품을….

이 리뷰는 2015년 5월 3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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